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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프랑스, 잉글랜드선수가 카페와 펍으로 달려간 이유 ③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1997~98시즌에 앞서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널은 프리시즌 캠프가 있는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선수단은 2주 동안 격렬한 훈련을 소화했다. 프리시즌 마지막 날 벵거는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선수들을 칭찬하며, ‘자유 시간’을 부여했다. 이에 2주 동안 이어진 금주로 술이 고팠던 잉글랜드 선수들은 근처 펍으로 달려간다. 아스널에서 15년을 뛰었던 미드필더 레이 팔러는 후에 인터뷰를 통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혔다. 팔러와 4명의 동료는 미리 점 찍었던 펍에서 생맥주 35파인트(pint, 1파인트는 568ml)를 한꺼번에 주문했다고 한다. 첫 2파인트를 원샷 하듯이 마신 선수들은 결국 한 명당 7파인트를 마신 끝에 자리에서 일어났다.새 술집을 찾아 나선 아스널의 잉글랜드 선수들은 근처 카페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던 프랑스 선수들을 목격했다. 당시 클럽에는 벵거의 영향으로 패트릭 비에이라, 엠마누엘 프티, 질 그리망디 등 여러 명의 프랑스 선수가 소속돼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팔러는 “올해 우리가 리그에서 어떻게 우승할 수 있을까? 우리(잉글랜드인)는 모두 술에 취해 있고 그들(프랑스인)은 모두 담배를 피우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벵거가 아스널에 오기 전, 클럽을 8시즌 동안 지휘했던 감독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지 그레이엄이었다. 그는 젊은 선수를 잘 키웠고, 선수 영입에도 탁월했다. 당시 리그 최고의 수비진을 구축했던 아스널은 1부리그 우승 2번, FA 컵, UEFA 컵 위너스 컵 등에서 우승하며 연달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레이엄은 훈련과 경기에서 열심히 할 것을 요구했을 뿐, 경기장 밖 선수들의 행동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이에 주장 토니 아담스는 화요일에 술을 마시는 ‘화요일 클럽’을 만든다. 수요일에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화요일이 선택된 것이다. 영국 축구계에는 “Win or Lose, We Booze(이기든 지든, 술을 마신다)”는 모토가 있을 정도로, 선수들과 음주는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화요일 클럽은 이런 시대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아스널 선수단의 대부분이 이 음주 클럽에 참여했다. 1996년 10월 벵거가 아스날 감독이 되자, 팬들은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외국인 감독이 성공할 수 없다는 역사와 믿음이 잉글랜드 축구계에는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더욱더 불안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벵거가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감독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벵거는 학구적으로 축구에 접근했다. 이에 영국 언론은 그에게 "Le Professeur(교수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스포츠 과학, 의학 및 생리학 등에 관심이 많았던 벵거는 클럽 문화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훈련과 경기 준비에 새로운 접근법을 가진 벵거는 화요일 클럽을 중단시켰다. 그는 클럽의 골칫거리였던 음주 문화를 바꾸기 위해, 선수에게 허용된 음주량을 서서히 줄였다. 결국 2004년 선수들의 음주 모임은 전면 금지됐다. 또한 벵거는 사회적으로 담배를 용납하던 시절은 끝났다며, 선수는 자신의 명성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프랑스 선수들의 담배 사랑은 그들의 문화에서 유래했다. 프랑스는 “유럽의 굴뚝(Europe's chimney)”이라고 불릴 정도로 담배 문화가 발달한 국가다. 이 나라에 담배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포르투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장 니코(Jean Nicot)였다.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nicotine)이 바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후 프랑스 상류사회에는 ‘코담배(snuff)’가 유행했고, 중하위 계층과 농민들에게 인기를 얻은 것은 ‘파이프용 담배(smoking tobacco)’였다.프랑스 정부는 1976년 대중교통에서 흡연을 제한한 데 이어, 더 강력한 흡연 금지법을 연이어 도입했다. 이로 인해 흡연 인구가 줄어들었지만, 2015년 프랑스 성인의 흡연자 비율은 32%로 여전히 높게 나왔다. 또한 여행 웹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프랑스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흡연을 많이 하는 국가라고 한다. 이들의 유별난 니코틴 사랑을 반영하듯 흡연을 즐겼던 프랑스 축구 선수는 꽤 많았다.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칸토나, 파팽 같은 슈퍼스타를 가진 프랑스가 1990, 1994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을 의미)”를 상징하는 다비드 지놀라도 흡연자였다. 폴 스콜스에 의하면 맨유 동료였던 로랑 블랑과 바르테즈는 매일 아침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전까지는 훈련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네디 지단은 2002년 유럽연합의 금연 대사로 활약했으나, 2006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전에 앞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목격됐다. 프랭크 리베리는 한술 더 떠 유럽 밤 문화의 성지인 이비자에서 담배와 마리화나를 피우는 장면까지 보여줬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2.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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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영국 축구장에서 새우 샌드위치를 먹으면 안되는 이유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플라스틱 팬(Plastic Fan)’은 잉글랜드에서 가짜 축구 팬을 의미한다. 1960년대 좋은 성적을 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쫓아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플라스틱 팬이 등장했다. 맨유에 이어 리버풀FC가 1970~80년대 자국리그와 유럽대항전에서 황금기를 보내자, 가짜 팬은 더 늘어났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플라스틱 팬의 절대적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1992년 프리미어리그(EPL)가 출범했고, 몇 년 후 플라스틱 팬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다시 한번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클럽은 맨유였다. 