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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대표팀 유니폼은 왜 국기 색상과 다를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 색상은 주로 자국의 국기로부터 따 온다. 물론 예외도 있다. 전통적인 축구 강국 중에는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신흥 강국 중에는 일본과 호주가 있다. 최근의 독일대표팀은 2018, 2022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연달아 실패하며 부진에 빠졌지만, 전통적으로 이들은 꾸준함의 대명사였다. 독일은 월드컵에 19번 출전해 8강 이상을 16번 기록했고, 결승전 최다 진출국(우승 4번, 준우승 4번)이다. 뛰어난 축구 실력과 더불어 독일대표팀은 아름다운 셔츠를 종종 선보이며, 글로벌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독일대표팀의 홈 셔츠는 흰색이다. 국기 색상인 검정, 빨강, 금색(노랑색이 아님)과 연관이 없다. 예전에 이에 관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지만, 필자의 글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한다.키트 색상의 역사는 11세기 말에 시작한 십자군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지 예루살렘을 무슬림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많은 가톨릭 수도회가 생겼다. 수도회에 속한 이들은 수도자이자 기사였다. 이 중 대표적인 기사단이 구호기사단, 성전기사단, 튜튼기사단(독일기사단)이다. 튜튼기사단은 예루살렘이 위치한 레반트 지역과 발트해의 기독교인을 보호했다. 튜튼기사단은 13세기 초반 발트해 남동쪽에 독일 기사단국을 세웠다. 16세기 초반 기사단국은 세속 국가로 전환하며 프로이센 공국이 되었다. 1701년 왕국으로 승격한 프로이센은 1871년 분열된 독일 민족을 통일하며 독일 제국을 출범시켰다.독일 축구대표팀 키트의 색상은 1926년 이후부터 흰색 셔츠, 검은색 바지에 흰색 양말이 되었다. 블랙과 화이트로 구성된 프로이센 국기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또한 프로이센의 국기는 튜튼기사단의 상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일팀의 홈 키트 색상은 십자군 전쟁에서 유래했다.195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TV에서 축구가 중계되었다. 경기장의 관중들은 한 팀이 파란색 다른 팀이 빨간색 혹은 검은색 셔츠를 입어도, 두 팀을 구분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흑백 TV를 통해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혼란을 일으켰다. ‘두 번째 색상(second color)’을 가진 어웨이 셔츠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계기다.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한 서독대표팀의 어웨이 셔츠는 녹색이었다. 이후 2000년까지 녹색이 짙어지거나 다른 색상과 혼합될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녹색은 이들의 어웨이 셔츠 칼라였다. 축구 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일대표팀은 자신들과 별 상관없이 보이는 녹색을 생뚱맞게 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럴듯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2차대전 후 전범국이 된 서독과 축구를 하고 싶은 유럽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아일랜드가 곤경에 빠진 서독에 손을 내밀어 경기를 갖게 된다. 이후 서독축구협회는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상징 색상인 녹색으로 어웨이 셔츠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낭만적인 스토리는 오랫동안 사실처럼 축구팬들 사이에 떠돌았다. 심지어 현재 구글에서 검색을 해도 이렇게 설명이 된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현실은 주로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팩트를 얘기하면, 아일랜드는 서독과 축구를 처음 한 국가가 아니다. 전쟁 후 서독과 맞대결한 첫 번째 나라는 스위스였다. 1950년 11월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서독과 스위스의 친선 경기에는 무려 10만 2000여 명의 관중이 모일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1942년 11월 슬로바키아전을 마지막으로 8년 만에 열리는 국가대표팀 경기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서독의 1-0 승리. 서독팀은 1951년 4월 스위스와 리턴 매치를 했고, 6월 베를린에서 터키와 경기를 가졌다. 9만여 명의 관중이 모인 터키와의 경기 때 서독은 처음으로 녹색 셔츠를 착용했는데, 1-2로 패했다. 이후 서독은 오스트리아와 경기를 했고, 같은 해 10월 더블린에서 마침내 아일랜드와 대결해 2-3으로 졌다.그렇다면 녹색의 기원은 도대체 어디일까? 나치 시절의 독일축구협회(DFB)는 이니셜 D, F, B를 검은색, 흰색,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흑-백-적은 독일 제국의 국기색으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이었고, 1933년 히틀러의 나치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해체하며 부활시킨 색상이다. 