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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남현희 재혼 상대 논란에 정유라까지 등장..."내 또래 선수들 아무도 모르는 전청조, 외국 대학이라니..."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의 재혼 상대자 전청조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번지고 있다. 승마 선수였던 것으로 알려진 이력에 대해 정유라가 대놓고 조롱했다. 승마 국가대표 출신인 정유라는 25일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잡지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전청조의 이력에 대해 꼬집었다. 전청조는 승마 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을 입고 은퇴했으며 뉴욕에서 승마를 전공하고 다수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밝혔다. 정유라는 "뉴욕대 승마과가 있는 줄 알았으면, 커트라인이 저렇게 낮은 줄 알았다면, 나도 뉴욕대 갈 걸"이라며 "경마축산고 나와서 승마 선수 그 누구도 모르게 혼자 입상하고 혼자 외국 대학도 가고 부럽다"라고 비꼬았다. 이어 그는 "나랑 동갑이던데 내 또래 엘리트 선수들 아무도 전청조를 모른다. 고등학교 내내 1등 하다가 한두 번 놓쳤던 2014년 랭킹 1위였던 나도 이대 밖에 못 갔는데 무슨 수로 뉴욕대학교를 갔나"라고 덧붙였다. 정유라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다. 지난 2017년 불거진 국정 농단 사태 핵심 인물 최서원(최순실)의 딸이기도 하다. 입시 비리 의혹으로 이화여대 입학 취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전날(24일) 박서영 대한승마협회장은 SNS를 통해 "최근 결혼설로 뉴스에 나온 모 유명 인사가 진짜가 진짜로 승마선수였는지에 대해, 대한승마협회는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혹시 콘셉트을 위해 승마인이 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기회에 승마협회에 후원을 해보시죠. 후원하는 당신이 진정한 승마인입니다"라는 문구를 더했다. 의미를 해석할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 2달 전 이혼한 남현희는 최근 15살 어린 전청조와 결혼을 발표해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전청조의 여성스러운 외모, 재벌 3세라는 배경과 각종 이력에 의혹이 생겼다. 남현희는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25일 전청조의 성별이 여성이고, 사기 전과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교 시절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한 '여고생 전청조'이 모습도 공개됐다. 인기 연예전문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 이진호' 채널이 전청조와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는데, 남성의 목소리로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전청조는 이 채널을 통해 입장을 밝히는 걸 거부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3.10.2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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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전설적인 암살단 ‘어쌔신’의 후예도 축구선수였다

프랑스의 게임 제작 회사 유비소프트가 만들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라는 게임이 있다. 시리즈의 첫 작품에 해당하는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 암살자의 신념)’는 2007년 출시되었다. 소수의 엘리트로 인류의 질서를 세우려는 템플기사단과 이에 맞서 인간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암살단 간의 갈등이 게임의 주요 설정이다. 흥미롭게도 템플기사단과 어쌔신은 실제로 존재했다. 지난 칼럼에서 다뤘듯이 십자군 전쟁 시기에 태동한 템플기사단은 이단이라는 누명을 쓴 채 결국 해체된다. 살아남은 기사단의 일부는 포르투갈에서 ‘그리스도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이들은 포르투갈 국왕에 충성을 맹세했고, 대항해 시절 포르투갈의 국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18세기 후반 세속화한 기사단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그리스도 기사단의 최고 책임자인 단장은 포르투갈 대통령이다. 이슬람은 7세기 초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다. 하지만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사망하자 이슬람 공동체는 분열된다. 이슬람의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렇게 탄생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전 세계 무슬림의 85%와 15%를 각각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지금도 치열하게 대립한다. 한편 시아파의 분파 중 하나인 이스마일파는 10세기 초 파티마 왕조를 세운다. 11세기 말 파티마 왕조 내에서 후계자 문제로 형제들이 갈등을 빚은 끝에 니자르파가 갈라져 나온다. 니자르파는 본래 의학, 과학 등에 전념하는 지식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수니파 이슬람을 통일한 셀주크 제국이 시아파를 탄압하자, 니자르파 신도들은 무장 투쟁으로 방향을 바꾼다. 1090년 하산 에 사바흐는 니자르파를 이끌고 이란 북부 산악지형의 알라무트 요새에서 정치-종교 공동체인 어쌔신을 만든다. 이 조직은 중세 유럽의 기사단과 유사점이 많았다. 구성원들은 훈련과 교육을 받았고, 교단의 지도자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니자르파의 어쌔신은 세력이 크지 않았고, 막강한 군사력도 없었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이들은 전면적인 전쟁보다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전략을 세운다. 소수 정예였던 어쌔신은 그들에게 최대의 적이었던 셀주크 제국의 재상 니잠 알물크의 암살에 성공한 후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게임 시리즈와는 달리 실제 어쌔신의 적은 템플기사단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를 가리지 않고 자신과 대립하는 세력의 주요 인사들을 무차별 암살했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십자군의 사주를 받고 무슬림 요인을 암살하기도 했다. 