맨유는 90년대 EPL의 절대 강자였다. 아울러 에릭 칸토나, 라이언 긱스, 데이비드 베컴 등이 가진 카리스마, 압도적인 실력과 멋진 외모로 인해 영국 전역에서 맨유를 응원하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났다. 이렇게 맨유가 전국구 팀이 되면서 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되자, 이에 따른 부작용도 등장했다. 새로 유입된 팬 중에 상당수가 플라스틱이었던 것이다. 1999년 퍼거슨 감독은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의 분위기에 실망했다고 밝히며, 홈 관중들이 더 큰 소리로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2000년 11월 맨유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우크라이나의 명문 클럽 디나모 키이우와 만났다.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a must-win game).” 경기는 팽팽히 진행된 끝에 셰링엄의 골로 맨유가 1-0으로 이겼다.하지만 경기 후 주장 로이 킨은 화가 단단히 났다. 그는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홈구장의 일부 팬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킨은 “맨유가 어웨이 경기를 가질 때, 원정 응원 온 팬들은 환상적이다. 하지만 홈에서 경기를 할 때 일부 관중은 경기에 관심도 없고, 응원도 안 한다. 단지 그들은 새우 샌드위치를 먹느라 바쁠 뿐이다”라고 밝혔다. 킨의 유명한 ‘새우 샌드위치’ 발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킨은 이렇게 새우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eaters)’과의 전쟁을 선언했고, 잉글랜드 언론은 이들을 ‘새우 샌드위치 여단(prawn sandwich brigade)’이라 칭했다. 다시 말해 새우 샌드위치 여단이란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으나, 경기장의 스카이 박스(sky box)에 앉아 접대를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방문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따라서 이들은 플라스틱 팬이다. 스카이 박스를 이용하려면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환대)’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일반 입장권보다 훨씬 비싼 이 티켓을 가진 관중은 여러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축구를 보기에 최고의 좌석이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기 중 다양한 음료와 고급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기념품 판매대와 라운지 등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일반 티켓을 가진 팬보다 구장에 훨씬 오래 머물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구단 입장에서는 새우 샌드위치 여단이 축구에 특별한 관심을 안 보여도, 일반 티켓 소지자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안겨주기에 이들을 환영한다.로이 킨의 새우 샌드위치 발언이 나온 지 23년이 지났다. 그 사이 EPL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축구리그가 되었고, 맨유, 리버풀 같은 빅 클럽들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EPL 경기장은 더욱더 커지고, 현대화됐으며 입장료는 더 이상 잉글랜드의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축구장의 원래 주인이었던 노동자들이 쫓겨난 자리는 중산층과 호스피탈리티 패키지를 구입한 이들로 대체됐다. 해외에서 건너온 부자 관광객들도 이에 가세했다.EPL에는 더 이상 로이 킨 같이 진정한 축구 선수나 팬이 지켜야 할 덕목을 저버렸을 때 직설적으로 이를 비판하는 선수가 없다. 킨의 다혈질 적인 성격은 때때로 그를 곤경에 빠트렸지만, 그는 주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지는 진정한 리더였다. 더 이상 현대 축구에 킨 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올드 팬들은 예전의 순수했던 축구를 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0.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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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벵거, 감독 최초 EPL 명예의 전당 입성… “정말 영광스럽다”

알렉스 퍼거슨(82) 경과 아르센 벵거(74) 감독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EPL 사무국은 29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퍼거슨 경과 벵거 감독이 EPL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고 알렸다.명예의 전당은 1992년 출범 이후 EPL에서 큰 공헌을 하고 괄목할 만한 기록을 남긴 개인을 선정해 기념한다. 지금까지는 앨런 시어러와 티에리 앙리, 데이비드 베컴, 스티븐 제라드, 에릭 칸토나, 로이 킨, 데니스 베르캄프, 프랭크 램파드, 세르히오 아구에로, 디디에 드로그바, 웨인 루니, 패트릭 비에이라 등 선수 8명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퍼거슨 경과 벵거 감독은 사령탑으로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퍼거슨 경은 1986년부터 2013년까지 27년간 맨유를 이끌었다. 이 기간 810경기를 지휘해 528승을 기록, 우승도 13차례나 맛봤다. 리그 ‘올해의 감독’에 11회 선정됐고, ‘이달의 감독상’만 27번 받았다. 축구 역사상 위대한 감독 중 하나로 꼽힌다.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퍼거슨 경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정말 기쁘다. 이렇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이것은 내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다. 맨유와 오랜 세월 맺어온 유대감에 관한 것이다. 구단, 스태프,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지도자 시절을 떠올린 퍼거슨 경은 “내 임무는 팬들을 행복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맨유의 역사와 내 자신의 기대가 나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나는 모든 선수를 발전시키고 기대치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고 전했다.벵거 감독은 1996년부터 2018년까지 22년간 아스널을 이끌었다. 이 기간 3차례 우승했다. 2003~04시즌 EPL ‘무패 우승’은 여전히 회자하는 기록이다. 벵거 감독은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어 매우 감사하다. 