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여자축구①] '산전수전' 박은선의 고백 "롤러코스터 내 인생, 이제야 철들었어요"
IBK기업은행 2016 WK리그 이천대교와 인천현대제철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 열린 지난달 24일. 양 팀이 0-0으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전반 24분 대교 '에이스' 박은선(30)이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상대 외국인 선수 비야 베아트리체(23)와 충돌한 직후였다. 오른발목을 붙잡고 신음하던 박은선은 들것에 실려나갔고 이튿날 병원으로 후송됐다. 대교는 이후 비야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0-4로 완패했고, 창단 네 번째 우승 기회를 내년 시즌으로 미뤘다. 박은선의 공백이 컸다. 일간스포츠는 2차전이 끝난 다음 날인 25일 경기도 시흥에서 박은선을 만났다. 오른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은 그는 "인대가 파열됐다"며 재활 소식을 알렸다. 박은선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여자 축구계 스타였다. 키 180cm·몸무게 80㎏의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가진 그의 앞에 서면 누구라도 압도됐다. 그러나 빼어난 실력과 달리 축구 인생은 사건 사고로 가득했다. 모든 선수들의 꿈인 대표팀에 항상 차출됐지만, 사흘이 멀다고 선수촌 담을 넘었다. "축구를 때려치우겠다"고 선언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툭 하면 불거졌던 성별 논란도 그의 삶을 짓밟았다. WK리그 소속팀들은 "박은선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소문이 있다" "신체 조건이 여성스럽지 않다"며 공격했다. 상대 '에이스'를 심리적으로 흔들고 싶은 경쟁팀의 전략이었다. 박은선은 그때마다 '양성자' '남자'라는 원색적인 비난과 세상의 야릇한 눈총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이제 30대가 된 박은선에게 파란만장했던 20대 시절을 묻고, 솔직한 속내를 들었다.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눈빛과 목소리는 한없이 잔잔했다. - 발목 상태는 어떤가. "인대가 50% 정도 파열됐다.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라서 약 3주 동안 깁스하고 이후 재활을 할 것 같다. 내년 시즌에는 지장 없다. 내가 (부상당해) 나온 뒤 골을 허용하고 졌다. 내가 대교에 입단한 후 WK리그 우승컵은 한 번도 거머쥐지 못해서 간절했는데 아쉽다." - 어느덧 30대가 됐다. 박은선의 20대는 어땠다고 보나. "잘 놀았던 것 같다.(웃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만 싶었다. 20대 때 이것저것 다 해 봐서 나이 먹고 진득하게 공을 차고 있다. 그런데 은퇴가 몇 년 안 남았다." - 박은선은 '사건 사고의 아이콘'이었다. 왜 그렇게 담벼락을 넘었나. "당시만 해도 여자 축구선수는 대학을 갔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실업팀(서울시청)에 입단했다. 축구협회에서 징계를 내렸고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습관처럼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시간이 남아 답답했다. 분출구가 필요했다. 나가서 놀다 보니 더 놀고 싶고… 참 어렸다. 그때는." - 반항 이유로는 좀 약한데. "나름대로 사연은 있었다. 징계 때문에 팀 경기는 못 뛰는데 대표팀에 계속 차출됐다. '축구협회는 소속팀에선 못 뛰게 하면서 왜 대표팀은 꼬박꼬박 내보내나. 경기를 못 나가서 기량도 떨어졌는데'라고 생각했다. 소속팀에 미안했고 (협회의 처분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고 여겼다. 반항심이 들어 대표팀에서 이탈하고, 징계를 받고, 풀리면 탈출하길 반복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다. 나이도 들었고.(웃음)" - 언제 철들었나. "5년 전 아버지가 골수암으로 투병하시다가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운동을 관둔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은선아. 제발 운동하자'고 하셨다. 내 인생에 가장 슬펐던 순간이다. 그때부터 다시 축구를 시작했다." - 2014년 돌연 러시아리그 로시얀카 LFC행을 선택했다. "그 무렵 성별 논란 딴죽이 걸렸다. 힘든 일이 겹치면서 '딱 1년만 떠나 있자'하고 갔다. 사실 해외는 외로워서 가기 싫었다. 고교 때부터 미국 등 다른 리그에서 '러브 콜'이 와도 안 갔다. " - 굉장히 순한 인상이다.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한다.(웃음) 처음에는 인사도 잘 못하는 사람도 있다. 주변 친구들은 나를 '허당끼 있다' '웃기고 편안하다'고 한다. 혼자 남는 걸 싫어하고… 그게 나다. 영화도 '이프 온리(If Only)'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음악은 '리쌍'처럼 부드럽고 가사가 정적인 힙합을 좋아하고." - 축구선수로서는 복 받은 몸을 가졌다. 그간 돈도 좀 벌었을 것 같다. "주위에서 '너는 운동을 위해 태어난 몸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운동을 관두니 '네 복을 걷어차는구나'라고도 했다. 돈은 많이 벌고 많이 썼다. 집안에 빚이 있어서 좀 갚았고. 이제부터 모을 생각이다." - 은퇴 뒤 지도자 꿈은 있나. "그게… 내가 그동안 한 짓이 있는데 남을 가르쳐도 되는 건가 싶다.(웃음) 사고를 그렇게 많이 쳤는데 양심상 자격이 있는가. 냉정하게 봐야지. 또 지도자 자격증 시험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취미반에서 가르치는 건 좋다." - 곡절 많은 삶을 잘 견뎠다. "삶은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간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은 겪기 힘든 일들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사실 나는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죽을 둥 살 둥 매달리진 않는다. 그런데 지난 결정전 1차전에서 2골을 넣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웃음) 나도 놀랐다." - 박은선의 인생그래프를 그리면 어떨까. "막 들쭉날쭉할 거 같은데. 축구는 나에게 희로애락을 알려 줬다. 내 삶도 슬픔과 기쁨이 수없이 교차했다. 대교는 내 마지막 팀이라고 생각한다. 은퇴하기 전까지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늘 사랑받으며 살았다. 돌려드리고 싶다." 서지영 기자
2016.11.02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