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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윤의 야구 본색] ABS 시대를 맞이한 투수와 타자의 대처법은

올해 KBO리그는 세계 최초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을 도입, 실전에서 운영 중이다. 심판(사람)이 아닌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기계가 스트라이크와 볼을 나눈다.야구장 환경과 날씨 등에 따라 판정의 차이가 난다는 현장 목소리가 있다. 우려가 작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의견도 있다. 사람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 지난해까지 논란의 중심은 일관성의 문제였다. 한 경기에서 이닝마다, 혹은 공 하나마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이 다를 때가 있어 선수와 코치진이 불만을 토로했다.김용달 전 삼성 라이온즈 타격 코치는 "구장마다 스트라이크존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 차이가 크지 않다"며 "그 경기에서 일관되게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이 이루어지므로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A 구단 타격 코치도 "경기에서 일관성이 유지된다면 구장마다 미세한 차이는 구장의 특색 정도라서 논란이 될 부분은 아니다"라면서 "중요한 건 ABS라는 스트라이크존 변화에 따른 투수와 타자의 대처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ABS 시행 세칙에 따르면 홈플레이트 중간과 끝, 두 곳에서 상하 높이 기준을 충족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된다. 홈플레이트 기준 좌우로 2㎝씩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졌지만, 중간과 끝의 기준점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제 스트라이크존은 좁아진 느낌이다. 특히 릴리스 포인트가 옆에 형성되는 사이드암스로의 경우 스트라이크존이 더욱 좁아진다는 평가다. 그만큼 스트라이크존의 높낮이를 활용하거나 정교한 제구 없이 타자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어렵다.타자 신장에 따라 조정되는 상하 스트라이크존은 높은 쪽이 크게 확대됐다. A 구단 타격 코치는 "체감상 공 2개 정도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이라면 볼이었던 높은 코스의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돼 투수가 던질 곳이 늘어났다. 타자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각이 크고 빠르게 휘는 커브가 하이 패스트볼과 함께 최상의 조합으로 떠올랐다. 반대로 낮은 쪽 스트라이크존에서 볼로 떨어지는 포크볼의 효과는 줄어들었다. 김용달 전 코치는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의 높은 쪽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니 타자도 히팅 포인트를 높은 쪽에 두게 된다. 공을 높게 보는 만큼 낮은 쪽에서 떨어지는 포크볼에 속을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포크볼이 효과를 보려면 라울 알칸타라(두산 베어스)처럼 낮은 쪽에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제구가 필수다. 그런 제구가 없으면 포크볼로 타자의 배트를 끌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15일 기준 평균자책점 상위 20위 중 포크볼이 주 무기인 투수는 알칸타라가 유일하다.A 구단 타격 코치는 "ABS는 투수의 구종뿐만이 아니라 타자의 스윙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6년부터 메이저리그(MLB)를 중심으로 플라이볼 혁명이 이루어지며 타자의 스윙은 어퍼 스윙이 주류가 됐다. 어퍼 스윙은 떨어지는 변화구에 대처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높은 공을 치는 데는 불리하다. 높은 쪽 스트라이크존의 확대로 그곳을 공략하는 투수가 늘어나는 만큼 타자의 스윙도 어퍼 스윙이 아닌 레벨 스윙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타자의 스윙 발전도, 투수의 구종 추가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ABS에 맞춰 누가 얼마큼 빠르게 변화하고 적응하느냐에 따라 팀은 물론이고 개인 성적도 크게 좌우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스카우트나 트레이드, 자유계약선수(FA) 계약 등과 같은 팀 전력 구성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앞으로 ABS가 구단과 선수를 얼마큼 변하게 할지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이다.야구 칼럼니스트정리=배중현 기자 2024.04.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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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 오치아이와 나이키 스윙

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2006년 나는 주춤했다. 앞선 세 시즌 동안 연평균 타율 0.320, 홈런 25개를 유지하다가 그해 타율이 2할대(0.291)로 떨어졌다. 홈런은 13개였다. 2006시즌이 끝난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뭘 어떻게 바꿔야 할까.일단 기술 훈련의 기초인 티배팅 때부터 다시 시작했다. 티 위에 멈춰 있는 공을 빵빵 때리면 속이 시원하다. 재미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티배팅 훈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날아오고, 급격히 꺾이는 공을 쫓을 때 잊기 쉬운 '타격의 본질'을 생각하는 훈련이 아니겠는가.정지해 있는 공은 강하게 치기 쉽다. 세게 친다고 무조건 멀리 날아가는 건 아니다. 정확히 쳐야 한다. 그리고 타구에 회전을 줘야 한다. 투수가 패스트볼을 던질 때 강한 백스핀(backspin·역회전)을 만드는 것과 원리다. 강한 백스핀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는 공의 낙폭을 줄인다. 그러니까 공이 더 날아가게 한다.타구의 백스핀은 어떻게 생성될까. 일단 투구의 가운데를 때려 정타(正打)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배트가 공 아래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방망이는 공과 점(點)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공과 붙어 15~20㎝ 앞으로 나가는 선(線)을 그리기 때문이다. 글로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지만, 백스핀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배트를 잡은 두 손의 위치(톱 포지션)에서 콘택트 존까지의 거리가 짧아야 한다. 