우리는 항상 팬들에게 특별한 것을 주고 싶었다”며 “나는 아스널을 사랑하고 구단의 가치를 존중한다. 구단이 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위치에 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희웅 기자 2023.03.3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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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축구 간판' 데이비드 베컴, 신년 기사 작위 수여 목록서 제외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 중 하나인 데이비드 베컴(47))이 기사 작위 수여를 다음 기회로 넘기게 됐다. 데일리 익스프레스, 더 미러 등 해외 매체에 따르면, 베컴은 2023년 신년 기사 작위 수여 목록에서 제외됐다. 익스프레스는 “베컴은 기사 작위를 받기 위한 혹독한 기다림을 겪고 있다. 그는 다시 한번 새해 영예 목록에서 제외됐다. 축구에 바친 모든 것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고 오랜 시간 긍정적으로 생각해왔지만, 다시 실망을 견디고 있다”고 전했다. 베컴은 지난 200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OBE(대영 제국 최고훈장·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ore)을 받은 바 있다. 이는 영국의 기사도 훈장으로, 예술과 과학 등에 대한 공헌, 자선 단체 및 복지 기관과의 협력, 공무원 이외의 공공 서비스에 대한 보상을 기리고자 하는 훈장이다. 대영 제국 훈장 중에서 4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기사 장위와 훈장은 별개다. 기사 작위를 받으려면 최고 등급 1·2등급의 훈장을 받아야 한다. 즉, 1등급인 대영 제국 훈장 대십자 기사·여기사(GBE)와 2등급인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 기사·여기사(KBE/DBE)를 받아야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감독을 맡았던 알렉스 퍼거슨 같은 경우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아 ‘알렉스 퍼거슨 경(Sir)’으로 불린다. 베컴은 맨유를 시작으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AC 밀란(이탈리아) 파리 생제르맹(프랑스) LA 갤럭시(미국) 등 유수의 명문 클럽을 거쳤다. 그는 수려한 외모와 특유의 프리킥 실력 등으로 축구계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광고계의 러브콜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개인상도 많이 받아 실력과 외모 빠짐이 없는 최고의 축구선수였다. 팀에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안기기도 했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베컴이 기사 작위 수여 명단에서조차 제외된 이유는 해외 매체가 지적하듯이, 과거 탈세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다양한 자선단체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던 베컴은 예년에도 기사 작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탈세 의혹으로 번번이 취소된 바 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단체인 LGBTQ+로부터 과한 반발을 받은 것도 문제다. 베컴은 2022 카타르 월드컵 홍보 대사로 참여했다. 카타르는 성소수자에 엄격한 제도를 유지 중인데, 그의 결정이 LGBTQ+로부터 반발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데일리 스타는 “베컴의 카타르 대회 홍보대사 결정은 카타르의 인권 유린 역사와 적대적인 성소수자 법률로 비판이 일었다”고 했다. 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2.12.31 14:27
연예일반

웨이브 ‘2022 카타르 월드컵’ 3사 무료 생중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가 2022 카타르 월드컵 생중계 방송을 제공한다. 웨이브는 지난 22일 경기부터 지상파 방송 채널의 월드컵 생중계 방송을 제공하고 있다. 유료 회원뿐만 아니라 무료 회원도 월드컵 생중계를 즐길 수 있다. 웨이브는 경기 생중계 외에도 월드컵 기간 중 축구 및 스포츠 테마 큐레이션도 제공한다. ‘스포츠라는 이름의 전쟁터’ 코너에서는 BBC 다큐멘터리 ‘알렉스 퍼거슨: 성공의 비결’, ‘데이비드 베컴: 축구로 하나 되는 세계’와 HBO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국경선의 시합’ 등 스포츠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모아볼 수 있다. 웨이브 관계자는 “월드컵을 기다려 온 웨이브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며 “생중계와 다양한 스포츠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웨이브와 함께 감동과 즐거움을 만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세빈 기자 sebi0525@edaily.co.kr 2022.11.23 09:49
해외축구

'스승님, 맨유는 180도 변해야 합니다' 리버풀 출신의 조언

'왼발의 베컴'이라는 수식어로도 불리던 리버풀 출신의 윙어 스튜어트 다우닝(37)이 자신의 은사인 스티브 맥클래런(61)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우닝은 '맥클래런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코치'라고 영국 '데일리 스타'와의 25일(현지시간)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은사를 언급했다. 맨유의 훈련 방식에 너무 규율이 없고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맥클래런이 적임자라는 것. 다우닝은 데이비드 베컴()을 잇는 잉글랜드의 정통 윙어로 촉망받던 선수다. 애슐리 영(36)과 함께 아스톤빌라의 '황금 날개'를 이뤄 활약하다 2011년 리버풀로 이적했다. 하지만 리버풀에서는 극심한 부진을 겪으며 더 큰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잉글랜드 하위 팀들을 거쳐, 2021년 은퇴를 결정했다. 맥클래런과 다우닝의 만남은 미들즈브러에서 시작됐다. 다우닝은 2001년 미들즈브러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 미들즈브러의 감독이 바로 맥클래런이다. 둘은 미들즈브러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동시에 커리어를 시작했다. 클럽팀뿐 아니라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맥클래런이 미들즈브러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2006년 잉글랜드 감독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함께한 기간 동안 성과도 많았다. 미들즈브러 시절 칼링컵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컵(현 유로파리그) 결승 진출 등의 업적을 이뤘다. '텐 하흐 사단'의 수석 코치로 임명되며, 맥클래런은 20년 만에 맨유로 돌아왔다. 코치 시절 알렉스 퍼거슨(80) 감독과 함께 맨유의 부흥기를 이끈 기억이 있다. 다우닝의 말대로 맥클래런 코치가 최악의 일 년을 보낸 맨유를 환골탈태시킬 수 있을까. 이동건 기자 movingun@edaily.co.kr 2022.06.26 13:40
축구

호날두 EPL 온다…‘손날두’ 신났다

