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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 이범호는 하이볼을 어떻게 쳤나 

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타자 혼자만의 힘으로 안타를 칠 수 있을까? 아니다. 타자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타구를 만드는 것까지다. 배트를 떠난 타구는 상대 수비력과 그라운드 상태, 그리고 운에 따라 페어볼-아웃으로 엇갈린다. 메이저리그(MLB)가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 인플레이 타구의 안타 비율) 지표를 꽤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그래도 타자는 최선을 다한 뒤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좋은 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스윙이 필요하다. 물론 좋은 스윙을 해도 안타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타격이다.마음이 급해져서 나쁜 공을 건드리는 것이야 말로 타자가 피해야 할 일이다. 볼을 따라다니면 스윙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이게 반복되면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날아오는 공도 정확히 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타자는 자신에게 맞는 메커니즘을 완성하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자신의 스윙이 왜 이렇게 변화했는지 그 과정까지 이해한다면 어느 날 밸런스가 흔들리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야구에서 흔히 일어나는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보자. 무사 주자 3루일 때 가장 쉬운 득점 방법은 뭘까? 타자가 희생 플라이를 날리는 것이다. 약간 빗맞더라도 타구를 띄워 외야로 보내면 타점을 올릴 수 있다.그러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외야 플라이를 때리는 장면보다, 내야 땅볼을 치는 경우가 내 기억에는 더 많다. 이 경우 내야수들이 정상 수비를 했다면, 3루 주자가 득점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내야수들이 전진 수비를 했다면, 주자가 홈을 밟기 어렵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타구 발사각을 높이려고 타자가 어퍼컷 스윙을 하면 공의 윗부분을 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지난 연재에 설명한 바 있다.이건 타자의 의도와 다른 결과다. 땅볼로 타점을 올렸다고 그냥 넘어갈 게 아니라 왜 그랬는지 타자는 복기해야 한다. 왜일까? 타자가 막연히 생각하는 스윙 궤적이 실제 타격과 다르기 때문이다. 뜬공 치려다 땅볼 치는 이유투구의 코스와 속도에 따라 타자는 달리 대처해야 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투구 높낮이에 따른 스윙을 설명한다. 타자는 높은 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하이 피치(high pitch)는 다운컷, 즉 내려쳐야 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가뜩이나 높은 공을 어떻게 올려치느냐”고 묻는 것도 당연하다.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높은 공일수록 어퍼컷으로 쳐야 한다.그 이유는 높은 공을 내리치려고 하면 (오른손 타자의 오른) 팔꿈치가 상체로부터 떨어지기 때문이다. 도어스윙이다. 반대로 높은 공이라도 올려치려고 하면 팔꿈치가 몸통에 붙은 채 이동한다. 그렇게 해야 내 몸에 만든 ‘벽(오른쪽 타자의 왼 어깨부터 골반까지)’이 무너지지 않는다. 벽이 탄탄해야 인 앤드 아웃 스윙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배트 콘트롤이 잘 된다.내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타자의 스윙 궤적을 떠올려 보라. 스윙은 타자 어깨에서 내려갔다가 허리 근처에서 올라온다. U자 형태의 궤적이 너무 크면 곤란하다. 무리하게 투구를 들어 올리려다가 빗맞기 십상이다. 빠르게 내려갔다가 날카롭게, 살짝 올라오는 스윙 궤적을 만들어야 한다.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이범호 선배가 이 스윙을 정말 잘했다. 가슴 높이로 날아오는 공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반대로 낮은 공은 어떻게 쳐야 할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타자들은 “어퍼컷 스윙으로 쳐야 공을 띄울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낮은 공일수록 다운컷으로 임팩트 해야 한다. 그 다음에 공을 걷어 올려야 한다.다시 말하지만 모든 스윙은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다운컷 궤적을 만드는 게 배트와 투구 궤적이 만나는 콘택트 존을 넓게 확보하는 길이다. 그렇지 않고 낮은 투구를 찍어 쳐야 한다고 의식한다면 공의 윗부분을 때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땅볼이다. 투구 높낮이에 자세로 대응한다투구의 높낮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또 있다. 타자의 준비 자세를 바꿔서 대처할 수도 있다. 『타격의 과학』에 따르면 테드 윌리엄스는 원래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방망이를 수직으로 든 채 스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폼으로 타격하면 플라이볼이 너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윌리엄스는 허리를 조금 숙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스윙이 간결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덕분에 타격 정확성이 높아졌다고 썼다.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참 고민했다. 타자의 눈높이와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는 상관관계가 있다. 상체를 세우면, 즉 눈높이가 높으면 하이 볼이 잘 보인다. 반대로 허리를 숙여 무게 중심을 낮춘 타자라면 낮은 공에 잘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초창기 윌리엄스처럼 허리를 곧게 편 자세에서는 높은 공이 잘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높은 공에 방망이가 쉽게 나갔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이 볼에 잘못 대응하면 공의 밑 부분을 치게 된다. 그러면 타구는 힘없이 뜬다. 이런 스윙을 반복하면 (우타자의 오른쪽) 팔꿈치가 퍼져 나오기 십상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인 앤드 아웃 스윙에 실패하는 것이다.윌리엄스가 찾은 해법은 무게 중심을 낮추는 거였다. 그가 주로 노리는 코스가 스트라이크존 상단에서 중간으로 약간 내려온 것이다.나도 프로 초창기 시절 상체를 세우는 편이었다. 당시 팀 타선이 강할 때여서 나는 내 존에만 대응하면 충분했다. 장타도 많이 칠 수 있었다.그러나 내가 나이가 들고, 팀 타선이 약해진 시기에는 그럴 수 없었다. 정확한 타격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내 무게 중심은 점점 낮아졌다. 무릎을 굽혔고, 허리도 약간 숙였다. 내가 낮은 공을 다운컷하는 느낌으로 타격하라고 말한 이유는 로우 피치에 대응할 준비를 잘하기 위해서였다. 또 자세를 낮추면 하이 패스트볼이 더 높아보였다. 내 스윙으로는 높은 공을 건드려봐야 강한 타구를 만들 확률이 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난 아예 하이 볼에 스윙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성공률이 떨어지는 승부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이범호 선배와 정반대 스타일이었던 거다.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다. 방망이로 공 중심을 정확하게 때린다고 해서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타(正打)란 점이 아니라 선의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임팩트 직전까지의 스윙 궤적과 스피드가 중요하다. 공을 때리는 포인트도 정확해야 한다. 그리고 배트가 투구 힘에 밀리지 않고 전진하면서 살짝 올려쳐야 한다. 이 프로세스가 잘 이뤄져야 진짜 정타가 된다.이를 위해서는 타자의 중심 이동과 허리 회전 등 여러 요소들이 작용한다. 내가 원하는 공을 완벽하게 때리는 ‘원샷 원킬’의 스윙 위에서 코스별 타격이 이뤄지는 것이다.KBS 해설위원, 정리=김식 기자 2023.02.0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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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 오치아이와 나이키 스윙

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2006년 나는 주춤했다. 앞선 세 시즌 동안 연평균 타율 0.320, 홈런 25개를 유지하다가 그해 타율이 2할대(0.291)로 떨어졌다. 홈런은 13개였다. 2006시즌이 끝난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뭘 어떻게 바꿔야 할까.일단 기술 훈련의 기초인 티배팅 때부터 다시 시작했다. 티 위에 멈춰 있는 공을 빵빵 때리면 속이 시원하다. 재미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티배팅 훈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날아오고, 급격히 꺾이는 공을 쫓을 때 잊기 쉬운 '타격의 본질'을 생각하는 훈련이 아니겠는가.정지해 있는 공은 강하게 치기 쉽다. 세게 친다고 무조건 멀리 날아가는 건 아니다. 정확히 쳐야 한다. 그리고 타구에 회전을 줘야 한다. 투수가 패스트볼을 던질 때 강한 백스핀(backspin·역회전)을 만드는 것과 원리다. 강한 백스핀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는 공의 낙폭을 줄인다. 그러니까 공이 더 날아가게 한다.타구의 백스핀은 어떻게 생성될까. 일단 투구의 가운데를 때려 정타(正打)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배트가 공 아래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방망이는 공과 점(點)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공과 붙어 15~20㎝ 앞으로 나가는 선(線)을 그리기 때문이다. 글로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지만, 백스핀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배트를 잡은 두 손의 위치(톱 포지션)에서 콘택트 존까지의 거리가 짧아야 한다. 그리고 임팩트 후 폴로 스루(follow through)까지 배트가 살짝 올라가야 한다. 이 스윙 궤적을 옆에서 보면 마치 나이키 로고와 같다. 배트의 회전력, 코킹이 중요하다'나이키 스윙'을 만들기 위해 훈련 때 극단적으로 공을 띄우려 했다. 히팅 포인트를 몸에 최대한 가깝게 두고 간결하게 공을 때리면 강한 백스핀을 만들 수 있다. 이 스윙이 완성 단계에 이르자 배트를 갖다 대기만 해도 공이 다 떴다. 여기서 중요한 게 손목을 돌리는 동작, 즉 ‘코킹(cocking)’이다. 손목을 꺾었다가 풀면서 힘을 만드는 움직임인데, 코킹 동작을 잘 만들어놓으면 간결한 스윙으로도 파워를 전달할 수 있다. 내가 학창 시절만 해도 코킹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손목을 꺾으면 백스윙이 불필요하게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코킹을 하지 않고 곧바로 치라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 시속 150㎞의 스피드로 날아오는 투구의 힘을 이겨내기 어렵다. 요즘 투수들의 강속구를 공략하려면 배트의 회전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코킹은 파워 포지션(힘을 전달하기 위한 준비 동작)에서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타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배트를 뒤로 눕힌 채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면 공을 맞히기는 쉬우나, 빠른 공을 이겨낼 힘이 없다. 강한 타구를 만들려는 타자들은 코킹을 통해 회전력을 확보한다. 여기에 나이키 스윙 궤적이 더해지면 더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다. 