그리고 임팩트 후 폴로 스루(follow through)까지 배트가 살짝 올라가야 한다. 이 스윙 궤적을 옆에서 보면 마치 나이키 로고와 같다. 배트의 회전력, 코킹이 중요하다'나이키 스윙'을 만들기 위해 훈련 때 극단적으로 공을 띄우려 했다. 히팅 포인트를 몸에 최대한 가깝게 두고 간결하게 공을 때리면 강한 백스핀을 만들 수 있다. 이 스윙이 완성 단계에 이르자 배트를 갖다 대기만 해도 공이 다 떴다. 여기서 중요한 게 손목을 돌리는 동작, 즉 ‘코킹(cocking)’이다. 손목을 꺾었다가 풀면서 힘을 만드는 움직임인데, 코킹 동작을 잘 만들어놓으면 간결한 스윙으로도 파워를 전달할 수 있다. 내가 학창 시절만 해도 코킹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손목을 꺾으면 백스윙이 불필요하게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코킹을 하지 않고 곧바로 치라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 시속 150㎞의 스피드로 날아오는 투구의 힘을 이겨내기 어렵다. 요즘 투수들의 강속구를 공략하려면 배트의 회전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코킹은 파워 포지션(힘을 전달하기 위한 준비 동작)에서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타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배트를 뒤로 눕힌 채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면 공을 맞히기는 쉬우나, 빠른 공을 이겨낼 힘이 없다. 강한 타구를 만들려는 타자들은 코킹을 통해 회전력을 확보한다. 여기에 나이키 스윙 궤적이 더해지면 더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다. 이건 선택의 문제다. 코킹을 많이 하지 않고 콘택트에 중점을 두겠다고 선택한 타자는 그렇게 하면 된다. 또 나이키 스윙의 메커니즘이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하더라도 실천하기 어려우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타격에는 정답이 없다.어퍼컷 스윙이 정답일 순 없다어떤 이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넌 힘이 좋으니까 간결한 스윙으로도 강한 타구를 만드는 거 아니냐?”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프로 투수들이 던지는 투구에 대응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프로에 들어온 타자가 그 정도 파워가 없진 않다. 프로 선수라면 타고난 힘도 있고, 훈련으로 키운 근력도 있다.내 히팅 포인트는 다른 타자보다 조금 뒤에 형성되는 편이다. 내 힘이 특별해서 타이밍이 늦은 타구를 앞으로 끌고 나오는 게 아니다. 톱 포지션에서 콘택트 존까지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한 박자 늦어 보이는 타구도 안타로 만드는 것이다.결국 힘이 아니라 기술이다. 1990년대 이종범 선배가 힘으로 쳤을까. 아니다. 체격이 작은 이종범 선배는 방망이를 짧게 내려쳤다. 간결한 스윙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었다.동시대 최고의 타자 중 하나였던 양준혁 선배도 ‘어퍼컷(uppercut·투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스윙’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지면과 거의 평행한 레벨 스윙으로 정확성을 높였다. 그리고 임팩트 후 팔을 들어올리는 양준혁 선배의 ‘만세 타법’은 나이키 스윙의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201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라운드볼(땅볼)보다 플라이볼(뜬공)의 생산성이 더 높다는 건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를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날이 갈수록 그라운드 컨디션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내야 수비력도 향상됐다.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수비 시프트(타구 방향을 분석해 수비수 위치를 조정)까지 발달하면서 땅볼을 때려봐야 안타가 될 확률이 낮아졌다. 땅볼의 가치가 하락하자 타자들은 공을 띄우려 노력했고, 그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 혁명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플라이볼 혁명의 요체다.이 과정에서 어퍼컷 스윙이 유행했다. 타구를 띄우려면 콘택트 존에서 스윙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를 못 쳐도 뜬공을 날렸다면 만족한다”는 MLB 선수도 나왔다. 그러나 올려친다고 해서 타구를 띄울 수 있을까. 그 타구에 힘이 있을까.2015년 이후로 MLB 선수들은 경쟁적으로 어퍼컷 스윙을 시도했다. 성공 사례도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도 꽤 많았다. 뛰어난 성과를 낸 선수라고 해도 그게 정말 어퍼컷 스윙 덕분인지 나는 알 수 없다.이런 트렌드는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KBO리그에도 상륙했다. 2020년 전후로는 너도나도 어퍼컷 스윙을 얘기했다. 참 희한했다. 투수와 타자는 거의 그대로인데, 타격 이론이 이렇게까지 급변할 수 있는 것일까. 이론이 아니라면 유행이란 말일까.이와 관련한 얘기를 MLB에서 뛰는 최지만 선수(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나눌 기회가 있었다. “MLB 타자들이 어퍼 스윙에 신경 쓰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아니다. 어퍼컷 스윙으로는 시속 160㎞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에 대응할 수 없다. MLB 타자들도 간결한 임팩트에 집중한다. 그리고 백스핀을 걸기 유리한 스윙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어퍼컷 스윙을 하는 타자 중 좋은 선수는 내 기억엔 없다. 올려 쳐서는 절대로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임팩트 후 배트가 위로 올라가면 톱스핀(top spin)이 걸린다. 백스핀과 반대 개념인 톱스핀은 배트가 앞으로 나가면서 공의 윗부분을 때려 만들어진다. 투수가 던지는 커브가 이런 원리로 떨어진다. 톱스핀이 걸리면, 마치 탁구의 드라이브처럼 공이 점점 가라앉는다. 타자에게 좋을 리 없다.테드 윌리엄스가 이상적이라고 말한 스윙은 억지스러운 어퍼컷이 아니다. 마운드 위에서 오버핸드 투수가 던져서 만들어지는 투구 각도만큼 약간(slight) 올려치는 게 아니다. 그러면 투구와 배트가 만나는 면적(윌리엄스는 임팩트 존이라고 표현했다)이 넓어진다.내 해답은 오치아이 스윙이다그러나 과연 이게 답일까. 물론 훌륭한 스윙인 건 틀림없지만, 저게 정답일까. ‘윌리엄스 스트로크’는 이론적으로 뛰어나다. 다만 타구에 스핀을 걸긴 어렵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윌리엄스의 스윙을 피칭에 비유하자면 무회전 볼 같다. 