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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신태용호 비장의 무기…손흥민의 춤추는 무회전 프리킥

한국축구대표팀은 역대 월드컵에서 총 31골을 터트렸다. 그 중 공을 멈춰놓고 약속된 플레이로 만든 세트피스 득점은 11골, 비율로 따지면 35.4%다. 특히 프리킥으로만 6골을 뽑아냈다. 1990년 스페인전 황보관, 1994년 스페인전 홍명보, 1998년 멕시코전 하석주, 2002년 터키전 이을용, 2006년 토고전 이천수, 2010년 나이지리아전 박주영이 직접 프리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에서 객관적 전력상 최약체로 꼽힌다. 약팀이 강팀을 잡기 위해서는 세트피스가 중요하다. 날카로운 한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태용호 비장의 무기는 공격수 손흥민(26·토트넘)의 울퉁불퉁 날아가 문전에서 춤추는 ‘무회전 프리킥’이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상대의 파울로 얻어내 프리킥을 차는 상황이라면, 손흥민의 킥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2015년 6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얀마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 무회전 프리킥골을 뽑아냈다. 독일 레버쿠젠 소속이던 2014년 11월 15일 제니트(러시아)와의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회전 프리킥으로 골을 넣었다. 무회전 프리킥은 공 중앙의 약간 밑부분을 강하게 밀어 차야한다. 공을 발등 부분에 최대한 두껍고 넓게 맞히고, 백스윙부터 임팩트까지 정확해야한다. 그럴 경우 회전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카르만 소용돌이 효과(Karman voltex)’가 생긴다. 마주 오던 공기는 축구공 표면을 타고 뒤로 흘러 위와 아래로 갈린다. 공의 뒷면에는 불규칙한 공기 소용돌이가 생긴다. 골키퍼는 물론 키커도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공의 궤적이 생긴다. 무회전 킥은 야구의 너클볼(손가락으로 회전을 주지 않고 밀어던지는 변화구)과 같은 원리다. 손흥민은 롤모델인 포르투갈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레알 마드리드)의 무회전 프리킥을 벤치마킹했다. 11살 때부터 호날두를 동경해 온 손흥민은 청소년 시절부터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에 호날두의 플레이 영상을 담아 수천 번을 봤다. 손흥민은 연습 때 무회전 프리킥을 성공시키면 “로날도(호날두의 영어식 발음)”를 외치기도한다. 호날두는 무회전 킥을 찰 때 발등으로 공의 중앙을 강하게 때린다. 호날두가 때리는 프리킥의 최고 스피드는 시속 100㎞에 달한다. 스페인 신문 ‘아스’는 호날두의 킥을 “토마호크 미사일 같다”고 묘사했다. K리그에서 프리킥으로만 13골을 터트렸던 ‘무회전 키커’ 김형범(34·전 전북)은 “프리킥을 감아차면 10개 중 8~9개는 원하는 대로 찰 수 있다. 그러나 무회전 프리킥을 하면 10개 중 골대로 향하는 건 5개 미만일 것”이라며 “긴박한 순간에 무회전 프리킥을 시도하는 건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골문을 크게 벗어나는 ‘홈런슛’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흥민은 중요한 순간일수록 대범하게 차더라”며 놀라워했다. 손흥민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 정우영(29·빗셀 고베) 역시 무회전 프리킥에 일가견이 있다. 정우영은 지난해 12월16일 동아시아 E-1챔피언십 일본과 경기에서 오른발 무회전 프리킥골을 터트려 4-1 대승을 이끌었다. 정우영 역시 호날두 영상을 돌려보며 따라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화려한 프리킥 쇼’가 펼쳐질 전망이다. ‘호날두 라이벌’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31·바르셀로나) 역시 프리킥 마법사다. 메시는 올 시즌 7골을 포함해 프로무대에서 프리킥으로만 26골을 몰아쳤다. 메시는 주로 프리킥을 감아찬다. 왼발 안쪽으로 축구공의 왼쪽 아랫부분을 감아서 돌린다. 그러면 공은 시계 방향으로 돌며 ‘마그누스 효과(Magnus Effect)’를 일으킨다. 원형 물체가 회전할 때의 압력 차이로 휘는 현상이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커브의 원리와 같다. 브라질 공격수 네이마르(26·파리생제르맹) 역시 오른발 감아차기 프리킥이 일품이다. 이밖에 파울로 디발라(아르헨티나),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 크리스티안 에릭센(덴마크), 폴 포그바(프랑스) 역시 날카로운 프리킥을 지녔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05.22 09:30
축구

평양 온 김호곤 부회장, "남·북 단일팀 생기면 정말 강할텐데…"