이건 선택의 문제다. 코킹을 많이 하지 않고 콘택트에 중점을 두겠다고 선택한 타자는 그렇게 하면 된다. 또 나이키 스윙의 메커니즘이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하더라도 실천하기 어려우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타격에는 정답이 없다.어퍼컷 스윙이 정답일 순 없다어떤 이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넌 힘이 좋으니까 간결한 스윙으로도 강한 타구를 만드는 거 아니냐?”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프로 투수들이 던지는 투구에 대응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프로에 들어온 타자가 그 정도 파워가 없진 않다. 프로 선수라면 타고난 힘도 있고, 훈련으로 키운 근력도 있다.내 히팅 포인트는 다른 타자보다 조금 뒤에 형성되는 편이다. 내 힘이 특별해서 타이밍이 늦은 타구를 앞으로 끌고 나오는 게 아니다. 톱 포지션에서 콘택트 존까지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한 박자 늦어 보이는 타구도 안타로 만드는 것이다.결국 힘이 아니라 기술이다. 1990년대 이종범 선배가 힘으로 쳤을까. 아니다. 체격이 작은 이종범 선배는 방망이를 짧게 내려쳤다. 간결한 스윙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었다.동시대 최고의 타자 중 하나였던 양준혁 선배도 ‘어퍼컷(uppercut·투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스윙’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지면과 거의 평행한 레벨 스윙으로 정확성을 높였다. 그리고 임팩트 후 팔을 들어올리는 양준혁 선배의 ‘만세 타법’은 나이키 스윙의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201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라운드볼(땅볼)보다 플라이볼(뜬공)의 생산성이 더 높다는 건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를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날이 갈수록 그라운드 컨디션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내야 수비력도 향상됐다.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수비 시프트(타구 방향을 분석해 수비수 위치를 조정)까지 발달하면서 땅볼을 때려봐야 안타가 될 확률이 낮아졌다. 땅볼의 가치가 하락하자 타자들은 공을 띄우려 노력했고, 그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 혁명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플라이볼 혁명의 요체다.이 과정에서 어퍼컷 스윙이 유행했다. 타구를 띄우려면 콘택트 존에서 스윙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를 못 쳐도 뜬공을 날렸다면 만족한다”는 MLB 선수도 나왔다. 그러나 올려친다고 해서 타구를 띄울 수 있을까. 그 타구에 힘이 있을까.2015년 이후로 MLB 선수들은 경쟁적으로 어퍼컷 스윙을 시도했다. 성공 사례도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도 꽤 많았다. 뛰어난 성과를 낸 선수라고 해도 그게 정말 어퍼컷 스윙 덕분인지 나는 알 수 없다.이런 트렌드는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KBO리그에도 상륙했다. 2020년 전후로는 너도나도 어퍼컷 스윙을 얘기했다. 참 희한했다. 투수와 타자는 거의 그대로인데, 타격 이론이 이렇게까지 급변할 수 있는 것일까. 이론이 아니라면 유행이란 말일까.이와 관련한 얘기를 MLB에서 뛰는 최지만 선수(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나눌 기회가 있었다. “MLB 타자들이 어퍼 스윙에 신경 쓰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아니다. 어퍼컷 스윙으로는 시속 160㎞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에 대응할 수 없다. MLB 타자들도 간결한 임팩트에 집중한다. 그리고 백스핀을 걸기 유리한 스윙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어퍼컷 스윙을 하는 타자 중 좋은 선수는 내 기억엔 없다. 올려 쳐서는 절대로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임팩트 후 배트가 위로 올라가면 톱스핀(top spin)이 걸린다. 백스핀과 반대 개념인 톱스핀은 배트가 앞으로 나가면서 공의 윗부분을 때려 만들어진다. 투수가 던지는 커브가 이런 원리로 떨어진다. 톱스핀이 걸리면, 마치 탁구의 드라이브처럼 공이 점점 가라앉는다. 타자에게 좋을 리 없다.테드 윌리엄스가 이상적이라고 말한 스윙은 억지스러운 어퍼컷이 아니다. 마운드 위에서 오버핸드 투수가 던져서 만들어지는 투구 각도만큼 약간(slight) 올려치는 게 아니다. 그러면 투구와 배트가 만나는 면적(윌리엄스는 임팩트 존이라고 표현했다)이 넓어진다.내 해답은 오치아이 스윙이다그러나 과연 이게 답일까. 물론 훌륭한 스윙인 건 틀림없지만, 저게 정답일까. ‘윌리엄스 스트로크’는 이론적으로 뛰어나다. 다만 타구에 스핀을 걸긴 어렵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윌리엄스의 스윙을 피칭에 비유하자면 무회전 볼 같다. 잘 맞은 타구는 배트와 15㎝ 이상 붙어 나간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배트의 중심과 공의 중심이 붙어 있다면(마치 팜볼처럼) 잘 맞은 것 같은 타구도 외야로 날아가서는 추진력을 잃게 된다. 투수는 패스트볼을 릴리스할 때 검지와 중지로 공을 꽉 눌러서 백스핀을 만든다. 타구도 그래야 한다. 그게 깎아 치기다. 배트로 공의 중심을 정확히 맞힌 뒤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백스핀을 만드는 것이다. 배트가 공의 아랫부분을 감싸 안아 올리는 느낌이다. 공을 때린 뒤 팔을 쭉 뻗는 동작, 즉 폴로스루 과정에서 회전력을 만드는 거다. 이 스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오치아이 히로미쓰(일본)의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은퇴 후 자신의 타격 비밀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는 ‘공의 아래를 파고들듯 때리라’고 말한다. 이 영상에서 본 오치아이의 페퍼 게임(pepper game, 가까이서 던진 공을 타자가 가볍게 치는 훈련)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 타자들은 정면의 그물을 보고 때리는데 그의 타구 각도는 평균 45도를 넘을 만큼 컸다.선수 시절 오치아이는 경쟁자들에 비해 체격이 작은 편이었다. 키가 1m77㎝로 그리 크지 않았고, 풀스윙도 하지 않았다. 툭 친 것 같은데 그의 타구는 쭉 뻗어 나갔다. 그는 일본에서 홈런·타점·타율왕을 5번씩 수상했다. 오치아이의 타격 비결이 ‘깎아 올려치기’였던 것이다.오치아이의 이론은 내가 찾은 답과 가장 가까웠다. 2007년부터 나는 타구에 회전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티배팅 때부터 이를 의식했다. 임팩트 때 오른손 타자가 배트를 쥔 오른손을 ‘잡아주는’ 느낌으로 공을 친다면 나이키 스윙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스윙을 만들기 위해 페퍼 게임을 할 때부터 노력했다. 지나치게 깎아 치는 바람에 타구가 백네트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지기도 했다. 훈련 때 그렇게 극단적으로 깎아 쳐야 실전에서 유효한 타구 회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오치아이의 영상을 보고 “내가 찾은 방법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며 안심했다. 무엇보다 나이키 스윙은 나와 맞는 타법이었다. 물론 그런 메커니즘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영상에 나오는 젊은 선수들도 오치아이처럼 치려다가 헛스윙을 연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 훈련을 통해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나이키 스윙은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메커니즘이다.고교 시절 날 보고 “오치아이의 타격과 닮았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 당시에는 오치아이의 영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백스핀을 만드는 스타일이었던 거다. 프로에 와서 슬럼프에 빠진 걸 계기로 나이키 스윙을 더 발전시켰다. 난 스윙을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럴수록 더 강하게, 더 멀리 칠 수 있었다. 2007년 다시 홈런 20개 이상을 때려내고, 2008년 홈런왕(31개)에 올랐던 비결도 내 스윙을 완성한 덕분이었다. 내 전성기가 시작된 거다. 2009년 경기 중 뇌진탕 부상을 입기 전에는 내 스윙은 나름대로 완성 단계였다. 타석에서 어떤 투수의 공이라도 다 쳐낼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큰 부상을 당해 상승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면, 내 전성기가 더 길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KBS 해설위원, 정리=김식 기자 2023.01.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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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포커스] 타율 낮아도 삼진 늘어도... 추신수는 출루율만 본다

추신수(40·SSG 랜더스)의 올 시즌 타율은 0.266(33위·22일 기준)다. 그의 올해 연봉이 27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대치에 걸맞은 성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타율을 제외한 수치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 시즌 그의 출루율은 0.396(5위). 순출루율이 0.130으로 KBO리그 전체 1위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4할 출루율을 향해 달리고 있다. 볼넷 68개, 타석당 볼넷 15.2%로 모두 1위를 기록한 덕분이다. 홈런은 14개(11위)이며 타석 당 홈런 비율(HR%)이 3.13%(18위)다. 은퇴 시즌 맹타를 휘두르는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3.15%)와 비슷하다. 추신수의 타격은 정확히 TTO(Three True Outcomes)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TTO란 행운, 수비력과 무관하게 투수와 타자의 대결에서 결정되는 세 가지 결과물(홈런·볼넷·삼진)을 의미한다. 타자는 삼진과 홈런과 볼넷에만 집중해도 득점을 최대화할 수 있고, 투수는 맞혀 잡기보다 삼진에 집중하면 실점을 억제할 수 있다는 시각으로도 이어진다. 이 경우 1~3루타가 적더라도 홈런과 볼넷이 많다면 가치 있는 타자로 평가할 수 있다. 추신수는 이런 유형의 타자에 가깝다. 그는 메이저리그(MLB) 시절부터 타율이 다소 낮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내왔다. 그가 MLB에서 보낸 16시즌 중 3할 타율을 기록한 건 단 세 번(2008~2010)이었다. 2009년과 2010년은 정확히 3할이었다. 반면 추신수의 통산 출루율은 0.377에 이른다. 두 자릿수 홈런도 10번을 기록했다. 추신수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운이 좋았다. 타자로 막 전향했을 때 시애틀 매리너스 루키 리그에서 좋은 지도자들을 만났다. 당시에는 타율을 중시하던 시기였지만, 코치님이 출루율에 중점을 두면서 가르치셨다"며 "안타를 친다고 출루율이 많이 올라가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출루만 한다면 똑같다. 야구는 출루해야 득점하는 경기다. 굳이 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타격 스타일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야구는 등가교환을 요구한다. 볼넷을 위해 공을 고르다 보면 루킹 삼진도 늘어난다. 홈런을 치기 위해 스윙을 크게 하면 헛스윙 삼진이 늘 수밖에 없다. 추신수 역시 삼진 85개(7위)를 기록 중이다. 추신수는 "2013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뛸 때 조이 보토와 삼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삼진에 대한 생각에 확신을 얻었다. 땅볼이나 플라이볼을 쳐서 아웃되든, 헛스윙 삼진이나 루킹 삼진을 당해도 아웃은 하나다. 어떻게 아웃되더라도 타율은 똑같이 깎인다"며 "2013년 MLB 타자들의 리그 평균 성적을 찾아보면 2스트라이크 이후 평균 타율이 0.184에 불과했다. 