잘 맞은 타구는 배트와 15㎝ 이상 붙어 나간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배트의 중심과 공의 중심이 붙어 있다면(마치 팜볼처럼) 잘 맞은 것 같은 타구도 외야로 날아가서는 추진력을 잃게 된다. 투수는 패스트볼을 릴리스할 때 검지와 중지로 공을 꽉 눌러서 백스핀을 만든다. 타구도 그래야 한다. 그게 깎아 치기다. 배트로 공의 중심을 정확히 맞힌 뒤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백스핀을 만드는 것이다. 배트가 공의 아랫부분을 감싸 안아 올리는 느낌이다. 공을 때린 뒤 팔을 쭉 뻗는 동작, 즉 폴로스루 과정에서 회전력을 만드는 거다. 이 스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오치아이 히로미쓰(일본)의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은퇴 후 자신의 타격 비밀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는 ‘공의 아래를 파고들듯 때리라’고 말한다. 이 영상에서 본 오치아이의 페퍼 게임(pepper game, 가까이서 던진 공을 타자가 가볍게 치는 훈련)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 타자들은 정면의 그물을 보고 때리는데 그의 타구 각도는 평균 45도를 넘을 만큼 컸다.선수 시절 오치아이는 경쟁자들에 비해 체격이 작은 편이었다. 키가 1m77㎝로 그리 크지 않았고, 풀스윙도 하지 않았다. 툭 친 것 같은데 그의 타구는 쭉 뻗어 나갔다. 그는 일본에서 홈런·타점·타율왕을 5번씩 수상했다. 오치아이의 타격 비결이 ‘깎아 올려치기’였던 것이다.오치아이의 이론은 내가 찾은 답과 가장 가까웠다. 2007년부터 나는 타구에 회전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티배팅 때부터 이를 의식했다. 임팩트 때 오른손 타자가 배트를 쥔 오른손을 ‘잡아주는’ 느낌으로 공을 친다면 나이키 스윙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스윙을 만들기 위해 페퍼 게임을 할 때부터 노력했다. 지나치게 깎아 치는 바람에 타구가 백네트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지기도 했다. 훈련 때 그렇게 극단적으로 깎아 쳐야 실전에서 유효한 타구 회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오치아이의 영상을 보고 “내가 찾은 방법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며 안심했다. 무엇보다 나이키 스윙은 나와 맞는 타법이었다. 물론 그런 메커니즘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영상에 나오는 젊은 선수들도 오치아이처럼 치려다가 헛스윙을 연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 훈련을 통해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나이키 스윙은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메커니즘이다.고교 시절 날 보고 “오치아이의 타격과 닮았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 당시에는 오치아이의 영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백스핀을 만드는 스타일이었던 거다. 프로에 와서 슬럼프에 빠진 걸 계기로 나이키 스윙을 더 발전시켰다. 난 스윙을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럴수록 더 강하게, 더 멀리 칠 수 있었다. 2007년 다시 홈런 20개 이상을 때려내고, 2008년 홈런왕(31개)에 올랐던 비결도 내 스윙을 완성한 덕분이었다. 내 전성기가 시작된 거다. 2009년 경기 중 뇌진탕 부상을 입기 전에는 내 스윙은 나름대로 완성 단계였다. 타석에서 어떤 투수의 공이라도 다 쳐낼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큰 부상을 당해 상승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면, 내 전성기가 더 길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KBS 해설위원, 정리=김식 기자 2023.01.30 07:30
메이저리그

[레인보우 리포트] 다가올 도루의 증가,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한동안 야구는 도루에서 멀어져갔다. 세이버 메트리션인 빌 제임스는 "성공률이 70%를 넘지 못한다면 도루하지 말라"고 했다. 제임스뿐 아니라 세이버 메트리션들은 대부분 도루에 부정적이었다. 뛰다 아웃을 당할 수 있다는 리스크에 비하면 득점 기여도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하더라도 성공률을 따지라고 요구했다. 부상 위험도가 높은 것도 문제였다. 프로 구단 입장에서 도루는 득보다 실이 많은 행위였다. 장타의 증가는 메이저리그(MLB)와 도루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2015년 MLB에 타구 추적 시스템인 스탯캐스트가 도입됐고, 이를 기반으로 한 ‘플라이볼 혁명’이 찾아왔다. 선수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쳐내고 더 많은 득점을 만들었다. 뒤 타자가 장타를 만들 수 있다면, 앞 타자가 2루를 훔쳐야 할 필요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루의 득점 가치가 낮아진 이유다. 플라이볼 혁명이 이뤄진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MLB의 기대 득점표를 살펴보면 도루 등 주자 진루의 손익 분기점은 제임스가 주장한 70%가 아닌 71.4%였다. 도루의 가치가 하락하고 도루 시도가 줄어든 상황에서 최근 MLB 사무국은 재밌는 시도를 준비 중이다. 2023년부터는 피치 클락이 도입되어 투수는 주자가 없는 경우엔 15초, 주자가 있는 경우에는 20초 안에 투구를 시작해야 한다. 또 변의 길이가 15인치(38.1㎝)인 정사각형 베이스를 18인치(45.72㎝)로 늘린다. 타석당 견제구 혹은 투수 판에서 발을 빼는 횟수는 2번으로 제한된다. 이는 도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화다. 피치 클락으로 인해 투수는 주자를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해졌다. 베이스 크기를 늘릴 시 각 루 간의 간격이 4.5인치(11.43㎝) 줄어들고 리드 폭이 늘며 베이스를 오버해서 슬라이딩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또 견제 제한으로 인해 주자는 투수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도루 장려가 정말로 도루 증가를 가져올까? 사무국은 위 제도를 2021년 마이너리그 각 레벨에 먼저 실험했다. 트리플A에서는 베이스 크기를 늘렸고 상위 싱글A에서는 투수가 투수 판을 밟은 채 견제구를 던질 수 없게 했으며 하위 싱글A에서는 타석당 견제구를 2개만 허용했다. 이어 올해 트리플A에서는 기존의 베이스 크기 확대, 견제 횟수 제한과 함께 피치 클락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2022년 트리플A 경기당 도루 횟수가 2021년 0.95개에서 1.18개로 증가했다. 도루 성공률 역시 75.62%에서 78.47%로 증가했다. 