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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나폴리는 이탈리아가 아니다”

199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은 이탈리아에서 열렸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개최국 이탈리아였고, 장소는 남부의 항구도시 나폴리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주장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나폴리는 익숙한 곳이었다. 6년 전 SSC 나폴리로 이적한 마라도나는 이곳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를 상대하기에 앞서 나폴리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폴리는 이탈리아가 아니다.” 따라서 시민들은 이탈리아가 아닌 자신이 소속된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달라는 말이었다. 마라도나는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이탈리아는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지역 차별로도 유명한 나라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자. 로마제국은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395년 동서로 갈라진다.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이탈리아 반도는 분열된다.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을 통해 유럽에 근대 민족주의가 싹트며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는 시도가 처음 나타났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반도에 위성 국가를 여러 개 만들며 이탈리아를 더욱 쪼개 놓았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유럽 열강들은 전후의 질서를 논의한 끝에 ‘빈 체제’를 만든다. 이 결과 남부에는 스페인이 장악한 두 개의 시칠리아 왕국, 북부에는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이 세워진다. 또한 중부 로마에는 교황령, 북서부에는 사르데냐 왕국이 있었다. 1840년대 유럽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강하게 일며 통일 이탈리아를 향한 열망도 커진다. 마침내 사르데냐 왕국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이며 북부를 해방시켰다. ‘이탈리아 통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은 남쪽의 양시칠리아 왕국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게 했다. 이후 가리발디는 조건 없이 남부 지역을 사르데냐 왕국과 합치며 1861년 통일 이탈리아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던 이탈리아는 하나의 국가라는 공동체 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부와 남부는 여러 면에서 너무 달랐다. 두 지역은 인종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북부는 게르만계 혈통의 영향을 받아 큰 키에 금발 머리와 푸른 눈동자를 가진 데 반해, 아랍계 혈통의 영향을 받은 남부는 작은 키에, 짙은 머리색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북부와 남부의 갈등은 특히 경제력 차이에서 나온다. 북부는 밀라노, 토리노와 항구도시 제노바를 연결한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일찍이 산업화가 이루어져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그에 반해 농업 중심의 남부는 가난했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7년 기준 이탈리아의 경제수도 밀라노가 위치한 롬바르디아주의 1인당 소득은 3만 8500유로였고, 북부 주요 도시들은 3만 유로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남부의 대표도시 나폴리는 1만 8700유로에 불과했다. 북부인들은 오랫동안 “우리의 세금으로 남부를 먹여 살린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럽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되면서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열리자, 북부에 소비시장과 인력 공급처 역할을 했던 남부의 필요성은 더욱 떨어졌다. 이에 북부를 파다니아(Padania)라는 이름으로 독립시키려는 목표로 극우정당 북부연맹이 출범했다. 이들은 현재도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력의 차이는 축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인 세리에 A 클럽의 절대다수는 북부에 위치해 있다. 물론 우승도 북부 팀이 휩쓸어 갔다. 토리노에 위치한 유벤투스(36회)가 압도적으로 많은 우승을 기록한 가운데, 인터 밀란과 AC 밀란이 각각 19번 우승했다. 124년의 역사를 가진 세리에 A에서 북부지역 외의 클럽이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단 8차례에 불과하다. 로마제국 이후 이탈리아는 약 1400년 동안 분열되어 있었다. 따라서 각자 다른 문화와 풍습으로 오랫동안 살았던 반도 사람들은 타 지역에 대한 거부감 역시 높다. 밀라노 같은 북부도시는 중부 로마에 위치한 클럽에도 공공연한 반감을 드러낸다. 일례로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가 대한민국과 경기 중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AS 로마의 상징과 같은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 당했을 때 북부인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이렇게 중부 팀에도 반감을 보이는 북부에서 남부팀은 야만인, 하수구의 쥐 같은 취급을 받는다. 1926년 창단되어 남부를 대표하는 클럽이 된 나폴리는 한동안 세리에A와 B를 오가는 그저 그런 팀이었다. 그러한 나폴리가 1960~1970년대에 코파 이탈리아에서 2번 우승하고, 세리에 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여러 시즌 있었다. 하지만 이 클럽은 1984년 승점 1점 차이로 겨우 강등을 면하는 위기에 직면한다. 1984년 6월 나폴리는 바르셀로나로부터 마라도나를 영입하는 도박 같은 결정을 내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남부의 가난한 클럽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를 품은 것이다. 바르셀로나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행복을 찾았다. 아울러 부유한 북부 클럽들로부터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던 나폴리에 마라도나는 동질감마저 느낀다. 자신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민가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라도나와 나폴리의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잠재력을 믿었고, 클럽은 그와 함께 발전해 나갔다. 나폴리는 결국 1987년 팀 창단 61년만에 세리에 A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다. 이후 나폴리는 1989~90시즌 리그 우승을 한 번 더 차지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컵마저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한다. 차별과 조롱의 대상이었던 나폴리를 세리에 A와 유럽 정상에 올려놓은 마라도나에 시민들은 열광했고, 그는 나폴리의 신 같은 존재로 등극한다. 한편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뛴 관계로 이미 북부지역에서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 그가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준결승전을 앞두고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달라고 말하자 여론은 들끓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지역감정을 이용한 마라도나에 분노했다. 나폴리 시민들은 고민 끝에 경기장에 걸린 커다란 배너에 이렇게 답했다. “마라도나, 나폴리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입니다.” 후에 마라도나는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가 연주될 때 야유를 보내지 않은 경기장은 나폴리가 유일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준결승전에서 두 나라는 1-1을 기록한 후 승부차기에 들어간다. 4번째 키커로 나온 마라도나의 득점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를 4-3으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다. 이후 이탈리아는 그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눈감아주던 마라도나와 연관된 마약, 매춘 등도 수면위로 떠오른다. 도핑검사 결과 15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그는 나폴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라도나가 1984년 나폴리에 입단할 당시 그를 환영하려고 경기장에 모인 관중은 7만5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떠날 때 그는 혼자였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8.24 07:01
경제

