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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한국‧일본 선수가 레인저스 아닌 셀틱으로 가는 이유는?

스코틀랜드의 명문 클럽 셀틱이 K리그의 양현준(강원)을 노리고 있다. 이미 한국대표팀 공격수 오현규를 보유하고 있는 셀틱은 양현준 외에도 2명의 한국 선수를 영입 후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게다가 셀틱은 6명의 일본 선수가 소속된 팀이기도 하다.셀틱에서 뛰었거나 현재 소속되어 있는 동북아시아의 국가대표 선수는 13명이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8명을 배출한 일본을 선두로 한국(3명), 중국(2명)이 뒤를 따르고 있다. 셀틱이 특히 일본과 한국 선수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아시아 축구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클럽과는 달리 셀틱은 전통적으로 아시아 선수에 개방적인 팀이다. 셀틱이 영입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는 인도 출신의 아마추어 모하메드 살림이다. 맨발로 축구를 했던 살림은 관계자들을 매료시켰고, 1936년 셀틱의 일원이 되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 셀틱은 실력만 보고 선수를 뽑은 것이다.2000년대 들어 아시아 선수들의 셀틱행은 본격화된다. 일본대표팀의 나카무라 슌스케는 2005년 셀틱에 입단해 4시즌 동안 128경기에 출전해 29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슌스케는 2007년 발롱도르 후보에 오른 데 이어,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기성용 선수가 2009년 셀틱에 입단할 당시에는 이미 클럽에 중국의 정즈와 일본의 미즈노 코키가 있었다. 유럽의 한 클럽에서 한중〮일〮 선수가 같이 뛰는 최초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셀틱이 아시아 선수 영입에 좀 더 적극적인 것은 2021년부터 2년 동안 클럽을 성공적으로 이끈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영향 때문이다. 그리스 출신의 호주인 포스테코글루는 호주대표팀을 아시안컵 정상에 올려놓았고, 일본 J리그의 요코하마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셀틱 감독이 된 그는 자신이 잘 아는 일본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도적 변화도 셀틱의 동북아시아 선수 영입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다.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출신 선수도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뛰려면 워크 퍼밋(취업 비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럽 선수 영입이 까다롭게 바뀐 덕분에 영국리그를 목표로 하는 비유럽 선수들이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스코틀랜드 리그가 EPL보다 느슨한 워크 퍼밋 규정을 가진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잉글랜드나 유럽 부자 구단들에 비해 자금이 넉넉지 않은 셀틱에게 아시아리그에서 건너오는 선수들의 저렴한 몸값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후루하시 쿄고, 마에다 다이젠, 하타테 레오는 셀틱이 J리그에서 비교적 적은 돈으로 영입하고도 성공한 케이스다. 이러자 리그의 하이버니안과 머더웰 등도 재능 있고 가성비가 좋은 J리그의 젊은 선수와 계약을 맺게 된다. 셀틱을 얘기할 때 레인저스가 빠질 수 없다. 스코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두 클럽이 맞붙는 ‘올드 펌 더비’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다. 이들의 경기는 축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셀틱과 레인저스가 가진 라이벌 의식은 종교(가톨릭 vs 신교도), 정치(노동당 vs 보수당), 민족(아일랜드 이민자 vs 스코틀랜드 원주민) 등의 이유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레인저스를 거쳐 간 동북아시아 세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는 몇 명일까? 한 명도 없다.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도 결과는 똑같다. 클럽은 151년 역사 동안 총 51개국의 국가대표 선수를 영입했으나, 단 한 명의 아시아 선수도 여기에 속하지 못했다.레인저스가 철저하게 아시아 선수를 외면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필자는 다각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팬클럽 게시판도 뒤졌고, 질문을 올려 그들의 답변도 들었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레인저스는 셀틱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아시아 시장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레인저스의 폐쇄성은 그들의 반가톨릭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20세기 초부터 레인저스는 가톨릭교도 선수와 계약하지 않았고, 가톨릭 교인은 클럽에 취업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가톨릭교도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레인저스를 떠난 선수도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1989년 가톨릭 신자인 모 존스턴을 영입하며 폐지됐다. 그러자 팬들은 자신의 시즌 티켓을 불태우며 강력히 반발했다고 한다. 선수단 내에서도 불만이 나와, 존스턴 영입 기자회견에 참석한 레인저스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에 반해 셀틱은 선수를 영입할 때 종교를 문제 삼은 적이 없다. 클럽이 “아시아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레인저스 팬도 일부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레인전스가 예전에 가졌던 반 가톨릭 정책도 불문율이었고, 클럽은 당시 이러한 정책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부인했던 전력이 있다.2022 월드컵이 끝난 후 셀틱과 레인저스 등이 조규성 선수를 노린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에 레인저스의 팬클럽인 ‘아이브록스 노이스(Ibrox Noise)’는 홈페이지와 독일의 축구미디어 ‘원 풋볼’ 등을 통해 상당히 거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레인저스의 명성을 이용해 선수의 가치를 높이려는 언론 플레이에 불과하다. 레인저스는 아시아 선수나 시장에 관심이 없다. 클럽의 시장은 유럽에 국한한다”고 한다.필자가 특히 놀란 점은 조규성을 가리켜 “Sung or whatever(성이든 뭐든, 성은 조규성을 의미)”라고 표기한 것이다. 또한 “레인저스 팬들은 아시아 선수보다 치킨차우멘(chicken chow mein, 중국식 볶음국수)에 관심이 더 많다”라는 표현에서도 인종차별을 느낄 수 있었다. 셀틱 소속의 일본 선수가 일부 레인저스 팬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스코틀랜드 리그에 관심이 있는 축구 선수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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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축구가 미국에서 인기 없는 이유①

질문 1.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축구다. 질문 2. 그런데 축구는 왜 스포츠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인기가 없을까? 물론 축구는 근래에 들어 어린이, 청소년과 여성들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요 스포츠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축구는 2012년 미국 남자, 여자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팀 스포츠 1위와 3위에 각각 올랐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사커 맘(Soccer Mom)”이란 표현이 미국 영어에 있다. 이들은 도시 교외에 살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헌신적이다. 사커 맘이란 용어도 미니밴이나 SUV를 몰고 학령기의 아이들을 축구 경기에 실어 나르는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Soccer is for sissies, kids and girls(축구는 계집애 같은 사내, 어린이와 소녀들을 위한 것이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축구는 미국에서 주류 스포츠가 되기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다. 