또 타자들의 삼진 중 루킹 삼진은 30% 정도였다. 헛스윙 삼진당할 가능성이 작다면 2스트라이크 이후더라도 내 스트라이크존(S존)에 들어오지 않은 공을 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볼을 얻어내는 능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마이너리그 시절을 포함하면 20년 동안 미국 무대에 있었던 추신수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타자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과정도 몸으로 느꼈다. 추신수는 "MLB에서 마지막 3~4년 동안에는 선수들이 타율을 잘 보지 않게 됐다. 출루율과 OPS(출루율+장타율)를 중점적으로 봤다"며 "내가 감독이라면 타율이 높아도 출루율과 차이가 적은 선수보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를 더 신뢰할 것 같다. 순출루율 1할을 넘는 타자라면 정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볼넷과 홈런에 집중하면 타율은 낮아질 수 있지만, '타격'이 약해지는 건 아니다. 추신수는 타격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야구는 '내가 원하는 코스에 들어오는 공, 노리던 공을 쳤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종목이다. 내가 노리지 않은 공이라면 스트라이크여도 굳이 칠 필요 없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배웠다"고 했다. 지난 20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추신수의 타격이 그랬다. 그는 이날 5타수 3안타(1홈런) 1볼넷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안타 중 2개가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간 홈런과 2루타였다. 특히 비거리 127.5m를 기록한 홈런의 경우 중계 화면에 찍힌 타구 속도가 시속 176.8㎞(MLB 기준 약 시속 110마일)에 달한 이른바 '하드 히트(Hard hit·타구 속도 95마일 이상)'였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08.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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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낮아진 공인구 반발계수, 직격탄 맞은 타자들

프로야구 타자들이 공인구(경기사용구) 반발계수 조정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정규시즌을 앞두고 발표한 단일 공인구 수시검사 결과에 따르면 스카이라인스포츠가 제조한 AAK-100의 평균 반발계수는 0.4061로 합격 기준(0.4034~0.4234)을 통과했다. 2021년 4월(0.4190)과 10월(0.4108)에 이어 다시 한번 공인구의 평균 반발계수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무작위로 수거한 샘플 반발계수는 0.4053으로 측정되기도 했다. KBO 관계자는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공인구 규격이나 검사 방법은 일본과 동일하다. (반발계수가 낮아진 건) 의도한 변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KBO리그는 2018년 12월 규칙위원회에서 공인구 반발계수 합격 기준을 0.4134~0.4374에서 0.4034~0.4234로 하향 조정했다. 보통 반발계수가 0.001 높으면 플라이볼의 비거리가 약 20㎝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발계수 조정은 '타고투저'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2018년 34명이었던 리그 3할 타자가 2019년 18명에 그쳤다. 반면 2018년 1명밖에 없던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가 7명으로 늘었다. 올 시즌에는 수치를 조정한 2019년 이후 공인구 반발계수가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져 타자들의 어려움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장에선 벌써부터 "타구가 잘 날아가지 않는다" "잘 맞은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힌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난해 31홈런을 기록한 한유섬(SSG 랜더스)은 "(반발계수가) 낮아진 게 체감된다. (배트의) 정확한 스폿에 맞지 않으면 작년보다 비거리가 짧게 나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8홈런을 때려낸 양석환(두산 베어스)도 "지난 시즌에도 예년보다 공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확연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안 나가는 느낌"이라며 "스트라이크존 확대와 맞물려 타자들에게 쉽지 않은 환경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KBO는 올 시즌부터 스트라이크존을 일정 부분 확대, 적용하고 있다. 투수들은 하나같이 "공을 던지기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반면 타자들은 혼란스럽다. 지난 5일에는 이용규(키움 히어로즈)가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표출하다 퇴장당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인구 반발계수까지 떨어져 타자들의 입지가 더 좁아진 모양새다. 기록에서도 증명된다. 지난 11일까지 경기당 리그 평균 홈런이 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1.39개)보다 0.39개가 줄었다. 장타율(0.365→0.321) 부문,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OPS(0.710→0.623)도 크게 하락해 '투고타저' 흐름을 보인다. 손아섭(NC 다이노스)은 "올해 (반발계수가) 또 줄었다고 체감하기보다 2019년부터 지속해서 느끼고 있다. 방망이에 공이 맞았을 때 먹히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안재석(두산)은 "타격 메커니즘상 잘 맞았다는 느낌이 들고 힘이 (타구에) 확실히 실렸음에도 예상보다 뻗질 않고 잡히는 타구가 있었다. 수치를 조정한 부분은 모르고 있었는데 타석에서 체감은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즌 초반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한 타자도 적지 않다. 최정(SSG)은 "조금 더 경기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강민호(삼성 라이온즈)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평가를 보류했다. 박준영(NC)은 "아직 체감하지 않는다. 반발력이 줄었다고 해도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들은 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각 구단은 넓어진 스트라이크존과 반발계수 하향 조정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노심초사다. 팀 성적과 직결될 수 있는 변수다. A 구단 타격코치는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진 상태에서 반발계수도 낮아지니 타자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리그 전체 장타율이 낮아지는데 스트라이크존 확대와 반발계수 하향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경기를 치르면서 적응해 나가야 할 문제지만 현재 분위기라면 공격적인 야구를 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2.04.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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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데이터로 분석한 KBO 현주소② 타자 편-넓어진 콜드 존, '하이볼'에 더 무너진다

KBO리그 타자들은 궁지에 몰렸다. 전반적인 타격 지표가 하락하면서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다. 2020년 두산에서 20승을 거둔 라울 알칸타라(현 한신)는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NPB)로 이적해 2승에 그치고 있다. 선발 한 자리를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부진하다. 반면 한 수 아래로 평가하던 대만 프로야구(CPBL) 출신 투수 라이언 카펜터(한화)와 아리엘 미란다(두산)는 성공적으로 KBO리그에 안착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이 마흔네 살 투수 라울 발데스(도미니카공화국)에 고전하자 KBO리그 타자들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눈초리는 커졌다. '투고타저' 흐름인 KBO리그에선 타자들이 강점을 갖는 '코스'가 확연하게 줄었다. 스트라이크존을 아홉 개로 세분화했을 때 3할 이상의 타율이 기록된 코스가 올 시즌 두 개에 불과하다. '강점'을 뜻하는 핫 존(Hot Zone)보다 '약점'을 의미하는 콜드 존(Cold Zone)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5년 전엔 달랐다. 2016년에는 무려 여덟 개의 코스가 핫 존으로 분류됐다. 스트라이크존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빈틈이 없었다. 콜드 존이 넓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A 구단 전력분석원은 "타격 지표가 떨어진 건 공인구 반발계수를 조정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8년 12월 규칙위원회를 열어 기존 0.4134~0.4374이던 공인구 반발계수를 0.4034~0.4234로 낮췄다. 바뀐 공인구가 처음 적용된 2019년부터 타구가 좀처럼 뻗지 않는다. 홈런성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히기 일쑤. 2018년 34명이던 리그 3할 타자가 이듬해 18명으로 반 토막 났다. 콜드 존이 넓어진 다른 이유로 리그 분위기를 꼽는 목소리도 있다. B 구단 타격코치는 "전반적인 타격 수준이 내려갔을 수 있다. 잘했던 선수들이 많이 은퇴했고 지금은 젊은 세대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C 구단 타격코치도 "야구를 이끌어가는 선수들이 성장하는 과도기다. 세대교체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 KBO리그는 각 구단의 육성 기조가 강해졌다. 개막전 기준 평균 연령(27.3세→27.1세)과 평균 연차(8.4년→8.1년)가 모두 낮아졌다. 2군에서 경험을 쌓아야 할 선수들이 다수 1군에 진입, 전체 기록이 하락하는 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D 구단 타격코치는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진 것도 있고 투수들의 변화구도 다양해졌다. 히팅 존이 작아지다 보니 타구 생산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콜드 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스트라이크존 상단, 이른바 '하이볼'이다. 스포츠투아이 자료에 따르면 타자들은 유독 '하이볼'에 쩔쩔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좋은 먹잇감'으로 분류됐던 코스지만 지금은 아니다. C 구단 투수코치는 "과거에는 '공을 낮게 던져라'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요즘엔 투수들이 의도적으로 하이 패스트볼을 많이 던진다"고 말했다. E 구단 타격코치는 "하이 패스트볼은 (다른 코스와 비교하면) 속도가 좀 더 빠르다. 높은 코스를 쳐내려면 스윙 능력은 물론이고 손목 컨트롤과 몸통 회전 등 순간적인 대처가 중요한 데 이게 쉽지 않다"고 했다. 주목할 건 발사각(Launch Angle)이다. KBO리그는 2015년 리그 평균 발사각(인플레이타구 기준)이 15.9도였다. 그런데 2019년 17.6도에 이어 지난해 18.5도까지 상승했다. 올 시즌에도 17.9도로 높은 편이다. 이는 메이저리그(MLB)의 영향이다. 미국 유력 매체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16년 MLB 평균 발사각은 10.5도에서 11.5도로 상승했다. 2017년 5월에는 12.8도로 조금 더 올랐다. 타자들이 타구를 높이 띄우면서 홈런이 쏟아졌고 이를 '플라이볼 혁명'이라 불렀다. 비슷한 시기, 국내 타자들도 장타 생산을 의식해 발사각을 높이기 시작했다. 