종전 후 1949년 DFB가 재조직되면서 새 로고가 만들어졌다. 축구장의 피치를 상징하는 녹색이 협회의 시그니처 칼러가 되었고, 그린 색상의 어웨이 셔츠는 이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독일 국기의 색상인 검-적-금이 DFB의 로고에 추가되면서, 어웨이 셔츠도 녹색 일변도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독일팀은 2002 월드컵에는 ‘두 가지 색으로 된 회색(two-tone grey)’, 2004 유로에는 검은색 어웨이 셔츠를 선보였다. 2006년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 때는 당시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의 강력한 제안으로 빨간색을 어웨이 색상으로 정했다. 많은 팬들이 익숙한 녹색으로 돌아오길 바랐지만, 클린스만은 “적색 셔츠가 팀에게 심리적 우위를 주고, 행운을 가져오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클린스만의 기대와는 달리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적색 셔츠를 입은 독일팀은 1승 3패로 저조했다. 그나마 거둔 1승의 상대도 약체인 남아공이었다. 클린스만은 “월드컵 본선에서 가능한 자주 적색 셔츠를 입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독일대표팀은 2006 대회 때 치른 모든 경기에서 흰색 셔츠를 입었다. 참고로 독일이 월드컵과 유로에서 각각 4번, 3번 우승했을 때 그들은 언제나 흰색 홈 셔츠를 착용했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3.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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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4억' 중국은 왜 축구를 못하나 ①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경기가 1월 25일 막을 내렸다.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국가 중 특히 중국과 인도가 눈에 띈다. 중국은 2무 1패(골득실 -1), 인도는 3패(골득실 -6)를 기록했다. 세부 성적을 보면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두 나라는 무득점에 그친 것이다. 24개 참가국 중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한 나라는 중국과 인도뿐이다.인도는 2023년 중국을 0.04% 차이로 제치고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두 나라의 인구를 합치면 28억 5000만 명이다. 전 세계 인구의 36%에 육박한다. 이렇게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가진 두 나라가 월드컵도 아닌 아시안컵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사실 인도의 성적은 실망스럽지만 충격적이지는 않다. 크리켓, 필드하키를 제외한 인도의 스포츠는 국제 무대에서 변변한 성적을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25번 참가한 하계올림픽에서 인도가 획득한 메달은 35개(금10, 은9, 동16)에 불과하다. 금메달 10개 중 8개가 필드하키에서 나왔다. 역대 메달 순위는 57위.중국은 올림픽에 본격적으로 참가한 횟수가 10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636개(금263, 은199, 동174)의 메달을 기록할 정도로 스포츠 강국이다. 메달 순위는 4위. 이렇게 올림픽 같은 국제 무대에서 많은 메달을 수확하는 중국이 유독 축구만 상상이상으로 못한다.현재까지 중국은 월드컵에 단 1번 진출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중국이 거둔 성적은 3패(득0, 실9). 당시 조별 예선 상대가 브라질, 터키, 코스타리카였다. 중국은 올림픽 축구에 2번 나왔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그들이 거둔 성적은 1무 2패(득0, 실5)였다. 주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한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도 중국은 1무 2패(득1, 실6)였다. 공산화되기 전 중화민국이 참가했던 1936 베를린, 1948 런던 올림픽까지 범위를 넓혀도, 결과는 2패(득0, 실6)다. 이렇듯 중국 축구는 세계무대에서 1승은커녕 한 골을 기록하기도 버거운 형편이다. 많은 스포츠 팬이 “중국은 왜 이렇게 축구를 못할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국 축구의 처절한 성적에는 여러 이유가 얽혀 있다. 이중 필자는 국내에 덜 알려진 이유 위주로 분석해 봤다. 중국 축구를 가리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14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축구 잘하는 11명이 없나?” 하지만 이 질문은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스포츠 경기의 수준과 선수의 숫자는 한 국가의 총 인구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스포츠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2018 월드컵 우승 국가인 프랑스를 예로 들어보자. 2023년 프랑스의 인구는 6800만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이 인구에서 무작위로 뽑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에 있는 축구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만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프랑스의 등록 선수는 210만이다. 