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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조센징 행복하자" 혐한 표현 쓴 최성근, 뭇매 맞고 사과

프로축구 선수 최성근(29·수원삼성)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했다. 최성근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팀 동료인 조성진, 김민우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며 "조센징 행복하자"는 문구를 남겼다. 동료 선수인 조성진을 겨냥해 쓴 듯한 '조센징'은 '조선인'의 일본식 발음이다. 과거 조선인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이 표현을 사용할 경우 혐한 감정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앞서 지난해 8월 일본 화장품 기업 DHC의 자회사인 'DHC테레비'가 "조센징은 한문을 문자화하지 못했고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해 지금의 한글이 있다"는 거짓 주장을 실은 유튜브 콘텐트를 내보냈다가 한국 소비자들의 비판을 받고 사죄한 바 있다. 이날 국내 프로축구 선수인 최성근 또한 '조센징'이라는 혐한 단어를 언급해 축구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팬들은 "어떤 의도로 저런 단어를 쓴 거지?", "친구 별명을 조센징이라고 짓는 것도 신기", "한 구단의 부주장이라는 선수가 참 대단하네" 등 의견을 남겼다. 논란이 이어지자 최성근은 3일 같은 공간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최성근은 "부족하고 생각이 짧아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며 "앞으로 더 주의하고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저희 팀 동료와 구단 관계자, 팬분들께 좋지 않은 모습 보여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최성근은 2009년과 2011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20세 이하) 월드컵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12년 일본의 J2리그(2부리그) 반포레 고후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뒤 2016년까지 일본에서 활동했다. 2017년 국내로 이적해 수원 유니폼을 입고 K리그1(1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2020.02.04 07:55
연예

[단독]정유미, DHC 계약금 반환하며 계약 강제 종료

배우 정유미가 계약금을 뱉어내며 DHC와 계약을 강제 종료한다.한 광고계 관계자는 지난 30일 일간스포츠에 "정유미가 혐한 방송으로 논란이 된 DHC 광고 계약을 6개월여 미리 끝낸다"고 밝혔다.이어 "최초 2년 계약을 했고 이로인한 광고 모델료를 모두 받은 상태다. 남은 6개월에 대한 광고 계약금을 반환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지난달 일본 브랜드 DHC는 자회사 'DHC 텔레비전'을 통해 혐한 발언을 쏟아냈다. 'DHC 텔레비전'에 출연한 패널은 한국의 일본 불매 운동에 대해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니까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보자'고 했다. 또 다른 일본인은 '조센징'이라는 비하 발언까지 뱉으며 '조센징은 한문을 썼는데 한문을 문자화하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한글로 배포했다.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 지금의 한글이 됐다'고 떠들었다. 심지어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내가 현대 미술이라고 소개하면서 성기를 내보여도 괜찮은 거냐'고 말했다.이는 대중의 공분을 샀고 DHC 제품불매 운동으로 번졌다. 정유미는 지난해 계약해 DHC 얼굴로 활동했다. 모델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대중의 비난 화살은 정유미에게 향했다. 일본 불매 운동 전 모델 계약을 해 아무 상관없으나 일부 네티즌에 의해 정유미가 표적이 된 셈.정유미와 소속사 에이스팩토리 측은 'SNS에 게재된 DHC 제품 사진은 기존 광고 계약에 포함된 조항이다. 하지만 이번 DHC 본사 측 발언에 중대한 심각성을 느껴 초상권 사용 철회와 모델 활동 중단을 요청했다. 정유미 SNS 내 DHC 관련 게시물도 삭제한 상태. 해당 기업과 재계약 역시 절대 없을 것이다'고 선언했다.여기서 나아가 계약 종료 전 모델료를 반환하면서까지 DHC와 인연을 싹둑 잘랐다. 국내 연예인이 이 같은 결정을 한 건 흔치 않는 일. 대부분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지만 정유미는 한일 정서 및 DHC 측의 몰상식한 태도에 대해 적극 대응한 셈이다.정유미가 뱉어야 할 6개월여 모델료도 수천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광고 관계자는 "정유미의 기본적인 몸값이 있고 그 중 6개월이나 돌려주는 것이기에 수천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2019.10.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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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역사속의 명마·기마대 35. 폴란드 ‘포모로스케 기마대’