배럴(Barrel) 타구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배럴은 세이버메트리션 톰 탱고가 만들어 낸 이상적 타구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로 발사각 26~30도와 타구 속도 시속 98마일(157.7㎞) 이상인 경우가 해당한다. C 구단 타격코치는 "국내 야구에서 5년 전쯤 발사각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아마추어 지도자가 이를 어린 선수들에게 적용, 어퍼 스윙으로 가르치는 게 유행이었다"며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스윙 궤적을 올리려는 모습이 있었다. 어퍼 스윙을 하다 보니 높은 쪽 코스에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F 구단 타격코치는 "예전에는 다운 스윙 또는 레벨 스윙이 대세였지만 최근엔 어퍼 스윙에 가까운 스윙이 많아진 추세다. 어퍼 스윙은 낮은 존 대처가 되지만 높은 존 공략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레벨 스윙을 해야 할 타자들이 어퍼 스윙을 하기도 한다"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한 아마야구 전문가는 "레슨장에 가면 (선수 유형과 상관 없이) 대부분 어퍼 스윙을 가르친다"고 꼬집었다.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에 과도한 어퍼스윙이 더해져 스트라이크존 상단은 투수의 몫이 됐다. 그 결과 콜드 존이 더 뚜렷해졌다. G 구단 타격코치는 "타자들의 스윙 변화가 크다. 어퍼 스윙이 많다 보니 볼과 배트의 궤적이 잘 맞지 않는다. '하이볼'을 타격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고 전략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타자도 흔치 않다"고 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09.2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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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데이터로 분석한 KBO 현주소① 투수 편- 평균구속 141.6㎞/h…KBO리그의 현실

한국프로야구는 '위기의 강'을 건너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구단 운영이 휘청거리는데 그라운드 안팎 선수들의 사건·사고까지 겹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던 인기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야구단 안팎에선 "이대로 가면 공멸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팬심이 떠나는 근본적 원인은 경기력이다. 최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은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대표팀은 6개 국가가 참여한 본선에서 4위에 그쳐 '노메달 굴욕'을 당했다. 리그는 물론이고 국제 경쟁력마저 떨어진 모습으로 지탄받았다. 일간스포츠는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의 기록을 바탕으로 'KBO리그의 현재'를 진단했다. 빠른 공은 투수의 강력한 무기다. 타자를 힘으로 윽박지르는 것만큼 위협적인 건 없다. 변화구의 위력을 더하는 것도 바탕이 되는 빠른 공이다. 그런데 KBO리그 투수들의 구속 경쟁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 시즌 KBO리그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2.4㎞/h다. 외국인 투수 기록을 제외하면 141.6㎞/h로 더 낮아진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보다 9.3㎞/h가 느리다. 평균구속이 시속 145㎞/h 안팎인 일본 프로야구(NPB)에도 3㎞/h 정도가 뒤처진다. 시속 150㎞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조상우(키움), 고우석(LG)처럼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 투수들이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많지 않다. 경기 내내 강속구를 포수 미트에 꽂는 '토종 에이스'는 실종 상태다.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KBO리그는 수년째 국내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이 142㎞/h를 넘지 않고 있다. 2015년 140㎞/h로 저점을 찍은 뒤 약간 상승했지만 대동소이하다. 부족한 구속을 만회할 수 있는 건 제구. 하지만 올 시즌 리그 9이닝당 볼넷(BB/9)이 4.31개로 많다. 그만큼 국제 경쟁력도 떨어진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탈락했고 최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에선 '노메달 굴욕'까지 당했다. 타자들의 부진 못지않게 투수들도 버텨내지 못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도쿄올림픽만 보더라도 타순이 두 바퀴만 돌면 타자들이 (공에 익숙해져) 쳐낸다. 고영표(KT)도 그렇고 원태인(삼성)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구속으로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허 위원은 "방송을 통해 '한국 야구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얘길 많이 하고 있다. 미국은 코어 근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속 5마일(8㎞/h) 정도의 구속 증가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반면 국내에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설령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대학교나 고등학교까지 보편화하지 않는다. 일본과 비교해도 R&D(연구·개발)가 크게 뒤진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일본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도쿄올림픽 야구 준결승 한·일전 선발 투수로 등판한 야마모토 요시노부(23.오릭스)는 경기 내내 150㎞/h 안팎의 강속구를 던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5⅓이닝 9탈삼진 2실점 쾌투했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10~20년 전 일본에 전지훈련을 가면 공원에서 훈련하는 유소년 선수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다 예쁘게 던졌다. 일본은 스타급 출신 선수들이 소속된 명구회에서 연봉을 책임지며 유소년을 가르치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프로 스타들로부터 기본기를 전수받는다"며 "기초를 잘 배우니 커가면서 점점 좋은 구속도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타고난 강견은 있다. 하지만 제구가 안 된다. 제구에 포커스를 맞추면 나중에 구속이 줄어든다. 그렇게 발전이 멈춘다"고 말했다. A 구단 투수코치도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한다면 아마추어 인프라 차이가 크다"며 "일본 선수들은 기술에 비해 다소 힘이 약했다. 하지만 최근 힘이 좋아지면서 더 빠른 구속이 나오는 것 같다"며 "한국 선수들은 아직 힘으로만 던지려는 모습이 많다. 구속이라는 게 정답은 없지만, 유연성, 순발력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구속을 증가하려면 유연성과 순발력을 전체적으로 올리는 체계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투수 육성이 쉽지 않다. B 구단 투수코치는 "지속성이 문제다. 3~5년 정도를 꾸준히 해야 어느 정도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데 1, 2군 모두 부상 등의 이유로 (지속성이) 단절된다"며 "구속이나 제구 모두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경력이 단절되면 제자리걸음을 한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고등학교 감독은 "이전보다 선수들 몸집은 더 커졌지만, 내구성이 떨어진다. 조금만 던지면 아픈 선수들이 나온다"며 "3학년 학생들은 실적이 있어야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대회를 3학년 위주로 치러야 한다. 저학년 선수 중에선 아무리 잘해도 출전 기회를 잡는 게 쉽지 않다. 먼 미래, 박찬호(야구)나 김연아(피겨)가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KBO리그는 선수층이 얇다. 2군에서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곧바로 1군에 투입된다. 이 과정에서 코치도 갈팡질팡한다. C 구단 투수코치는 "아마추어에선 시속 150㎞를 던졌던 투수가 프로에 오면 그 구속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프로에선 휴식이 짧고 시즌 내내 많은 공을 던져야 해 구속 유지가 어렵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기본기보다 승부를 강조하는 문화이다 보니 투수들이 구속을 늘리는 코어 운동보다 손가락으로 기술을 익혀 변화구 제구력을 기르는 훈련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D 구단 투수코치는 "빠른 구속을 위해선 신체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훈련과 실전 투구가 연결돼야 한다. 훈련에서 100%로 던지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실전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투수의 경쟁력은 중요하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리그 평균구속이 시속 150㎞가 되면 스윙 메커니즘이 속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뛸 수 없다. KBO리그는 평균구속이 시속 140㎞를 겨우 넘는다. 타자는 투수 수준에 비례한다"고 강조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09.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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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⑧구창모는 ‘볼끝’이 좋은 게 아니다

2020년 KBO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투수는 NC 구창모(23)다. 전완근 염증으로 세 달을 쉰 그는 지난 24일 멋진 복귀전을 치렀다. 올 시즌 구창모는 88⅓이닝을 던지며 9승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1.53을 기록 중이다. 20대 에이스의 등장을 기대했던 KBO리그와 국가대표 대표팀에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구창모의 피칭은 정말 시원시원하다. 마치 내야수가 송구하는 것처럼 빠르고 짧은 백스윙으로 힘을 모은다. 뛰어난 디셉션(deception, 투구 전 허리 뒤로 공을 감추는 동작)으로 타자가 투구를 볼 시간을 최소화한다. 그리고 채찍으로 때리듯 공을 던진다. 구창모의 공은 홈 플레이트를 통과할 때까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타자들은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 투구 궤적보다 밑으로 스윙한다. 우리 세대는 이걸 “볼끝이 좋다”고 표현했다. 또는 “공의 종속이 좋다”, “공의 회전이 뛰어나다”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볼끝’이 좋다는 건 추상적인 표현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초속과 종속이 차이가 크게 날 수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특히 놀란 건 공의 회전과 구위의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앨런 네이선 일리노이 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하드볼 타임즈’에 공의 무브먼트와 회전 효율(pitch movement, spin efficiency, and all that)이라는 글을 2018년 기고했다. 네이선 교수는 투구의 회전과 무브먼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이다. 