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스타에게 묻는다 ①] 최향남 “빠른 인터벌, 난 준비 끝났다는 의미”
메이저리그 300승 투수 톰 글래빈(46)은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나이 서른 아홉에 메이저리그를 향한 꿈 하나로 두 번째 미국행을 택했던 최향남(41·KIA)의 열정을 스피드건으로 찍는다면 구속은 얼마나 될까. 최향남은 "아직도 내 공은 완성되지 않았다"며 "조금 더 오랫동안 마운드에 서고 싶다"고 했다. 팬들은 최향남의 파란만장 인생사와 느린 직구, 마운드 위에서 짜증 가득한 표정과 '퇴근 본능'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야구선수 나이로 환갑을 넘겨 칠순에 가까운 마흔 한 살의 최향남은 뒤늦게 받은 팬들의 관심에 감사를 표하며 올 시즌 그의 평균자책점(0)처럼 거리낌 없는 대답을 내놨다. -지난달 KIA 재입단이 결정됐을 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요즘 반성하고 있다.(ID:기아XXX)"팬들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나는 KIA가 아닌 다른 팀에도 입단 신청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게 나의 현실이었다. 중요한 건 기회가 왔을 때 그런 현실을 극복해내는 것이다. 마운드에서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당연히 다시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최향남 영입은 선동열 KIA 감독 최고의 한수다.(ID: 둥글XX)"감독님만이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셨다. 내 공을 보고 '아프지만 않으면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특히 중요한 상황에서 더 힘을 내는 나의 '싸움닭 기질'을 잘 살려주셨다. 이기는 상황, 박빙인 상황에서 나를 선택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마운드에서 더 힘을 낼 수 있었다."-KIA의 어린 투수들과는 타자와의 승부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ID:섹쉬XX)"어차피 타자들을 매번 이길 수는 없다. 가끔 여러 번 연속으로 지면서 자신감을 잃을 때가 있는데 그때 자기 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주 말한다. 마운드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롯데 투수 이용훈과 2군에서 같이 뛰며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다. 요즘 양팀에서 가장 핫한 투수들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ID:루트XX)"나와 (이)용훈이는 같은 부위(팔꿈치)가 아팠다. 용훈이가 계속 던지면 아프지 않다고 해 나도 포기하지 않고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용훈이가 잘 해서 정말 좋다. 용훈이는 참을성의 화신이다. 나이도 있고 공도 좋은데 2군에 오래 머무르면서도 묵묵하게 참아내며 공만 던졌다. 그런 열정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올해부터였다." -최향남 직구엔 뭐가 있는 건가. 빠르지도 않고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데 타자들이 손을 못 댄다.(ID: 잠실XXX)"나는 어떤 공을 던질지 미리 계산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답이 나와 있기 때문에 빠른 템포로 공을 던질 수 있고, 볼 하나를 던지더라도 의미 없이 던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공에는 1구1구마다 스토리가 있다. 높은 공을 던져도 실투가 아니라 다음에 낮은 공을 던지기 위한 포석이라면 위험하지 않다. 공 하나만 보면 내 직구는 위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를 보면 내 직구는 나쁘지 않다."-공을 던지는 게 아니고 '내 인생을 받아봐라!'하고 던지는 것 같다.(ID: 대대XX)"2006년 미국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클리블랜드 산하 버펄로 바이슨스에서 34경기 8승5패, 평균자책점 2.37)을 거뒀는데 공 하나에 모든 걸 걸고 던지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는 뒷일 생각하지 않고 지금 던지는 공 하나에 모든 걸 걸고 있다. 인생을 던진다? 표현은 다르지만 다 걸고 던지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느끼시는 게 아닐까."-'슬라이더'가 가끔 떨어지지 않고 떠오르는데 어떤 그립으로 잡나.(ID:헨리XX)"슬라이더의 변형이다. 컷패스트볼을 제대로 던지지 못해 슬라이더에만 집중하다가 만들어진 공이다. 그립은 다른 투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공을 놓기 전에 내 나름대로 작은 변화를 준다. 기본적으로 모든 공은 떨어진다. 그러나 그게 덜 떨어지면 포수 미트에 그대로 꽂히는 거고 회전을 조금 많이 주면 아주 약간 밀려 올라갈 수도 있다." -한 번이라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은 없나.(ID: paXXXXX)"아쉬움은 있지만 마음에 담아두고 싶지는 않다. 2006년에 내 실력이 부족해서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어차피 하늘의 뜻이다. 하늘의 뜻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물론 현실적으로 이제는 어렵다는 걸 안다. 지금 나는 KIA에 있고 여기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아쉬움은 앞으로 오랫동안 마운드에서 좋은 공을 던지면서 지워나가고 싶다."-인생사를 보면 자유로운 영혼 같다. 가족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ID:대소XXX)"한국에만 있었으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아마도 지금은 야구를 그만뒀을 것이다. 가족은 그걸 더 힘들어했을 것 같은데.(웃음) 나는 영혼이 자유롭기 때문에 그런 도전을 했던 게 아니었다. 도전은 내 인생에 필연이었고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족이 힘든 순간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지 않았나."-세월의 모진 풍파에 훼손된 느낌이 아니고 오히려 조각같이 단단하게 다져졌다는 느낌이다.(ID: 우리XXXX)"2003년 부상으로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당시 나의 몸과 팔은 야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목표 하나가 있어 한눈을 팔지 않고 야구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 10년 가까이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단단해졌다는 건 마운드에서 집중력이 있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투구 속도도 빠르지만 말도 빠른 것 같다. 원래 성격이 급한가.(ID:갸XX)"뭔가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이해하면 빨리빨리 하는 스타일이긴 하다. 안되는 게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드는 집착도 있다. 야구는? 이해하는 데 평생이 걸리지만 이해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나에게 운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긴장하고 몰두하면서 야구를 한다."-미국에 안가고 한국에 있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텐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ID:bgyuXX)"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을 기회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돈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것이다. 내가 80년 인생을 산다고 할 때 FA로 얻는 돈을 통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빅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FA를 포기하고 미국행을 택했다. 살아가는 데 건강한 몸과 열정만 있다면 먹고 살 만큼 돈을 벌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광주=유선의 기자 sunnyyu@joongang.co.kr
2012.07.17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