유럽인들이 폴란드 사람을 비하하는 폴락(polack)이라는 말을 쓴다. ‘멍청한 폴란드인’이란 뜻으로 의역되기도 하는데 한국인이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을 때 분노하는 것처럼 폴란드인들도 싫어하는 단어다.이런 비하어가 자리잡은 것은 '기창(기병창)으로 무장한 폴란드 기마대가 독일의 기갑사단에 무모한 돌격 공격을 감행했고 전멸했다'는 잘못된 사실이 널리 알려진게 큰 몫을 했다.하지만 이 루머는 여전히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1939년 8월 31일 독일은 폴란드 침공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일명 '통조림 작전'을 사용했다. 통조림 작전은 일본이 만주사변의 빌미로 사용한 '노구교 사건'과 거의 일맥상통한다. 독일군은 죄수 13명을 폴란드군 복장으로 갈아 입혀 폴란드 국경 근처에서 사살한다. 그리고 폴란드가 독일을 침공했다고 선전하며 이 사건을 핑계로 독일은 9월1일 폴란드에 선전포고 했다. 폴란드 정부는 개전 4일째인 9월4일 수도 바르샤바를 버리고 루마니아로 망명했고 9월 17일에는 소련까지 폴란드를 침공했다. 결국 9월27일 폴란드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고 10월 5일 모든 전투는 끝났다. 독일과 소련은 부그강을 새로운 국경을 정했다. 패전한 폴란드 병사들은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 폴란드 군단으로 독일에 항전했다. 이 한달간 폴란드의 자랑인 창기병(울란·Uhlan)연대 '포모르스케 기마대'(폴란드의 창기병 연대 명칭)는 독일군과 싸움을 벌였다. 당시 폴란드의 포모르스케 기마대는 2000여명이었다. 포모르스케 기마대는 유럽 전쟁사에 다수 출현해 승전을 이끌었을 정도로 자존심과 명성이 대단한 기마대다.포모로스케 기마대가 독일 보병 부대에 대해 돌격한 것은 16차례 정도로 기록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전투에서 성공적인 전과를 올렸다. 포모로스케 기마대는 자신들의 장점인 기동력을 이용한 기습작전으로 선전했는데 불시에 기습을 당한 독일군 보병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폴란드 기마대가 창을 들고 탱크에 대항했다'는 이야기는 16차례 돌격 중 한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숲 속에서 휴식 중이던 독일 보병들에 기마대가 돌격을 감행했다. 이때 뒤늦게 독일 기갑사단이 나타나 협공(독일군의 작전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알 수 없다)을 해왔다. 폴란드기마대는 선택의 여지없이 달려오는 적의 전차들과 일시에 맞닥뜨렸고 결국 전멸했다. 특히 기마대 중 탱크에 돌격전을 펼친 것은 사면초가에 빠진 폴란드 군이 소수의 희생을 통한 다수의 생존을 위한 작전중 하나라는 평가도 있다. 당시 폴란드 창기병들은 여전히 울란이라는 명칭을 쓰고는 있었지만 주무장은 라이플과 경포였다. 또 창을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는 전통을 중시여기는 병사들이 선택한 무기일 뿐이다. 또 이들은 대전차 화기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폴란드에는 총 170만명에 이르는 군사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개념과 전차·폭격기로 무장한 독일에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은 아직 구식군대에서 신식군대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있었다. 채준 기자 2011.11.18 14:07
스포츠일반