메이저리그(MLB)는 2008년 광학 카메라 기반의 PITCHf/x(투구분석 시스템)를 도입했다. 2015년 이후에는 레이더 추적 기술인 트랙맨이 사용되고 있다. MLB만큼은 아니지만, KBO리그도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투구와 타구에 대해 세밀한 정보를 얻고 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선수와 코치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도 좀 더 명확해졌다. 투수는 수직 무브먼트(vertical movement)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구창모의 공은 덜 떨어진다 내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구창모를 선발했다. 당시 대표팀은 24세 이하, 프로 3년 차 이하 선수들로만 구성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와일드카드를 쓸 수 있었지만, 젊은 투수들에게 국제대회 출전 경험을 더 주고 싶었다.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올해 구창모의 포심 패스트볼 스피드는 평균 143.1㎞였다. 최고 구속은 150.4㎞. 3년 동안 그의 패스트볼 스피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성적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8년 133이닝을 던지며 5승11패 평균자책점 5.35를 기록했던 구창모는 지난해 107이닝 동안 10승3패 평균자책점 3.20을 올렸다. 그 탄력을 받아 올해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데이터는 구창모의 피칭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게 나로서는 꽤 어렵다. 기록 업체마다 계산 식도 다르다고 한다. 어렵고 복잡하다. 그래서 여전히 공부 중이다. 먼저 수직 무브먼트의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물리학 논문이 많다. 특히 일본 와세다대와 사이타마대 교수 5명이 공저한 『야구공의 회전과 투수의 퍼포먼스』를 많이 참조했다. 이 논문은 시속 144㎞의 패스트볼을 기준으로 여러 계산을 했다. 오버핸드 투수가 180㎝ 높이에서 회전 없이 던진 공은 17m쯤 비행해 홈플레이트, 즉 바닥에 처박힌다(빨간선). 현실에는 회전 없는 공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조건에서 던진 공이 지표면과 수평 회전축으로 분당 4200회전(rpm)을 한다면, 홈플레이트에 도착했을 때 1m 높이라고 한다. 투수가 던지는 패스트볼의 경우 보통 2000~2400rpm의 회전을 하기 때문에 4200rpm의 공 역시 상상 속 마구다. 현실적인 패스트볼 궤적은 녹색선이다. 홈플레이트에서 빨간선과 녹색선의 높이 차이를 수직 무브먼트라고 한다. 이 수직 무브먼트는 투수에게 매우 중요하다. 모든 투구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가라앉기 마련이다. 타자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투구 궤적을 기억하고 있다. 예상보다 ‘덜 떨어지면’ 공이 떠오른다고 느낀다. 라이징 패스트볼(rising fastball)은 실제 떠오르는 게 아니라, 타자의 착각이다. 트랙맨 데이터에 의하면, 구창모 패스트볼의 평균 수직 무브먼트는 지난해 42.95㎝였다. 이 정도면 KBO리그 최상위 레벨이라고 알고 있다. 올해는 45.56㎝로 더 커졌다. 수직 무브먼트가 원래 컸던 공이 1년 전보다 2.61㎝ 덜 떨어지는 것이다. 야구공의 지름은 7.2㎝다. 투구의 수직 변화가 2.61㎝ 더 커졌다면 정타가 될 타구는 파울이 된다. 공의 아랫부분을 맞힐 수 있는 타격은 헛스윙이 될 것이다. 작은 변화가 절대 아니다. 수직 무브먼트가 크다는 건 “볼끝이 좋다”, “종속이 빠르다”는 옛말을 대체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창모의 패스트볼 위력은 수직 무브먼트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무브먼트 값을 산정하는 방식은 리그는 물론 업체끼리도 다르다고 한다. 회전 측정법부터 같지 않다. 구장 환경, 기후, 타자의 체격 등도 계산 식에 넣는다. 산정 방식이 다르니 KBO리그와 MLB 기록을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나 같은 업체가 한 선수의 수직 무브먼트의 변화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있다. 2.61㎝의 차이는 구창모의 피칭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상승이다. 수직 무브먼트의 활용법 내가 선수로 뛸 때는 무브먼트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다. 공은 최대한 낮게 던지라고,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잘 공략하라고 배웠을 뿐이다. 1980~90년대 투수들은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타자들은 다운컷 스윙을 많이 했다. 그래서 높은 공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맞는 이론이었다. 난 선수 시절 하체를 길게 뻗어 공을 던졌다. 요즘 표현을 쓰자면 익스텐션(extension, 투수판과 릴리스 포인트까지의 거리)이 길었다. KBO리그 투수들 익스텐션이 180~185㎝라고 한다. MLB 평균은 192㎝ 정도다. 정확히 잰 건 아니지만, 젊은 시절 내 익스텐션은 2m 안팎이었다. 타자가 느끼는 구속은 실제보다 더 빨랐다고 한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피치 터널’도 다른 투수보다 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폼과 전략을 끝까지 유지한 건 아니었다. 난 33세였던 1996년부터 4년 동안 일본 주니치에 입단했다. 당시에는 ‘노장’에 속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야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가 하이 패스트볼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일본 투수들은 우리와 달리 스트라이크 높은 코스를 잘 활용했다. 내가 아는 야구와 다른 점이었다. 머뭇거리던 나에게 야마모토 마사(山本昌広)가 이런 말로 날 자극했다. “선상(宣さん)은 공이 빠르고, 나보다 제구력도 좋잖아요? 그런데 왜 스트라이크를 던집니까?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볼을 던져보세요.” 내 제구가 야마모토보다 좋다는 건 그의 지나친 겸손이었다. 그는 시속 130㎞대의 패스트볼로 50세까지 주니치(통산 219승)에서 활약했을 만큼 뛰어난 컨트롤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난 야마모토의 말에 용기를 얻어 피칭을 바꿨다. 초구부터 하이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졌다. 나이가 들어 유연성이 떨어지고, 익스텐션도 짧아진 터였다. 하이 패스트볼에 타자들은 대부분 방망이를 돌렸다. 내 공에 아직 힘이 있을 때였기에 파울이나 헛스윙이 나왔다. 게다가 하이 패스트볼은 제구가 상대적으로 쉬었다. 그래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 패스트볼을 본 타자들의 뇌리에는 그 공의 궤적과 스피드가 남는다. 다음에 낮은 공을 던지면 타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덕분에 난 투구 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게 당시의 나에게 맞는 릴리스 포인트였고, 공 배합이었다. 내가 삼성 감독이었던 2006년 차우찬(현 LG)이 입단했다. 왼손 투수인 그는 빠른 공을 던졌다. 그러나 스트라이드가 너무 컸다. 학창 시절 익스텐션을 늘리는 게 무조건 좋다고 배운 것이다. 당시 차우찬의 상·하체 밸런스는 깨져 있었다. 신체 특성에 맞지 않게 스트라이드를 너무 넓힌 나머지, 팔 스윙이 매끄럽지 못했다. 그래서 오치아이 에이지 당시 투수코치와 상의해 그의 익스텐션을 20㎝ 정도 줄이기로 결정했다. 상당히 큰 변화를 차우찬은 잘 받아들였다. 스피드가 조금 감소했지만, 폼이 안정되면서 제구력이 향상됐다. 차우찬과 다른 경우가 조상우(키움)다. 몸이 크면서도 유연한 그는 긴 익스텐션을 활용해 체감 속도를 높이는 길을 선택했다. 조상우에게는 그게 적합하다. 지난해 172㎝ 정도였던 구창모의 릴리스 포인트는 올해 180㎝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타점을 높인 게 아닐 것이다. 익스텐션을 5㎝ 정도 줄인 결과다. 모든 자세의 변화는 하체로부터 시작한다. 구창모는 익스텐션 단축→릴리스 포인트 상향→수직 무브먼트 증가로 이어지는 변화를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런 피칭은 하이 패스트볼의 위력을 강화한다. 게다가 요즘 타자들의 어퍼컷 스윙을 이겨내는 데 효과적이다. 또 하이 패스트볼이라는 무기가 생기면 크게 떨어지는 변화구(커브, 포크볼)의 효용도 함께 커진다. 지난해부터 구창모의 포크볼 위력이 배가된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난 프로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뒤 동료의 조언을 듣고 피칭 전략을 바꿨다. 구창모는 나보다 열 살 젊은 나이에 새로운 피칭을 만들었다. 기술 발달로 인해 자신의 투구를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보게 된 덕분일 것이다. MLB에서는 이를 피치 디자인(pitch design)이라고 한다. 트레이닝만 강조했던 시대는 지났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⑤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⑥류현진은 '피치 터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⑦류현진·매덕스는 타자의 0.045초를 훔친다 2020.10.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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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⑦류현진·매덕스는 타자의 0.045초를 훔친다

“나는 투수들의 피칭을 지켜봤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왼손 투수 스티브 에이버리는 시속 153㎞가 넘는 빠른 공을 던졌다. 그의 커브는 크게 휘었다. 아주 위력적이었다. 다른 한 명은 오른손 투수였다.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졌다. 그는 대학생 투수 수준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았다. 위력적이지 않았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 전문 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가 2017년 게재한 기사의 리드 부분이다. 포수보다 3~4m 뒤에 앉은 기자는 두 투수의 살아 있는 공을 봤다. 왼손 투수는 무서울 만큼 강해 보였고, 오른손 투수는 그저 그랬다고 한다. 그 기자가 ‘대학생 수준보다 조금 낫다’고 평가한 투수는 그레그 매덕스(54)이다. 매덕스는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최초로 4년 연속(1992~95년) 사이영상을 받았다. 17년 연속(1988~2004년) 15승 이상, 20년 연속 10승(1988~2007년) 이상을 기록하는 등 MLB 통산 355승(227패 평균자책점 3.16)을 거둔 전설적인 투수다. 기자는 참 이상했을 것이다. 매덕스의 피칭이 겨우 이거라고? 뭔가 특별한 무기를 숨긴 것 아닐까? 이렇게 의심했을 것이다. 매덕스는 기자에게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변화구는 크고 빠르게 꺾이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내 변화구는 늦게, 빨리 꺾이는(late quick break) 것이 목표다. 공이 많이 꺾이기 위해서는 방향을 일찍 바꿔야 한다. 그만큼 타자에게 생각하고 반응할 시간을 준다. 투구의 변화가 늦게 일어나면 타자가 대응할 시간이 적어진다. 투구에 대한 정보를 타자에게 최대한 늦게 줘야 한다.” 이어 매덕스는 “모든 투구는 서로 가까워 보여야 한다.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하는 ‘우유 기둥(column of milk)’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모든 투구가 가까워 보인다는 건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궤적 차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구종에 따라 공의 궤적은 당연히 달라진다. 그러나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어느 지점까지는 비슷하게 비행해야 한다는 게 매덕스의 주장이었다. 그가 비유한 ‘우유 기둥’을 떠올려 보자. 우유를 컵에 따르면, 기둥처럼 한 줄로 내려오다가 점점 갈라질 것이다. 야구공도 흰색이니까 여러 투구를 겹쳐 놓는다면 우유 기둥과 비슷한 모양이 될 것이다. 