따라서 프랑스 전체 인구의 3.1%가 축구 선수다. 유럽 국가 중 독일 다음으로 많은 축구 선수가 등록된 나라가 프랑스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강호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일본은 어떨까? 2022년 일본에 등록된 축구 선수는 82만이다. 즉 일본 인구의 0.65%가 축구 선수다. 중국은 최근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2017년 중국축구협회의 자료를 참고했다. 2017년 중국의 등록 선수는 8만4422명으로 전체 인구의 0.0061%를 차지했다. 즉 중국 축구대표팀은 단지 8만 5000여 명의 선수 중에서 선발된 것이다. 이에 반해 닐슨 스포츠가 발표한 월드 풋볼 보고서에 의하면 2017년 중국의 축구 팬 수는 1억 8700만이었다. 전체 인구의 13.45%가 축구 팬인 것이다. 중국 축구가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선수층이 얇기 때문이다. 특히 유소년 선수의 숫자가 많이 부족해 최상위 계층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유소년은 스포츠와 학업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중국에는 ‘가오카오(Gaokao)’라고 불리는 대입 국가시험이 매년 열리는데, 성적에 따라 학생의 미래가 결정된다. 가오카오가 성공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중국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다.중국 정부가 35년 동안 유지한 ‘한 자녀 정책’도 유소년 축구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중국 부모들은 그들의 유일한 자식이 축구를 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부에 매진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사회적 장벽은 여전히 남아있어 특히 13세 이상의 아이들은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축구를 그만둔다. 게다가 아이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축구를 하려면 상당한 재정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에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포기한다. 중산층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축구를 할 수 없다. 중국의 슈퍼리그는 2010년대 수십억~수백 억원을 쉽게 쓰며 세계적인 축구 스타를 끌어모았다. 이들로 인해 한때 리그의 인기는 올라갔고, 슈퍼리그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도 거머쥐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클럽의 성공은 오히려 중국 축구에 독으로 작용했다. 리그 상위권 팀 대부분이 외국 스타 선수에 의존함으로써, 자국 내 유소년 축구 발전은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축구가 성장하기 위해 유소년 축구에 투자돼야 할 돈이 단기간의 성적과 화려함에 쓰인 것이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2.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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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축구가 나에게 준 모든 것을 앗아갔다” ②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술과 담배는 역사적으로 인류가 가장 즐겼던 기호품이다. 술은 기원전 4000년에 시작된 세계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에 등장한다. 동양의 경우 기원전 1900년에 시작된 황하 문명 때부터 술을 제조했다고 한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전설에도 술 이야기는 나온다.우리는 흔히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끄집어 낼 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무색하게도, 술과 달리 담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5세기에 시작된 ‘대항해시대’를 계기로 담배는 서양에 퍼졌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주술의식 등에 사용하던 담배를 유럽인이 본국에 가져간 것이다. 이후 포르투갈 상인이 담배를 일본에 전했고,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에도 담배가 들어왔다.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담배가 약용으로 쓰였다. 유럽에 담배가 소개된 지 300여 년 동안 담배는 의사가 사용한 보편적인 치료제였다. 심지어 일부 의료 기관은 담배로 65개 이상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며, ‘만병통치약(panacea)’ 같이 취급했다. 동양에서도 오랫동안 담배는 약재로 쓰였다. 폐암은 과거에는 매우 희귀한 질병이었다. 그러한 폐암이 19세기 말 세계적으로 급증했으나,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20세기 중반이었다. 하지만 담배회사는 이러한 증거에 이의를 제기하며 음모설을 주장했다. 이들은 담배에 관한 연구를 지연시키고 방해했으며, 허위 정보에 기반을 둔 캠페인도 벌였다. 심지어 담배는 선수의 경기력 향상과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선전됐다. 