[기획취재] 장훈의 눈물 그리고 웃음

덩치 큰 사나이가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진한 감동이 넘쳐 흐르는 순간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인 장훈 씨(65)가 울었다. `박치기 왕` 김일 씨(78)를 보고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운 감정이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힌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김일 선배님, 선배님 ….` ■눈물과 기쁨의 교차 김일과 장훈. 1960~1970년대 일본 프로레슬링과 프로야구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두 거목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설움이 심했던 당시 한국인들의 한과 상처를 씻어 준 영웅이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조센징`이 스타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 거부하기 힘든 흐름을 거스르고 두 사람은 레슬링과 야구로 일본 열도를 평정했다. 한국민에게 진한 감동과 기쁨을 안겨 줬던 두 사람이 지난 2월 27일 오후 9시 도쿄 롯폰기(六本木) 차이나 레스토랑 `로가이로`에서 해후했다. 34년 만이다. 1972년 6월 김 씨가 동경에서 인터내셔널 헤비급 챔피언을 획득했을 때 장 씨가 경기장 라커로 직접 찾아와 "한국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쳐 축하드린다"며 술을 따랐을 때가 마지막 만남이었다. "아~, 김일 선배님! 이게 몇십 년 만입니까." 그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김 씨의 손을 꼭 잡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휠체어에 앉았던 김 씨도 그 순간만은 벌떡 일어났다. 레슬링 후유증으로 15년 동안 투병 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김 씨의 손을 잡고 놓을 줄 모르던 그는 이내 눈시울을 붉히더니 곧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또 이날의 만남이 믿기지 않는 듯 "야, 야! 이게 꿈입니까"라고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일주일 전 (김일) 선배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만날 날을 손꼽으며 들떠 있었다"면서 "요코하마에서 볼일을 본 후 승용차로 시속 150km 속도를 내며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3.1절을 이틀 앞두고 만났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어 했다. 그것도 일본 중심가에서. 그는 "선배님, 우리가 몇 년, 몇 년 만입니까"라며 손가락으로 연도를 세며 지난 세월의 흐름을 되새겼다. 그는 "일간스포츠(IS)가 마련한 김 씨의 일본 방문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만남의 시기가 얼마나 또 늦춰졌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추억을 더듬고 특히 34년 전의 빛바랜, 일간스포츠가 준비해 간 흑백 사진 두 장을 보며 깜짝 놀라워했다. 두 장 모두 모두 김 씨가 72년 세계 정상에 섰을 때 사진. 한 장은 장 씨가 김 씨에게 술을 따르며 축하하는 것이며, 또 한 장은 라커에서 찍었던 기념 사진이다. 장 씨는 일간스포츠 취재진에게 "어디서 이 사진을 찾았느냐. 나도 없는 사진이다. 이 소중하고 값진 사진을 내게 줄 수 있느냐"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취재진은 곧바로 장 씨에게 이 사진을 선물했다. 그는 김 씨를 비롯해 이날 자리를 같이 했던 이노키 등과 함께 이 사진을 보면서 "선배님은 대단한 레슬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질퍽한 농담도 건넸다. 김 씨 부인 이인순 씨(60)에게 "우스갯소리 하나 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한 뒤 "선배님이 가장 `컸고`, 정력도 좋았다"라고 농담, 참석자들이 파안대소했다. ■사나이 중 사나이 장 씨는 또 이날 이노키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그는 "일본 사람들 중 50%는 이노키가 `좋은 사람이다`고 하고, 또 50%는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다`고 해서 난 어느 쪽일까 판단이 안 섰다. 하지만 오늘 그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난 병마와 싸우는 선배님을 한 번도 찾아 뵙지 못했다. 하지만 이노키 씨는 한국을 두 차례나 방문, 선배님을 병 문안했다. 특히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선배님을 보기 위해 멀리 호주에서 날아왔다"라고 까닭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노키를 향해 "안타, 오토고야(당신 진짜 남자야)"라고 말한 후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챔피언이다. 당신을 새로 봤다"라고 치켜세웠다. ■감동의 바다 김일 씨의 후계자 이왕표 씨는 "두 분의 만남은 감동 그 자체였다. 두 분은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런 두 분이 3.1절을 앞두고 일본 땅에서 만났으니 그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진 히데토시 요시프로모션 상무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일본 엔카 가수 가오리(33)는 "오늘 김일 씨가 이노키.장훈 씨와 만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김일 씨가 정말 위대한 선수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가오리는 이어 "한국을 새로 생각했다. 노래를 통해 한국과 일본 사람들에게 감사함과 따스함을 전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가오리는 일본 엔카 국민 가수 요시 이쿠조와 함께 엔카와 한국 전통 트로트를 번갈아 불러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수다. 한편 일본서 하룻밤을 보낸 김일 씨는 28일 오후 도쿄의 오타구 이케가미역 부근 사찰 혼몬지(本門寺)에 위치한 스승 역도산 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참배에는 역도산 제자 등 10여 명이 동행했다. 도쿄=정병철 기자 2006.02.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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