어쌔신이 활약할 당시 중동 지역에서 이들의 위협을 받지 않은 주요 인사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영어 단어인 암살자(assassin)와 암살(assassination)도 이들의 조직 이름에서 기원했다. 어쌔신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서 암살을 종종 시도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의 암살 시도는 이들에게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설사 암살이 성공해도 이들이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쌔신은 임무를 수행했고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였다. 어쌔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과 의지는 이들이 복용한 마약 때문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쌔신은 페르시아어 하사신에서 유래했고, 이 단어는 ‘하시시(hashish, 대마초) 사용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 알려진 이들에 대한 정보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와 십자군이라는 적대적인 출처에서 대부분 나왔기 때문에, 어쌔신이 마약을 복용했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어쌔신의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암살만으로는 결코 적을 이길 수 없다는 한계도 뚜렷했다. 결국 동쪽에서 몰려온 몽골족에 의해 1256년 니자르파와 어쌔신의 알라무트 요새가 함락됐고, 이들은 몰락했다. 니자르파와 어쌔신의 후예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탄압을 피해 인도, 파키스탄으로 이동한 어쌔신의 후예들은 후에 유럽으로 넘어간다. 현재 니자르파를 이끄는 지도자는 아가 칸 4세다. 그는 영토는 없지만 따르는 국민은 있는 독특한 군주이기도 하다. 193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카림 왕자로 태어난 그는 똑똑했고, 잘 생겼으며 스포츠를 즐겼다. 과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카림 왕자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입학 허가서를 받았으나, 할아버지인 아가 칸 3세의 권유로 하버드 대학에서 이슬람 역사를 전공했다. 유럽에서 축구를 익힌 카림은 하버드 대학에서 1학년이 주축이 된 축구팀을 만들었고, 종종 골을 기록했다. 그의 축구팀은 무패로 시즌을 마감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조상 대대로 스포츠를 중요시한 전통으로 인해 카림은 축구 외에도 스키 등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 하지만 그는 야구나 미식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1957년 아가 칸 3세는 후계자로 아들 대신 손주인 카림 왕자를 지목하고 세상을 떠났다. 20살 대학생이었던 카림 왕자가 아가 칸 4세가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그에게 ‘전하(Highness)’ 호칭을 수여했다. 1959년 그는 하버드 대학의 축구선수이자 우수한 성적으로 학사 과정을 마쳤다. 카림은 박사 과정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왕이 되는 바람에 이를 포기해야 했다. 아가 칸 4세로서 그의 스포츠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관심 종목이 축구와 스키에서 말타기로 변한 것이다. 아가 칸 4세는 거대한 말 목장을 프랑스와 아일랜드에 가지고 있고 경마팀도 운영한다. 그는 2006년 영국 최대 말 경매장의 지분을 확보해 1대 주주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세계 최대 민간 네트워크 중 하나인 ‘아가 칸 개발 네트워크’를 설립해 개발도상국의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 활동도 전개했다. 선조인 어쌔신은 암살로 악명을 날렸다. 하지만 아가 칸 4세는 이슬람에 널리 퍼진 문맹, 기아, 성차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힘쓰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5.13 08:00
스포츠일반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라이벌전

18세기 영국에 산업 혁명이 있었다면, 19세기 영국에는 레저 혁명이 있었다. 축구, 골프, 테니스, 럭비, 배드민턴 등 많은 현대 스포츠가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졌고 체계화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패권국에서 물러나지만, 이들이 아직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스포츠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영국은 다시 한번 하계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아울러 영국의 프리미어리그(EPL) 축구, 디 오픈(The Open) 골프 대회, 윔블던 테니스 등은 세계적인 인기와 명성을 얻고 있다. 그에 반해 영국의 대학 스포츠는 국내 스포츠 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영어에는 ‘바시티 매치(varsity match)’라는 표현이 있다. 라이벌 대학 간의 스포츠 경기를 뜻한다. 오랜 라이벌이었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스포츠 이벤트에서 이 표현이 유래했다. 두 대학의 경쟁 구도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와 예일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고, 이후 일본을 거쳐 국내로 들어와 고려대와 연세대 라이벌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간에는 매년 크리켓, 폴로, 하키, 럭비, 조정, 골프, 농구 등 여러 종목의 경기가 열린다. 이 모든 경기의 승패를 종합하여 매년 두 대학 간의 바시티 매치의 승자를 가린다. 이 중 ‘더 보트 레이스(The Boat Race)'라는 이름의 조정 경기가 가장 유명하다. 명문 사립학교 해로우 스쿨 출신의 두 친구가 각각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진학한 후, 이들의 제안으로 보트 레이스는 1829년에 첫선을 보였다. 두 대학 조정팀의 멤버는 전통적으로 ‘블루스(Blues)’라고 불린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각각 짙은 블루와 옅은 블루칼라의 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매년 3월의 마지막 또는 4월의 첫 번째 주말에 개최되는 보트 레이스는 런던의 템즈강 서쪽에 위치한 퍼트니에서모트레이크까지 이어지는 6.8㎞ 구간에서 벌어진다. 