이러한 허위 정보와 무지 속에 많은 스포츠 스타가 담배를 애용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4관왕을 차지해 육상의 전설이 된 제시 오웬스, 1954년 5000미터 세계 신기록을 세운 크리스 채터웨이도 애연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흡연에 관한 경고는 계속 나왔지만, 1960년대 후반 미국 의사의 3분의 1 정도만 흡연과 폐암과의 관계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리브스는 첼시에서 데뷔한 첫날부터 담배를 피웠고, 선수 시절 내내 흡연을 즐겼다. 그는 자신이 뛰었던 첼시, 토트넘,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 중 절반은 흡연자라고 밝혔다. 그리브스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멤버였다. 그에 의하면 당시 대표팀 숙소였던 호텔에서 팀 미팅이 열리면 회의실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고 한다. AFC 아약스와 FC 바르셀로나를 거친 크루이프는 선수와 감독으로 대성공을 거둔 축구계에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74 서독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한 ‘토탈 풋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후에 바르셀로나 감독이 된 크루이프는 토탈 풋볼을 클럽에 이식했고, 이를 바탕으로 ‘티키타카’라는 유명한 축구 전술이 등장하게 된다. 1960년대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가 각각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라면, 1970년대는 크루이프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울 정도로 지독한 골초였다. 1974 월드컵 결승전 하프 타임 때도 흡연을 즐겼다는 크루이프는 공교롭게도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부진했다. 크루이프가 만약 담배를 멀리했다면 조국 네덜란드에 월드컵 우승을 안길 수 있었을까? 한가지 확실한 점은 현대 축구는 크루이프 시절의 축구와 비교해 크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크루이프 같이 담배를 많이 피는 흡연자는 현대 축구에 절대 적응할 수 없다. 1991년 심장수술을 받은 크루이프는 축구공 대신 담뱃갑으로 묘기를 부리는 금연 광고에 출연했다. 광고 속의 크루이프는 인생에서 담배와 축구라는 두 가지 중독을 겪었고, “Football has given me everything in this life; tobacco almost took it all away(담배는 축구가 나에게 준 모든 것을 앗아갔다)”고 말하며 멋진 슈팅으로 담뱃갑을 부숴버린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는 담배를 쉽게 끊지 못했다. 결국 크루이프는 2016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암이었다. 아스날의 전설적인 감독이었던 벵거는 2015년 골키퍼 보이치에흐 슈체스니가 탈의실에서 흡연을 하자 벌금 2만 파운드를 부과했다. 그 후 벵거는 인터뷰에서 자신도 담배를 피운 시절이 있다고 밝혔다. 흡연자들 사이에서 자란 벵거는 담배를 판매한 적도 있고, 특히 그가 군목부를 했던 시기에는 월급을 담배로 받았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흡연자가 된 벵거는 초창기 축구 지도자 시절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애용했다. 하지만 벵거는 아스날 감독이 되기 전에 담배를 끊었고,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금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프로축구선수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경기를 보여 줄 의무가 있다. 따라서 흡연은 더 이상 개인이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에 공감하는 팬들이 많다. 그럼에도 일부 선수들은 현재도 흡연을 즐기고 있다. 다음 칼럼에서 이에 대해 알아보자.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2.08 17:00
연예일반

드림캐쳐, 3년만 유럽투어 확정…컴백 이어 눈부신 글로벌 행보

그룹 드림캐쳐가 유럽투어로 글로벌 행보를 이어간다. 소속사 드림캐쳐컴퍼니는 드림캐쳐가 ‘드림캐쳐 2022 월드투어’(DREAMCATCHER 2022 World Tour)를 진행한다고 4일 밝혔다. 드림캐쳐는 오는 11월 14일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틸버그, 폴란드 바르샤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까지 총 5개국에서 유럽투어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번 유럽투어는 지난 2019년 이후 약 3년 만이다. 유럽투어에 앞서 드림캐쳐는 오는 11일 일곱 번째 미니앨범 ‘아포칼립스 : 팔로우 어스’(Apocalypse : Follow us)로 컴백한다. 다크 테크노 장르의 타이틀곡 ‘비전’(VISION)을 통해 드림캐쳐만의 신념이 담긴 메시지를 전하며 또 한 번 지구를 위한 K팝 메신저로 활약할 전망이다. ‘드림캐쳐 2022 월드투어’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마이뮤직테이스트 및 드림캐쳐 공식 SNS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세빈 기자 sebi0525@edaily.co.kr 2022.10.04 13:52
경제

MCM, 뮌헨과 베를린의 음악적 영감 담은 2020 봄/여름 컬렉션 공개