여러분이 열렬한 스포츠 팬이라면 “왜 축구는 미국에서 인기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최소한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많이 궁금하지만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운 이 주제. 같이 한번 파헤쳐 보자.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인 미식축구(NFL), 농구(NBA), 야구(MLB)와 아이스하키(NHL), 그리고 나스카(NASCAR, 자동차경주대회) 등이 이미 미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서 축구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는 주장도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국 특유의 문화 때문이다. 축구에는 미국인의 사회적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많은 측면이 있다. 첫째, 미국인은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를 혐오한다. 이를 반영하듯 NBA, MLB(악천후 등으로 인해 무승부로 끝날 때도 있으나,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와 NHL 경기에 무승부는 없다. 축구에는 동점으로 끝나는 경기가 얼마나 자주 나올까? 가장 인기있는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EPL)의 5시즌(2015/16~2019/20)을 살펴보면, 총 453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 동점으로 끝나는 비율은 23.8%다. 같은 기간동안 전체 경기의 7%가 0-0 경기였다. 미국의 최상위 프로축구리그인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첫 시즌인 1996년 축구를 '미국화'하기 위해 아이스하키의 '페널티 슛아웃'과 비슷한 규칙을 도입했다. 동점으로 경기가 끝난 경우 승부를 가리기 위해 선수는 골대로부터 32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공을 드리블해 들어가 5초안에 슛을 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기존 축구팬들의 반발을 불렀고, 결국 1999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미국인들은 “모두가 이겼어(everybody wins)”나 “얘들아 다 잘했어(you’re all doing great, guys)” 같은 말은 재미로 하는 어린이들 경기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프로 레벨의 경기에서 그들은 승부가 나야 직성이 풀린다. 미국 스포츠 문화에서 무승부는 “두 팀 다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 팀 다 졌다”로 해석된다. 팬들 입장에서도 2~3시간을 투자해서 경기를 봤는데 무승부로 끝난 경우, 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A tie is like kissing your sister(동점은 여자 형제와 키스하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이 미국인들은 무승부를 싫어한다. 이런 미국인들에게 특히 0-0으로 끝나는 축구 경기는 악몽과 같다. 둘째, 미국인은 점수가 많이 나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미국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NFL의 경우 2020시즌 경기당 평균 득점이 49.6이었다. MLB도 지난 20년 동안 경기 당 평균 9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야구 경기의 특성상 관중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점수다. 그에 반해 2020/21시즌 EPL 경기당 평균 득점은 2.7에 불과했다. 따라서 축구는 1~2골만 지고 있어도 경기 막판에 역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막판에 극적인 역전승이 가능한 NBA나 MLB 등과 비교된다. 다득점 스포츠를 선호하는 것은 미국 문화 특유의 '큰 것에 대한 집착'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진 넓은 국토만큼 그들은 큰 것을 선호한다. 큰 자동차, 넓은 거리, 높은 빌딩을 비롯해 미국에서 파는 스테이크, 햄버거도 정말 크다. 운동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성공하려면 키가 커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사이즈에 집착한다. 미국 사회는 또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경제적 원칙을 중요시한다. 즉 미국인은 자신이 가진 제한적인 여가 시간을 가능한 최고로 즐기고자 한다. 따라서 그들은 2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2골 남짓 나오는 축구 경기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이다. MLS는 골대를 넓혀 더 많은 골이 나오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셋째, 축구는 공정하게 시간 계산을 하지 않는다. 후반 정규시간이 끝날 때쯤 대기심이 보여주는 추가 시간은 언제나 3분이나 4분 같은 분 단위로만 주어진다. “정확하게 계산을 했을까?”라는 의심이 안 들 수 없다. 아울러 추가 시간 동안에도 부상, 골, 선수 교체 등의 변수는 계속 생겨, 정확히 언제 경기가 끝날 지 아는 사람은 주심밖에 없다. 복마전 같은 국제축구연맹(FIFA)처럼 축구의 시간 계산은 비밀스럽고 불투명하다. 축구는 가뜩이나 막판에 역전하기 어려운 경기인데, 팬들은 경기 휘슬마저 정확히 언제 울릴지 알 수 없다. 축구의 이러한 특성은 공정성과 극적인 역전 기회를 중요시하는 미국인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1.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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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축구에도 스톱워치를 도입하자

축구는 전·후반 45분씩 총 90분 동안 열린다. 농구와 아이스하키 같은 종목은 인플레이(in play, 경기가 진행 중인 상황)가 중단되면 시간도 멈춘다. 하지만 축구는 인플레이가 아닐 때도 시간이 흘러간다. 대신 경기의 4번째 심판이 선수 교체, 부상 선수 체크, 시간 지연 행위와 비디오판독(VAR) 등으로 중단된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낭비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심판은 정규 시간 후 추가 시간(Stoppage Time)을 부여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7 법(Law 7)에 따라 추가 시간은 심판의 재량으로 결정된다. 추가 시간이 있기에 축구 경기 중에는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규칙이 축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축구 경기가 더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심만이 언제 경기가 종료될지 정확히 아는 관계로 이러한 불확실성에 팬들은 더 열광하고, 흥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멈추지 않고 추가 시간으로 대체하는 현 제도는 공정성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첫째, 추가 시간은 정확하게 계산되지 않는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32경기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경기 당 평균 13분 10초가 추가 시간으로 부여돼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 배정된 추가 시간은 경기당 평균 6분 59초에 불과했다. 아울러 선수 교체시 심판은 30초를 추가 시간에 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기고 있는 팀 감독은 시간을 끌기 위해 경기 막판에 선수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즉 선수 교체에 들어가는 시간이 추가 시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둘째, 추가 시간 계산은 심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보는 관점에 따라 심판들이 다르게 해석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선수들의 시간 지연 행위다. 셋째, 추가 시간은 홈팀에게 유리하게 배정되는 경향이 있다. 스페인의 라리가는 홈팀이 이기고 있을 때보다, 한 점 차로 지고 있을 때 추가 시간이 평균 2분 정도 더 부여된다고 한다. 프리미어리그(EPL)를 조사한 연구도 홈팀이 이기고 있으면 추가 시간이 평균 46초 줄어든다고 밝혔다. 비슷한 예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전설적인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으로부터 유래한 '퍼기 타임(Fergie Time)'이란 게 있다. 