매덕스는 크게 꺾이는 변화구보다 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의 변화구를 던지려고 노력했다. ‘타자에게 보이는 것’보다 ‘타자를 속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매덕스의 피칭을 스피드와 변화 각만으로 감상한다면, 기자가 그랬던 것처럼 ‘대학생 투수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오판할 수 있다. 그러나 타석에 선 MLB 선수들은 매덕스의 공을 20년 가까이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매덕스는 모든 공을 ‘비슷한’ 궤적으로 던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똑같은’ 공은 하나도 던지지 않았다. 타자들은 매덕스의 공을 칠 수 있다고 배트를 휘둘렀겠지만, 대부분 빗맞거나 헛스윙을 했다. 매덕스는 타자의 성향과 심리·볼카운트 등을 고려하면서 공을 다양하고, 현란하게 던졌다. ‘우유 기둥’ 안으로 모든 공을 밀어 넣었다. 기둥이 넓게 퍼진 뒤에는 타자가 이미 속은 뒤였을 것이다. 매덕스가 ‘우유 기둥’이라고 이름 붙인 이 투구 이론은 오늘날 피치 터널과 다르지 않다. 그는 이미 20~30년 전에 모든 투구 궤적은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는 걸 알았고, 이를 자신의 피칭에 적용했다. 매덕스 별명 중 가장 유명한 건 ‘컨트롤의 마법사’다. 그의 포심 패스트볼 대부분은 시속 140㎞대였다. 그러나 무브먼트가 뛰어난 투심 패스트볼로 타자를 압도했다. 30대 나이가 되어 구위가 떨어진 뒤 매덕스는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 등을 추가했다. 구종이 다양해진 덕분에 매덕스의 전성기는 더 오래 이어졌다. 만 41세에도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14승을 올렸다. 매덕스의 피칭을 다양성과 정확성으로만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그는 타자를 속일 줄 알았다. 그 핵심 기술이 20세기의 ‘우유 기둥’, 21세기의 ‘피치 터널’이다. 매덕스가 ‘우유 기둥’을 말한 이유 매덕스의 스토리는 류현진(33·토론토)과 닮았다. 지난해 LA 다저스에서 뛰었던 류현진은 5월 8일 애틀랜타를 상대로 9이닝 93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 무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외신들은 “류현진이 ‘매덕스 게임’을 완성했다”고 썼다. ‘매덕스 게임’이란 투구 수 100개를 넘기지 않고 9이닝을 완봉으로 막아낸 경기를 뜻한다. 매덕스가 투구 수 100개 미만으로 완봉승을 기록한 경기는 통산 13차례(완봉승 35번)나 된다. 류현진이 지난 시즌 중반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때, 여러 외신과 MLB 관계자들은 그를 매덕스와 비교했다. ESPN “새로운 그렉 매덕스? 건강한 류현진이라면 거의 그렇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류현진과 ‘매덕스 게임’을 함께 이룬 포수가 러셀 마틴이었다. 그는 2006년과 2008년 매덕스와 배터리를 이룬 적이 있다. 마틴은 “류현진이 던진 공 93개 중 58개를 받을 때 미트를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제구가 완벽했다는 뜻이었다. 러셀은 류현진의 투구는 매덕스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난 이런 말들이 류현진에 대한 많은 평가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급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매덕스의 투구에는 힘과 기술뿐 아니라 전략과 통찰력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이 시속 100마일(161㎞) 이상의 공을 뿌리는 아롤디스 채프먼(뉴욕 양키스)이 될 확률보다 류현진처럼 성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지난 칼럼에서 피치 터널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터널이라는 공간적인 개념뿐 아니라 시간적인 측면에서 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 어데어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의 저서 『야구의 물리학』은 투수와 타자의 ‘시간 싸움’을 잘 설명하고 있다. 투수판과 홈플레이트의 거리는 18.44m다. 투수가 스트라이드를 해서 공을 던지기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와 타자의 히팅 포인트의 거리는 약 17m다. 어데어 교수는 투수가 시속 145㎞의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타자가 해야 할 일을 시간별로 계산했다. 패스트볼이 17m를 날아가는 시간은 0.4초에 불과하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타자 시야에 들어오기까지 0.1초가 걸린다고 한다. 이후 타자가 공의 속도와 궤적을 파악하는데 0.075초가 더 필요하다. 이제 타자의 시간으로 가보자. 사람의 눈이 강한 빛에 반응해 깜빡하는 데 0.15초가 걸린다. 타자가 공을 보고 타격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두뇌가 근육에 신호를 보내는 시간(0.03초)이 필요하다. 따라서 타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스윙에는 0.18초가 소요된다. 타자가 어프로치를 한 이후에도 투구를 보면서 스윙을 조금 수정하거나 멈출 순 있다. 그러나 타자가 스윙을 일단 시작했다면, 타이밍과 궤적은 거의 정해졌다고 봐야 한다. 다시 정리해 보자. 타자가 투구를 파악하는 최소 시간(0.175초)과 타자가 스윙하는 최소 시간(0.18초)이 필요하다. 두 시간을 더하면 0.355초다. 이론상 투구의 비행시간인 0.4초 중에서 0.045초의 시간이 타자에게 더 있는 셈이다. 이건 판단하는 시간이다. 이 찰나의 시간에 타자는 스윙 여부를 결정한다. 타자가 투구의 궤적을 예측했다면 0.045초가 필요 없을 수 있다. 타자들이 시속 145㎞의 패스트볼은 물론 160㎞의 강속구도 공략하는 이유다. 투수 입장에서는 타자에게 주어진 0.045초를 최소화하거나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투수가 더 빠른 공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160㎞ 이상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그것조차 완벽한 방법이 아니다. 타자의 물리적인 시간을 빼앗을 수 없다면? 타자의 시야를 흔들어서 타자의 시간을 훔쳐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하기 어렵게 공을 던지는 것이고, 피치 터널을 최대한 길게 만드는 것이다. 류현진은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다 긴 터널을 만드는 데 마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이전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투구의 방향과 속도는 이미 정해져 있다. 안정적인 폼으로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를 만드는 게 피치 터널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 재능은 강속구를 던지는 것보다 더 귀중하다. 속도만이 무기가 아니다. 류현진처럼 시간과 공간을 잘 활용하면 세계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다. 시간을 이용한다는 말은 일정한 템포로 던진다는 걸 뜻한다. 어떤 공을 어디에 던져도 폼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수준급 투수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는 동작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커브 같은 느린 변화구를 던질 때는 템포가 느려진다. 투수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피칭 템포가 완벽하게 똑같은 투수는 없다. 타자는 투수의 템포에 타이밍을 맞춘다. 눈썰미가 좋다면 구종도 예측할 수 있다. 투구 템포는 데이터로 나오지 않지만, 타자가 미묘하게 느낄 순 있다. 매덕스나 류현진도 동작의 템포가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자의 시간을 빼앗는 이들의 능력은 완벽에 가깝다. 피치 터널은 '공간 싸움'이다. MLB 통계 전문 사이트 ‘브룩스베이스볼’을 보면 류현진의 릴리스 포인트는 일정하게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9월 25일 뉴욕 양키스전 데이터를 보면, 그의 릴리스 포인트 높이는 구종과 관계없이 180㎝ 선에서 거의 일정하다. 수평 릴리스 포인트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몸에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에서 던지는 커브(62.8㎝)와 가장 먼 체인지업(75.3㎝)의 차이는 최대 12.5㎝다. 이 정도 차이는 타자의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또 하나. 류현진의 릴리스 포인트 편차를 보고 폼이 흔들렸다고 보기 어렵다. 똑같은 폼으로 던져도 하이 패스트볼이나 커브를 던질 때는 공을 조금 일찍 놓기 때문이다. 타자의 몸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공략할 때도 팔 각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투구 폼은 같고, 내딛는 발의 방향이 몇㎝ 달라지는 것이다. 류현진은 그런 수준에서 피칭하고 있다. 2020년 류현진은 리그와 홈구장이 바뀐 상황에서도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를 형성했다. 또 투구 템포의 차이가 거의 없고, 백스윙 때 디셉션(공을 숨기는 동작)이 뛰어나다. 타자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할 게 별로 없다. 스윙하기도 전에 타자의 승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류현진처럼 좋은 폼으로 정확하게 던졌다면 공은 깜깜한 터널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타자의 0.045초를 훔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투수는 강속구 없이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 매덕스의 나이가 30대 후반이었던 2000년대 초, MLB는 배리 본즈(56)의 시대였다. 그는 2000년 이후 4년 동안 무려 213홈런을 때렸다. 금지 약물 복용 사실로 인해 얼룩지긴 했지만 본즈는 MLB 통산 최다 홈런(762개)을 기록한 강타자다. 본즈의 최전성기(2000~2003년)를 매덕스는 피안타율 0.222(18타수 4안타)로 막았다. 홈런은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본즈는 훗날 방송 인터뷰에서 “매덕스는 0볼-2스트라이크에서 (3구 삼진을 잡겠다고) 들어온다. 그가 파워피처가 아니면 누가 파워피처인가”라고 되물었다. 매덕스와 본즈의 대결을 보면, 류현진과 마이크 트라우트(29·LA 에인절스)가 떠오른다. 지난해 류현진 피칭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6월 10일 에인절스전에서 트라우트를 세 번이나 잡은 장면이었다. 1회 직선타에 이어, 3회에는 삼진 처리했다. 류현진은 5회 2사 1·3루 위기에서 트라우트를 다시 삼진(컷 패스트볼)으로 잡아냈다. 현역 최고 타자인 트라우트를 통산 10번 상대해 무안타(4탈삼진)로 막아낸 류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배트를 헛돌린 트라우트의 실망한 표정이 기억난다. 20대 나이에 통산 302홈런을 때렸고, MLB 최고 몸값(12년 총액 4억 2650만 달러·5000억원)을 받는 트라우트가 류현진의 ‘파워 피칭’에 압도당했다. 투수의 파워는 속도만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 투수의 중요한 역량이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⑤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⑥류현진은 '피치 터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2020.10.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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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⑤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1940~50년대 메이저리그(MLB) 최고의 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1918~2002)는 명저 『타격의 과학』을 유산으로 남겼다. “타격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MLB에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 80년 전의 전설 윌리엄스가 소환됐다. 