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김인식 클래식] "이동도, 운영도, 정신력도…아쉽고 안타깝다"
한국 야구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하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안타깝다. 대표팀의 잦은 이동이 아쉽다. 2월 14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합숙 훈련을 시작, 3월 1일 귀국해 고척돔에서 훈련과 평가전을 치르고 4일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과정에서 항공기 기체 결함으로 미국 현지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귀국이 지연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왜 미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필자가 지휘봉을 잡은 2006년 1회 대회를 앞두고선 2월 19일부터 2월 27일까지 일본 후쿠오카 야후돔을 빌려 미리 적응 훈련을 했다. 2회 대회 때는 하와이서 전지훈련을 실시한 뒤 곧바로 대회가 열리는 일본으로 향했다. 긴 여정 탓에 선수들의 피로가 쌓여 정작 대회 기간 제대로 기량을 펼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벤치의 전략과 운영도 아쉽다. 이강철 감독과 선수 모두 첫 소집부터 "호주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호주전에 투수진을 다 쏟아붓겠다는 '올인 전략'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일본의 전력을 감안하면 옳다. 그런데 대표팀이 호주전 4-2로 앞선 7회 초 역전을 허용했다. 결국 마운드 운용의 실패였다. 컨디션이 가장 좋은 투수를 넣었다면 막지 않았을까. 일본전 역시 마운드 운용이 아쉬움을 남기긴 마찬가지였다.
호주전 7-8 한 점 차로 뒤진 9회 말 찬스도 놓쳐 아쉽다. 선두 타자 토미 에드먼이 안타를 치고 출루했다. 후속 김하성은 강공 작전 속에 3볼-1스트라이크에서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이때 희생 번트 작전을 펼쳤으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인조 잔디 구장의 도쿄돔은 내야 땅볼이 나오면 병살타로 이어질 확률이 굉장히 높다. 2009년 WBC 때 도쿄돔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일본 하라 다츠노리 감독은 1사 1루에서도 번트 작전을 펼치더라. 만일 우리가 9회 번트 작전을 펼쳤다면 병살타를 사전에 차단하고, 주자를 득점권에 둬 상대를 압박함에 따라 득점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1사 2루에서 컨디션이 좋은 이정후가 찬스를 맞을 수 있었다. 일본전 역시 3-4로 뒤진 5회 초 무사 1루, 에드먼이 1볼에서 희생번트에 실패하자 강공으로 전환했다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한 차례 더 번트 작전을 이어 나갔어야 한다. 결국 5회 동점에 실패했고, 이어진 수비에서 2점을 뺏긴 끝에 4-13으로 크게 졌다. 반면 일본은 체코를 상대로도 번트 작전을 펼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점수를 쌓아 나갔다. 우리 벤치와 달랐다. 이번 코치진이 과거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경험과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물론 우리 선수들의 기량도 과거 선배들보다 부족하다. 예전 대표팀에는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조금 많았는데, 지금은 아주 적다. 젊은 선수들이 아직 베테랑을 넘어서지 못해 세대교체도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선수들의 정신력과 책임감도 과거에 비하면 떨어진다. 2009년 WBC 준우승 이후 미국과 일본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관심이 커졌다. 김태균과 이범호가 해외에 진출했다. 이어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이후 박병호, 김현수 등이 미국 메이저리그(MLB)로 건너갔다. 에이전트 제도가 본격 도입된 건 2018년이지만, 그전부터 선수들과 접촉 중이었다. 몸값과 대우가 올라가면서 선수들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을 현장에서 느꼈다. 선수들이 붕 뜨기 시작했다. 또한 예전에는 태극마크를 달면 자랑스러워 하고 큰 영광으로 여겼는데, 지금은 책임감과 애국심이 다소 사라진 것 같다. 야구 원로의 잘못된 인식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국가대표 감독은 오랜 지낸 필자의 느낌은 그렇다. 선수들이 책임감과 프로 의식을 함양하도록 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한다.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 역시 이번 대회 부진을 통감한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 정리=이형석 기자
2023.03.15 0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