퍼거슨 감독은 골이 필요할 때 사이드 라인까지 나와 왼손에 찬 시계를 오른손으로 가리키며 추가 시간을 더 달라고 주심을 압박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통계를 보면 매 시즌 맨유가 가장 긴 추가 시간을 받은 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맨유가 지거나 비기고 있을 때 그들이 얼마나 많은 추가 시간을 받았냐는 것이다. 퍼거슨 감독의 재임 3시즌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맨유는 이기고 있을 때보다 지고 있을 때 평균 79초의 시간을 더 받았다. 아울러 퍼거슨의 맨유만큼은 아니지만, 빅 클럽들은 주로 추가 시간을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배정받았다. 넷째, 모호한 규정 때문에 인플레이 시간은 경기마다 편차가 크다. 2017~18시즌 EPL에서 볼이 인플레이 된 평균 시간은 59분 23초였다. 하지만 스토크시티와 왓포드가 맞붙은 경기의 인플레이 시간은 42분에 불과한 데 비해,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의 경기는 68분이 넘었다. 이렇게 42분과 68분을 각각 뛴 두 팀이 사흘 휴식 후 맞붙는다면 그 경기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이런 불완전함이 축구를 아름답게 만든다(these imperfections are what make football beautiful)”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라면 VAR도 도입해서는 안 된다. 축구의 모호한 시간 계산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에 많이 의존하는 추가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탄식과 불만은 언제나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아울러 추가 시간은 왜 언제나 3분 혹은 4분 같은 분 단위로만 주어지는지 의문이다. “정확하게 시간 계산을 하긴 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최근 축구계는 골라인 판독기와 VAR를 도입해 공정한 판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스톱워치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선수 교체 혹은 골이 나왔을 때나 선수가 부상을 당한 경우 시간을 멈췄다가, 인플레이시 다시 재개해 더 정확한 시간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대신 경기 시간을 전·후반 각각 30분으로 줄이자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스톱워치의 도입은 희소식이 될 것이다. FIFA, UEFA(유럽축구연맹)와 유명 클럽들은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국 스포츠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축구는 확실히 미국에서 더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는 아니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로 축구는 광고 시간이 하프 타임에 한정되기 때문에, 다른 미국 스포츠만큼 수익성이 좋지 않은 점이 꼽힌다. 하지만 경기 중 시간이 멈추고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면 축구의 미국 시장 공략은 더 수월해질 것이다. 리그도 더 비싼 가격에 중계권료를 방송국에 판매할 수 있다. 많은 선수가 거짓 부상과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시간을 지연한다. 이에 대한 경고나 적절한 시간 보상은 이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부상이나 경기 지연 시에 시간이 멈춘다면 선수들의 이러한 비(非) 스포츠맨십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스톱워치의 도입은 혁명적인 시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시도에는 언제나 많은 반대가 따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발을 이겨냈을 때 축구는 지금보다 더 공정한 스포츠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6.0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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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인기와 수익은 비례하지 않는다

질문 1.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스포츠 리그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EPL)다. EPL은 188개국에서 방송되고, 30억명 이상이 시청한다. EPL은 전 세계 축구리그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주요 축구리그들은 EPL의 상업적 성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질문 2. EPL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프로스포츠 리그일까? 아니다. 미국의 3대 프로스포츠인 미식축구(NFL), 야구(MLB)와 농구(NBA)가 부유한 리그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EPL은 네 번째로 수익을 많이 내는 프로스포츠 리그다. 농구는 축구 못지않게 전 세계적인 스포츠이니 그렇다 쳐도, 미국 등 일부 지역에서만 인기 있는 NFL과 MLB가 EPL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게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다. MLB는 정규시즌에만 무려 2430경기를 치르니 열외로 하자. NFL은 한 시즌에 총 269경기를 한다. EPL은 그보다 훨씬 많은 380경기를 연다. 하지만 EPL의 총 수익은 NFL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NFL이 EPL보다 인기가 훨씬 많을 것 같다. TV로 각 리그를 보는 시청자들을 비교해 보자. 2019년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리버풀의 경기는 전 세계에서 약 7억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NFL 챔피언을 가리는 슈퍼볼의 최고 시청률은 2015년에 열린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시애틀 시호크스의 경기에서 나왔다. 당시 1억 1400만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말해주듯이 EPL은 NFL보다 인기가 더 많은 스포츠다. 하지만 수익은 그 반대다. 왜 그럴까? 방송 수익은 NFL과 EPL의 가장 큰 수입원이다. 각각 리그 전체 수입의 50~60%를 차지하고 있다. NFL은 평균 경기 시간이 3시간 10분 정도고, EPL 경기는 2시간이면 끝난다. 미식축구의 특성상 방송국은 NFL 경기 중 50분이 넘는 광고 시간을 편성할 수 있다. 특히 슈퍼볼 중계 시 30초 광고의 단가는 무려 500만 달러(56억원)를 넘는다. 하지만 EPL은 하프 타임 때 몇 분 동안 광고를 하는 게 방송국 광고 수입의 전부다. 따라서 NFL의 중계권료가 EPL보다 훨씬 비쌀 수밖에 없고, 리그 전체 수익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NFL은 경기가 열리는 날 입장 수입(matchday income)도 EPL보다 훨씬 많다. 우선 관중 수를 보자. 평균 7만명의 팬이 NFL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데 비해, EPL 경기장의 평균 수용 인원은 3만7000명에 불과하다. 티켓 가격은 어떨까? NFL의 평균 티켓 가격은 105달러(11만8000원)이나 EPL의 평균 티켓 가격은 28.5파운드(4만4000원)에 불과하다. NFL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싸다. 스폰서십 분야는 좀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리그는 유니폼을 성스러운 공간(sacred space)으로 여겨 광고 혹은 스폰서 로고 부착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NBA가 2017년부터 유니폼에 광고 패치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셔츠 혹은 저지(jersey) 스폰서십이 미국 4대 프로스포츠에도 서서히 허용되고 있다. 현재 NFL은 저지 스폰서를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EPL은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경기장 명명권(naming rights)을 통한 수입은 NFL의 완승이다. NFL의 32개 팀 중 29개 구단이 경기장 명명권을 판매해 많은 수익을 올리는 데 반해, 2020~21시즌 명명권을 판매한 EPL 구장은 4개에 불과하다. NFL 특유의 시스템인 수익 공유제(revenue sharing)도 빼놓을 수 없다. NFL의 수입원은 전국적인 수입(national revenue: TV 중계권료, 캐릭터 상품 판매와 라이선스 계약으로 구성)과 지역 수입(local revenue: 티켓 판매 등 경기장에서 올린 수입과 스폰서십 계약으로 구성)으로 나뉜다. 전국적인 수입은 구단 수입의 약 60%를 차지하고, 이 수입은 성적에 상관없이 NFL에 속한 32개 팀에 공평하게 분배된다. 