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서지영의 랜드is] 오세훈 시대, 재조명 받는 용산 현대차 부지 개발
오세훈 서울 시장이 취임하면서 멈춰섰던 서울 한강변 개발 사업이 재조명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통합사옥으로 사용하겠다면서 2017년 지구단위 계획까지 제출했으나 서울시가 최종 고사한 원효로 사옥 부지도 그중 하나다. 부동산 업계는 오 시장이 이른바 '한강 르네상스' 정책 재추진 의지를 강하게 보여왔다면서 용산 정비창 부지와 함께 현대차 원효로 사옥 개발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 첫 출근지를 아시나요 서울 용산구 원효대교 북단 옆에는 오래된 회색 건물 한 채가 있다. 지난 4일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자 파란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HYUNDAI Autoever 별관(현대 오토에버)'. 한낮이었지만 건물 안은 사람이 많지 않은 듯 한산했다. 건물 옆으로는 단단한 회색 임시 벽이 둘러쳐 있었다. 임시 벽 틈새로 안을 살펴봤다. 인적이 끊겨 적막한 공터 위에 조립식 건물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다. 그 위로 낯익은 문구들이 보였다. '기술의 現代, 세계의 現代' '승용정비'…. 2017년까지 현대차의 서비스센터로 쓰이던 현대차 원효 부지였다. 원효로4가 114의 40에는 3만1000여㎡(약 9400평)에 달하는 현대차 원효로 사옥 부지가 있다. 2017년 1월 원효서비스센터가 일산으로 이전하면서 대부분 빈 상태다. 현대엠엔소프트가 현대오토에 합병되면서 일부 직원만 일부 건물을 사용 중으로 알려진다. 현대차 원효로 사옥 부지는 입지 면에서 '알짜'로 통한다. 한강 조망권이 완전하게 확보된 남향 부지로 용산 정비창 부지와 가깝다. 교통여건도 좋다. 사옥 바로 옆에 원효대교와 강변북로가 있다. 여의도를 비롯해 강남권 등 다른 지역을 오가기 편리하다. 반경 2㎞ 이내에 KTX 용산역과 마포역, 공덕역 등 교통시설이 밀집돼 있다. 특히 오 시장이 개발 필요성을 여러 번 강조한 용산국제업무지구 역시 도보 10분 안팎 수준이다. 현대차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현대차 원효로 사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첫 출근지다. 정 명예회장은 1970년 현대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근무지가 원효로 사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고장 난 차를 고치는 AS 서비스를 담당하며 '품질경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부지 내에 마련됐던 체육관은 한때 현대차 실업배구단의 훈련장으로 사용됐다. 여러 면에서 마냥 내버려 두기에는 아까운 입지인 건 분명하다. 현대차는 4년 전만 해도 이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2017년 이곳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용산구에 제출했다. 이른바 'W프로젝트'였다. 현대차가 현대엔지니어링을 앞세워 호텔과 오피스텔, 업무시설 등 48층 높이의 건물 5개 동을 지을 테니 2종 일반주거지역인 용도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높여 달라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용산구는 유관기관 협의와 주민공람 등을 거쳐 서울시에 심의를 의뢰하겠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지역 안팎에서는 현대차 원효 사옥 부지를 '용산의 랜드마크'로 만들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박원순 전 시장 반대로 개발 무산 W프로젝트는 서울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를 포함해 용산과 여의도를 통개발하는 '용산 마스터플랜'이 나와야 현대차의 원효로 사옥 부지도 개발할 수 있다며 반려했다. 박 전 시장이 한강 변 건물을 35층으로 제한하는 2030 서울 도시기본계획을 발표면서 현대차가 원하는 48층 초고층도 불가능해졌다. 이후 W프로젝트는 '박원순 싱가포르 선언'으로 불리는 용산·여의도 통합개발계획 발표로 서울시 땅값이 들썩이면서 완전히 잊혔다. 박 시장의 자리를 오 시장이 대신하면서 용산은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오 시장은 2006~2011년 서울시장 재직 당시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공간 구조를 개편하는 한강 르네상스 정책을 추진했다. 용산정비창 부지를 개발하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한강 르네상스 정책의 핵심 중 하나였다. 오 시장은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용산경제정책을 발표하며 이 지역 개발 의지를 다시 다졌다. 또 '35층 룰' 폐지도 시사했다. 박 전 시장 당시 흐지부지된 원효로 사옥 부지 개발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변 호재도 있다. 현대차 원효로 사옥과 맞닿은 용산구 산호아파트가 최고 35층 높이로 재건축된다. 서울시는 지난달 용산구 원효로4가 118-16번지 일대 용산구 산호아파트 재건축사업 특별건축구역 건축계획안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한강변 아파트인 산호아파트는 '용산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조망권과 입지를 자랑한다. 한동안 답보 상태였던 산호아파트는 한강 변에 위치한 특수성을 반영해 한강 물결을 모티브로 한 건축 디자인을 접목하고, 최상층에 공공커뮤니티 시설인 스카이북카페를 설치해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면서 서울시로부터 허가를 받아냈다. 향후 산호아파트는 지하 3층, 지상 35층 규모로 공동주택 647세대(임대 73세대, 분양 574세대)로 재건축이 가능하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산호아파트 건축계획안 통과 사실을 발표하면서 "앞으로도 한강변은 특별건축구역 지정 등을 통해 조화롭고 창의적인 건축을 유도함과 동시에 스피디한 주택공급으로 주택시장을 신속하게 안정화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용산구 원효로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산호아파트 재건축이 급물살을 타면서 '현대차 원효로 사옥 부지와 통개발이 된다면 좋겠다'는 지역민 바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개발하면 인근 상권도 살리고 여러모로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원효로 사옥 특별하지만…." 현대차 측은 현재 원효로 사옥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사내에서 원효로 부지 개발과 관련해 이야기 나오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오 시장이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설사 내부에서 이야기됐더라도 아주 초기 단계이거나 대외비일 것이다. 현재 원효로 사옥은 서비스센터 등이 빠지면서 비어있는 상태로 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최근 사옥 신축과 관련해 풀어야 할 숙제를 여럿 안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신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당초 현대차는 한국전력으로부터 사들인 이 땅에 지상 105층 타워 1개 동과 숙박·업무시설 1개 동, 전시·컨벤션·공연장 등 5개 시설을 조성하는 방안을 세웠다. 하지만 투자 효과와 비용절감을 고려해 105층 신축 대신 70층 빌딩 2~3개 동을 짓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무조건 높게만 지을 것이 아니라 실용성을 먼저 생각하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강남구청과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원래대로 105층으로 지어서 삼성동의 랜드마크로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현대차는 최근까지 삼성동 현대차 신사옥 부지 도시계획 무효화 해달라는 봉은사와 소송전도 벌였다.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개발 운을 떼지 않는 한 원효로 사옥 부지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원효로 부지는 과거 서비스센터로 쓰였던 곳이고 명예회장의 첫 출근지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서도 "(통개발을 논의하기에는) 현재 GBC 사업도 진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2021.05.10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