손흥민(29·토트넘)이 자신의 롤모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와 ‘꿈의 대결’을 펼친다.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유벤투스(이탈리아)와 호날두 이적에 합의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축구 팬들이 깜짝 놀란 소식이었다. 호날두는 2003년부터 6시즌 동안 맨유에서 리그 3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이끌며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2009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 떠났던 그가 12년 만에 올드 트래포드(맨유 홈구장)로 돌아온다.앞서 맨체스터 시티가 호날두 영입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맨유 시절 스승이었던 알렉스 퍼거슨(80) 전 감독이 호날두에게 전화를 걸어 맨유 복귀를 설득했다. 이적료 1280만 파운드(205억원)를 기록하게 된 호날두는 EPL 최고 수준의 주급 48만 파운드(7억7000만원, 연봉 환산 시 400억원)를 2년 동안 받을 전망이다.데이비드 베컴 등 맨유 레전드들이 호날두를 반겼다. 호날두의 EPL 귀환을 반기는 또 사람이 바로 손흥민이다. 호날두는 지난 2019년 유벤투스 방한 친선경기 때 벤치만 지키는 ‘노 쇼’로 인해 한국 팬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있다. 그러나 손흥민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호날두를 가장 동경했다.손흥민은 2012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리오넬 메시(34·파리 생제르맹)는 타고난 천재고, 호날두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천재다. 호날두는 (나와 같은) 노력파”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학창 시절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로 호날두 영상을 반복해 보며 연구했고, 함부르크(독일)에서 뛸 때는 집에 호날두 사진을 붙여 뒀다. 빠른 스피드로 뒷공간을 침투하는 스타일은 물론 등번호(7번)까지 호날두를 벤치마킹한 손흥민의 별명 중 하나가 ‘손날두’다.손흥민은 올해 1월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5분이 주어진다면 호날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손흥민은 2017~18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던 호날두와 스친 적이 있다. 당시 손흥민은 단 4분 출전에 그쳤다. 2019년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에서는 유벤투스 소속 호날두와 전반 45분간 맞대결했다. 전반전이 끝난 뒤 손흥민이 호날두에게 다가가 그의 유니폼을 받았다.이제 토트넘의 주축 선수로 성장한 손흥민은 롤모델과 제대로 맞붙게 됐다. 손흥민은 맨유와 10월 31일 홈 경기, 내년 3월 13일 원정 경기를 치른다.지난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한 유벤투스는 계약이 1년 남은 호날두를 팔길 원했다. 20대 초반 맨유에서 뛰었던 호날두는 30대 중반이 되어 돌아왔다. 나이가 들었어도 변함없는 기량을 자랑하는 호날두는 중앙 공격수로 제이든 산초, 마커스 래시포드와 스리톱을 구성할 전망이다.올여름 유럽축구 이적 시장을 두고 현지 언론들은 ‘crazy’, ‘insane(미친)’이란 표현을 쓰며 흥분하고 있다.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두 남자, 호날두와 메시가 팀을 옮기며 시장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메시는 지난 11일 바르셀로나(스페인)를 떠나 프랑스로 이적했다. 파리생제르맹은 메시 유니폼 판매만으로 이미 1600억원을 넘게 벌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맨유 주식이 호날두 영입 소식과 함께 최고 9.8%나 뛰었다.지난해 이적 시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얼어붙었다. 올여름엔 빅클럽이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맨유는 도르트문트 공격수 제이든 산초와 레알 마드리드 중앙수비수 라파엘 바란 영입을 위해 각각 이적료 1160억원, 687억원을 지불했다. 맨시티도 공격수 잭 그릴리시를 데려오려고 올여름 최고 이적료 1590억원을 썼다. 첼시는 공격수 로멜로 루카쿠의 몸값으로 1570억원을 지불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파리생제르맹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를 영입을 위해 이적료 2475억원을 제시한 뒤 답을 기다리고 있다.독일 라이프치히 공격수 황희찬(25)도 EPL에서 손흥민과 맞대결할 가능성이 크다. 울버햄튼이 임대 후 완전 이적 시 1280만 파운드(205억원)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황희찬을 영입하려 하고 있다. 황희찬은 라이프치히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어 새 출발을 원했다.스페인 발렌시아 미드필더 이강인(20) 이적도 임박했다. 스페인 리그는 비유럽 선수 3명만 보유할 수 있는데 발렌시아가 브라질 공격수 마르쿠스 안드레를 영입, 이강인을 등록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강인과 발렌시아의 계약이 내년 6월까지이지만, 이를 파기하고 FA(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마요르카(스페인)로 떠날 예정이다. 마요르카에는 공격수 구보 다케후사(일본)가 뛰고 있다.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1.08.3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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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 "퍼거슨 없었다면 맨유는 그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데이비드 베컴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베컴은 EPL과 맨유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선수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맨유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베컴은 맨유가 잉글랜드 최강의 팀, 또 세계 최고의 팀으로 성장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394경기에 나서 85골을 기록했다. EPL 6회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1회 우승 등 맨유에서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1998~99시즌에는 리그, UCL 그리고 FA컵 우승까지 거머쥐며 잉글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잉글랜드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팀은 등장하지 못했다. 베컴은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 인터뷰에서 "영광스럽다. EPL은 내 선수 커리어에서,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정받아 기쁘다. 앨런 시어러, 티에리 앙리 등과 같은 선수들과 함께 해 더 영광스럽다.