아울러 NFL은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역(逆) 드래프트 제도(전 시즌 꼴찌팀이 신인 드래프트 1순위를 보유)를 도입했으며, 연봉 총액 상한제(salary cap)도 받아들였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NFL은 부(富)가 소수의 구단에 몰려 이들이 리그를 독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흥미로운 점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미국이 NFL에서 사회주의 모델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NFL의 모든 구단은 부자가 됐다. 상향 평준화된 전력을 가진 팀들의 경기는 박진감이 넘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NFL의 인기 상승으로 연결되었다. EPL의 경우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클럽은 실질적으로 서너 개에 불과하다. NBA도 특정 팀들이 꾸준히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고 있다. 이에 반해 NFL은 많은 팀이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2005년 이후 매년 다른 팀이 챔피언을 차지하고 있다. EPL과 NFL 사례를 보면 인기와 수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기 또한 행정가와 마케터들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축구 경기에 많은 광고를 넣을 수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경기 규칙을 약간 바꿔서라도 이를 가능하게 만들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차별화된 마케팅과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성공한 NFL의 사례는 특히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프로스포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1.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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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EPL 관중 탐구생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진행된 2020~21시즌 프리미어리그(EPL)가 지난 23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무관중으로 진행됐던 EPL은 팀 당 두 경기를 남기고 관중 입장을 허용했다. 백신 보급에 힘입어 다음 시즌에는 좀 더 많은 관중이 EPL 경기장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 EPL 경기장은 어떤 이들로 채워지는지 궁금해하는 국내 팬들이 많다. EPL 경기장 방문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 이를 소개한다. 가장 눈에 띄는 관중은 ‘감독형’이다. 대개 남성인 이들은 ‘F word(알파벳 F로 시작하는 욕설을 의미)’를 섞어가며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주문한다. 이들은 선수들에게 “더 빨리 뛰고, 빈 공간의 선수에게 패스하고, 상대방의 볼을 가로채고, 공중볼이나 세컨드 볼을 따내라”고 쉴 새 없이 요구한다. 물론 선수들에게 이들의 지시가 들리지는 않는다. 설사 들려도 선수들이 이를 따를 리 만무하지만, 그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유형은 20대 젊은이 그룹이다. 머리에 왁스 등 헤어 제품을 발라 한껏 멋을 낸 이들은 캐주얼 옷차림을 주로 하고, 영국인이 아니면 알아듣기 힘든 악센트로 빨리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젊은이들(lads: 영국식 영어 단어 lad는 청년, 사내, 동료의 의미로 널리 쓰인다)은 가볍게 취한 상태에서 경기에 적당히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관중석 분위기가 축 처질 때 이들의 진가가 발휘된다. 이들 중 한 명이 구호나 응원가를 선창하면 다른 멤버들도 이를 따라 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주변 관중도 노래를 따라 부르고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파도타기 응원 등도 보통 이들이 주도한다. 간혹 다른 관중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이들을 향해 좀 더 적극적으로 응원하기를 부탁하기도 한다. 이들이 바로 축구장의 분위기 메이커이다. 20대 젊은이 그룹에서 졸업한 30대 남자들은 클럽 셔츠를 주로 입는다. 이들은 예전처럼 젊지 않고, 헤어 제품을 바르기에는 머리숱도 부족하다. 20대 시절의 동료도 더는 그들 곁에는 없다. 이들은 중년의 남성들과 어울리기에는 활기가 넘치고, 20대들과 가까이 지내기는 눈치가 보인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지만 몸은 따라가지 않는 축구장의 '낀 세대'다. 경기장에서 술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이들이 바로 30대 남성들로, 어쩌면 축구장에서 가장 슬픈 고객층이다. 40~50대의 중년 남성들은 보통 친구(mate)와 짝을 이뤄 경기장을 방문한다. 직장, 집안일 등에서 벗어나 잠깐이라도 자유를 느끼고 싶은 이들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축구장을 찾는다. 이들은 술을 적당히 마시고 육두문자를 주고받으며, 시시껄렁한 농담에 서로 웃는다. 이렇게 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질 않을 20대를 그리워한다. 남성 관중의 마지막 그룹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은퇴자들이다. 은퇴자들은 보통 아들 혹은 손자와 같이 경기장을 찾는다. 이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데 행복한 은퇴자와 불평 많은 자다. 행복한 은퇴자에게 예전의 잉글랜드 축구나 축구장에 대해 물어보면 이들은 미소를 머금고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장황한 설명을 시작한다. 꼬마일 때 아버지와 경기장에 온 경험,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싼 옛날 축구장 입장권 가격, 테라스에서 입석으로 경기를 본 경험 등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자신의 클럽을 오랫동안 사랑해온 이들은 자신의 사후에 재를 축구장에 뿌리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불평 많은 은퇴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들은 매사가 못마땅한 사람들로 요즘 선수들은 돈을 너무 많이 버는 데 비해, 너무 연약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울러 자본과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축구를 망쳤다고 투덜댄다. 축구장에서 종종 보이는 어머니들도 흥미로운 대상이다. 이들은 보통 경기에는 관심이 없다. 소풍 삼아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가다 이들 중에서 진짜 축구 마니아들이 있다. 이들은 갑자기 ‘F word’를 섞어가며 “왜 수비가 저 모양이냐”고 비난을 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빠질 수 없는 그룹이 관광객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축구리그답게 EPL의 경기장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팬들로 넘쳐난다. 이들 중 일부는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다. 단지 영국에 관광차 온 김에 ‘빅벤’, ‘버킹검 궁전’을 방문하듯이 축구장에 온 것일 뿐이다. 일부 관광객은 EPL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특정 팀을 응원하는 이유는 주로 ‘자국의 선수가 그 팀에서 뛰기 때문에’, ‘좋아하는 선수가 그 팀에 있어서’ 혹은 ‘특정 팀의 셔츠가 멋져서’이다. 잉글랜드 팬들은 외국 관광객을 향해 냉소적인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국의 리그 팀을 응원하지 않고, 잉글랜드 클럽을 응원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팀의 역사나 응원가 등에도 무지하고, 응원하는 팀을 자주 바꾸는 외국 팬들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더군다나 외국 팬들은 경기에 집중하기보다, 사진 찍기에만 정신이 팔린 경우도 많다. 심지어 홈 팬 사이에서 어웨이 팀을 응원하거나, 어웨이 팀 팬들 사이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외국인 관중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치열한 더비 경기(예를 들어 아스날과 토트넘)가 열렸는데 어떤 외국인들은 홈 팀과 어웨이 팀 스카프 2개를 다 걸치기도 한다. EPL뿐이 아니라 유럽 축구리그를 관람할 계획을 가진 독자들은 최소한의 공부와 예의를 가지고 경기장을 방문했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환영을 받을 수도, 푸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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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브리티시 슈퍼리그는 가능할까