물론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트리플A 사례를 통해 내년 MLB에서 도루가 증가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도루 시도가 많아지고 성공도 많이 한다면 도루의 손익 분기점에 변화가 생길까? 가장 많은 주자가 도루를 시도한 상황은 주자 1루이다. 이 상황에서 가정해보자. 단순하게 1루에서 2루로의 도루가 늘어난다면 1루 상황에서의 기대 득점은 늘어날 것이다. 이때 두 상황의 기대 득점은 해당 상황에서 이닝이 끝날 때까지 기대할 수 있는 평균적인 득점을 말한다. 1루 주자가 2루로 이동해 주자 1루에서 득점으로 연결되는 장면이 해당 이닝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1루 도루의 손익분기점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자 1루 상황에서 도루를 성공한 타석의 수가 늘어도 그 수치가 극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표를 통해 알 수 있듯, 도루 성공이 차지하는 타석의 비율은 크게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도루 성공 이후 득점으로 이어진 타석만을 또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도루가 실질적으로 득점에 영향을 준 표본은 많지 않다. 즉 도루 증가는 손익분기점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루가 증가한다면 리그의 어떤 부분에 변화를 주목해야 할까. 공격팀 입장에서 도루 성공률이 높아진다면 도루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수비 팀이다. 도루가 많아지고 투수가 견제할 수 없다면 수비팀은 다른 대응책이 필요하다. 특히 경기 후반 접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투수들도 견제 대신 슬라이드 스텝을 통한 시간 단축을 시도하겠지만,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신 포수가 견제를 하거나 피치 아웃을 이용한 주자 견제 활용 폭이 커질 수 있다. 투수와 달리 포수의 견제는 새 규정에서도 제한이 없다. 주자들이 과감한 리드와 적극적으로 도루 시도를 할 가능성이 큰 만큼 과감한 포수 견제와 피치 아웃도 이전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 다만 이 부분을 좌우하는 건 포수의 송구 능력과 노련함이다. 위협적인 주자들이 줄어든 동안 묻혀왔던 강견 포수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겠다. 올해 포수 팝 타임(포수가 2루까지 송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 1위 J.T 리얼무토(필리델피아 필리스·1.82초)는 이미 현역 선수 중 최고의 포수로 꼽힌다. 여기에 2위 레네 핀토(탬파베이 레이스), 3위 호르헤 알파로(샌디에이고 파드리스), 4위 크리스티안 베탄코트(탬파베이·이상 1.89초) 등은 향후 가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한 세기 이상 이어진 야구는 주기적으로 환경이 변해왔고, 선수들도 여기에 적응해왔다.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는 내년 MLB의 데이터는 야구계가 연구하기에 재밌는 자료가 될 것이다. 포수의 가치가 높아지고, 홈런에 치중했던 야구 말고도 빠르고 수비력을 갖춘 야구가 다시 주목받을 수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고 성과를 거두는 팀이 나타난다면, 그들이 새로운 '트렌드 세터'가 될 수도 있다. 순재범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경상국립대학교 정보통계학과) 2022.10.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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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데이터로 분석한 KBO 현주소② 타자 편-넓어진 콜드 존, '하이볼'에 더 무너진다

KBO리그 타자들은 궁지에 몰렸다. 전반적인 타격 지표가 하락하면서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다. 2020년 두산에서 20승을 거둔 라울 알칸타라(현 한신)는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NPB)로 이적해 2승에 그치고 있다. 선발 한 자리를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부진하다. 반면 한 수 아래로 평가하던 대만 프로야구(CPBL) 출신 투수 라이언 카펜터(한화)와 아리엘 미란다(두산)는 성공적으로 KBO리그에 안착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이 마흔네 살 투수 라울 발데스(도미니카공화국)에 고전하자 KBO리그 타자들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눈초리는 커졌다. '투고타저' 흐름인 KBO리그에선 타자들이 강점을 갖는 '코스'가 확연하게 줄었다. 스트라이크존을 아홉 개로 세분화했을 때 3할 이상의 타율이 기록된 코스가 올 시즌 두 개에 불과하다. '강점'을 뜻하는 핫 존(Hot Zone)보다 '약점'을 의미하는 콜드 존(Cold Zone)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5년 전엔 달랐다. 2016년에는 무려 여덟 개의 코스가 핫 존으로 분류됐다. 스트라이크존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빈틈이 없었다. 콜드 존이 넓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A 구단 전력분석원은 "타격 지표가 떨어진 건 공인구 반발계수를 조정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8년 12월 규칙위원회를 열어 기존 0.4134~0.4374이던 공인구 반발계수를 0.4034~0.4234로 낮췄다. 바뀐 공인구가 처음 적용된 2019년부터 타구가 좀처럼 뻗지 않는다. 홈런성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히기 일쑤. 2018년 34명이던 리그 3할 타자가 이듬해 18명으로 반 토막 났다. 콜드 존이 넓어진 다른 이유로 리그 분위기를 꼽는 목소리도 있다. B 구단 타격코치는 "전반적인 타격 수준이 내려갔을 수 있다. 잘했던 선수들이 많이 은퇴했고 지금은 젊은 세대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C 구단 타격코치도 "야구를 이끌어가는 선수들이 성장하는 과도기다. 세대교체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 KBO리그는 각 구단의 육성 기조가 강해졌다. 개막전 기준 평균 연령(27.3세→27.1세)과 평균 연차(8.4년→8.1년)가 모두 낮아졌다. 2군에서 경험을 쌓아야 할 선수들이 다수 1군에 진입, 전체 기록이 하락하는 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D 구단 타격코치는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진 것도 있고 투수들의 변화구도 다양해졌다. 히팅 존이 작아지다 보니 타구 생산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콜드 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스트라이크존 상단, 이른바 '하이볼'이다. 