각 팀은 8명의 선수와 조타수 역할을 하는 콕스(cox)로 구성되는데, 레이스에서 승리한 팀은 콕스를 템즈강에 던져 승리를 자축하는 전통이 있다. 193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보트 레이스는 지금까지 총 167번의 경기가 열렸다. 이중 케임브리지가 85승을 거둬 81승에 그친 옥스퍼드를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무승부도 한 번 있었다. 1877년에 열린 레이스는 너무나 치열해 육안으로는 순위를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영어로 ‘데드 히트(dead heat)’라고 부른다. 1949년 레이스에서도 두 대학의 보트는 엎치락뒤치락했다고 한다. 당시 중계를 맡은 BBC 라디오의 존 스내지는 "옥스퍼드가 앞선다. 아니 케임브리지가 앞선다. 누군지 모르지만,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중 하나가 앞서고 있다(Oxford are ahead, no Cambridge are ahead. I don't know who's ahead, but it's either Oxford or Cambridge!)"라는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해설을 남기기도 했다. 데드 히트는 현대 스포츠에서 아주 드물게 발생한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수영 100m 자유형 결승에서 미국과 캐나다 선수는 정확히 52초 70을 찍어, 올림픽 신기록과 데드 히트를 동시에 기록했다. 당시 두 선수는 금메달을 함께 받았고, 3위로 들어온 선수가 동메달을 받았다. 옥스퍼드는 학생이 입학 시 스포츠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또한 운동선수 출신이라도 학교 입학에 특혜는 없다. 마찬가지로 엄격한 입학 기준을 통과한 학생들만이 케임브리지에서도 스포츠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있다. 이렇게 두 대학은 보트 레이스를 순수 학생들만의 대회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대결이라고 보트 레이스의 수준을 낮춰본다면 오산이다. 학생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 과정을 소화한다. 새 학기 시작 전인 9월에 개시되는 트레이닝은 주 6일 동안 이어지고, 크리스마스 방학 때는 해외전지 훈련을 통해 레이스에 참가할 최종 선수를 선발한다. 이후 이들은 영국이나 해외의 톱 클래스 선수들과 레이스를 펼치며 기량을 닦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학생 선수들의 실력은 1980년대 이후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한다. 특히 2007년도 케임브리지 조정팀은 영국 최고의 팀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학문적 우위를 놓고 오랫동안 다퉈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대학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은 분야는 지난 2세기 동안 벌어진 보트 레이스였다. 조정 경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동료들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협동과 배려, 자기희생 등이 아우러진 팀 스포츠의 정점인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템즈 강변에 모인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축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5.04 06:00
스포츠일반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동계 최강 노르웨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1924 초대 동계올림픽부터 지금까지 거의 상위권을 유지한 노르웨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회가 있다. 바로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1988 올림픽이다. 노르웨이는 캘거리에서 금메달 없이 겨우 5개 메달(은 3, 동 2)을 획득했다. 눈과 얼음의 나라로 스키와 스케이팅을 즐기는 노르웨이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특히 이웃 국가이자 라이벌인 스웨덴(금 4, 동 2)에 크게 밀렸다. 노르웨이는 고민했다. 더군다나 1994년에는 자국의 릴레함메르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에 정부와 스포츠 지도자들이 모여 문제점을 파악했고, 체육 단체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89년 엘리트 스포츠 센터인 ‘올림피아토펜’이 건설됐다. 이 센터는 훈련장, 의료시설, 우수한 지도자와 스포츠 과학 등 모든 환경을 구비했다.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며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노르웨이 스포츠는 협력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올림피아토펜도 이러한 공유와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센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설립 이후 이곳에서 만난 다양한 종목의 선수와 코치들은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알파인 스키와 스케이팅 선수들이 같이 훈련하면서 자기들만의 코너를 도는 방법, 몸의 위치나 트레이닝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서로 배우게 되었다.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축구도 지식 교환을 통해 서로 배울 점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전문지식 공유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고, 이러한 시스템은 노르웨이가 그 후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한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국가 중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는 노르웨이다. 이들은 1952년 오슬로에 이어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두 번째 올림픽을 개최했다. 특히 릴레함메르는 지금도 회자할 정도로 이들에게 특별한 대회였다. 200만 명에 가까운 관중을 동원해 흥행에서도 대성공이었고, 노르웨이는 총 메달 수(26개)에서 1위를 기록하며 캘거리에서 무너진 자존심을 완전히 회복했다. 릴레함메르에서 거둔 뛰어난 성적에 노르웨이인들은 열광했다. 특히 올림픽 영웅들이 어린이들에게 미친 영향이 컸다. 