최근 축구계는 유러피언 슈퍼리그의 창설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유럽 축구의 근본을 뿌리째 흔드는 리그의 출범에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은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다. 각국 축구협회, 정치권, 선수, 팬들까지 가세해 이들을 비난했다. 이에 프리미어리그(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맨체스터 시티(맨시티), 리버풀, 아스널, 첼시, 토트넘 등 ‘빅6’는 슈퍼리그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3개 클럽도 그 뒤를 따랐다. 슈퍼리그에 6조7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었던 미국의 투자은행 JP모건도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간 슈퍼리그에 남아 있는 클럽은 현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뿐이다. 기존 축구 질서에 반기를 든 이번 혁명은 이틀을 버티지 못했다. 난리통에 최근 영국에서는 흥미로운 리그 창설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EPL의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빅6’는 스코틀랜드 축구 거인인 레인저스와 셀틱을 합류시켜 브리티시(British) 슈퍼리그를 만들자는 것이다. 세계적인 팬 베이스를 가진 스코틀랜드의 두 명문 클럽과 기존 ‘빅6’의 대결은 분명 더 많은 흥미를 유발할 것이다. 여기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자존심 대결까지 합쳐지면, 이는 곧 스폰서십과 TV 중계권 수익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던 유러피언 슈퍼리그와는 달리, 브리티시 슈퍼리그는 곳곳에서 환영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원래 FIFA는 오랫동안 국경을 초월한 리그(cross-border league)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각국의 축구리그는 자국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FIFA는 근 20년 동안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리그 통합을 반대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러한 리그 출범에 열린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FIFA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리그 통합을 포함해 미국과 멕시코의 리그 합병 등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 정부 입장에서도 슈퍼리그의 출범은 환영할 만한 소재이다. 새로운 리그의 출현으로 인해 스코틀랜드가 독립에 대한 염원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팬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신문사 ‘더 스코티시 선’이 7500여 명의 팬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팬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슈퍼리그의 창설을 지지한 팬은 47%, 반대한 팬은 38%로 나타났다. 나머지 15%의 팬은 판단을 유보했다. 팬들은 SNS에서도 뜨거운 찬반 논쟁을 벌였다. 슈퍼리그를 반대하는 팬들은 레인저스와 셀틱의 합류로 인해 중소 클럽이 1부 리그에서 뛸 기회가 더 없어진다는 이유를 들었다. 일부 팬들은 웨일즈의 스완지 시티와 카디프 시티가 경쟁을 벌여 EPL로 승격했듯이, 레인저스와 셀틱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1부 리그에 합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레인저스와 셀틱이 스코틀랜드 리그를 떠나면 리그의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그에 반해 너무나 오랫동안 스코틀랜드 축구를 양분했던 두 클럽이 리그를 옮기면 다른 클럽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던 애버딘이 36년 전인 1985년도 우승한 이후로 스코틀랜드 1부리그 우승은 언제나 레인저스 아니면 셀틱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레인저스와 셀틱도 더 많은 관심과 수익을 위해 잉글랜드의 거물 클럽들과 대결하길 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셀틱은 지금까지 잉글랜드 클럽들과 20번 맞붙어 7승 7무 6패를 기록했다. 골 득실은 -2로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다. 그에 반해 레인저스는 통산 14번의 경기 동안 3승 4무 7패를 기록했다. 골 득실도 -9로, 잉글랜드 클럽을 상대로 고전했다. 레인저스와 셀틱이 확장된 EPL에서 뛴다면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지 슈퍼컴퓨터가 예측했다. 이들의 통산 잉글랜드 클럽과의 성적을 2020~21시즌 EPL에 대입하면 셀틱은 11위, 레인저스는 19위를 기록한다고 한다. 셀틱이 과거 잉글랜드 클럽을 상대로 경기당 평균 1.4점, 레인저스는 0.9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예측은 여러 문제점이 있다. 레인저스와 셀틱의 현재 경기력을 반영해서 예측한 것이 아니라,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경기 결과를 바탕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까지 레인저스와 셀틱은 유럽대회를 통해서만 잉글랜드 클럽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언제나 잉글랜드의 상위권 클럽과만 대결했다는 의미이다. 레인저스와 셀틱보다 규모가 큰 잉글랜드 클럽은 맨유와 리버풀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슈퍼리그에서 이들이 뛴다면 2년 정도의 적응기간을 거쳐, 상위권에 도전할 전력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브리티시 슈퍼리그가 출범하기 위해서는 ‘빅6’를 제외한 EPL 14개 클럽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중하위권에 위치한 클럽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하지만, 현재 슈퍼리그의 출범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문뜩 한국의 K리그와 일본의 J리그가 합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난제가 있겠지만, 통합리그는 분명 엄청난 관심과 인기를 끌 것이다. 국내 축구 산업의 발전과 흑자 리그로의 전환을 위해서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주제이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4.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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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영국 왕실과 충돌했던 EPL 최초의 외국인 구단주

2020~21시즌 프리미어리그(EPL)에 소속된 20개 클럽 중 영국인이 소유한 팀은 6개에 불과하다. EPL에 외국인 구단주 붐을 일으킨 이는 2003년 첼시를 인수한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그는 주제 무리뉴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고, 막대한 투자로 첼시를 단숨에 유럽 최강팀 중 하나로 만들었다. 아브라모비치는 EPL에 등장한 두 번째 외국인 구단주였다. 첫 번째는 풀럼을 인수한 이집트 출신 사업가 모하메드 알 파애드였다. 알 파애드는 아브라모비치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외국인 구단주들과 배경이 달랐다. 알 파애드는 이집트에서 해운회사를 설립해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아이티와 두바이의 통치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유·해양 서비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브루나이 술탄의 재정 고문으로도 활약했다. 1960년대부터 영국 런던에 거주한 알 파애드는 서구의 고급 호텔과 백화점 등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더 리츠 파리 호텔’을 사들인 데 이어 영국을 대표하는 고급 백화점 헤롯(Harrods)을 소유한 백화점 그룹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House of Fraser)’도 인수했다. 1997년 알 파애드는 당시 3부리그에 속해 있던 풀럼 FC를 인수했다. 1879년 창단한 풀럼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팀이지만, FA컵 준우승 한 번이 최고일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가진 클럽이었다. 