스포츠투아이 자료에 따르면 타자들은 유독 '하이볼'에 쩔쩔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좋은 먹잇감'으로 분류됐던 코스지만 지금은 아니다. C 구단 투수코치는 "과거에는 '공을 낮게 던져라'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요즘엔 투수들이 의도적으로 하이 패스트볼을 많이 던진다"고 말했다. E 구단 타격코치는 "하이 패스트볼은 (다른 코스와 비교하면) 속도가 좀 더 빠르다. 높은 코스를 쳐내려면 스윙 능력은 물론이고 손목 컨트롤과 몸통 회전 등 순간적인 대처가 중요한 데 이게 쉽지 않다"고 했다. 주목할 건 발사각(Launch Angle)이다. KBO리그는 2015년 리그 평균 발사각(인플레이타구 기준)이 15.9도였다. 그런데 2019년 17.6도에 이어 지난해 18.5도까지 상승했다. 올 시즌에도 17.9도로 높은 편이다. 이는 메이저리그(MLB)의 영향이다. 미국 유력 매체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16년 MLB 평균 발사각은 10.5도에서 11.5도로 상승했다. 2017년 5월에는 12.8도로 조금 더 올랐다. 타자들이 타구를 높이 띄우면서 홈런이 쏟아졌고 이를 '플라이볼 혁명'이라 불렀다. 비슷한 시기, 국내 타자들도 장타 생산을 의식해 발사각을 높이기 시작했다. 배럴(Barrel) 타구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배럴은 세이버메트리션 톰 탱고가 만들어 낸 이상적 타구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로 발사각 26~30도와 타구 속도 시속 98마일(157.7㎞) 이상인 경우가 해당한다. C 구단 타격코치는 "국내 야구에서 5년 전쯤 발사각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아마추어 지도자가 이를 어린 선수들에게 적용, 어퍼 스윙으로 가르치는 게 유행이었다"며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스윙 궤적을 올리려는 모습이 있었다. 어퍼 스윙을 하다 보니 높은 쪽 코스에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F 구단 타격코치는 "예전에는 다운 스윙 또는 레벨 스윙이 대세였지만 최근엔 어퍼 스윙에 가까운 스윙이 많아진 추세다. 어퍼 스윙은 낮은 존 대처가 되지만 높은 존 공략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레벨 스윙을 해야 할 타자들이 어퍼 스윙을 하기도 한다"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한 아마야구 전문가는 "레슨장에 가면 (선수 유형과 상관 없이) 대부분 어퍼 스윙을 가르친다"고 꼬집었다.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에 과도한 어퍼스윙이 더해져 스트라이크존 상단은 투수의 몫이 됐다. 그 결과 콜드 존이 더 뚜렷해졌다. G 구단 타격코치는 "타자들의 스윙 변화가 크다. 어퍼 스윙이 많다 보니 볼과 배트의 궤적이 잘 맞지 않는다. '하이볼'을 타격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고 전략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타자도 흔치 않다"고 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09.2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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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데이터로 분석한 KBO 현주소① 투수 편- 평균구속 141.6㎞/h…KBO리그의 현실

한국프로야구는 '위기의 강'을 건너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구단 운영이 휘청거리는데 그라운드 안팎 선수들의 사건·사고까지 겹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던 인기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야구단 안팎에선 "이대로 가면 공멸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팬심이 떠나는 근본적 원인은 경기력이다. 최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은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대표팀은 6개 국가가 참여한 본선에서 4위에 그쳐 '노메달 굴욕'을 당했다. 리그는 물론이고 국제 경쟁력마저 떨어진 모습으로 지탄받았다. 일간스포츠는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의 기록을 바탕으로 'KBO리그의 현재'를 진단했다. 빠른 공은 투수의 강력한 무기다. 타자를 힘으로 윽박지르는 것만큼 위협적인 건 없다. 변화구의 위력을 더하는 것도 바탕이 되는 빠른 공이다. 그런데 KBO리그 투수들의 구속 경쟁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 시즌 KBO리그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2.4㎞/h다. 외국인 투수 기록을 제외하면 141.6㎞/h로 더 낮아진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보다 9.3㎞/h가 느리다. 평균구속이 시속 145㎞/h 안팎인 일본 프로야구(NPB)에도 3㎞/h 정도가 뒤처진다. 시속 150㎞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조상우(키움), 고우석(LG)처럼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 투수들이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많지 않다. 경기 내내 강속구를 포수 미트에 꽂는 '토종 에이스'는 실종 상태다.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KBO리그는 수년째 국내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이 142㎞/h를 넘지 않고 있다. 2015년 140㎞/h로 저점을 찍은 뒤 약간 상승했지만 대동소이하다. 부족한 구속을 만회할 수 있는 건 제구. 하지만 올 시즌 리그 9이닝당 볼넷(BB/9)이 4.31개로 많다. 그만큼 국제 경쟁력도 떨어진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탈락했고 최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에선 '노메달 굴욕'까지 당했다. 타자들의 부진 못지않게 투수들도 버텨내지 못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도쿄올림픽만 보더라도 타순이 두 바퀴만 돌면 타자들이 (공에 익숙해져) 쳐낸다. 고영표(KT)도 그렇고 원태인(삼성)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구속으로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허 위원은 "방송을 통해 '한국 야구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얘길 많이 하고 있다. 