이들은 자국의 유망주들한테 중요한 롤 모델이자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다. 1994 대회의 성공에서 고무받은 세대가 주축을 이룬 노르웨이 대표팀은 2010년대에 열린 동계올림픽에서도 연거푸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필자는 3회에 걸쳐 동계올림픽 최강 노르웨이의 비결을 알아보았다. 한국스포츠는 그들의 성공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물론 한국과 노르웨이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우리는 동계스포츠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환경이 없다. 한국은 노르웨이만큼 부자이지도, 평등한 사회도 아니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노르웨이 모델도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스포츠는 아직도 엘리트 선수 위주다. 생활체육의 중요성은 꾸준히 대두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예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사회 구조는 많은 국민이 이러한 체육에 참여하는 데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노르웨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경쟁적이다. 밥 먹고 살기 바쁜 국민 다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아실현을 위해 스포츠에 참여할 형편도 안 된다. 또한 지금같이 거의 모든 학생이 대학입학에 목매는 현실에서는 생활체육에 참여하는 학생이 많을 수가 없다. 13세 이전의 경기는 순위나 평가를 하지 말고, 어린이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본받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어린 나이에 집중적으로 연마해야 하는 기술 스포츠(technical sports: 체조, 다이빙, 피겨 스케이팅 등)에 적합하지 않다. 아울러 조기교육과 성적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시스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노르웨이 모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들이 가진 ‘팀 정신’이다. 파벌이나 특혜가 없고 평등한 대접을 받는 선수들이 열심히 함께 하는 것이 노르웨이 스포츠의 힘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사회적 기술(social skills)의 부족에서 나온다. 사회적 기술이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학습하는 것이고 노력으로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다. 사회적 기술을 익힌 이는 타인과 효과적으로 의사 교환을 할 수 있고, 대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적절하게 해결한다. 결국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사회화’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세대 간, 소득에 따른 불협화음과 ‘갑질’ 논란 등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 자기만이 옳고, 편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술만 제대로 익혀도 이러한 갈등은 많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언제 배워야 가장 효과적일까? 어렸을 때 배워야 한다. 노르웨이 모델의 최우선 과제는 어린이들을 스포츠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돈을 쓰고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의 목표는 능력 있는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을 스포츠 영재로 키우는 것에 그들은 관심이 없다. 대신 노르웨이 모델은 스포츠를 통해 어린이들이 사회성을 개발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필자는 우리가 노르웨이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좋지만, 인성은 낙제인 스포츠 스타를 한국 사회도 더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포츠 기술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선에서 끝나면 안 된다. 사실 지식과 기술은 조금 늦게 배워도 상관없다.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사회성을 키워 주는 것이다. 많은 어린이가 스포츠를 통해 규범을 배우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성을 갖추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람으로 가득 채워질 때 대한민국의 스포츠는 진정으로 강해질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3.02 06:07
연예

하이키, 4인조 걸그룹… 맏언니 시탈라까지 모두 공개

신예 걸그룹 하이키(H1-KEY) 마지막 멤버 시탈라(SITALA)가 베일을 벗었다. 30일 0시 GLG(그랜드라인 그룹)는 하이키 공식 SNS에 마지막 멤버 시탈라의 프로필 사진을 공개, 4인조 데뷔를 확정지었다. 시탈라는 갸름한 얼굴형과 뚜렷한 이목구비로 시선을 끌었다.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는 자연스러운 포즈에 카메라를 응시하는 강렬한 눈빛이 흑백 무드와 어우러지면서 시크하고 도회적인 시탈라만의 분위기가 탄생했다. 태국 출신 시탈라는 하이키 팀 내 유일한 외국인 멤버이자 맏언니다. 태국어를 비롯해 한국어·영어·중국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다. 중성적이고 허스키한 보이스가 매력적인 시탈라는 수준급의 랩과 보컬 실력까지 두루 겸비하고 있다. 특히 K팝에 푹 빠져 있는 그는 이화여대에 입학, 현재까지도 연습과 병행하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탈라는 이미 자국에서 각종 매거진을 통해 모델 활동을 활발히 하며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기대주다. -한국에서 가수 데뷔를 준비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현재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문화와 음악에 열광하고 있다. 태국에서도 K팝의 인기를 몸소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무대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했고 아티스트 트레이닝 시스템이 잘 돼있는 한국에서 꼭 가수가 되고 싶었다." -롤모델이 있나. "아이유 선배님처럼 뛰어난 작사·작곡 능력으로 팬분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인생의 롤모델은 아버지다." -본인이 생각하는 하이키만의 매력이 있다면. "멤버들 모두 팔다리가 길쭉해서 모델 같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하이키가 어떤 수식어로 불렸으면 하나. "하이키로서는 '힙하고 도도하고 시크한'이라는 뜻의 국민 '힙.도.싴'으로 개인적으로는 '태국의 별'로 불리고 싶다." -데뷔 후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있나. "단독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이다. 취미 등 비활동기의 모습을 담아 하이키의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싶다." -2022년 하이키의 목표가 있다면. "신인상을 꼭 받고 싶다. 또 광고와 화보도 많이 찍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전 세계에 있는 팬 여러분께서 저희 곡을 많이 사랑해주길 바란다. 앞으로 항상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린다." 김진석 기자 kim.jinseok1@jtbc.co.kr 2021.11.30 10:22