이런 풀럼을 인수한 알 파애드는 5년 안에 클럽을 EPL에 승격시킨다는 목표를 밝혔고, 인수 4년 만인 2001년에 이를 달성했다. 33년 만에 풀럼을 1부리그로 복귀시킨 알 파애드는 2013년 7월까지 클럽의 구단주였다. 그의 재임 기간 클럽은 주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풀럼은 2008~09시즌 7위를 기록했고, 이듬해 참가한 유로파 리그에서 준우승을 거둬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09년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자 그와 친분이 있었던 알 파애드는 풀럼의 홈구장에 잭슨의 동상을 설립했다. 팬들은 클럽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의 동상 건립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알 파애드는 “잭슨같이 유능한 음악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한 팬들은 지옥에나 가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학자 월터 보워가 작성한 스코티크로니콘(Scotichronicon)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건너온 파라오의 자매가 스코틀랜드의 창시자라고 한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되는 걸 굳게 믿은 알 파애드는 “스코틀랜드인들은 원래 이집트인이다”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독립을 지지했다. 한술 더 떠 그는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쟁취하면 자기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황당한 발언까지 덧붙였다. 알 파애드는 독설과 황당한 주장 외에도 수차례 구설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 인수 과정에도 문제를 일으켜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영국 정치인들에게 돈과 편의를 제공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알 파애드는 영국 왕실과의 갈등으로 그가 일으켰던 많은 논란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갈등의 중심에는 그의 아들 도디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있었다. 찰스 왕세자와 1981년 세기의 결혼식을 한 다이애나는 뛰어난 패션 센스에 미모를 갖췄고, 자선과 봉사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찰스는 결혼 전부터 유부녀였던 카밀라와 불륜 관계였고, 그의 외도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왕족들은 인기가 많은 다이애나를 질투하여 끊임없이 견제했고, 타블로이드 언론사에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가식적인 왕족들과 찰스의 무관심에 지친 다이애나는 별거 끝에 결국 1996년 이혼했다. 영국 왕실이 애용했던 헤롯 백화점의 단골이었던 다이애나는 자연스럽게 알 파애드와 그의 아들 도디를 만났다고 한다. 이혼 후 그녀는 도디와 연인이 되었다. 1997년 8월 31일 도디와 파리에 위치한 더 리츠 호텔에서 식사를 한 다이애나는 숙소로 돌아가던 중 극성스러운 파파라치를 피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36세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알 파애드는 필립 공의 지시를 받은 MI6(영국의 해외전담 정보기관.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가 다이애나와 도디의 죽음을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그녀는 도디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왕실은 차기 영국 왕의 어머니가 될 다이애나가 무슬림인 도디와 결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다이애나의 사고사에는 의문점이 있었기에 이러한 음모론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길게 이어진 소송 끝에 영국 법원은 2008년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결론 내렸다. 알 파애드는 이에 반발했으나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위해 더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복수는 신에게 맡겼다"고 밝혔다. 알 파애드는 영국을 고향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끝내 영국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영국 기득권층과 수많은 불화를 일으켰던 그는 다이애나를 며느리로 받아들여 그의 브리티시 드림을 이루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고와 함께 그는 영국 사회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4.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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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축구는 토요일 오후 3시, 하지만 TV중계는 없다

한국 프로야구(KBO리그)의 평일 경기는 오후 6시 30분 시작한다. 7·8월 혹서기를 제외한 토요일과 일요일 경기는 보통 오후 5시 또는 2시에 열린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화·금요일 경기는 주로 밤에 열린다. 수요일이나 목요일 등 시리즈 마지막 날 경기는 이동시간을 고려해 보통 낮에 진행된다. 야간 경기를 하는 경우 시작 시간은 보통 오후 7시지만, 식전 행사 때문에 5~10분 정도 늦어지기도 한다. 획일적인 KBO리그와는 달리 MLB 팀들은 경기 개시 시간에 더 많은 자율성을 갖고 있다. 홈팀은 날씨, 교통 상황, 마케팅 요소 등에 따라 게임 시작 시간을 조정한다. 이에 오후 7시 20분, 7시 35분이나 8시 15분 등에 경기가 열리는 경우도 있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경우 보통 평일 야간 경기를 오후 7시 7분 시작했다. 하지만 2006년 편의점 세븐일레븐(7-Eleven)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한 후, 화이트 삭스는 세븐일레븐을 의미하는 오후 7시 11분에 경기를 시작한 적도 있다. 야구와 달리 축구는 매일 경기를 할 수 없다. 현대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에서 전통적으로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은 토요일이었고,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왜 이 시간에 경기가 열리는 전통이 생겼을까? 이는 영국에서 1850년 제정된 공장법(Factory Act 1850)에서 기인했다. 공장법은 산업 고용 조건과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을 규제하는 법으로, 1802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쳤다. 이후 다른 국가로도 이 법은 퍼져 나갔다. 공장법 1850은 노동자들의 토요일 근무 시간을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이 법에 따라 오후 2시까지 모든 근로자는 토요일 근무를 마쳐야 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토요일 오후를 즐길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교회는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토요일 오후를 흥청망청 보내는 것을 우려했다. 이에 교회는 이들에게 건강한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축구 클럽 등 스포츠 단체를 결성하는 데 힘을 보탰다. 오후 3시는 축구 경기가 열리기에 안성맞춤인 시간이었다. 2시에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각 지역 경기장에 도착하기 충분했고, 경기가 끝난 뒤 귀가해도 너무 늦지 않았다. 오후 3시 킥 오프는 조명 시설이 없어 해가 떠 있는 시간에 경기를 마쳐야 하는 당시 시대상에 딱 어울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로써 토요일 오후 3시 킥 오프는 잉글랜드 축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영국에서 토요일 오후 2시 45분에서 5시 15분까지 TV나 인터넷으로 라이브 축구 방송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시간대를 영국에서는 ‘축구 블랙아웃(football blackout)’이라고 부른다. 