미국은 코어 근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속 5마일(8㎞/h) 정도의 구속 증가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반면 국내에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설령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대학교나 고등학교까지 보편화하지 않는다. 일본과 비교해도 R&D(연구·개발)가 크게 뒤진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일본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도쿄올림픽 야구 준결승 한·일전 선발 투수로 등판한 야마모토 요시노부(23.오릭스)는 경기 내내 150㎞/h 안팎의 강속구를 던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5⅓이닝 9탈삼진 2실점 쾌투했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10~20년 전 일본에 전지훈련을 가면 공원에서 훈련하는 유소년 선수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다 예쁘게 던졌다. 일본은 스타급 출신 선수들이 소속된 명구회에서 연봉을 책임지며 유소년을 가르치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프로 스타들로부터 기본기를 전수받는다"며 "기초를 잘 배우니 커가면서 점점 좋은 구속도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타고난 강견은 있다. 하지만 제구가 안 된다. 제구에 포커스를 맞추면 나중에 구속이 줄어든다. 그렇게 발전이 멈춘다"고 말했다. A 구단 투수코치도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한다면 아마추어 인프라 차이가 크다"며 "일본 선수들은 기술에 비해 다소 힘이 약했다. 하지만 최근 힘이 좋아지면서 더 빠른 구속이 나오는 것 같다"며 "한국 선수들은 아직 힘으로만 던지려는 모습이 많다. 구속이라는 게 정답은 없지만, 유연성, 순발력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구속을 증가하려면 유연성과 순발력을 전체적으로 올리는 체계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투수 육성이 쉽지 않다. B 구단 투수코치는 "지속성이 문제다. 3~5년 정도를 꾸준히 해야 어느 정도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데 1, 2군 모두 부상 등의 이유로 (지속성이) 단절된다"며 "구속이나 제구 모두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경력이 단절되면 제자리걸음을 한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고등학교 감독은 "이전보다 선수들 몸집은 더 커졌지만, 내구성이 떨어진다. 조금만 던지면 아픈 선수들이 나온다"며 "3학년 학생들은 실적이 있어야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대회를 3학년 위주로 치러야 한다. 저학년 선수 중에선 아무리 잘해도 출전 기회를 잡는 게 쉽지 않다. 먼 미래, 박찬호(야구)나 김연아(피겨)가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KBO리그는 선수층이 얇다. 2군에서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곧바로 1군에 투입된다. 이 과정에서 코치도 갈팡질팡한다. C 구단 투수코치는 "아마추어에선 시속 150㎞를 던졌던 투수가 프로에 오면 그 구속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프로에선 휴식이 짧고 시즌 내내 많은 공을 던져야 해 구속 유지가 어렵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기본기보다 승부를 강조하는 문화이다 보니 투수들이 구속을 늘리는 코어 운동보다 손가락으로 기술을 익혀 변화구 제구력을 기르는 훈련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D 구단 투수코치는 "빠른 구속을 위해선 신체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훈련과 실전 투구가 연결돼야 한다. 훈련에서 100%로 던지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실전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투수의 경쟁력은 중요하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리그 평균구속이 시속 150㎞가 되면 스윙 메커니즘이 속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뛸 수 없다. KBO리그는 평균구속이 시속 140㎞를 겨우 넘는다. 타자는 투수 수준에 비례한다"고 강조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09.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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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⑩난 후배들을 잘못 가르쳤다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 덕분에 가을이 풍성했다. 야구는 항상 재미있지만, 올봄 MLB 연수를 가려다가 못 간 탓에 더 그랬던 것 같다. LA 다저스가 승리한 월드시리즈 5차전.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6회 초 2사에서 클레이턴 커쇼를 더스틴 메이로 교체했다. 커쇼는 마운드에서 한참 동안 뭔가를 이야기했다. 관중석에서는 로버츠 감독을 향한 야유가 터졌다. 커쇼의 투구 수는 85개에 불과했으니, 적어도 6이닝을 채우게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로버츠 감독은 커쇼를 설득했다. 마운드를 내려오는 커쇼는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교체 결과는 성공이었다. 메이는 7회까지 탬파베이 타선을 잘 막았다. 로버츠 감독은 “경기 전부터 예정된 교체였다. (팬들의 반응에 따른) 감정 때문에 계획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칙이 승리했다. 다저스는 지난 몇 년 동안 포스트시즌에서 '전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투수 운용의 실패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저스는 이를 바탕으로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매뉴얼을 만든 것 같다. 선수층이 두껍지 못한 탬파베이는 변칙을 간간이 썼다.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시리즈 5차전 선발 투수는 타일러 글래스노우였다. 앞서 2차전에서 5이닝(4실점)을 던진 에이스에게 휴일을 이틀만 줬다. 글래스노우는 2⅓이닝 2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뒤 교체됐다. 1번 타자부터 9번 타자까지 한 번씩만 상대한 것이다. 탬파베이는 2018년 오프너(opener) 전략을 MLB에 선보인 최초의 팀이다. 선발 투수가 마땅치 않은 날 불펜 투수에게 1~2회를 맡긴 뒤 상황에 따라 불펜을 총동원하는 작전이다. 이번에는 에이스를 오프너처럼 쓰는 ‘변칙의 변칙’을 선보였다. 글래스노우의 에너지가 떨어질 때를 예측해 불펜을 가동했다. 