글로벌 럭셔리 패션 하우스 MCM이 2020 봄/여름(S/S)을 맞아 미국, 독일 등 해외 언론을 통해 뮌헨과 베를린의 음악적 영감을 담은 컬렉션 화보와 영상을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컬렉션은 가방, 의류, 아이웨어 전반에 걸쳐 MCM이 탄생한 1970년대 뮌헨의 디스코에서 2020년 베를린의 테크노까지 시대와 음악적 장르를 연결하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MCM은 브랜드 태생부터 지금까지 영감이 된 음악을 통해 대담하고 자유로우며 한계를 뛰어넘는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변화하는 시간과 각양각색의 인물, 강렬한 색상 대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롭게 표현됐다. ‘뮌헨 디스코에서 베를린 테크노까지(From Munich Disco to Berlin Techno)’라는 콘셉트로 제작된 영상은 베를린 클럽에서 각기 다른 나라의 다섯 명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밤부터 아침까지 클럽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MCM은 2020 S/S 컬렉션을 통해 탐험과 자기표현에 익숙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과감히 드러내는 이들의 모습을 재정의하고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표현해냈다. 이번 컬렉션의 모델로는 디자이너 겸 부트레거(The Bootlegger) 임란 포테이토(Imran Potato)와, 모델 겸 DJ 주원대(Won Dae Joo),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 데이지 메이비(Daisy Maybe), 래퍼 겸 프로듀셔 타야나 월콧(Tayahna Walcott) 그리고 스케이트 보더 겸 사진가인 에반 모크(Evan Mock)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음악과 패션, 자유로움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이중성을 조화롭게 그려냈다. 공개된 컬렉션 영상은 비주류의 진솔함과 아름다움을 예술적인 감성으로 표현하는 루카스 와스만(Lukas Wassman)이 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는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는 개성 강한 다섯 명의 젊은 아티스트의 모습과 음악과 스타일에 대한 MCM의 헤리티지를 미학적이고 생생하게 담아냈다. MCM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디르크 쉔베르거는 “이번 2020 S/S 컬렉션은 MCM이 탄생한 독일 음악사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한편, 브랜드에 영감이 된 음악적 요소를 잘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번 컬렉션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개인의 다양성과 무한한 개성을 음악과 함께 자유롭게 표현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2020.01.14 14:57
경제

MCM, 브랜드 최초로 주얼리 컬렉션 공개

독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MCM이 2020 봄/여름(S/S) 시즌을 맞아 미국, 독일 등 해외 언론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 타테오시안(Tateossian)과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인다고 16일 밝혔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MCM은 SS20 시즌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주얼리 라인을 첫 추가하며 라이프스타일 부문으로 지속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MCM의 시그니처 디자인과 타테오시안의 장인 정신이 만나 1976년 뮌헨의 반항적 애티튜드의 정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주얼리 컬렉션은 MCM이 지닌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하고 독보적인 스타일링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블랙 다이아몬드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을 사용해 컬렉션에 럭셔리한 감성을 더해주며, 디자인의 주요 요소로 MCM의 아이코닉한 월계수 모티브가 사용됐다. 소재는 스테인레스 스틸, 스털링 실버 및 18K 골드 총 3가지를 사용해 브랜드 가치와 컬렉션 스토리를 표현함으로써 MCM의 SS20 시즌과 시그니처 액세서리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컬렉션은 뮌헨의 디스코 씬과 베를린의 아이코닉한 테크노 클럽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파격적인 크리스탈 디스코 볼이 디자인적 요소로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돼, 독일 음악사의 중요한 순간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그리고 팔찌와 같은 클래식한 주얼리 피스부터 기존 액세서리의 틀을 깨는 모던하고 파격적인 스니커즈 모양의 주얼리, 이어 클라이머(클립처럼 끼우는 귀걸이), 핀과 초커(목에 꼭 끼는 목걸이)도 선보인다. MCM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디르크 쇤베르거는 “MCM이 새롭게 선보이는 주얼리 컬렉션은 모던함과 클래식 그리고 컨템포러리가 만나 젊고 활기찬 브랜드 에티튜드를 보여준다”며 “앞으로도 MCM은 유니크하고 세련된 정교한 남성∙여성용 주얼리 라인을 바탕으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유니크한 개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새롭게 선보이는 MCM의 주얼리 컬렉션은 순차적으로 MCM 매장 및 온라인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2019.12.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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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M, 음악ⅹ헤리티지 담은 2018 A/W 컬렉션·시즌 캠페인 공개

