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겼다'커플 이정재·전지현이 90년대 신인상을 수상했던 바로 그 무대에 돌아왔다. 이들은 당시 가능성 보이는 떡잎에서 십수년간 배우로 거듭나 백상의 무대를 다시 밟았다. 이정재와 전지현은 백상예술대상 반세기를 기념하는 제 50회 시상식에서 각각 영화 '관상'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영화부문 조연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각 작품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뽐낸 이들이었기에, 수상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오랜만에 밟는 무대가 감격스러운지 관객석을 돌아보며 벅찬 표정을 지었다. 전지현은 "대상을 받으니 시청자들에게 내 심장박동수가 전해지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여자최우수상 정도만 기대했는데 대상을 받았다. 함께한 김수현, 박지은 작가님, 장태유 감독님과 현장 스태프분들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최근 영화 '빅매치' 촬영 중 입은 어깨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나타난 이정재는 "병원에서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했는데 상이 무겁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관상'을 함께 찍었고 함께 했던 분들과 이 영광을 나누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날 두 사람 모두 백상에서 신인상 이후 첫 연기상 수상이라 그 의미를 더했다. 20여년 전 신인 이정재는 제31회 백상에서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젊은남자'로 TV 남자신인연기상과 영화 남자신인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그리고 지난해 9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관상'으로 조연상을 수상하며 국내 최고 배우 중 한명임을 입증했다.
전지현은 앞서 1999년 제35회 백상에서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으로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이후 백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결혼 후 컴백작인 '도둑들'로 지난해 제49회에서 영화 여자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불발에 그쳤다. 올해 '별에서 온 그대'에서의 활약으로 드디어 백상 최고 권위인 대상을 수상했다.
각각 20여년, 15년간 톱스타 반열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주로 연기력보다는 외모와 스타성으로 관심받았던 것도 사실. 드라마 '모래시계'(95)에서 고현정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보디가드 캐릭터로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1998년 정우성과 함께한 '태양은 없다'로 젊음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같은 해 '정사'에서는 이미숙과의 열연으로 연하남들의 롤모델이 됐다. 2000년대에도 이정재는 잘생긴 얼굴과 세련된 스타일로 주목받았지만, 과거의 영광에 묻힌 듯한 모습이었다. 2010년 영화 '하녀' 이후에야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제치기 시작했다. '도둑들'에 이어 지난해 '신세계'와 '관상'에서는 40대의 원숙한 관능미를 보여줬다. 특히 '관상' 속 수양대군의 등장신은 지난해 영화 속 최고의 장면으로 꼽힐 정도. 얼굴의 거친 흉터와 털조끼, 강렬한 눈빛은 잔인하고 거침없는 수양대군의 캐릭터를 조선시대에서 현재로 불러왔다.
이정재는 영화 '빅매치' 촬영 도중 부상을 당해 오른팔에 지지대를 한 채로 시상식 장에 등장했다. 그는 "촬영하다 팔을 다쳐서 수술을 받았다. 무거운 것을 절대 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 상은 정말 무거운 것 같다. 함께 했던 모든 동료 스태프들과 이 영광을 함께 나누겠다. 관객분들과 수양을 사랑해준 팬들도 감사하다"는 뜻 깊은 소감을 전했다.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스타덤에 오른 전지현은, 이후 주로 CF속 강렬한 테크노댄스로 기억됐다. 자신에 대한 편견을 깨고 나오려는 듯 영화 '4인용 식탁'(03), '데이지'(06), '블러드'(09) 등에서 연기폭을 넓히려 했지만, 대중이 그를 연기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 출연한 '도둑들'(12) 부터였다. 이후 영화 '베를린'(13)에서는 북한 비밀요원 역을 맡아 놀랄만한 내면연기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해피투게더'(99) 이후 14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인 '별에서 온 그대'로 아시아 전역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작품 속 보여준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어딘가 애잔한 느낌까지 자아내는 천송이 캐릭터는 전지현 그 자체라는 극찬이 이어졌다.
이들이 하이틴 스타에서 진짜 연기자로 커오는 동안 대한민국 대중문화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이민호·김수현 등 국내 스타들의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고, K팝의 인기도 여전하다. 이같은 한류의 인기 뒤에는 전지현·이정재처럼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스타들, 그리고 묵묵히 이들과 함께한 백상의 역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