디비전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끈 전략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과 월드시리즈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탬파베이는 결국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패했다. 탬파베이가 1-0으로 앞선 6회 말 1사 1루에서 케빈 캐시 감독이 선발 블레이크 스넬을 교체한 걸 두고 현지에서도 말이 많은 모양이다. 5⅓이닝 동안 73개를 던져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한 투수를 너무 빨리 바꿨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27년 동안 투수를 했고, 이후 투수 코치와 감독을 한 나에게도 가장, 여전히 어려운 건 투수 교체다. 마운드에서 혼을 다해 던지는 투수를 언제, 누구와 바꾸느냐는 어렵고 외로운 결단이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투수의 구위와 멘탈을 살펴야 하고, 타자와의 상대성을 고려해야 한다. 주자 유무와 견제 능력도 참고해야 한다. 직전 경기와 다음 경기까지 계산할 필요가 있다. MLB 중계를 통해 모든 투수와 감독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투구 교체는 가급적 빨라야 한다는 점이다. 투수의 체력과 기술, 심리의 한계를 확인한 뒤에 바꾸면 너무 늦다. 투수 교체에는 직관이 어느 정도 필요한 이유다. MLB는 팀마다 매뉴얼이 잘 정립돼 있다. 각종 데이터를 우리보다 잘 활용한다. 그래도 수없이 실패하고 갈등한다. 야구는 결국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MLB도 우리 야구와의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다. 직관이 아닌 데이터가 말한다 지난 1년 동안 내 공부의 목적은 데이터에 기반을 둔, 최신 야구의 트렌드였다. 1990년대에도 ‘데이터 야구’라는 개념이 있었다. 2000년대에는 야구를 통계학으로 설명하는 세이버메트릭스가 일반화했다. 2015년 MLB에 등장한 스탯캐스트는 몇 년 만에 정말 많은 걸 바꾸었다. 초고속카메라와 레이더 추적 기술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보게 해줬다. 초당 882프레임을 찍는 초고속카메라를 통해 투수의 공을 분석할 수 있다. 스피드뿐 아니라 회전수와 회전축, 이에 따른 무브먼트까지 다 나온다. 타구도 마찬가지다. 야구 룰은 100년 넘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투구의 본질, 타격의 기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야구를 보는 시각과 방법은 몇 년 사이 급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용어와 데이터를 하나 배우면,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몇 개는 더 나왔다. 야구는 변하지 않았지만, 야구를 보는 방법이 달라졌다. 아니, 세밀해졌다. 정확해졌다. 젊은 선수들은 이미 데이터를 읽고 활용하는 데 익숙하다. 이들과 소통하려면 코치나 감독도 스탯캐스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선수가 MLB의 새 이론과 데이터 해석에 능한 건 아니다. 선수들이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활용하도록 돕는 것도 야구 선배의 몫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도 많이 배웠다. 여러 기록과 인터뷰 자료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크리스티안 옐리치(밀워키)의 말이었다. MLB에서 ‘플라이볼 혁명’이 유행할 때 그는 “난 의식적으로 발사각을 높이려 한 적이 없다. 다른 건 스윙 궤적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발사각에 매달려 성공한 선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가운데 있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주제에 대해 몇 시간이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옐리치 말의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선수가 자기 생각과 이론을 자신 있게 펼치는 게 놀라웠다. KBO리그 선수들은 인터뷰가 서툰 편이다. 그래도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보다는 말솜씨가 훨씬 좋아졌다. 우리 선수들도 기회를 만들어주면 더 고민하고, 공부하며,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이미 그렇게 바뀌고 있다. 이제 선배들이 바뀌어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조련과 육성에서 소통으로 바뀐다 1980~90년대 프로야구에서는 조련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심지어 2000년대에도 ‘투수 조련’ 같은 군대식 단어가 사용됐다. 이런 말이 오랫동안 쓰인 건 상명하복의 문화가 실재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육성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쓴다. 프로 선수들을 여전히 학생처럼 보는 시각을 담겨 있다. 물론 육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학생 야구 시스템이 부실하고, 프로 선수층마저 두껍지 못한 KBO리그 팀에서는 교육의 기능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과 코치들은 ‘칭찬’이라는 말도 자주 쓴다. “오늘 선발 투수를 칭찬하고 싶다”는 말이 어느 순간 내게는 어색하게 들렸다. 이 말에서도 상하관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느 점이 좋았다”, “이래서 고맙다”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건 선수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들을 당당한 프로 선수로 대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됐는지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선수들의 인생을 건 도전을 내가 선배로서 충분히 도왔는지 반성하게 된다. 야구를 공부할수록 느낀 건, 난 선수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점이다. 선수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줬다는 말이 아니다. 선수들의 눈높이로, 최신 이론과 데이터를 통해 선수들을 충분히 납득시켰느냐고 물으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내가 투수 코치와 감독을 할 때 선수들은 내 후배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다. 선수 생활을 몇 년 더 했고, 일본 야구까지 경험한 내가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수직적인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후배들을 가르쳤다. 내가 그라운드를 떠난 지 몇 년이 흘렀다. 