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고 밝혔다. 최고의 우승 순간에 대해 베컴은 역시나 트레블 당시 우승을 꺼내 들었다. 그는 "리그에서 6회 우승을 차지했는데 모두 특별했다.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소중하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1999년 우승이다. 많은 이들이 극찬할 만한 일들을 성취했다. 놀라운 순간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라이벌과 경기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베컴은 "리버풀, 아스널, 맨체스터 시티 등 라이벌들과 한 경기에서 승리한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다. 언제나 많은 팬들의 함성 속에서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승리를 해야한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그리고 이겼다. 이런 경험과 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영원히 그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베컴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떠올렸다.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다. 베컴 역시 맨유 시절 퍼거슨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베컴은 "맨유는 가족과 같은 팀이었다. 이런 분위기와 원팀 정신을 퍼거슨 감독이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퍼거슨 감독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퍼거슨 감독의 팀에 있었다. 치열하게 경쟁도 할 수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위대한 감독이다. 항상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는 지도자다. 맨유에 퍼거슨 감독이 없었다면, 맨유는 그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었다"고 확신했다. 최용재 기자 2021.05.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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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했던 '맨유 백넘버 7번' 전설 6인 그리고 산체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백넘버 7번'은 성스러운 번호다.맨유를 상징하는 한 선수의 번호를 넘어 맨유의 정체성과 역사를 대변하는 번호기 때문이다. 1878년에 창단한 맨유의 역사는 맨유 7번의 활약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맨유 최고의 선수의 등에 7번이 달렸다는 의미다. 또 맨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그동안 수많은 7번이 있었다. 그중 7번의 전설을 만든 '6인'을 소개한다. 바비 찰튼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것에 이견이 없는 전설이다.찰튼은 1956년부터 1973년까지 총 17시즌 동안 맨유에서 활약하며 758경기에 출전해 249골을 넣었다. 758경기 출전은 라이언 긱스에 이은 맨유 최다 출전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49골 역시 웨인 루니에 이은 2위다.그는 맨유의 황금기를 이끈 주인공이다.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그리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의 전신인 유로피언컵 우승도 1회 차지했다.맨유에 찰튼의 더욱 큰 의미는 몰락하던 맨유, 시련의 맨유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영웅이라는 점이다. 1958년 뮌헨 참사로 맨유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뮌헨 참사 생존자로서 찰튼은 팀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을 담아 팀 재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맨유의 정신적 지주로서 팀을 이끌었다. 찰튼은 약속을 지켰다. 1967~1968시즌, 뮌헨 참사 10년 뒤 찰튼은 맨유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았다.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유로피언컵 우승이었다. 맨유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바비 찰튼-조지베스트조지 베스트찰튼 옆에서 맨유 재건에 큰 도움을 줬던 맨유 최고의 공격수 조지 베스트 등에도 7번이 달렸다.베스트는 1963년부터 1974년까지 11시즌 동안 맨유에서 474경기 출전, 181골을 성공시켰다. 리그 우승 1회, 유로피언컵 우승 1회를 차지했고, 1968년에는 리그 득점왕에도 올랐다. 1968년 발롱도르 수상은 당연한 결과였다.베스트는 드리블의 신으로 불렸다. 그리고 빼어난 득점력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베스트의 결정적 장면은 역시나 당대 최고의 선수 에우제비오가 이끌던 벤피카와 격돌한 1967~1968시즌 유로피언컵 결승전이다. 베스트는 최고의 활약으로 맨유의 우승을 이끌었다. 영국의 언론들은 베스트를 향해 '5번째 비틀스 멤버'라는 찬사까지 보냈다. 당시 펠레는 "베스트는 나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극찬했다. 브라이언 롭슨맨유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주장 브라이언 롭슨을 빼놓을 수 없다.롭슨은 1981년에 웨스트 브로미치에서 맨유로 이적했다. 1994년까지 13시즌 동안 461경기 출전, 99골을 넣었다. 그리고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3회를 기록했다. 맨유에서 가장 완벽했던 미드필더로 꼽힌다. 세밀한 패스와 중원 장악력은 가히 최고였다.롭슨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주장으로서 맨유를 다시 도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1982년부터 1994년 맨유를 떠날 때까지 주장 완장을 찼다. 맨유 역사상 최장 기간 주장이었다. 1986년 맨유의 전설적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부임한 뒤에도 주장은 롭슨이었다. 롭슨은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 적응하고 맨유를 발전시키는 데 옆에서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롭슨이 없었다면 '퍼거슨의 맨유 황금기'도 찾아올 수 없었다. 에릭 칸토나'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프랑스인'. 에릭 칸토나를 표현하는 말이다.칸토나는 별명이 많다. '맨유의 신' '올드 트래포드의 왕' 등. 그는 짧은 기간 동안 활약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시즌 동안 185경기에 출전해 82골을 터뜨렸다.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재편된 뒤에 맨유가 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칸토나였다. 