많은 경기가 오후 3시에 열리지만, 중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프리미어리그(EPL)는 라이브 중계가 가능한 오후 12시 30분이나 5시 30분에 인기 있는 경기를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축구 블랙아웃 제도도 사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번리(Burnley) 회장이었던 봅 로드는 TV에서 축구 중계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TV 중계로 인해 팬들이 경기장에 오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특히 그는 “토요일 오후 3시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 같은 빅 경기가 TV에 중계되면, 하위리그 팀의 팬들은 그 경기를 보기 위해 자신들이 응원하는 클럽의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위리그 클럽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맞지 않았다. 공중파에서 시작한 TV 중계는 케이블과 위성 방송을 거쳐 축구 시장과 산업을 엄청나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1960년대 로드의 주장은 다른 클럽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에 ‘축구 블랙아웃’ 혹은 ‘3PM 블랙아웃’이라고 불리는 제도가 탄생했다. 블랙아웃은 영국 내에서 벌어지는 축구에만 해당하지 않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경기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스페인 라리가의 토요일 경기는 영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 시작한다. 하지만 블랙아웃 제도 때문에 스카이 스포츠는 첫 15분은 보여주지 않고, 5시 15분부터 중계를 시작한다. 블랙아웃 제도의 효용성을 조사한 여러 연구에 의하면 토요일 오후 3시 TV 중계와 팬들이 축구장을 찾지 않는 것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울러 블랙아웃 제도는 하위리그 팀 경기의 관중 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팬들은 경제적·시간적 이유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많은 경기를 TV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블랙아웃 제도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EPL은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축구리그다. 유럽 주요 축구리그들도 EPL를 부러워하고 벤치마킹 한다. 하지만 영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블랙아웃 제도 덕분에, EPL 경기는 영국 본토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시청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4.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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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한국, 북한과 일본을 대표하는 축구팀

2021년 3월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으로 참가했다. 이 경기에서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는 물론, 오사카에서 온 한국계 학교 학생들과 일본 각지에서 모인 재일동포 1000여 명이 열띤 응원전을 벌였다. 교토국제고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는 감격을 누렸고, 선수들이 부른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는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축구를 통해서도 재일동포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1961년 창설된 ‘자이니치 조선 풋볼 클럽’은 원래 친북 단체인조총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후, 이 클럽은 조총련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새로운 이름인 FC코리아로 재출범한 클럽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선수들도 끌어들이기 위해 범 한국적 정체성을 채택했다. 2008년 간토 지역 2부 리그로 승격된 FC코리아는 2010년 1부 리그로 올라가는 데도 성공했다. 계속된 성공에 고무된 클럽은 J리그로의 승격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 대다수가 한국계인 FC코리아는, 외국인 선수 등록 규정 때문에 J리그로의 승격이 불가능했다. 이에 이들은 코니파(CONIFA, 독립축구협회연맹) 월드컵을 새로운 도전 무대로 삼았다. FC코리아를 중심으로 재일동포를 대표하는 이 축구팀은 ‘일본의 통일 코리안들(UKJ, United Koreans in Japan)’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다. 일본 사회에서 UKJ의 역할은 축구로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2016년 압하지야에서 열린 2회 코니파 월드컵에서 UKJ는 쿠르드 대표팀에 0-3으로 패했으나, 헝가리계 소수 민족인 세케이 대표팀을 1-0으로 물리치고 8강에 진출했다. UKJ는 8강전에서 강호 북키프러스를 만나 전반에 먼저 실점했고, 후반에 터진 만회골로 1-1을 만들었다. 정규시간에 승패를 가리지 못한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UKJ는 2-4로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순위결정전에서 UKJ는 예선에서 패배를 안긴 쿠르드 대표팀을 물리치고 최종 순위 7위를 기록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UKJ는 예선을 거쳐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2018 코니파 월드컵에 참가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K리그 부산 아이파크와 수원 삼성에서도 활약해, 국내 축구 팬들에게도 낯익은 재일동포 축구 선수 안영학(당시 39세)이 UKJ의 감독 겸 선수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안영학은 북한 대표로 2010년 남아공 FIFA 월드컵에 참가, 미드필더로 조별리그 3경기에서 풀타임 출전했다. 하지만 그는 월드컵 이후 부진과 부상에 시달렸고, J2 리그의 요코하마에서 2017년 1월 은퇴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으로 J리그와 K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북한 대표로도 활약했던 안영학은 “축구를 통해 세 나라의 다리를 건넜다”고 밝혔다. 그는 “축구를 통해 전 세계 나라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코니파의 대회 이념이 자신의 축구 인생과 닮아서, 코니파 월드컵 참가를 위해 잠시 현역 선수로 복귀했다고 한다. 안영학의 국적은 조선적(朝鮮籍, 광복 후 재일교포들이 부여받은 국적. 한국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해당)이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서 그는 무국적자이다. 따라서 영국 비자 받는 게 쉽지 않았다. 영국대사관에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기 위해 안영학은 자신에 대한 위키피디아 영문판 등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제출했다. 그는 한 달 이상 기다려 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코니파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들어가는 항공료나 체재비 등의 경비는 각 팀에서 부담해야 한다. 이에 안영학은 대회 출전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찾아다니며 스폰서를 구했다. 선수 영입도 직접 챙겼다. 선수 중에는 홍콩과 영국 축구팀 U19에서 활약하는 프로 선수들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마추어 선수였다. 런던 대회에 참가한 UKJ 선수단 18명 중에 한국 국적은 15명, 조선 국적은 2명, 일본 국적은 1명이었다. 월드컵 개막 전날이 돼서야 UKJ는 영국 현지에서 처음으로 선수 전원이 참가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런던 대회에서 UKJ는 서부 아르메니아, 인도 북부의 펀자브 지역 이민자 대표팀, 알제리 북부에 거주하는 커바일 민족 대표팀(지네딘 지단이 커바일 혈통이다)과 한조를 이뤘다. UKJ는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조별 예선 3경기를 모두 비기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안영학은 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 팔이 부러져 남은 경기에 더는 뛰지 못했다. 런던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UKJ는 비슷한 역사를 안고 있는 팀을 만나 축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뜻깊은 경험을 했다. UKJ는 2020년 열릴 예정이었던 4회 월드컵 본선에도 참가 자격을 얻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대회가 아쉽게 취소됐다. 향후 UKJ는 코니파 월드컵에 참가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차기 대회를 개최할 의사도 있다고 한다. FIFA 월드컵 출전은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다. 하지만 재일동포 축구 꿈나무들은 국적, 정치적 이유와 차별 등 많은 문제로 꿈을 꾸기조차 쉽지 않다. 그들에게 코니파 월드컵은 재일동포 대표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소중한 무대이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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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보이지 않는 국가들의 월드컵②

