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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더 선(The Sun)을 아십니까?

2022년 9월 26일은 본 칼럼이 연재되고 있는 일간스포츠가 창간한 지 5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종합지의 스포츠 섹션은 분량이 한정적인데 반해, 스포츠신문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중점적으로 보도한다. 국내 스포츠는 1980년대 들어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야구(KBO리그)와 프로축구(K리그)가 출범한데 이어,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올림픽이 서울에서 연달아 개최됐다. 축구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꾸준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아울러 1994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MLB) 계약은 국내 팬들이 해외 스포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스포츠의 인기 상승과 함께 스포츠서울(1985년)과 스포츠조선(1990년)도 연달아 창간했다. 스포츠신문의 전성시대였다. 1990년대 서울 지하철의 풍경을 기억하는 독자분이 있다면 그 당시 스포츠신문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알 것이다. 프리미어리그(EPL)의 인기와 함께 국내에도 영국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들의 스포츠신문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영국 스포츠신문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7세기 영국에는 뉴스와 가십(gossip, 소문·잡담)을 다루는 정기 간행물이 출현했다. 17세기 후반에는 영국 정부의 검열 완화와 더불어 더욱더 많은 출판물이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간 신문 더 타임스(The Times)는 1785년 창간했다. 19세기 초반 선도적인 신문의 자리에 오른 더 타임스의 영향으로 세계의 많은 신문사는 ‘타임스’란 이름을 차용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뉴욕타임스다. 1896년에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라는 신문이 런던에서 창간했다. 데일리 메일은 중산층 이하의 독자를 겨냥한 영국 최초의 일간 신문이었다. 여성 독자를 겨냥한 첫번째 신문이기도 했던 데일리 메일은 큰 인기를 얻어, 하루에 백만 부 이상을 판매한 영국 최초의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영국 신문은 3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번째 형태는 품질을 중시하고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뉴스와 사설, 논평 등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퀄리티(quality)’ 신문이다. 이들은 브로드시트(broadsheets)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커다란 신문 크기에서 이러한 이름이 유래했다. 브로드시트는 보통 57cm 정도의 긴 세로 면을 가지고 있다. 더 타임스, 더 가디언 등이 영국을 대표하는 퀄리티 신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인기 있는(popular)’ 신문이다. 브로드시트보다 작은 크기로 발행되는 관계로 이들을 타블로이드(tabloid)라고 부른다. 타블로이드는 중요한 사건의 객관적인 기사보다는 주로 대중의 흥미를 끄는 보도를 중요시한다. 황색 언론과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역사적으로 타블로이드는 신문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했다. 브로드시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대중적인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더 선, 데일리 미러, 데일리 스타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퀄리티’와 ‘인기 있는’ 신문의 중간 역할을 하는 이들을 ‘중간 시장 신문(middle-market newspaper)’이라고 부른다. 이 신문은 중요한 뉴스를 보도할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는 독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들은 타블로이드 형태로 발행되고, 데일리 메일과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여기에 속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자료를 보면 영국민들은 심각한 뉴스를 다루는 퀄리티 신문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더 선은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신문이었다. 1980~90년대 이 신문의 하루 평균 발행 부수는 400만 부에 가까웠다. 2000~2010년대에도 300만 부 이상을 꾸준히 발행했다. 서민과 노동자 계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더 선은 스포츠와 연예계 뉴스 및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 같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주제를 중점으로 보도한다. 더 선의 전신은 1964년 창간된 브로드시트 신문인 데일리 헤럴드였다. 하지만 1969년 호주의 유명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 후 더 선이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재탄생한다. 한국의 일간스포츠와 영국의 더 선은 1969년 창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선의 3번째 페이지(Page 3)는 초창기 신문이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 11월 더 선은 영국 타블로이드 최초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topless, 상의를 입지 않은) 차림의 매력적인 여성 모델 사진을 실었다. ‘Page 3 girl’이라 불리는 이들 덕분에 다음해 더 선의 판매량은 두 배로 뛰었다. 결국 1978년 더 선은 데일리 미러를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 된다. 이러자 다른 타블로이드도 경쟁적으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 모델 사진을 올리게 된다. 페이지 3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다양했다. 오락의 한 요소로 이를 좋아한 독자가 있는데 반해, 보수적인 이들은 전국 신문에 올리기에는 부적절한 ‘소프트 포르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사진이 여성을 비하하고, 성차별을 지속시킨다며 반대했다. 정치권도 상반되는 반응을 보였다. 페이지 3의 사진을 없애자는 주장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결국 의회에서 페이지 3에 반대하는 법안은 제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부터 ‘No More Page 3(페이지 3는 이제 그만)’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됐고, 여기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이 140명에 이르렀다. 아울러 많은 대학과 노동조합도 이에 가세했다. 결국 더 선은 토플리스 여성 모델 사진을 사용한 지 44년만인 2015년 1월 페이지 3를 중단했다. 다른 타블로이드도 더 선의 결정을 따랐고, 2019년 4월 데일리 스타를 마지막으로 타블로이드 일간지에서 페이지 3 사진은 사라졌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9.28 07:00
산업

