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시즌 프리미어리그(EPL)에 소속된 20개 클럽 중 영국인이 소유한 팀은 6개에 불과하다. EPL에 외국인 구단주 붐을 일으킨 이는 2003년 첼시를 인수한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그는 주제 무리뉴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고, 막대한 투자로 첼시를 단숨에 유럽 최강팀 중 하나로 만들었다.
아브라모비치는 EPL에 등장한 두 번째 외국인 구단주였다. 첫 번째는 풀럼을 인수한 이집트 출신 사업가 모하메드 알 파애드였다. 알 파애드는 아브라모비치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외국인 구단주들과 배경이 달랐다.
알 파애드는 이집트에서 해운회사를 설립해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아이티와 두바이의 통치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유·해양 서비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브루나이 술탄의 재정 고문으로도 활약했다.
1960년대부터 영국 런던에 거주한 알 파애드는 서구의 고급 호텔과 백화점 등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더 리츠 파리 호텔’을 사들인 데 이어 영국을 대표하는 고급 백화점 헤롯(Harrods)을 소유한 백화점 그룹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House of Fraser)’도 인수했다.
1997년 알 파애드는 당시 3부리그에 속해 있던 풀럼 FC를 인수했다. 1879년 창단한 풀럼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팀이지만, FA컵 준우승 한 번이 최고일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가진 클럽이었다. 이런 풀럼을 인수한 알 파애드는 5년 안에 클럽을 EPL에 승격시킨다는 목표를 밝혔고, 인수 4년 만인 2001년에 이를 달성했다.
33년 만에 풀럼을 1부리그로 복귀시킨 알 파애드는 2013년 7월까지 클럽의 구단주였다. 그의 재임 기간 클럽은 주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풀럼은 2008~09시즌 7위를 기록했고, 이듬해 참가한 유로파 리그에서 준우승을 거둬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09년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자 그와 친분이 있었던 알 파애드는 풀럼의 홈구장에 잭슨의 동상을 설립했다. 팬들은 클럽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의 동상 건립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알 파애드는 “잭슨같이 유능한 음악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한 팬들은 지옥에나 가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학자 월터 보워가 작성한 스코티크로니콘(Scotichronicon)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건너온 파라오의 자매가 스코틀랜드의 창시자라고 한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되는 걸 굳게 믿은 알 파애드는 “스코틀랜드인들은 원래 이집트인이다”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독립을 지지했다. 한술 더 떠 그는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쟁취하면 자기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황당한 발언까지 덧붙였다.
알 파애드는 독설과 황당한 주장 외에도 수차례 구설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 인수 과정에도 문제를 일으켜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영국 정치인들에게 돈과 편의를 제공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알 파애드는 영국 왕실과의 갈등으로 그가 일으켰던 많은 논란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갈등의 중심에는 그의 아들 도디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있었다.
찰스 왕세자와 1981년 세기의 결혼식을 한 다이애나는 뛰어난 패션 센스에 미모를 갖췄고, 자선과 봉사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찰스는 결혼 전부터 유부녀였던 카밀라와 불륜 관계였고, 그의 외도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아울러 왕족들은 인기가 많은 다이애나를 질투하여 끊임없이 견제했고, 타블로이드 언론사에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가식적인 왕족들과 찰스의 무관심에 지친 다이애나는 별거 끝에 결국 1996년 이혼했다.
영국 왕실이 애용했던 헤롯 백화점의 단골이었던 다이애나는 자연스럽게 알 파애드와 그의 아들 도디를 만났다고 한다. 이혼 후 그녀는 도디와 연인이 되었다. 1997년 8월 31일 도디와 파리에 위치한 더 리츠 호텔에서 식사를 한 다이애나는 숙소로 돌아가던 중 극성스러운 파파라치를 피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36세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알 파애드는 필립 공의 지시를 받은 MI6(영국의 해외전담 정보기관.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가 다이애나와 도디의 죽음을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그녀는 도디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왕실은 차기 영국 왕의 어머니가 될 다이애나가 무슬림인 도디와 결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다이애나의 사고사에는 의문점이 있었기에 이러한 음모론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길게 이어진 소송 끝에 영국 법원은 2008년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결론 내렸다. 알 파애드는 이에 반발했으나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위해 더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복수는 신에게 맡겼다"고 밝혔다.
알 파애드는 영국을 고향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끝내 영국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영국 기득권층과 수많은 불화를 일으켰던 그는 다이애나를 며느리로 받아들여 그의 브리티시 드림을 이루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고와 함께 그는 영국 사회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