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현장에서] 이긴 '형'도, 진 '아우'도… 드디어 팬들 앞에서 뛰었다
80분 가까이 꾹꾹 눌러 참았던 탄성이 아쉽게 무산된 득점 기회에 무심코 터져나왔다. 숫자는 적어도, 아주 오랜만에 관중 앞에서 뛰는 선수들의 표정에도 생기가 감돌았다. 경기 내용도, 결과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10개월 여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경기를 관중들 앞에서 치렀다는 사실이었다. 경기 당일 5시간 전 예매 후 '직관'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2075명의 축구팬들은 승패와 관계 없이 오랜만에 보는 '형과 아우'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0 하나은행컵 올림픽 대표팀과 친선경기 2차전에서 3-0 승리를 거뒀다. 이벤트성 친선경기라곤 해도 지난해 12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이후 처음 치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세 골 차로 패했지만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 역시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로 소집에 어려움을 겪다가 오랜만에 소중한 실전 경험을 했다. 이날 경기가 더 특별했던 건 무관중으로 진행됐던 1차전과 달리 부분적으로 관중 입장이 허용됐다는 점 때문이다. 2차전 하루 전날인 11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하향 조정되면서 3000명까지 관중을 일부 입장시키는 방안이 확정됐다. 대한축구협회는 부랴부랴 움직였고, 경기 당일인 12일 오후 3시 예매를 시작해 한 시간 만에 1500여 장을 판매했다. 평일, 그것도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인 데다 저녁 8시라는 경기 시간 때문에 많은 팬들이 찾긴 무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2075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했다. 벤투호는 이동준(부산), 이동경, 김인성(이상 울산)이 2선을 꾸리고 주세종(서울), 손준호(전북)가 중원을 지켰다. 수비는 김태환(울산)-권경원(상주)-김영빈(강원)-심상민(상주)이, 골문은 조현우(울산)가 맡았다. 여기 맞서는 김학범호는 조영욱(서울)과 김대원(대구)이 조규성과 함께 공격에 나서고 정승원(대구), 한찬희(서울), 맹성웅(안양)이 중원을, 이유현(전남)-이상민-김태현(이상 서울 이랜드)-김진야(서울)가 수비진을 꾸렸다. 골키퍼 장갑은 이광연(강원)이 꼈다. 1차전에서 '동생들'에게 호된 맛을 봤던 벤투호는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하며 김학범호를 압박해나갔다. 경기의 주도권을 쥔 벤투호는 전반 14분 김인성의 패스를 받은 이동경이 김학범호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선언으로 득점은 무효가 됐다. 전반 34분 권경원이 문전에서 시도한 헤더 역시 크로스바에 맞고 나오는 등 골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전반전은 0-0으로 끝났다. 먼저 교체카드를 꺼내든 쪽은 김학범호였다. 김학범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골키퍼 이광연을 포함해 조규성과 정승원을 빼고 그 자리에 골키퍼 안창기, 그리고 엄원상과 오세훈을 투입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후반 9분, 벤투호에 역습 기회가 찾아왔다. 뒤에서 올라온 공을 받은 이동준이 텅 빈 김학범호의 뒷공간으로 달려들었고, 수비수들이 막아서자 옆으로 따라붙던 이동경에게 절묘하게 패스를 건넸다. 이동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골문을 향해 슈팅을 날려 벤투호의 첫 골을 만들어냈다. 선제골을 내준 김학범호는 후반 19분 송민규와 정태욱을 그라운드에 투입했고, 벤투 감독 역시 나상호, 김지현, 이영재를 교체로 넣어 점검했다. 여전히 주도권은 벤투호 쪽에 있는 상태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후반 막판 교체 투입된 이주용과 이용재가 연달아 골을 터뜨리며 스코어는 순식간에 3-0으로 벌어졌다. 결국 경기는 형들의 승리로 끝났고, 대한축구협회는 1·2차전 합계 5-2로 승리한 벤투호 이름으로 코로나19 성금 1억 원을 기부했다. 고양=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10.12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