경제

[클릭 K바이오] 박준형 쓰리빅스 대표 "글로벌 AI 신약개발 구축…바이오업계 구글 되겠다"

인공지능(AI)을 통한 신약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다. 여전히 AI 및 빅데이터 신약개발 플랫폼에 의문을 제기하는 제약사들이 많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AI 신약개발 사례들이 연이어 보고되면서 거짓말 같았던 꿈들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제약·바이오의 ‘AI 시대 도래’를 확신하고 있는 박준형 쓰리빅스 대표이사는 인도를 거점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인도 바이오 빅데이터 글로벌 연계 시스템 지난달 26일 신 바이오 메카로 성장하고 있는 수원 광교비즈니스센터에 자리한 쓰리빅스 사무실에 들어서니 영어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쓰리빅스의 구성원 중 절반이 외국인이라 영어 소통은 필수다. 2018년 5월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인도에 생물정보센터를 구축한 박준형 대표는 “세계적으로 바이오 데이터 정제를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이 인도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다퉈 인도에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추세”라며 “IT와 바이오 분야에 있어서 인도에 우수한 인력이 많다. 이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와 언어의 장벽 없이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꼽히는 방갈로르에 위치한 자회사 쓰리빅스 오믹스코어는 석·박사 출신의 인도인 8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도 인도인 2명이 상주하며 쓰리빅스의 글로벌 연계 시스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쓰리빅스 창립 때부터 인도지사 설립을 준비했던 박 대표는 “방갈로르의 1400만명 인구 중 IT 인력만 400만명에 달한다. 의료와 바이오 데이터를 잘 다룰 수 있는 딥러닝 스페셜리스트들이 즐비하다”며 “이런 좋은 인력들을 바탕으로 정제된 바이오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게 쓰리빅스의 강점이다”고 자신했다. 실제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인도지사를 두고 AI 신약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더군다나 쓰리빅스 인도 자회사의 센터장은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박 대표는 “NIH에서 17년 동안 바이오 데이터 분석과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담당했던 전문인력이 생물정보센터장을 맡고 있어서 타사와 차별화가 뚜렷하다”고 했다. 박 대표 역시 국내에서 생물정보 관련 기술컨설팅을 20년 가까이 수행한 전문가다. 부산대에서 생물정보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IT와 바이오를 접목한 생물정보학은 부산대에서 국내 최초로 생겼다. 2002년 입학한 뒤 2006년 졸업을 했는데 국내 생물정보학의 4호 박사로 알고 있다”며 “이후 생물정보 관련 회사인 인실리코젠의 부서장으로 국가연구소, 종합병원, 대학, 제약사 등과 기술컨설팅을 수행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신약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성 없는 물질 등 정제된 딥러닝 바이오 데이터 활용 쓰리빅스의 글로벌 협력 시스템은 먼저 본사에서 신약개발을 위해 매트릭스를 만드는 등 설계 밑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인도의 자체 시스템을 통해 정제된 바이오 데이터를 얻어 최적의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시스템이다. 박 대표는 “바이오 데이터는 복잡하고 다양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분야다. 오픈된 구글의 AI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겠지만 데이터가 아무리 많더라도 이를 AI로 활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IT 인력과 프로그램으로 활용 가능한 형태의 바이오 데이터로 정제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데 쓰리빅스는 글로벌 협력을 통해 이런 정제된 바이오 데이터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또 쓰리빅스는 신약개발의 최대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부작용 데이터들도 갖고 있다. 박 대표는 “그동안 매출이 아닌 국가연구소, 종합병원 등과 공동 연구를 통해 데이터를 모으는 일에 집중해왔다. 미국 FDA(식품의약국)에 보고된 각종 부작용 같은 정보들도 모두 빅데이터를 통해 모았다"며 "이로 인해 신약후보물질 개발 과정에서 독성 물질들은 걸러내는 등 각종 부작용을 보완해 데이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쓰리빅스는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AI를 제대로 하는 바이오기업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박 대표는 “LG생명과학, 대웅제약 등의 제약사들과 협력을 하고 있고, 신약개발에 대한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또 국내 AI 신약개발회사들이 데이터 정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있다. 국내의 우수한 바이오 연구기관에서도 우리에게 데이터 정제를 맡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쓰리빅스는 서울대 치의학대, 이대의학원 등 협력사가 많다. 