그는 이미 1971년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약간의 어퍼컷 스윙(slight uppercut)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윌리엄스는 “오랫동안 (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레벨 스윙이 옳다고 여겨졌다. 나도 그렇게 믿었고,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스윙은 평평하지 않다(not level)”며 “타구를 세게 쳐서 공중에 띄워라. 거기에 돈(성공)이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가 말한 어퍼컷과 플라이볼 혁명 시대의 어퍼컷은 다른 것일까. 솔직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두 스윙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갖게 된다. 이상적인 스윙이 되기 위한 조건은 분명히 있다. 투구와 방망이가 만나는 구간인 임팩트 존(impact zone)이 넓어야 할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180㎝ 이상의 높이에서 시작한 투구는 5~7도 각도로 하강한다. 임팩트 존을 통과하는 방망이 궤적은, 투구의 각도만큼 올라가야 좋은 타구를 만들 확률이 커질 것이다. 레벨 스윙 개념인데, 지면이 아닌 투구 궤적과 평평한 것이다. 실제로는 약간의 어퍼컷 스윙이 되는 것이다. 방망이의 궤적이 5~7도 올라간다고 해서 어퍼컷 스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런 궤적이라면 라인 드라이브(11~20도) 타구 비율은 높아지겠지만, 홈런이 많이 나오는 발사각(20~35도)을 만들기 쉽지 않다. 윌리엄스는 그래서 “살짝 올려치라”고 말한 걸까. 이상적인 타격은 레벨 스윙과 어퍼컷 스윙이 결합한 형태일까. 그게 실제로 가능한 걸까. 공부하면 할수록, 타격은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봤다. 투수는 자기 폼으로 공을 던지면 된다. 노력에 따라 일관된 폼으로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타자는 투구에 대응해야 한다. 구종과 코스에 따라 스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퍼컷 스윙을 하는 타자는 하이 패스트볼에 약점을 보인다. 높게 날아오는 빠른 공을 띄워 치는 스윙을 만들기 어려워서다. 같은 이유로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도 어퍼컷 스윙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타자는 최선의 스윙을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투구에 따른 대응이다. 그래서 많은 타격 이론가가 스윙 궤적보다, 강한 타구를 만들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윌리엄스도 마찬가지였다. 발사각보다 중요한 타구 속도 난 타격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평생 야구를 했기에 생체역학(biomechanics) 관점에서 타격 폼을 이해할 순 있다. 투수의 피칭도, 타자의 스윙도, 골프의 스윙도 폴로 스루(follow through, 임팩트 후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무리 동작)가 중요하다. 동작을 자연스럽게 끝내면 스윙의 힘이 극대화한다. 타격 전문가 김용달 선배의 저서 『용달매직의 타격 비법』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폴로 스루는 힘을 유지하기 위한 동작이다. 그러나 폴로스루를 위해 인위적으로 손목 힘을 더 쓴다면 스윙의 폭이 좁아진다. 힘의 방향이 (앞이 아닌) 옆으로 돌아 땅볼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투수의 메커니즘이 그렇듯, 타자의 스윙도 자연스러운 중심 이동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강력한 패스트볼과 현란한 변화구를 공략해 ‘강한 타구’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장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히팅 포인트(투구와 스윙이 만나는 지점)가 앞발 부근에 형성돼야 한다. 타자의 두 팔꿈치가 최대한 몸에 붙어 나왔다가 앞으로 쭉 뻗는 동작에서 힘이 폭발한다. 앞선 칼럼에서 제이콥 디그롬의 투구 폼을 설명한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어깨 위에 있었던 배트가 내려와 임팩트 존을 통과한 뒤에는 스윙의 끝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게 폴로 스루이며, 자연스럽게 약간의 어퍼컷 스윙이 만들어진다. 윌리엄스의 이론과 플라이볼 혁명은 결국 여기서 만나는 것 같다. 2018년 MLB 일부 구단의 캠프에서는 플라이볼을 '생산'하는 훈련을 했다. 난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밀워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신기한 모습을 목격한 KBO리그 관계자들이 있다. 내야와 외야 사이에 10m 높이의 펜스가 설치된 것을 봤다고 한다. 밀워키 구단은 타자들에게 그 펜스 너머로 타구를 날리도록 주문했다. 20도 이상의 발사각을 만드는 훈련이었다. 유망한 밀워키 타자들이 어퍼컷 스윙을 장착하려고 애썼다. 그해 겨울 마이애미에서 밀워키로 트레이드된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2018년 내셔널리그 타격왕(0.326)과 최우수선수상(MVP)을 차지했다. 그해 옐리치가 때린 홈런(36개, 리그 3위)은 2017년보다 18개나 늘었다. 옐리치의 타격이 폭발한 데에는 홈구장이 타자 친화적인 밀러 파크로 바뀌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그의 배럴 타구 비율은 2017년 7%에서 2018년 12.9%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15.8%로 증가했다. 2018년 10월 ‘옐리치는 발사각 논쟁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제목의 MLB닷컴 기사가 눈에 띄었다. 당시는 저스틴 터너(LA 다저스) 등 플라이볼 혁명의 주인공들이 MLB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시기였다. 당시 옐리치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땅볼도 꽤 많이 때렸다. 2017년 땅볼/뜬공 비율이 1.73이었는데, 2018년 이 비율이 2.15로 오히려 늘었다. 예전부터 그는 땅볼 비율이 꽤 높은 타자였다. 그러니까 옐리치는 많은 땅볼을 때리는 동안에도 타율과 홈런이 증가한 것이다. 옐리치는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난 의식적으로 발사각을 바꾸려(높이려) 한 적이 없다. 공을 세게 치지 못한다면, 발사각은 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플라이볼 혁명은 불변의 이론이나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트렌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타구 발사각에 대해 옐리치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의 타격 데이터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커리어 내내 플라이볼보다 그라운드볼을 많이 때렸다. MLB 커리어 8년 동안 기록한 땅볼이 뜬공보다 두 배 이상(땅볼/뜬공 비율 2.12) 많다. 2018년 옐리치의 타구 평균 발사각은 5.0에 불과했다. 이해 MLB 전체의 평균 발사각(12.3)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리그 홈런 3위에 올랐다. 플라이볼이 많지 않았지만, 뜬 공의 대부분은 속도가 빨랐다는 뜻이다. MLB닷컴 기사 끝에 옐리치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최고 타자들의 콘택트 순간을 찍은 사진을 보라. 똑같은 자세가 보일 것이다. 다른 건 사고방식(mindset)이다. 다운컷을 하라는 사람도 있고, 어퍼컷을 하라는 사람도 있다. 결국 그들은 같은 곳에서 만난다. 발사각에 매달려 성공한 선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가운데 있으려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현상’에 집중했지만, 타격의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최대한 정확하게 쳐서 강한 타구를 만드는 건 시대를 초월한 목표다. 최적의 히팅 포인트와 자연스러운 폴로 스로가 그래서 중요하다. 스윙 궤적이나 발사각은 스탯캐스트에 의한 현상 분석이다. 이것이 결코 타격의 목표일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윌리엄스, 그리고 옐리치로부터 나는 또 배웠다. 타자를 못 믿는다고 말한 이유 선수 시절 내 마지막 타석은 일본 주니치에서 뛰었던 1999년 7월 22일 요미우리와의 도쿄돔 경기에서였다. 4-1로 앞선 8회 말 2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위기를 넘겼고, 9회 초 무사 1·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호시노 센이치 당시 주니치 감독은 내게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를 지시했다. 요미우리 배터리는 보내기 번트를 예상했다. 내야진이 번트에 대비해 움직였고, 투수는 전력으로 던지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공이 날아와 내 방망이에 맞은 것이다. 타구는 내야를 통과해 외야 펜스까지 굴러가는 2루타가 됐다. 내가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다. 일본 진출 후 16타수 무안타 끝에 때린 첫 안타였다. 해태와 주니치 시절 몇 차례 타석에 들어섰지만, 삼진으로 물러난 기억이 대부분이다. 타격은 참 어렵다. 타자들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난 선수 시절 KBO리그에서만 40차례 패전투수가 됐다. 그중 0-1로 진 경기가 꽤 많았다. 특히 잊히지 않는 승부가 있다. 내가 해태에서 뛰었던 1988년 4월 17일 광주경기였다. 난 그날 9이닝을 완투하며 삼진 11개를 빼앗았다. 점수는 단 1점만 줬다. 이날의 주인공은 상대 투수였던 빙그레 이동석이었다. 그는 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게다가 4사구와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실책 2개가 아니었으면 퍼펙트게임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날 밤, 나 혼자서 씩씩거렸던 기억이 난다. 프로에서 노히트노런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노히터 경기의 패전투수가 됐으니 너무 분했다. ‘타선이 점수를 내줬다면 내가 승리투수가 되지 않았을까?’ ‘수비가 좀 도와줬다면 나도 0점으로 막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소주 한 병을 들이켠 뒤 잠들었다. 다음날 야구장으로 출근해서 내 동료들을 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싶었다. 내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의 도움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다. 야수의 수비를 탓할 게 아니라 삼진으로 잡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해야 했다. 이듬해 내가 노히트노런(1989년 7월 6일 광주 삼성전)을 기록했을 때는 타자들의 도움을 듬뿍 받았다. 이날 해태는 10-0으로 이겼다. 내가 투수로서 여러 기록을 세우는 데에는 타자들의 도움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도 나는 감독을 하면서 “타자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말의 저의는, 투수가 타자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타격은 ‘3할의 예술’이다. 10번 타격해서 3번 안타를 때린다면 성공이다. 뛰어난 투수와 10번 상대하면 1~2번 이기기도 힘든 게 타자다. 그래서 난 타자를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투박한 표현이었다. 타격은 원래 어려운 것이니 ‘타자가 점수를 뽑아주면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타자는 못 믿는다”고 말할 게 아니라 “타격은 어렵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말에 서운함을 느낀 타자들이 있다면, 이 기회에 사과의 뜻을 전한다. 이제 난 타자들을 믿는다. 투구 스피드가 빨라지고, 변화구가 다양해졌는데도 타자들은 곧잘 대응하고 있다. 타자들의 체격과 기술도 좋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MLB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선수 시절 이정후(키움)와 강백호(KT) 같은 타자를 상대하지 않은 건 행운이다. 