어느 국가이든 세계 축구무대에 얼굴을 내밀려면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해야 한다. 간혹 FIFA에 관심이 없는 국가도 있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자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 시티는 “축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사랑의 메시지는 아마추어 신분일 때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FIFA 축구는 비즈니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바티칸은 FIFA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 가입에 필요한 기준을 충족한 지중해 연안 국가이자, 세계적인 부국인 모나코도 FIFA가입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FIFA에 소속되지 않은 나라는 가입 의사가 있어도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 가입을 신청한 국가의 축구 인프라 지원 비용에 부담을 느낀 FIFA는 의도적으로 가입 프로세스를 지연시킬 때도 있다. 신청국이 지친 나머지 가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가입하지 못하는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지아에 위치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다. 사실상의 독립국이지만, 이들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해 극소수다. 북키프러스도 마찬가지다. 터키계가 다수인 북키프러스는 1983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를 승인한 국가는 터키가 유일하다. 국제사회는 그리스계로 이루어진 남부의 키프러스 공화국만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FIFA에 가입하지 못한 국가나 민족을 위한 단체가 코니파(CONIFA·독립축구협회연맹)다. 코니파의 모토는 ‘모두를 위한 축구(football for all)’다. 자원봉사자가 이끄는 비영리 단체 코니파는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코니파는 어떤 정치적인 견해나 행동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정치를 뒤로 하고(leave all politics behind)’ 싶다는 코니파의 목표는 이상주의자의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코니파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미승인국이나 국가 없는 민족 등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위한 축구 대회를 연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이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라 없는 민족들은 코니파 월드컵을 통해 국가 건설 같은 정치적 의제를 표출할 때도 있다. 이런 이유로 3회 코니파 월드컵이 2018년 런던에서 개최될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팀이 티베트(Tibet)였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티베트는 불교의 영향으로 17세기부터 달라이 라마(현재의 달라이 라마 14세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결과로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를 정치·종교상의 군주로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1950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를 침공해 중국에 합병시켰다. 이후 협상을 통해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임을 인정하지만,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양측이 타협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반종교 정책의 일환으로 티베트 승려들을 탄압하고 처형했다. 아울러 토지개혁 같은 공산당 정책이 시행되자 티베트인들의 반중 감정은 폭발했고, 1959년 독립을 위한 봉기가 일어났다. 중국군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명의 티베트인이 목숨을 잃었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망명한 티베트인들은 2001년 자신들을 대표하는 축구협회(TNFA)를 설립했다. TNFA는 대표팀을 조직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한 달 동안 준비한 끝에 그린란드를 상대로 첫 번째 국제경기를 갖게 된다. 개최 장소는 덴마크의 수도 코페하겐이었다. 하지만 망명한 티베트인들로 구성된 선수 중의 상당수는 해외여행에 필요한 여권 등이 없어 덴마크로 갈 수 없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대표팀이 못마땅했다. 이에 경기를 취소하지 않으면 중국은 덴마크와 그린란드와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겠고 압박했다. 위협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와 그린란드도 물러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경기에서 티베트는 그린란드에 1-4로 패배했다. 하지만 티베트는 자신들의 깃발 아래서 처음으로 국제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승리자였다. 그 후 티베트 대표팀은 가끔 국제 경기를 소화했으나, 프랑스령 프로방스 대표팀에 0-22로 대패하는 등 10년 넘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마침내 2013년 티베트는 분쟁지역인 서사하라 대표팀을 12-2로 물리치고 첫 승리를 기록했다. 티베트는 코니파 랭킹은 최하위권이지만, 2018년 월드컵에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참가할 행운을 얻었다. 달라이 라마는 대표팀을 축복하며 “티베트인들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건넸다. 전 세계의 티베트인들은 대표팀의 경비에 보태쓰라며 성금도 보냈다. 해외 곳곳에서 선수들이 오는 관계로 대표팀은 런던에 도착해서야 한 팀이 될 수 있었다. 티베트가 월드컵에 참가하자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스폰서로 참여하려던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정부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후원 의사를 줄줄이 철회한 것이다. 티베트를 대회에서 아예 쫓아내라고 하는 기업까지 있었다. 이에 도박업체 패디 파워가 단독 스폰서로 참여했다. 어차피 도박은 중국에서 불법인 관계로 패디 파워는 중국 시장에 진출할 의사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진운이 따라주지 않아 티베트는 강호 카르파탈랴, 북키프러스와 디펜딩 챔피언 압하지야와 한 조로 묶였다. 결국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한 티베트는 순위 결정전에서 선전해 16개 참가국 중 12위라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사실 티베트에게 경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경기에 앞서 그들의 국가를 불렀던 티베트인들은 티베트 국기를 단 대표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티베트인들은 런던 대회 동안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세상에 보여줬다는 사실에도 감격했다. 비록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2018년 6월 티베트는 런던에서 독립국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누린 것이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3.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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