그는 “1년 전부터 이화여대와 서울대 치의학대와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구강질환 및 여성질환에 대한 임상을 이들 대학들과 공동 연구를 수행해 내년에 신약후보물질 기술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바이오 AI 유전체 분야 ‘구글 플랫폼' 꿈 AI 신약개발의 결실도 나타나고 있다. 보통 전임상 단계인 신약후보물질 발굴에만 4~5년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쓰리빅스는 2018년 설립 후 이미 신약후보물질만 10개 이상을 발굴해 특허로 출원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후보물질 중 이미 동물실험을 거친 물질도 있다. 우리는 광교비즈니스센터에 후보물질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험실도 보유하고 있다”며 효율성 증대의 비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쓰리빅스는 신약후보물질 발굴을 위해 바이오 마커(단백질, DNA, RNA 등으로 몸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찾는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표는 “지금 확보한 신약후보물질만 수십 개가 넘는다. 2021년에는 검증된 신약후보물질 발굴 플랫폼을 통해 국내외에서 가장 많은 신약후보물질을 가진 회사가 될 계획”이라며 “기술수출 등을 통해 향후 큰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어 그는 “3~4년 안에 상장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박 대표는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도 명확히 세웠다. 그는 “한국은 초기 테스트 성격의 시장이다. 인도법인 설립은 기술적 이슈를 해결하는 동시에 글로벌 마케터 육성 및 글로벌 시장 준비를 위해서였다”며 “인도 시장을 선점하고 이를 확대해 동남아, 미국, 유럽에 진출하는 것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표의 꿈은 유전체 분야의 구글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신약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를 통해 다양한 파생 비즈니스를 확대할 수 있다. 가령 신약연구를 통해 확보된 물질을 화장품과 건식 등으로 확대할 수 있다”며 “식물과 축산, 수산 연구기관들과 같이 우수한 종자 육성을 위해 사료개발 및 유전체 육종산업 등으로 확대가 가능하다”고 중장기적인 계획을 소개했다. 쓰리빅스의 비전은 모든 생명 정보의 통합적 활용 통한 글로벌 헬스케어 선도기업이 되는 것이다. 박준형 대표는 “모든 생명체의 바이오 데이터를 해석하는 등 빅데이터 작업으로 바이터 데이터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 플랫폼 업계의 구글이 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수원=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0.12.04 07:01
스포츠일반

[연세대 5인방 비하인드] "찬란했던 그때, 함께 추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니,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 모였는데 어떻게 4학년한테 존댓말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문경은(48)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 이상민(47)이 바로 받아친다. "형, 우리 전부 오십이 다 돼가는데 존댓말은 무슨. 뭘 그런 걸 기대하고 그래?" 동시에 후배 우지원(46)과 김훈(46)이 입을 모아 "아 그러니까"를 외치며 웃는다. 막내 서장훈(45)은 맏형의 항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랜만에 잡아 본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슛 시도가 번번이 링을 빗겨가자 주변의 야유가 쏟아진 것은 물론. 그런 동생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문경은은 갑자기 쓸쓸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너희는 아직 선수 더 해도 되겠다. 나만 망가졌어, 나만." 폭소로 시작해 감동으로 끝난 현장. 프로농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1994년, 농구대잔치에서 성인팀들을 줄줄이 꺾고 대학팀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연세대 농구부의 주역들이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 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그들이 과거의 영광을 함께 일군 연세대 체육관. 최신식 시설로 변모한 모교 코트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다섯 영웅은 "정말 오랫만에 모였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색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함께한 동지들과 조우한 기쁨에 입가에 번진 미소가 사라질 줄 몰랐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독수리 5형제'의 재회를 이들만큼이나 감격에 젖어 바라보던 인물이 이 인터뷰 현장에 동석했다. 코트에서 활약하던 다섯 선수의 모습을 농구장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환호했던 '오빠부대' 출신 기자다. 1994년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연세대 농구부의 인기를 한복판에서 체감했던 증언자로서 그들의 재회 소식을 듣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연세대 농구부의 승승장구 비결을 분석한 책이 출간되고, '오빠들'의 사진이 담긴 화보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던 시절이다. 대학생 농구선수들이 갈대밭을 배경으로 풋풋한 미소를 지으면서 TV 광고에 등장했고, 그들의 브로마이드를 별책부록으로 끼워주던 하이틴 잡지들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같은 반 학생들은 종종 "이상민이 잘 생겼냐, 우지원이 잘 생겼냐"는 화두로 언쟁을 벌였고, 김훈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책상 위에 세워 놓고 수업을 받던 친구도 있었다. 스포츠신문을 통해 공개된 그들의 애창곡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의 애창곡으로 바뀌었다. 요즘 아이돌그룹 팬들이 얘기하는 '덕질'의 기초가 그들로 인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구장과 체육관은 물론이고 신촌 이화여대 후문 근처에 있던 농구부 숙소 앞까지 늘 소녀팬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세대 농구부 매니저는 선수단 관리보다 팬 통제로 더 애를 먹었을 정도다. 