이 얘기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프로야구 팀을 이끌면서, 국가대표팀을 지휘할 때 나는 투수 파트에 집중했다. 타격은 전문 코치에게 맡기는 게 옳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대신 타자들을 이해하고 응원하기 위해서는 나도 공부해야 한다. 윌리엄스의 말대로 타격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기에 그렇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2020.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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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최근 몇 년 동안 메이저리그(MLB)뿐만 아니라 KBO리그의 타격이 크게 바뀌었다.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의 성공담은 많은 타자와 코치, 그리고 전력 분석원의 고정관념을 깼다. 뜬공이 땅볼보다 득점 생산에 유리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그걸 위해서 공을 올려치는 어퍼컷 스윙을 해야 한다는 건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말 그럴까.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감독 시절, 난 타자들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타이밍이 조금 늦는 것 같다. 히팅 포인트가 앞(이동발)에 형성되면 좋겠다”는 정도만 말했다. 기술적인 해법은 선수와 타격 코치가 찾기를 바랐다. 현장을 떠난 입장에서 플라이볼 혁명은 그래서 더 낯설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MLB 기사와 기록들을 찾아보게 됐다. 그 결과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2017년 7월 워싱턴포스트의 ‘타자들은 발사각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 이런에 논쟁이 담겨 있었다. 플라이볼의 생산성이 높다는 건 2010년대 초 오클랜드의 성공에서 이미 증명됐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효율적인 야구를 추구한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머니볼』을 통해 팬들에게 잘 알려졌다. 당시 오클랜드는 자니 곰스, 조시 레딕 등 땅볼보다 뜬공 비율이 매우 높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오클랜드가 2012년과 2013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우승할 때 MLB 전체에서 뜬공 비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오클랜드가 플라이볼 타자들을 데려와 성공한 것과 타자들이 스윙을 바꿔 일부러 플라이볼을 치는 건 다른 얘기인 것 같다. 의도적인 ‘어퍼컷’에 대한 환상 플라이볼 혁명의 성공담을 쫓으면 한 사람이 등장한다고 한다. 재야의 타격 이론가(덕 래타)가 이 이론을 확산했다고 한다.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저스틴 터너(LA 다저스)의 변화도 그가 만든 것이다. 래타는 “어퍼컷 스윙 이론은 터너가 MLB에서 지난 10년 동안 배운 것과 정반대”라고 말했다. 터너는 “내가 공의 아랫부분을 때리려고 노력한다는 걸 다른 타자나 코치에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래타와 터너가 완성한 어퍼컷 스윙은 다른 이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거라는 뉘앙스 같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는 플라이볼 혁명에 참여한 라이언 짐머맨(워싱턴)의 사례도 나온다. 그는 2016년 타율 0.218, 홈런 15개로 부진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짐머맨의 평균 발사각이 7.8도였다. 그의 타구 중에서 땅볼이 48.6%, 뜬공이 34.6%였다. 짐머맨은 2017년 초 타구를 더 띄우기 시작했다. 첫 50경기에서 타율 0.368, 홈런 15개를 기록했다. 이 시점 그의 타구 평균 발사각이 11.2도였다. 짐머맨은 드디어 혁명에 성공한 것일까. 그의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짐머맨은 “그런 일(스윙 궤적)을 통제하려고 하면 타석에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난 공을 강하게 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며 “시속 150~160㎞로 날아오는 공의 아랫부분을 정확히 겨냥해 때린다고? 그들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2017시즌을 앞두고 짐머맨이 어떻게 변화했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놀라운 성과를 내는 와중에도, 그는 ‘의도적인’ 어퍼컷 스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2018년 이후 짐머맨의 발사각과 타격 성적은 기복이 있었다. 정말 터너는 투구의 아랫부분을 어퍼컷 스윙으로 정밀 타격하고 있는 것일까. 진실은 선수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타구를 띄우는 게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MLB닷컴이 2016시즌과 2017년 6월 초의 기록을 비교한 자료가 있다. 이 자료는 플라이볼 비율이 MLB 전체에서 가장 크게 증가한 타자들의 리스트다. 그 효과를 wOBA(가중 출루율)로 비교한 것이다. wOBA는 복잡한 계산을 거쳐 타자가 타수당 득점에 기여한 값을 산출한 것이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알렉스 아빌라는 2016년보다 2017년(6월 초까지)에 25.5% 더 많은 뜬공을 날렸다. 그 결과 wOBA가 0.115 증가했다. 존 제이소의 경우, 같은 기간 뜬공 비율이 19.5% 늘어났다. 그러나 그의 wOBA는 오히려 감소(-0.027)했다. 2016년 타율 0.268, 홈런 8개를 기록한 제이소는 2017년 타율이 떨어졌고(0.211), 홈런(10개)은 조금 늘었다. 전체적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졌다. 이유가 뭘까. 플라이볼 혁명에 사로잡히다 보니, 많은 이들이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이다. 바로 타구 속도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타구의 비거리는 속도와 발사각에 의해 결정된다. 이상적인 타구를 뜻하는 ‘배럴(barrel)’은 ‘158㎞ 이상의 속도’와 ‘26~30도의 발사각’ 두 요소로 이뤄진다. 발사각을 높일 생각만 하면, 그것만큼 중요한 타구 속도를 내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워가 좋아서 타구를 힘차게 띄울 수 있는 타자라면 발사각을 높이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아빌라가 그런 경우다. 2016년 57경기에서 7홈런을 때렸던 그는 타구 발사각을 6.9도에서 12.4 높인 이듬해 112경기에서 14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아빌라 타구의 평균 발사각이 10도 이하로 다시 낮아졌다. 성적도 함께 떨어졌다. 인위적으로 발사각을 높이는 것도, 그걸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파워가 부족한 타자들에게 무리한 어퍼컷은 더 큰 손해를 끼친다. 빠르지 않은 타구를 날려봐야 홈런을 때릴 수 없고, 대부분 야수에게 잡히기 때문이다. 제이소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는 스윙을 만들겠다고 힘만 뺀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의 MLB 경력은 타구 평균 발사각을 7.9도에서 19.1도로 높였던 2017년 끝나고 말았다. 이 논란에 관해 MLB 최고의 출루 머신 조이 보토가 한 말에 공감한다. 그는 팬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많은 타자와 대화한 뒤 내린 결론은 땅볼은 나쁘고, 뜬공은 좋고, 라인 드라이브는 좋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운드볼이 비효율적이라는 건 틀림없다. 플라이볼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타자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라인 드라이브(발사각 11~20도의 강한 타구)도 여전히 중요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실 이건 플라이볼 혁명이 아니라 땅볼 반대 혁명(anti-grounder revolution)이라 불러야 한다”고 썼다. ‘어퍼컷’은 비밀이 아니다 MLB닷컴의 통계 전문 칼럼니스트 마이크 페트리엘로는 “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세게 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뜬공을 세게 치는 것이다. 그걸 할 수 없으면 (타격을) 하지 말라”고 트위터에 쓴 적이 있다. 플라이볼 혁명을 관찰한 그는 “모든 타자가 올려쳐야 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그걸 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플라이볼을 날리는 게 너무 ‘목표’가 됐다. 공중으로 강한 타구를 날릴 수 없다면 플라이볼 혁명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뜬공을 위해 스윙 궤적까지 바꾸는 건 만능이 아니라고 페트리엘로는 주장했다. 나도 동의한다. 플라이볼은 타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난 어퍼컷 스윙의 효용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커졌다. 우리 세대는 레벨(level, 지표면과 수평 궤적) 스윙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배웠다. 플레이볼 혁명 전까지 MLB도 이런 이론이 지배했다. 레벨 스윙을 하면 투구와 방망이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커지기 때문이다. 라인 드라이브 타구가 나올 확률도 높아진다. 심지어 예전에는 다운컷(downcut) 스윙을 강조하는 지도자들도 많았다. 타자는 보통 어깨높이에서 배트를 쥔다. 여기서 최단 거리로 투구를 때리려면 내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운컷 스윙은 어퍼컷 스윙과 반대로, 공의 윗부분을 때릴 가능성이 크다. 땅볼을 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도 그렇게 치라고 배웠다.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땅볼을 굴려 내야수의 실책을 유도하는 것도 확률 높은 공격법이었다. 그렇다고 다운컷 스윙이 아주 틀린 이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투수의 구위가 압도적이지 않았고, 타자의 파워가 약했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효과적인 타격이었다. 다시 어퍼컷 스윙에 대해 고민할 차례다. 생각해 보면 완전한 레벨 스윙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 아닌가 싶다. 스윙의 시작과 끝이 똑같은 높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이 날아오는 궤적도 지면과 수평이 아니다. 오버핸드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면 릴리스 포인트는 180~200㎝ 높이에 형성된다. 투구가 스트라이크존(50~100㎝)을 통과하면 5~7도의 각도가 생긴다. 떨어지는 변화구라면 각도가 더 클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레벨 스윙의 각도는 0도가 아니라 7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정타를 때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후 공을 때린 뒤 배트를 조금 들어 올리면? 발사각 20도 이상의 배럴 타구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게 진짜 이상적인 타격이 아닐까. 투구와 방망이의 콘택트 지점이 넓어지고, 이상적인 발사각까지 만드는 비밀을 새롭게 알아낸 걸까. 나는 이런 고민 끝에 MLB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와 만났다. 1971년 그가 출간한 저서 『타격의 과학』에 이미 살짝 올려치는 레벨 스윙에 대한 이론이 담겨 있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2020.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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