"남·북이 단일팀을 이루면 정말 강한 팀이 될 것이다."여자축구대표팀 단장으로 5일 평양에 도착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도 남북전은 많은 추억이 담긴 경기다. 자신이 주장으로 뛰던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남.북이 서로 겨뤄 무승부를 기록, 승부차기가 없던 당시에 공동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베이징에서 비행기 안에 3시간30분이나 갇히는 등 힘든 여정 끝에 북한에 처음 온 김 부회장은 6일 취재진과 만난 뒤 "당시 우승컵을 함께 든 북한 주장 김종민을 꼭 다시 만나고 싶은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지금은 생사를 알기 힘든 상황이 됐다"며 아쉬워했다.김 부회장이 뛰던 시절만 해도 북한전은 져서는 안되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경기였다. 그는 "그땐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다"며 "남측이나 북측이 모두 마찬가지였을 텐데, 비기고 나서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아시안게임 기간 식사 시간엔 북한 선수들 자리로 가 일부러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고 추억했다.그는 자신의 선수 시절을 기억하며 북한 축구의 수준이 상당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우리 팀은 바나나킥(스핀킥)을 흉내만 낼 때였는데, 북측은 자유롭게 구사했다"며 "남측은 동남아 국가에서 훈련할 때, 북측은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사회주의의 축구 강국으로 전지훈련도 자주 떠나 유럽 축구에도 익숙했다. 우리보다 훨씬 강했다"고 설명했다.김 부회장은 남·북 남자축구의 전세가 역전된 계기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으로 꼽는다. 북한은 당시 쿠웨이트전에서 패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국제대회 출전이 2년간 정지됐다. 그는 "이듬 해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지금의 U-20 월드컵)에서 북한 대타로 우리가 나가게 됐는데 4강 성과를 쌓았다"며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까지 진행되면서 북측 남자 축구가 힘을 많이 잃은 것 같다"고 했다.하지만 그는 남·북이 힘을 합치면 축구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김 부회장은 "남측과 북측이 한팀이 된다면 세계에서 활약하는 정말 강한 팀이 될 것 같다"며 "1991년 포르투갈에서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등 잘 했다. 북측은 힘쓰는 운동에 강하고 우리는 기술이 좋으니 정말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에 북측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번 평양 방문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곧 또 올 것 같다"고 밝혔다.평양=공동취재단 2017.04.06 19:26
경제

23년 축구만화 인생 오일룡

“1997년 만화 를 그리면서 우리 팀이 월드컵 8강에 진출하는 걸 그렸다. 그 때는 4강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수준이었다. 2002년 우리가 실제로 4강에 갈 지는 몰랐다. 이제는 월드컵 우승을 그리겠다.” 만화가 오일룡(57)씨가 독일 월드컵 열기로 지구촌이 끓어오르고 있는 요즘 축구 만화 인생 23년으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가 23년 동안 선보인 축구 만화만 200여 종·3000여 권. 지난 83년 으로 축구 만화를 처음 그린 이후 초지일관 이 길을 걸어왔다. 국내 만화계에서 ‘축구 만화=오일룡’이란 공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토록 장기간 축구 만화에만 전념하는 만화가는 전세계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등으로 알려진 그는 83년 한국팀의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4강 진출에 감동을 받고 축구 만화를 그리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의 창시자 스탠 리. 미국의 유명 만화가 조 쿠버트 등과 펜팔 교류를 했고 SF 만화를 꾸준히 작업 해오다가 83년을 기점으로 축구 만화로 돌아섰다. 은 기대만큼 반응도 좋았다. 축구 붐이 오래 갈 것이라는 판단도 축구 전문 만화가의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때부터 대중의 뇌리엔 오일룡은 축구 만화가로 각인됐다. 그의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유비· 관우·장비 등은 오일룡 만화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내가 다른 장르의 만화 해 봐야 먹히지 않는다. 축구 만화의 경우 주인공이 항상 이기고 해피엔드로 끝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고교 축구·대학 축구·유럽 축구·남미 축구·이탈리아의 지하 축구. 아프리카밀림에서 타잔처럼 지내다 발탁된 이야기. 성인용 축구 만화 등 안 다루어 본 축구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상상할 수 있는 축구 이야기는 그에 의해 모조리 작품화 됐다. 91년 인기를 끈 는 한 해군사관 생도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 소련의 구조를 받는 내용이다. 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은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죄수들과 함께 축구를 하다 탈출해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게 된다. 심지어 부상을 당해 폐인이 된 주인공이 발목 뼈가 툭 튀어나오는데 그걸 이용해 가공할 스핀킥을 구사하는 작품도 있다. 축구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달리 그는 축구를 잘 하진 못한다. 40대 때 축구를 하다가 배에 공을 맞고 쓰러진 후로 직접 축구를 하는 것은 자제했다. 월드컵 만화를 많이 그리지 못한 것. 현재 대본소의 침제로 작품을 제대로 발표하기 어렵다는 점을 안타까워 한다. 그는 “이번 월드컵을 보며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우리 팀이 잘 하면 16강은 가지 않겠는가. 유명 스타들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를 개발해 새로운 작품에 등장시키겠다”면서 축구 만화 인생길을 계속 갈 것임을 다짐했다. 장상용 기자 2006.06.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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