관중에게 이단 옆차기를 하는 등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사건도 많이 일으켰지만 실력에 있어서는 맨유 최고였다. 득점력과 함께 찬스를 만들어 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도움왕을 2번이나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칸토나를 앞세운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고 그다음 해에도 왕좌를 차지하며 2연패를 일궈 냈다. 칸토나는 이후 2번의 우승을 더 차지했다. 맨유에서 활약한 5시즌 동안 4번이나 우승한 것이다. FA컵 우승도 2차례나 일궈 냈다. 데이비드 베컴맨유의 백넘버 7번이 세계적인 문화로 뻗어 나가게 한 장본인은 데이비드 베컴이었다.'킥의 마술사' 베컴은 빼어난 실력과 함께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맨유 유스 출신으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11시즌을 맨유에서 활약했다. 394경기에 출전해 85골을 성공시켰다. 리그 우승 6회, FA컵 우승 2회 그리고 UCL도 1회 정상에 섰다. 맨유 역사상 최고 황금기, 그 중심엔 베컴이 있었다.특히 1998~1999시즌 베컴이 중심을 잡은 맨유는 잉글랜드 축구 클럽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리그·FA컵·UCL 동시 우승)을 달성했다. 1999년에 베컴은 발롱도르 2위까지 올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유 백넘버 전설의 마지막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그는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호날두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시작은 맨유였다. 포르투갈 스포르팅에서 유망주였던 그는 2003년 맨유로 이적한 뒤에 잠재력과 가능성이 폭발했다. 2009년까지 6시즌 동안 맨유에서 292경기, 118골을 넣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맨유의 리그 3연패 최선봉에는 언제나 호날두가 있었다. FA컵 우승 1회와 함께 UCL도 정복했다. 리그 득점왕과 UCL 득점왕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호날두는 2008년에 일인자가 됐다. 그는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세계 최강 호날두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알렉시스 산체스호날두가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뒤에 맨유 7번의 계보는 끊겼다.이후 안토니오 발렌시아, 마이클 오언, 앙헬 디 마리아, 멤피스 데파이 등이 백넘버 7번을 받았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모두 실패한 7번으로 기억된다.그리고 새로운 7번이 탄생했다. 이번에는 맨유 7번의 아성을 이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알렉시스 산체스기 때문이다.산체스는 2014년 바르셀로나에서 아스널로 이적한 뒤에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아스널에서 165경기에 출전해 80골을 넣었다. 맨유는 이런 산체스를 영입하기 위해 꾸준히 시도했고 지난 23일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산체스 영입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4년 6개월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발표는 산체스가 등번호 7번을 단 것이다.산체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에 합류해 몹시 흥분된다. 조제 무리뉴 감독과 함께 역사적인 구단에서 함께할 기회가 생겼다. 칠레 선수 중 처음으로 맨유 선수가 돼 자랑스럽다. 이 구단이 왜 나를 원했는지 전 세계 팬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며 의지를 드러냈다.맨유의 새로운 7번으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축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최용재 기자 2018.01.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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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인터뷰]'리더' 퍼거슨과 '리더' 최강희의 15가지 철학

불가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리더'와 '관리자'의 차이점이다.알렉스 퍼거슨(76)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감독 자서전 '리딩'에 나오는 문구. 이 말처럼 퍼거슨 감독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세계 모든 축구팬들에게 이해시킨 리더다.1986년 맨유 지휘봉을 잡은 뒤 2013년까지 27년간 감독으로 부임했다. 프리미어리그 13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2번, FA컵 5번 등 총 38개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퍼거슨의 맨유'는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 최고의 팀, 세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클럽으로 변모했다. '리더' 퍼거슨 감독의 힘이 만들어낸 마법이다. K리그에서 이런 리더십을 찾아볼 순 없을까. 100년이 넘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 축구 역사와 문화, 그리고 맨유라는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 감독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퍼거슨 감독, 맨유와 비교해 대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 축구 저변과 K리그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K리그에선 어떤 지도자로부터 이런 리더십을 읽어볼 수 있을까. 'K리그의 퍼거슨'으로 불리는 최강희(58) 전북 현대 감독이 떠오른다. 그가 한국 축구의 대표적 '리더'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최 감독은 2005년 전북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전북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K리그 최약체 중 하나로 평가 받는 팀이었다.12년이 지난 2017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전북은 K리그 아이콘이 됐다. '최강희의 전북'은 K리그 5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3회, FA컵 1회 등 총 8회 우승을 품었다. 최 감독은 K리그 최장수 감독으로서 최연소, 최단기간 200승을 일궈내며 전북을 K리그 명문으로 도약시켰다.또 최고 인기 구단으로 끌어올렸다. 2015년에는 관중 1위를 기록했다.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강의 팀 위용도 갖췄다. 최 감독이 부린 '마법'이다. 'K리그의 퍼거슨'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지난 2일 일간스포츠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최 감독을 만났다. 