이재용 부회장 영국 방문…여왕 장례식 참석하나

해외에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국을 방문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전세기를 이용에 최근 영국에 도착했다. 대통령 특사로서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을 돕고 있는 이 부회장은 지난 6일부터 멕시코와 파나마 등지를 방문하며 엑스포 유치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8일(현지시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을, 13일에는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을 각각 만나 부산엑스포 지지를 호소했다. 이 부회장은 영국에서는 이달 초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를 만나 부산엑스포 유치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었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총리와의 만남이 불투명해졌다. 영국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방문에서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 인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이 오는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장으로 진행되는 여왕의 장례식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대표자들이 참석하는 세기의 조문외교 무대가 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삼성이 영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만큼 이 부회장이 윤 대통령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해 조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95년 삼성전자의 영국 윈야드 가전공장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한 바 있다. 당시 여왕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생산라인 가동 스위치를 함께 누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영국 왕실에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납품하고 있고 올해 초에는 여왕 즉위 7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냉장고를 출시하기도 했다. 안민구 기자 amg9@edaily.co.kr 2022.09.16 15:22
해외축구

홀란드, 전설 대열에 합류... 펩 “크루이프, 즐라탄 같아”

“홀란드의 결승골을 보고 당시 크루이프의 득점 장면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영국)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팀 내 중심 공격수 엘링 홀란드(22·노르웨이)에 극찬을 쏟아냈다. 홀란드의 플레이를 보면 전설이 떠오른다는 내용이었다. 그 동안 자신을 향한 평가마저 자제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의 마음마저 돌린 '괴물 공격수' 홀란드다. 홀란드는 15일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위치한 에티아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르트문트(독일)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G조 2차전 홈 경기에서 1-1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39분 결승 골을 터뜨렸다. 지난 7일 세비야(스페인)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4-0 대승을 이끈 홀란드는 이번 시즌 UCL에서 2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도르트문트는 홀란드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EPL에 진출하기 전에 세 시즌 동안 활약한 친정팀이다. 홀란드는 도르트문트에서 87경기에 출전해 83골을 터뜨리며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급성장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팀인 걸 고려해 홀란드는 결승 골을 터뜨리고도 세리머니를 자제하며 예우를 지켰다. 경기 후 과르디올라 감독은 “요한 크루이프가 오래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놀라운 골을 넣었는데, 홀란드의 골을 보고 당시 크루이프의 득점 장면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홀란은 내 소중한 친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도 닮았다. 그는 높은 곳에서 다리를 올려 골을 넣는 능력을 갖췄는데, 홀란도 마찬가지다”고 덧붙였다. 홀란드는 올 시즌 총 8경기를 소화하며 13골을 넣었다. 리그에서 10골, UCL에서 3골을 터뜨렸다. 리그 득점 1위를 질주 중이다. 2위 알렉산드르 미트로비치(풀럼)와 4골 차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지난 11일 치르기로 했던 EPL 7라운드가 연기됐지만, 홀란드의 득점 페이스는 전혀 죽지 않았다. 6경기 연속 득점이다. 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2.09.15 16:36
해외축구

[공식발표] EPL 사무국, 이번 주말 경기 연기... “여왕의 특별한 삶과 공헌 기린다”

