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배구조 개편한 현대중공업 정기선, 인수합병 불허에도 느긋?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이 유럽연합(EU)의 반대로 불발됐다. 한국 조선산업의 재편으로 세계 경쟁력 강화를 꾀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는 비교적 느긋한 입장이다. 국내 조선업은 인수합병을 통해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에서 ‘빅2’로 재편을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EU는 독과점 우려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합병에 반기를 들었다. 13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EU 반독점당국은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지주 조선·해양 중간지주사)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 승인을 거부했다. EU는 인수합병이 화물 선박 공급을 제한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불허를 결정했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수송 선박 건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LNG 선박 건조에 특화된 대우조선해양은 이 분야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갖고 있다. 양사의 인수합병이 성사될 경우 LNG 운반선 분야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세계 점유율은 60%가 넘어 EU는 LNG 시장 독점을 우려했다. EU의 승인이 인수합병의 선제 조건이었다. 이로써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은 불발됐다. EU 당국은 2019년 12월 기업결합 심사를 개시했지만 이후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심사를 세 번이나 일시 유예했다가 2년 2개월 만에 결국 반대표를 던졌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대표는 지난 6일 세계 최대 전자·IT 박람회 'CES 2022'에서 인수합병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이와 관련된 질문에 “대우조선과의 기업결합은 단순히 기업 간 M&A가 아니라 조선산업의 체질을 개선시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분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대규모 수주로 일감을 채워놨고, 선주들도 견고한 발주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히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 것이라고 본다. 한국 조선업계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EU의 승인 거부에 대해 "EU 공정위원회의 결정은 비합리적이고 유감스럽다. 향후 최종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 한국조선해양 설립과 현대중공업 상장 등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끝낸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서는 조급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인수합병이 성사되었다면 산업은행과 약속했던 1조50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 현대중공업지주로선 합병 시 야기되는 자금 투입과 노조 반발 등을 고려하면 무산되더라도 크게 손해를 볼 게 없다. 또 현대중공업지주는 EU의 구제조치 세부 방안 요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EU 집행위도 "독점 문제와 관련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제 급한 건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다. 인수합병이 불발되면서 산업은행은 계속해서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을 쏟아부으며 인수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자금 수혈이 급한 상황이다. 1년 이내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만 1조원이 넘는다. 정기선 대표는 100년 기업을 향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그는 "1972년 창립된 현대중공업그룹에 2022년은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 새로운 50년을 시작하는 해"라며 “지난 50년 세계 1위 조선기업로 성장한 현대중공업그룹은 인류를 위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퓨처빌더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2.01.14 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