그에게 'K리그의 퍼거슨'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묻자 손사래부터 쳤다. 최 감독은 "퍼거슨 감독은 정말 대단한 영감님이다. 맨유에서 27년을 한결같이 결실을 일궈냈다"며 "내가 한 팀에서 제일 오래 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분"이라고 잘라 말했다.하지만 최 감독과 깊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퍼거슨 감독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리더'라는 공통점이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리더'라고 해서 모두 같은 철학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두 '리더'의 뚜렷한 개성이 드러났다.퍼거슨 감독 자서전 '리딩'의 내용과 최 감독 인터뷰 내용을 비교하면 리더라는 공통점 속에서도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두 리더의 '15가지 철학'을 소개한다. 1. 경청 퍼거슨 : 중요한 결정을 앞둘 때면 언제나 주변의 말을 경청했다. 1984년 레인저스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레인저스에서 13년 지휘봉을 잡았던 스콧 사이먼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고, 결국 거절했다. 맨유 감독 시절 에릭 칸토나를 영입한 뒤 그를 다룰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미셸 플라티니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최강희 : 팀이 잘 나가고 머리가 맑을 땐 큰 고민이 없지만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베스트 11을 내가 구성하지 못할 때가 있다. 경기 당일까지 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코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코치들이 11명을 짜서 준적도 있다. 결정은 내가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들어본다.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막내 코치도 이번 경기에는 (이)동국이보다 (김)신욱이가 낫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나는 포용한다. 2. 관찰 퍼거슨 : 2005년 마이클 에시엔을 보기 위해 리옹과 아인트호벤 경기를 보던 중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경기를 휘젓고 다니는 선수를 발견했다. 박지성이었다. 스카우트에게 박지성을 관찰하게 했고, 내 예상이 맞았다. 그래서 바로 박지성과 계약했다. 최강희 : 선수들 장점만 관찰한다. 선수를 영입할 때도 단점은 보지 않는다. 그 선수의 장점이 전북의 팀 컬러에 녹아들 수 있을지 파악한다.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면 전북에서 분명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3. 독서 퍼거슨 : 독서로 많은 것을 배운다. 축구에 관한 것 뿐 아니라 경영서, 리더십 관련 책도 즐겨 본다. UCLA 농구팀 명장 존 우든에 관한 책도 읽었다. 독서를 통해 전쟁의 역사에서 축구에 대한 교훈도 배웠다. 최강희 : 퍼거슨 감독의 자서전은 모두 읽었다. 펩 과르디올라에 관한 책도 읽었다. 축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 리더들의 책도 웬만한 건 다 읽었다. 김성근 감독님 책도 읽은 기억이 난다. 좋은 리더들의 공통점은 도전적이고 긍정적이다. 또 자신의 일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는 점이다. 4. 규칙 퍼거슨 : 통제는 효과적인 리더십을 위한 필수 요소다. 누구도 나의 규칙에 도전하면 방출 당했다. 통제 없이는 조직을 이끌 수 없다. 이동할 때 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게 했다. 머리카락이 긴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최강희 : 통제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술을 먹든 담배를 피든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훈련장에서의 모습뿐이다. 다른 부분은 관심이 없다. 밤새 술을 먹고 2시간 자고 훈련장에 나와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경기에 뛸 수 있다. 요즘 선수들은 프로의식이 강하다. 몸이 바로 반응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고 있다. 지나친 간섭은 역효과가 난다. 내가 선수 시절 싫어했던 통제는 절대 하지 않는다. 5. 열정 퍼거슨 : 브라이언 롭슨, 파트리스 에브라, 마크 휴즈, 로이 킨 등이 맨유에서 뜨거운 열정을 보인 선수들이다. 내가 열정을 가진 선수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열정이 다른 선수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팀 승리에 지대하게 공헌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최강희 : 애절하고 간절함을 가지고 열정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전북에 많다. 이동국이나 조성환같은 베테랑들이 더욱 큰 열정을 가지고 훈련과 경기에 임한다. 아령 하나라도 더 들려고 노력한다. 이런 모습이 젊은 선수들에게 전파되고, 어린 선수들이 선배들의 모습을 따라하면서 배운다. 6. 신념 퍼거슨 : 레인저스 감독을 지낸 조크 윌리스와 웨스트햄 감독 존 리알이 나에게 '팀에 퍼거슨의 존재를 드러내도록 하세요'라고 조언했다. 이후 나에게 맞지 않은 선수들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리고 나의 신념대로 팀을 운영했다. 그때부터 맨유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강희 : 2008년 전북을 리빌딩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미래를 위해 팀 체질을 바꾸는 시기였다. 노장 몇 명을 내보내고 젊은 선수들로 팀을 재편했다. 2009년에는 이동국, 에닝요, 루이스, 하대성, 김상식 등 내 신념대로 축구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다. 이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축구를 했다. '닥공'의 기본을 만들었다. 7. 해고 퍼거슨 : 팀 주축 선수가 팀을 떠날 때 만감이 교차한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도 있다. 2005년 로이 킨이 그랬다. 이별에도 매너가 필요하다. 주축 선수든, 어린 선수든 누군가를 내보내야 한다면 솔직함이 최선이다. 최강희 : 팀을 떠나고 싶어 하는 선수는 다 보내줬다. 에두가 득점 선두를 달릴 때도 보내줬다. 주변에서는 다들 의아해 했다. 붙잡으면 역효과다. 팀에서 마음이 떠난 선수들은 보내주는 게 맞다. 권순태도, 김기희도 모두 좋게 보내줬다. 딱 한 번 붙잡은 선수가 있다. 이동국이다. 중동에서 30억 제안이 왔는데 내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8. 동기부여 퍼거슨 : 선수들이 감독에게 존경심을 가지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5%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감독의 일이다. 비난 보다는 칭찬으로 역량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선수들이 어려울 때 그들의 아버지, 변호사, 신부님이 됐다. 최강희 : 선수들을 질책하지도 칭찬하지도 않는다.