여친의 '침대셀카'로 차인 伊 실세 부총리

마테오 살비니(45)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여자친구에게 차이는 망신을 당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이탈리아 극우정당 동맹 대표로 최근 반(反) 난민 정서에 편승해 이탈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유명 방송인 엘리사 이소아르디는 5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살비니와 찍은 사진과 더불어 이별을 통보하는 글을 올렸다. 사진 속 살비니 부총리는 반라의 모습으로 이소아르디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이소아르디는 잠든 남자친구 옆에서 목욕 가운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소아르디는 이 사진과 함께 “존재했던 진정한 사랑에 크나큰 경의를 표하며, 고마워 마테오”라고 적었다. 이별을 암시하는 이탈리아 현대시인의 시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이소아르디는 살비니 부총리와 약 3년간 교제해 온 유명 방송인으로 현재 공영방송 RAI에서 쿠킹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소아르디는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살비니와 2달 반 전에 헤어졌다고 밝혔다. 이소아르디가 올린 이 사진은 즉각 이탈리아 인터넷 커뮤니티를 비롯한 SNS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둘의 결별 소식은 지난 열흘 간 이탈리아를 강타한 폭우, 내년 예산안을 둘러싼 이탈리아 정부와 유럽연합(EU)의 신경전 등 큰 이슈들과 어깨를 나란히할 만큼 화제가 됐다. 살비니 부총리는 여자친구가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결별을 통보하는 순간 출장을 위해 아프리카 가나행 비행기에 타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살비니 부총리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최근 강경 난민정책과 재정 적자를 대폭 늘린 예산안 등으로 EU에 반기를 드는 데 앞장서며 대중적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정치인이다. 극우정당 '동맹'을 이끌며 지난 3월 총선에서 17.4%의 표를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2일 현지 일간지가 발표한 여론 조사 기준 '포퓰리즘 정부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이탈리아 국민 58%가 살비니라고 응답했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11.07 08:26
경제

“당신은 끝났어” 반라 여성 항의에도 베를루스코니 최다 득표

이탈리아 총선을 통해 정치 전면 복귀를 노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1) 전 총리를 향해 반라의 여성이 돌발 항의 시위를 벌였지만 그가 이끄는 우파연합이 최다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ANSA통신 등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4일(현지시각) 자신의 거주지인 밀라노의 한 투표소를 방문해 투표하려는 순간 반라의 여성이 투표함 옆의 책상 위로 뛰어오르는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웃옷을 걸치지 않은 이 여성은 몸통에 검은색 펜으로 ‘베를루스코니, 당신은 만료됐어’라는 문구를 새긴 채 두 팔을 치켜들었다. ANSA통신은 이 여성이 현장에서 “당신 시간은 이미 끝났어”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여성은 국제 페미니스트 단체인 페멘 소속 활동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돌발 장면을 담으려는 현장의 카메라 기자들이 거칠게 서로 떠밀며 예기치 못한 혼란이 빚어지자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아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3차례 총리를 역임한 베를루스코니는 2013년 탈세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한동안 정계 뒤편으로 물러나 있었으나 이번 총선에서 우파연합의 구심점 역할로 다시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는출구 조사 결과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연합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중도우파 전진이탈리아(FI)는 극우정당 동맹, 이탈리아형제들 등 다른 3개 정당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우파연합은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 의석 확보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은 득표율 약 30%로 단일 정당 가운데 최다 득표를 할 것으로 조사됐다. 집권 민주당은 3위에 그쳤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03.05 09:59
경제

테러규탄 행진, 세계 주요 정상들도 참가... 오바마 대통령은 어디 갔나?