독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MCM이 2018 가을·겨울(A/W) 시즌을 맞아 새로운 컬렉션과 함께 시즌 캠페인을 공개했다.이번 시즌 광고 캠페인은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낸 대체현실을 탐험하는 내용으로 선보인다. MCM은 1976년 뮌헨의 디스코 시기에서 탄생해 80년대 뉴욕 힙합 문화에 획기적인 영향을 준 브랜드로, 음악의 상징적인 순간에 언제나 함께 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이번 컬렉션은 음악이라는 테마 아래 카세트 테이프 디자인, 레오파드 무늬, 밝은 색조 등으로 역동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허리에 둘러 양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벨트 백, 사용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직접 조립할 수 있는 모듈러 백 등 활동성과 스타일을 강조한 제품으로도 선보인다.컬렉션은 MCM과 음악의 유대를 상징하는 MCM 카세트 라인과 강렬한 인상을 주는 레오파드 프린트,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와 생동감 있는 색상이 특징인 큐비즘 스웨이드, 휴대성과 이동성을 강화한 소프트 베를린 라인 등 새로운 디자인과 프린팅을 적용한 라인업으로 출시된다. 이번 시즌에 새롭게 선보이는 ‘MCM 카세트’ 라인은 레코드 판, 카세트 테이프, DJ 보드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이 포인트다. 장난감을 연상케 하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독특하고 개성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MCM의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는 작은 러기지 스타일의 ‘소프트 베를린’ 라인은 이동성과 디자인 모두에 초점을 맞췄다. ‘소프트 베를린 벨트 백’은 MCM의 클래식한 ‘베를린 크로스바디 백’에 기반해 허리에 가볍게 차는 벨트 백으로 선보여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 할 수 있는 요소를 더했다.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의 ‘레오파드 프린트’ 라인은 억압, 한계와 타협하지 않는 록 음악의 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특히 ‘브라스 플레이트 레오파드’ 스타일은 돋보이는 레오파드 프린트에 금속 장식을 가미해 고급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느낌을 준다.이외에도 70년대 디스코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큐비즘 스웨이드’ 라인은 스웨이드 소재에서 풍겨지는 고급스러움이 특징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휴대할 수 있도록 크로스바디 백과 클러치 백의 형태로 디자인 돼 취향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캠페인의 모델로는 미국의 래퍼 및 프로듀서인 리치 더 키드와 테크노 DJ이자 유명 인플루언서인 시타 애블런이 활약했다. 이들은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성과 역동성, 젊음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독일 사진가 토마스 로어가 촬영을 맡았으며,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둔 문화 스타일 잡지 032C의 패션 디렉터 마크 고링이 전반적인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tbc.co.kr 2018.07.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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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줍쇼' 채정안X장희진, 솔직 매력 빛난 송도에서의 한 끼[종합]

'한끼줍쇼' 배우 채정안과 장희진이 송도동에서의 한 끼에 성공했다.채정안·장희진은 29일 방송된 JTBC '한끼줍쇼'에 밥동무로 출연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한 끼 도전에 나섰다.이날 채정안의 등장에 강호동은 "볼 때마다 신비롭다. 정안 씨가 활동할 때 연예인이었던 아는 동생의 집에 정안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다. 그래서 연예인의 연예인이라는 이미지가 내겐 강하게 남아있다"고 밝혔다. 이에 채정안은 "상큼했다"고 자화자찬했고, 대학교 선배인 이경규 역시 "테크노 여전사 출신이다"고 거들어 웃음을 자아냈다.앞서 채정안이 출연한 '아는 형님'서 베를린 댄스가 화제 됐던 바, 강호동은 춤을 춰달라고 부탁했다. 채정안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무반주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를 본 이경규는 아연실색했다. 