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선수들과 믿음, 신뢰가 생기면 굳이 칭찬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 느낀다. 이동국, 이재성같은 선수들이 그렇다. 물론 신뢰 쌓기에 실패한 선수도 있다. 서로 신뢰가 생기면 선수들은 자신을 위해서도 뛰지만 감독을 위해서도 미친 듯이 뛴다. 인위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부분이다. 9. 팀워크 퍼거슨 : 동료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 팀워크다. 어떤 선수도 동료들의 도움 없이 승리를 할 수 없다. 어떤 선수를 특별대우 해주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 팀워크는 반드시 깨진다. 최강희 : 우승을 놓고 보면 특별히 내가 한 일은 없다. 선수들이 만들어준 우승이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팀워크, 분위기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전북에 그런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팀 우승을 위해 한 마음으로 희생하고 배려했다. 그래서 전북이 우승할 수 있었다. 10. 교육 퍼거슨 : 최고 선수를 대신할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교육시켜 키워야 한다. 젊은 인재에 대한 투자는 거대한 이익으로 돌아온다. 1999년 트레블을 달성할 때 선수단 30명 중 15명이 25세 이하였다. 데이비드 베컴은 12살에 처음 발견해 17세에 1군에 데뷔했다. 라이언 긱스도 마찬가지다. 최강희 : 유럽에 가서 유소년에 대한 많은 배움을 가지고 돌아왔다. 젊은 선수들을 늘려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재성과 김민재 같은 선수들은 어떻게 하는지 방법만 알려주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이들의 성장은 나에게 큰 보람이다. 강압적으로 다루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보여주기식 훈련만 한다. 11. 겸손 퍼거슨 : 작은 자만도 경계한다. 형식적인 겸손이 아니다. 나는 우승을 한 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또 우승컵을 가져올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최강희 : 2009년 첫 우승을 했을 때 스스로 감격스러웠다. 우승 기분을 즐기고 싶었다. 이후 팀이 커진 만큼 목표도 커졌다. 우승을 해도 2~3일 지나면 다음 시즌 걱정이 든다. 올 시즌 우승도 기쁘지만 이제는 걱정을 해야 할 시기다. 내년 K리그 챔피언 자존심을 지켜야 하고, 몸집이 커진 ACL 상대팀들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한 번이 아닌 꾸준히 경쟁력을 갖춘 전북을 만들고 싶다. 12. 영입 퍼거슨 : 모든 축구 감독은 세일즈맨이다.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베컴의 부모님과 형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베컴 가족에게 진심을 보여줬다. 선수를 영입하려면 선수 어머니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 최강희 : 지도자의 선수 욕심은 끝이 없다. 아시아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수 보강이 돼야 한다. 과거에는 내가 직접 선수를 만나도 전북에 오지 않겠다고 표현한 선수도 있었다. 지금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힘든 일이다. ACL을 위해서라도 영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K리그의 위축된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도 더 노력을 해야 한다. 13. 혁신 퍼거슨 : 1980년대 그 어떤 팀도 선수들 식단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식단을 체계적으로 바꿨고 그러자 팀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잉글랜드 구단들도 식단의 효과를 깨닫기 시작했다. 스포츠 과학과 비디오 분석 시스템 개선 등도 가장 먼저 도입하려 노력했다. 최강희 :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전북팬들의 열정적인 응원과 성원이다. 유럽 응원 문화와 분위기가 부러웠다. 전북에서 우승은 했고 마지막 남은 것이 운동장 분위기였다. 내가 만들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홈에서 절대 지지 않는 것이다. 지더라도 선수들이 걸어 나오면 안 됐다.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공격적인 모습 보이도록 했다. 그러자 어느날부터 팬들의 몰입도가 높아졌고 경기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전북팬들이 경기장 문화를 확 바꿔줬다. 5번째 별도 전북팬들이 만들어준 별이다. 14. 실패 퍼거슨 : 패배를 할 때마다 나는 항상 더 나은 감독이 됐다. 더 똑똑해졌다. 실패의 고통은 항상 있었고 실패의 불안감은 내 삶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실패에 긍정적인 태도로 임했다. 아픔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승리하고 싶은 열정과 욕망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섰다. 최강희 : 패배는 빨리 잊는다. 경기장 나오면서 잊는다. 패배에 집착하지 않는다. 또 패배의 원인을 선수에게서 찾지 않는다. 지면 다 함께 지는 것이다. 골키퍼가 실수를 했다고 해도 실점의 원인을 골키퍼에 찾지 않는다. 선수 모두에게서 찾는다. 패배하면 오히려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패배로 인해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고 패배로 인해 심리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15. 비난 퍼거슨 : '이제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가족들이 그만두라고 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의 눈총과 조직 내부의 비난과 싸워야 했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지지를 얻었을 때 사람들의 악의적인 비난은 사라졌다. 바비 찰튼(영국 축구와 맨유의 레전드)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큰 힘이 됐다. 최강희 : 2008년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전북팬들이 일어났다. 나에게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때 정말 가려고 했다. 전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전임 감독도 팬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만뒀다. 내가 또 그렇게 그만두면 전북은 누가 와도 성적을 낼 수 없다. 팬들 때문에 감독이 쫓겨나는 전통이 생길 거 같았다. 그래서 오기로 버텼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쉽게 지지 않았다. 완주=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7.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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