다섯 선수의 집까지 찾아가 무작정 '오빠'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팬들도 많았다. 때로는 선수의 부모들이 팬들을 집 안으로 불러 들여 밥을 먹이기도 했다. 문경은은 "어느 날은 합숙 끝나고 집에 갔더니 팬들이 우리 어머니랑 차를 마시고 있더라"며 웃었다. 확실히 웬만한 아이돌그룹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대단한 열풍이었다. 연세대 농구부가 한국 스포츠 역사에 가장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된 이유는 단순히 '인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정도 외모에 이 정도 기량을 가진 선수 다섯 명이 차례로 입학해 같은 시기에 뛸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연세대와 한국 농구에는 '천운'이었고, 또 그런 다섯 명이 완벽한 팀워크와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면서 성인 무대 최강의 자리까지 정복한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던 발자취다. 실력과 스타성 면에서 도무지 흠 잡을 데가 없는 '완전체'였던 셈이다. 그런 이들은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기념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졸업 이후 한 번도 카메라 앞에서 함께 인터뷰한 적이 없다는 다섯 명을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해 일간스포츠 스포츠팀 최용재·김희선·김지한 기자가 역할을 나눠 섭외에 나섰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활약하고 있는 다섯 사람의 일정을 조율하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 하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엔 어떠한 노력도 다 쏟아 붓는 것이 일간스포츠의 자세다. 무엇보다 다섯 명 모두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다면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흔쾌히 마음을 열면서 '독수리 5형제 리유니언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대선배들의 '합체' 소식을 들은 연세대 농구부 은희석 감독은 밤늦은 시간에도 흔쾌히 체육관 문을 열어 주며 힘을 보탰다. 그렇게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김훈, 서장훈이 25년 만에 연세대 체육관에 나란히 서는 명장면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났지만, 이들의 역할은 과거와 같았다. 언제나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선배였던 문경은은 여전히 아이돌 그룹의 리더처럼 후배들을 진두지휘했다. "팬들이 준 종이학 20억 마리를 함께 놔뒀더니 알을 낳아서 30억 마리로 불어났다"는 문경은의 '아재 개그'에 연세대 체육관이 떠나가라 웃음이 터졌을 정도다. '컴퓨터 가드'라 불릴 만큼 명석한 경기 리드와 자로 잰 듯한 패스가 일품이었던 이상민은 이날도 인터뷰의 완급을 조절하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다. 대화가 여기저기로 잔가지를 뻗칠 때마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 방향을 잡았고, 진지함과 익살의 밸런스를 맞추는 역할도 했다. 여성팬이 가장 많았던 선수로 인정 받은 우지원은 3점슛처럼 적절하고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풀어 놓으면서 모두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좋은 미소를 뽐내는 김훈 역시 활발한 입담을 뽐내는 선배와 후배들에게 연신 엄지를 치켜 세우면서 지원 사격했다. 한국 프로농구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인 서장훈은 '황금 막내'의 위용을 뽐냈다. 골밑에서 당대 최강 센터로 군림했던 그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도 '센터'에 앉아 때로는 과감하고 때로는 조심스러운 화법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행여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 나올 때면 "이건 기사에 나가면 안되겠다"고 센스 있게 막아내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오후 9시에 시작돼 11시를 넘겨서까지 이어졌던 추억 여행.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두 시간 남짓 동안 그들과 기자들은 모두 1994년으로 돌아가 과거의 찬란했던 기억들을 되짚었다. 이제 어느덧 40대가 된 독수리 5형제와 왕년의 소년·소녀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우지원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렇게 우리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행복했다.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우리도 그랬다. 다섯 명이 함께 마주보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감격했다. 서장훈은 "앞으로 우리도 계속 나이를 먹을 텐데, 더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앞으로도 더 자주 보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늘 환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배영은 기자 [창간 50 단독인터뷰]①'25년' 만에 뭉친 연세대 농구 5인방 "이상민과 우지원, 누가 더 인기가 많았냐고?"[창간 50 단독인터뷰]②'25년' 만에 뭉친 연세대 농구 5인방 "최고 권위 대회서 대학생이 우승한 최초 사례"[창간 50 단독인터뷰]③'25년' 만에 뭉친 연세대 농구 5인방 "1994년, 그런 날이 다시 올까요" 2019.09.25 06:00
경제

최순실 "내가 사회적 물의 일으켜 딸 망가졌다"