이번 주말 예정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일정이 모두 연기된다. EPL 사무국은 9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특별한 삶과 국가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존경의 표시로, 이번 주말 예정된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연기될 것이다. 애도 기간 프리미어리그 경기와 관련된 추가 정보는 적절한 시기에 제공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최장 집권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함에 따라 축구 외 골프, 럭비 등 주요 스포츠 리그가 중단됐다. BBC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스포츠 행사 연기를 개별 기관의 자율 결정에 맡겼지만, EPL 사무국은 9일 오전 논의를 진행한 끝에 취소를 결정했다. 추모 기간을 갖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가겠다는 의도다.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은 당초 11일 오전 1시 30분 영국 맨체스터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 2022~23시즌 EPL 7라운드 원정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미뤄지게 됐다. 이 외에도 울버햄튼과 리버풀, 첼시와 풀럼 등 주말 경기도 미뤄졌다. 연기된 일정은 추후 발표될 전망이다. 김영서 기자 2022.09.09 20:37
세계

'영국의 정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푸틴도 애도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여왕이 8일(현지시간)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여왕은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었다. 지난 6일에는 웃는 얼굴로 신임 총리를 임명하며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7일 오후 왕실에서 여왕이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전했다. 이어 8일 정오가 조금 지나 의료진은 여왕의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발표했다. 여왕의 재위 기간은 70년 214일로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63년 216일)을 훌쩍 넘어 영국 역사상 가장 길다. 세계적으로도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72년 110일) 다음으로 두 번째다. 여왕은 재위 기간 해리 트루먼부터 조 바이든까지 미국 대통령 14명 중 13명을 만났다. 중국 등 세계 100여 개국을 방문하는 등 외교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99년에는 한국을 찾아 안동 하회마을 등에서 생일상을 받았고, 김대중·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찰스 3세 국왕에게 조의를 표하는 서한을 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서한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세계 무대에서 권위와 함께 정당한 사랑과 존경을 누렸다"며 "나는 당신이 이 어렵고 회복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용기로 이겨내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성명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주 이상이었다. 그는 시대를 규정했다"며 "지속적인 변화의 시대에 여왕은 영국인에게 안정과 자존심의 지속적 원천이었다"고 기렸다. 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 2022.09.09 09:39
사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차기 왕 찰스 즉위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사망 당시 여왕의 곁에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와 부인 커밀라,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 등이 곁에 있었다. 이날 오후 6시 30분 버킹엄 궁전은 조기를 게양해 여왕의 서거를 알렸으며 왕위 계승권자인 찰스 왕세자는 즉시 왕위를 물려받아 찰스 3세로 즉위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25살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영국의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지켰다. 여왕은 이날까지 만 70년 127일을 재위해 영국 군주 중에서는 최장, 세계 역사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 통치한 군주로 남았다. 오랜 기간 재위하며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여왕은 즉위 70년 만에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 여왕은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 사망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해 10월 병원에 하루 입원한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했다. 올해 2월에는 찰스 왕세자를 만난 뒤 코로나 19에 확진돼 한동안 외출을 못 하기도 했다. 이날 왕실이 여왕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공개한 후 왕실 직계 가족들은 밸모럴성에 모여들었다. BBC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여왕 관련 소식을 생중계로 전하는 등 영국 전국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김다은 기자 dagold@edaily.co.kr 2022.09.09 09:18
해외축구

엘리자베스 2세 英 여왕 서거... EPL 등 스포츠 중단

70년 재위 기간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서거했다. 96세. 여왕이 서거함에 따라 이를 추모하기 위해 주말 스포츠 일정이 전면 연기된다. 각종 스포츠 단체도 차례로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서거를 추모하는 게시글을 게재하고 있다. 8일 열린 2022~23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영국)와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의 경기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대신 선수들은 킥오프 전에 검은색 완장을 차고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한 1군 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컵대회와 7라운드는 차후에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스포츠전문매체 스카이스포츠에 따르면 영국 스포츠 각종 종목 협회와 위원회가 9일 오전 모여 회의를 연다. 여기에서 10일 간 공식 애도 기간에 예정된 각종 경기에 대한 정부 지침이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도 일정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크리켓, 승마, 골프, 럭비, 테니스 등도 일정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2.09.09 09:04
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영국 여왕이 사랑한 클럽은?