이경규는 "어디 가서 내 후배라고 얘기하지 마라"면서 "동문회 호적에서 파내야겠다. 학교 망신이다"고 부끄러워했다.장희진 역시 거침이 없었다. 장희진은 "학창시절에 놀았다. 공부를 썩 잘하진 못했다"고 밝혀 규동형제를 놀라게 했다. 강호동은 "건전하게 놀았기 때문에 놀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다"고 수습했고, 이어 채정안은 "저는 학창시절 기억이 없다"고 외면해 웃음을 안겼다.채정안은 또한 '클럽과 나이트클럽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강호동의 물음에 "클럽에 가면 오빠 같은 사람들이 없고, 나이트에 가면 오빠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답하기도. 강호동은 "이게 그 유명한 팩트폭력이다"고 웃었다.본격적인 벨 누르기가 시작됐다. 채정안은 "한국 TV 스타 채정안이다" "제가 누군지 안 궁금하세요?" 등 긴장감에 아무 말을 내뱉었고, 이를 보는 나머지 멤버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계속된 도전 끝에 한 끼 성공의 기쁨은 장희진과 이경규 팀이 먼저 맛보게 됐다. 장희진은 차분히 자신을 소개했고, 같은 장씨 집안에서 한 끼를 하게 됐다. 장희진은 결혼에 관해 얘기하며 집주인에 싹싹하게 다가갔다.오후 7시가 되도록 한 끼 소식이 없던 채정안과 강호동 팀도 이어 한 끼에 성공했다. 채정안은 "저를 살려주셨다"며 식전 설거지를 하는 등 집주인의 저녁 준비를 도왔다. 뿐만 아니라 채정안은 둘째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며 다정한 면모를 뽐내 눈길을 끌었다.정여진 기자 jeong.yeojin@jtbc.co.kr 2017.11.3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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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IS] '아는형님' 채정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新 예능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新 예능 캐릭터가 등장했다. 배우 채정안이 그 주인공이다.채정안은 22일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댄스부터 거침없는 입담으로 반전매력을 발산했다.자신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 만점 소녀라고 소개한 채정안은 그를 입증하듯 방송 내내 계속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무근본 드립의 왕 김희철마저 두 손 두 발을 들었고, 멤버들 역시 "그간 예능에서 본 적 없는 캐릭터"라며 연신 놀라움을 표했다.이날 채정안은 "어떤 음악이든 베를린화 시켜서 춤을 출 수 있다"며 베를린 댄스를 선보였다. 트로트 '곤드레 만드레'가 흘러나오자 채정안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안정을 되찾고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디테일한 표정 연기를 더했다. 채정안은 그를 테크노 요정으로 만들어 준 '무정' 안무도 완벽히 소화하며 분위기를 띄웠다.장래희망으로는 '장훈이네 빌딩 인수하기'를 적었다. 이에 멤버들은 "서장훈의 마음을 인수하면 된다"며 두 사람을 러브라인으로 몰아갔다. 서장훈은 "상대방의 입장도 있지 않느냐"며 조심스러워했다. 채정안은 "여긴 경력자 우대 아니냐"며 본인의 이혼 경력까지 스스럼없이 밝혀 멤버들을 들었다 놨다.채정안의 돌발 발언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채정안이 "이 안에 前 형부가 있다"고 밝힌 것. 서장훈은 "나는 아니다. 접점이 없다"며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상민을 향해 "저 형은 안 갔다 온 것처럼 행동한다. '라 돌체 비타' 작사·작곡은 누구냐"고 물었다. 이상민은 "그만해! 나야 나!"라고 자리를 박차며 소리쳐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과거 나이트클럽서 서장훈과 만났던 일화도 공개됐다. 서장훈은 "1999년 나이트클럽에서 채정안과 술을 한 번 마신 적이 있다. 술을 엄청 먹더라"라고 폭로했다. 채정안은 "음반 준비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며 급히 수습에 나섰다. 음반이 발표된 후라고 하자 채정안은 "그럼 음반 접을 때였나 보다"라고 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당시가 기억나냐는 물음에 채정안은 "무슨 기둥 같은 게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안전한 느낌에 술을 많이 먹지 않았나 싶다"고 소심한 복수를 해 폭소를 유발했다.채정안은 또 고등학생 때 등교하자마자 담을 넘어 오락실에 갔던 일화를 시작으로 맨 앞자리서 자다가 꿈을 꾸면서 교탁까지 넘어뜨리는 사고로 뒷자리로 옮겨져 간 사건을 털어놓으며 엉뚱한 매력을 드러냈다.박성웅의 퀴즈 시간에도 채정안은 의욕적이나 마음만 앞선 대답을 늘어놓으며 형님들을 웃음 짓게 했다. 그에 형님들은 "살면서 저런 캐릭터는 처음 본다"며 급기야 채정안에게 "쉬어도 된다"고 말하기도.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날 채정안은 극강의 예능감을 뽐내며 안방극장을 빵빵 터트리는 대활약을 펼쳤다.정여진 기자 jeong.yeojin@jtbc.co.kr 2017.04.2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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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전지현, 얼굴 스타서 ‘배우’로 돌아왔다