최순실씨가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학사 과정에 특혜를 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숙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엄마의 욕심으로 (딸을 이화여대에) 보내보려고 해서 교수들이 고통받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14일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 심리로 열린 김 전 학장의 항소심 재판에서 증인 신문이 끝난 뒤 발언 기회를 얻어 "교수들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재판부가 배려해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씨는 또 "내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딸이 망가지고 고등학교 학적도 뺏겼다"며 "(딸이) 벼랑 끝에 몰려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 딸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안민석 의원이 온갖 곳을 쑤시고 다니면서 (의혹에 대해) 알아봤다"며 "그래서 학교에 기자들이 찾아와 딸이 학교에 못 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이날 재판 증인신문 과정에서 정씨의 이대 입학·학사와 관련한 특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김 전 학장의 변호인이 "2014년 9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정유라가 이대에 지원했으니 입학할 수 있게 김 학장에게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느냐"고 묻자 최씨는 "저는 전혀 (부탁을) 한 사실이 없다"며 "김 전 학장이 당시 건강과학대학 학장인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답변했다. 또 2015년 하반기와 2016년 초에 이대를 방문했을 때 상황에 관한 질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김 전 학장과 수차례 통화한 이유를 묻자 최씨는 "전화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검찰과 특검이 나를 격리해 약으로 버티고 있어서 며칠 전 일도 잘 기억나지 않으니 이런 것은 묻지 말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정씨가 이대에 입학하고 부실한 학사관리에도 불구하고 성적을 받을 수 있게 특혜를 준 혐의(업무방해 등)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달 22일과 26일 공판을 열고 정씨에게 특혜를 주는 데 관여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받고 항소심 진행 중인 체육과학부 이원준·이경옥 교수 등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예정이다. 2017.09.15 10:15
경제

정유라 “이대 입학 취소 당연하다…최순실과 대통령일 몰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탑승한 대한항공 비행기가 31일 오후 2시 40분쯤 인천공항 활주로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입국 심사·세관검사를 마치고 오후 3시 16분 탑승교에 모습을 드러낸 정유라씨는 포토라인에서 "애기가 거기 너무 혼자 오래 있다보니가 오해도 풀고 빨리 해결하는게 나을꺼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스마일 티셔츠로 논란이 됐던 정유라씨는 외투로 티셔츠를 가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의 지원에 대해서 정유라씨는 "삼성이 승마를 지원하는데 6명 중 한명이라고만 들어서 그런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입학 비리에 대해서는 "저는 학교를 안 갔기 때문에 입학 취소가 맞다. 전공이 뭔지도 모른다. 한 번도 대학교를 가고 싶어한 적이 없다. 입학 취소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면접에서 금메달과 단복을 입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단복을 입고 가지 않았다. 임신 중이라서 단복을 입은 적이 었다. 다른 사람이 입었다 메달을 듥 갔던거는 중앙대에도 들고 갔던 거 같다. 어머니가 들고 가서 입학 사저오간 하는 분한테 물어보고 가지고 가도 된다고 햇 가지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아들 체류 비용과 변호사 비용은? "그건 제가 모른다. 저는 안에만 있어서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 최순실 재판을 보면서 어떤 심경이었는지? "하나도 전해 들은 것이 없다. 어머니가 아직 형을 받는 재판을 안했다는 얘기만 들었다" 정유라씨는 지난해 9월 28일 독일에서 덴마크로 이동해 사실상 도피 생활을 시작한 지 245일 만에 한국으로 압송됐다. 덴마크 경찰에 체포·구금 이후 151일 만이다. 정유라씨의 23개월 아들은 덴마크에서 보모와 함께 머물고 있다. 검찰은 입국 절차를 마치고 차량을 이용해 정유라씨를 바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할 계획이다. 검찰은 다음달 1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7.05.31 15:28
경제

[속보] 덴마크 검찰 “정유라, 한국으로 송환될 것”

덴마크 검찰은 17일(한국시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거취에 대해 “한국으로 송환될 것”이라고 결정했다.덴마크 검찰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정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면 정씨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할지도 모른다고 정씨의 변호인이 밝힌 바 있다. 정유라 씨의 변호인 피터 마틴 블링켄베르는 “최근 덴마크 법원이 정씨를 송환해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그다음에는 정치적 망명”이라고 지난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밝혔다.블링켄베르 변호인은 “정씨가 분명히 어머니 최씨와 연관돼 있고, 최씨는 파면된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면서 정씨가 한국에 돌아가면 자신에 대한 매우 큰 반감을 경험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블링켄베르 변호인은 또 “정씨의 안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씨가 어머니 최씨의 입을 열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검찰이 정씨를 자금세탁, 동물학대 혐의, 탈세 의혹까지 있는 ‘피의자’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망명’은 절차상 수년 뒤에나 신청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UN 난민 인정 기준 편람’과 유럽 ‘더블린 조약’에 따르면 혹여 신청하더라도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정씨는 이화여대 부정 입학, 학사 비리 등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월 덴마크 올보르에서 체포돼 현지 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태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7.03.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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