영국 왕실은 오랫동안 스포츠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딸인 앤 공주는 유럽 승마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데 이어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참가했다. 앤 공주의 딸 자라는 2012 런던 올림픽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 영국 왕실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당시 시상식에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자 어머니인 앤 공주가 딸 자라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승마 외에도 왕실 인사들은 테니스, 폴로, 럭비, 스키, 크리켓,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하노버 왕조의 빅토리아 여왕은 사촌이자 독일인 앨버트 공과 결혼해 영국 왕실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시대를 맞이한다. 이로써 영국 왕실은 친가와 외가 모두 독일계 왕조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발발하면서, 영국 내에서 반(反) 독일 감정이 일어난다. 곤경에 빠진 당시 영국 왕 조지 5세는 독일계 가문명을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이에 생존을 위해 영국 왕실은 왕조의 문장에서 작센 가문의 흔적을 지우는 등 독일과의 관계를 끊었다. 이때 가문명도 왕실의 오랜 터전이었던 윈저 성의 이름을 따 ‘윈저 왕조(House of Windsor)’로 바뀐다. 해군 장교 출신이었던 조지 5세는 유럽에서 군주제가 몰락하고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설치던 시절 영국 왕으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대영제국은 그의 재임 시절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즉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군주가 조지 5세였다. 조지 5세는 검소한 삶을 살았고, 자식들 교육에도 엄격했다. 하지만 그의 장남 에드워드는 파티를 즐기고, 기혼 여성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말썽꾸러기였다. 장남에 실망한 조지 5세는 차남인 앨버트와 손녀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잇기를 희망했기에 “에드워드가 절대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아울러 조지 5세는 “내가 죽은 후 에드워드가 왕이 되면 12개월 안에 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했다. 1936년 조지 5세가 서거하자 장남은 왕위를 물려받아 에드워드 8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2번의 이혼 경험을 가진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사랑하는 세기의 로맨스를 벌이며, 왕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아버지 조지 5세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국 공석이 된 왕 자리에 에드워드의 동생 앨버트가 오르며 조지 6세가 된다. 소심한 성격의 조지 6세는 사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특히 그는 말을 더듬는 치명적인 버릇이 있었는데, 이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이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콜린 퍼스가 조지 6세를 연기해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에 감동스럽게 그려져 있다. 한편 조지 5세 시절인 1927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FA컵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월은 조지 5세의 사랑을 받던 찬송가 ‘나와 함께 하소서(Abide with Me)’를 결승전 식전 행사에 도입했다. 이 찬송가는 삶과 죽음을 통틀어 하나님이 화자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는 기도로, 1912년 타이타닉 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하던 당시 선상 밴드가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이후 ‘나와 함께 하소서’는 지금까지 매년 FA컵 결승전에서 불리고 있다. 밴드의 연주와 함께 초대 가수가 선창하면 관중은 이를 따라 부르는데,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만은 특별한 믿음의 순간이라고 한다. 럭비 리그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1929년부터 지금까지 챌린지컵 결승전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 왕의 자리가 버거웠고 2차 세계대전 중 국왕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치르면서 건강이 악화한 조지 6세는 1952년 56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왕위를 이어받은 그의 장녀가 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다. 결국 조지 5세의 소원대로 차남에 이어 손녀가 왕위에 앉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FA컵 결승전을 여러 차례 직접 관람하는 등 축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국가의 수장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여왕은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했다. 여왕은 아스널 FC가 2006년 새 홈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개장할 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남편 필립 공작을 대신 보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이듬해 아스널을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해 다과를 가졌고, 당시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와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서 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파브레가스는 언론에 여왕이 아스널 팬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신문사 데일리 미러의 2009년 보도에 의하면 여왕이 오랫동안 사랑한 팀은 해머스(The Hammers)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동런던 클럽 웨스트 햄이다. 여왕은 왕실 직원들이 밀월FC에 대해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고, 자신은 밀월과 앙숙 관계인 해머스의 팬이라고 살짝 밝혔다는 것이다. 여왕의 뜻밖의 고백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여왕의 평소 이미지와 과격한 팬을 많이 거느린 웨스트 햄과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의 본거지인 업튼 파크(Upton Park)에서 생활한 적 있는 필자 입장에서도 여왕의 발언은 정말 뜻밖이었다. 필자가 런던 전역에서 살아봤지만 업튼 파크만큼 살벌하고 밤에 혼자 나가기 싫은 지역도 없었다. 여왕의 웨스트 햄 사랑은 클럽의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었던 론 그린우드에 대한 존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왕은 해머스를 1965년 유럽피언 컵 위너스 컵 정상에 올려놓은 그린우드 감독을 여러 번 만났고,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 공군의 집중적인 폭격에도 굴하지 않았던 ‘동런던 시민(East Enders)’에 대한 여왕의 존경심도 해머스를 응원하게 만든 계기였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6.2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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