'잘생겼다'커플 이정재·전지현이 90년대 신인상을 수상했던 바로 그 무대에 돌아왔다. 이들은 당시 가능성 보이는 떡잎에서 십수년간 배우로 거듭나 백상의 무대를 다시 밟았다. 이정재와 전지현은 백상예술대상 반세기를 기념하는 제 50회 시상식에서 각각 영화 '관상'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영화부문 조연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각 작품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뽐낸 이들이었기에, 수상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오랜만에 밟는 무대가 감격스러운지 관객석을 돌아보며 벅찬 표정을 지었다. 전지현은 "대상을 받으니 시청자들에게 내 심장박동수가 전해지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여자최우수상 정도만 기대했는데 대상을 받았다. 함께한 김수현, 박지은 작가님, 장태유 감독님과 현장 스태프분들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최근 영화 '빅매치' 촬영 중 입은 어깨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나타난 이정재는 "병원에서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했는데 상이 무겁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관상'을 함께 찍었고 함께 했던 분들과 이 영광을 나누겠다"고 소감을 전했다.특히 이날 두 사람 모두 백상에서 신인상 이후 첫 연기상 수상이라 그 의미를 더했다. 20여년 전 신인 이정재는 제31회 백상에서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젊은남자'로 TV 남자신인연기상과 영화 남자신인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그리고 지난해 9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관상'으로 조연상을 수상하며 국내 최고 배우 중 한명임을 입증했다.전지현은 앞서 1999년 제35회 백상에서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으로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이후 백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결혼 후 컴백작인 '도둑들'로 지난해 제49회에서 영화 여자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불발에 그쳤다. 올해 '별에서 온 그대'에서의 활약으로 드디어 백상 최고 권위인 대상을 수상했다. 각각 20여년, 15년간 톱스타 반열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주로 연기력보다는 외모와 스타성으로 관심받았던 것도 사실. 드라마 '모래시계'(95)에서 고현정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보디가드 캐릭터로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1998년 정우성과 함께한 '태양은 없다'로 젊음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같은 해 '정사'에서는 이미숙과의 열연으로 연하남들의 롤모델이 됐다. 2000년대에도 이정재는 잘생긴 얼굴과 세련된 스타일로 주목받았지만, 과거의 영광에 묻힌 듯한 모습이었다. 2010년 영화 '하녀' 이후에야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제치기 시작했다. '도둑들'에 이어 지난해 '신세계'와 '관상'에서는 40대의 원숙한 관능미를 보여줬다. 특히 '관상' 속 수양대군의 등장신은 지난해 영화 속 최고의 장면으로 꼽힐 정도. 얼굴의 거친 흉터와 털조끼, 강렬한 눈빛은 잔인하고 거침없는 수양대군의 캐릭터를 조선시대에서 현재로 불러왔다.이정재는 영화 '빅매치' 촬영 도중 부상을 당해 오른팔에 지지대를 한 채로 시상식 장에 등장했다. 그는 "촬영하다 팔을 다쳐서 수술을 받았다. 무거운 것을 절대 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 상은 정말 무거운 것 같다. 함께 했던 모든 동료 스태프들과 이 영광을 함께 나누겠다. 관객분들과 수양을 사랑해준 팬들도 감사하다"는 뜻 깊은 소감을 전했다.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스타덤에 오른 전지현은, 이후 주로 CF속 강렬한 테크노댄스로 기억됐다. 자신에 대한 편견을 깨고 나오려는 듯 영화 '4인용 식탁'(03), '데이지'(06), '블러드'(09) 등에서 연기폭을 넓히려 했지만, 대중이 그를 연기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 출연한 '도둑들'(12) 부터였다. 이후 영화 '베를린'(13)에서는 북한 비밀요원 역을 맡아 놀랄만한 내면연기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해피투게더'(99) 이후 14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인 '별에서 온 그대'로 아시아 전역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작품 속 보여준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어딘가 애잔한 느낌까지 자아내는 천송이 캐릭터는 전지현 그 자체라는 극찬이 이어졌다.이들이 하이틴 스타에서 진짜 연기자로 커오는 동안 대한민국 대중문화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이민호·김수현 등 국내 스타들의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고, K팝의 인기도 여전하다. 이같은 한류의 인기 뒤에는 전지현·이정재처럼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스타들, 그리고 묵묵히 이들과 함께한 백상의 역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별취재반 201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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