세계 지도자와 시민 150만 명이 운집해 프랑스의 테러규탄 행진을 진행했다.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시민 15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지난주 17명이 희생된 테러 사건을 규탄하는 대규모 행진이 열렸다.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파리 도심에서 프랑스 시민과 함께 거리 행진을 벌이며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희생자를 애도하고 비이성적인 테러를 규탄했다.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등 세계 34개국의 정상급 인사는 현지시간 어제 오후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나시옹 광장까지 3km에 이르는 행진을 선두에서 이끌며 표현의 자유 수호 및 테러 추방에 대한 연대 의지를 천명했다.테러로 숨진 희생자 가족들도 행진에 참석했다. 거리 행진 출발장소인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오전부터 시민 수십만 명이 집결해 '자유·평등·우애'와 '샤를리' 등 구호와 프랑스 국가를 부르며 집회 열기를 고조시켰으며, 오후 들어 인파는 더욱 불어나 광장은 각국 국기와 구호판을 든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각국 지도자들은 엘리제궁에 모여 있다가 대형 버스를 타고 집회장소로 이동해 군중의 박수를 받으며 광장에 입장했다. 이들은 행진이 시작되자 연대의 의지를 과시하는 뜻에서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연출했다.올랑드 대통령은 집회에 앞서 각국 지도자들을 영접하는 자리에서 "오늘은 파리가 세계의 수도가 되는 날"이라고 말했으며,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장관들과 반테러 국제회담을 열고 테러 척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단호한 행동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카즈뇌브 장관은 "이번 사태로 프랑스 전체가 애도하고 있으며, 테러리스트가 노리는 것은 유럽의 가치인 민주주의"라고 덧붙였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테러는 우리의 정신과 가치를 파괴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오늘 행사는 유럽이 지난 70년간 그래 왔듯이 미래에도 자유를 보장할 것이라는 중대한 메시지를 알리는 자리"라며 "지금은 단결의 순간이자 희망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어제 집회에는 도널드 투스크 신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옌스 슈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등 주요 인사도 참석했으며, 터키의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와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등 이슬람권 지도자를 비롯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미국에서는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대표로 참가했다.그러나 반 이슬람 성향을 강력히 표방하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대표는 초청장을 받지 못했고, 르펜 대표 역시 불참 의사를 밝혔다. 르펜 대표는 대신 국민전선이 작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남부 보케르시에서 열린 '샤를리 에브도' 희생자 추모 행진에 참가했다.프랑스 정부는 테러를 규탄하고 공격받은 언론사인 '샤를리 에브도'에 연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건 후 처음 맞는 일요일에 행사를 마련했다. 또한 파리 집회를 위해 경찰관 2천 명과 군인 1천350명을 시내 곳곳에 배치해 불상사에 대비했다.한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얼굴을 보이지 않아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세계 34개국 정상이 집결해 파리 주간지 테러를 나무라는 자리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는 역사적 현장에 미국의 대통령이 빠진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미국은 파리 행진에는 회의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 중인 에릭 홀더 법무장관과 주프랑스 미국 대사인 제인 하틀리를 정부 대표로 참석하게 했다. 하지만 CNN 방송은 이날 파리 행진에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불참했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올리며 비판적 논조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CNN 앵커인 제이크 태퍼는 파리 행진을 생중계하는 현장에서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 정상들이 참여하는 아름다운 행진에 보다 높은 인사가 미국 정부를 대표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고 뼈있는 일침을 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일정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며, 백악관은 다음 달 18일 폭력적 극단주의 대응을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AFP는 파리 집회 말고도 리옹과 보르도, 마르세유 등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도 6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테러 규탄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시민 1만명이 테러 규탄 집회를 여는 등 런던, 마드리드, 뉴욕, 카이로, 시드니, 스톡홀름, 도쿄 등지에서도 행사가 열렸으며, 런던시는 파리 테러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 밤 타워브리지와 트라팔가 광장에 프랑스기를 상징하는 3색 조명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테러규탄 행진'온라인 일간스포츠 [사진=JTBC 뉴스 캡처]'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테러규탄 행진' 2015.01.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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