그사이 난 ‘각동님’으로 불렸다. 2012년 KBO리그로 온 박찬호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팔각도가 조금 벌어져 있더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박찬호는 내가 늘 강조하는 하체 이동을 나무랄 데 없이 잘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시적인 부분을 말한 것인데, 아시아인 MLB 최다승(124승) 투수 박찬호를 ‘감히’ 가르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또 2018년 국회 국정감사장에도 섰다.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들을 선발하는 과정에 부정이 있었다는 정치권의 의혹에 맞섰다. 내 억울함을 풀기는 했지만,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지금 KBO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내 아들뻘이다. 30대가 된 아들, 지난해 결혼한 딸이 있는 부모 입장에서 선수들을 보게 된다. 집에서 귀한 아들로 자랐을 요즘 선수들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똑똑하다. 정보를 접하고 해석하는 것에 익숙하고, 직관보다 데이터를 신뢰한다. 무엇보다 믿어주고 도와주면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잘해낸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MLB 포스트시즌이 끝났다. 최첨단 장비와 빅데이터로 움직이는 MLB에서도 투수 교체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걸 보면 야구는 계산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수 교체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몇 번의 성패로 야구는 끝나지 않는다. 기본을 잘 지키고, 원칙을 따르면 결국 이길 수 있다. 그건 팀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자 매뉴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라고 생각한다. 작전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 사이에 배려와 믿음이 있다면, 작은 실패를 딛고 결국 성공할 것이다. 그게 승리로 가는 길, 팀과 리그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선동열 야구학’ 시즌1을 마친다. 시즌1이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야구를 보는 것이었다면, 시즌2는 야구와 사람에 대해 공부할 생각이다. 나는 야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야구 공부도 계속할 것이다. 다시는 선수들을 잘못 가르치지 않기 위해서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⑤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⑥류현진은 '피치 터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⑦류현진·매덕스는 타자의 0.045초를 훔친다 ⑧구창모는 '볼끝'이 좋은 게 아니다 ⑨트레버 바우어는 '공이 긁히는 날'을 만든다 2020.11.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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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⑤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1940~50년대 메이저리그(MLB) 최고의 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1918~2002)는 명저 『타격의 과학』을 유산으로 남겼다. “타격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MLB에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 80년 전의 전설 윌리엄스가 소환됐다. 그는 이미 1971년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약간의 어퍼컷 스윙(slight uppercut)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윌리엄스는 “오랫동안 (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레벨 스윙이 옳다고 여겨졌다. 나도 그렇게 믿었고,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스윙은 평평하지 않다(not level)”며 “타구를 세게 쳐서 공중에 띄워라. 거기에 돈(성공)이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가 말한 어퍼컷과 플라이볼 혁명 시대의 어퍼컷은 다른 것일까. 솔직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두 스윙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갖게 된다. 이상적인 스윙이 되기 위한 조건은 분명히 있다. 투구와 방망이가 만나는 구간인 임팩트 존(impact zone)이 넓어야 할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180㎝ 이상의 높이에서 시작한 투구는 5~7도 각도로 하강한다. 임팩트 존을 통과하는 방망이 궤적은, 투구의 각도만큼 올라가야 좋은 타구를 만들 확률이 커질 것이다. 레벨 스윙 개념인데, 지면이 아닌 투구 궤적과 평평한 것이다. 실제로는 약간의 어퍼컷 스윙이 되는 것이다. 방망이의 궤적이 5~7도 올라간다고 해서 어퍼컷 스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런 궤적이라면 라인 드라이브(11~20도) 타구 비율은 높아지겠지만, 홈런이 많이 나오는 발사각(20~35도)을 만들기 쉽지 않다. 윌리엄스는 그래서 “살짝 올려치라”고 말한 걸까. 이상적인 타격은 레벨 스윙과 어퍼컷 스윙이 결합한 형태일까. 그게 실제로 가능한 걸까. 공부하면 할수록, 타격은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봤다. 투수는 자기 폼으로 공을 던지면 된다. 노력에 따라 일관된 폼으로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타자는 투구에 대응해야 한다. 구종과 코스에 따라 스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퍼컷 스윙을 하는 타자는 하이 패스트볼에 약점을 보인다. 높게 날아오는 빠른 공을 띄워 치는 스윙을 만들기 어려워서다. 같은 이유로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도 어퍼컷 스윙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타자는 최선의 스윙을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투구에 따른 대응이다. 그래서 많은 타격 이론가가 스윙 궤적보다, 강한 타구를 만들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윌리엄스도 마찬가지였다. 발사각보다 중요한 타구 속도 난 타격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평생 야구를 했기에 생체역학(biomechanics) 관점에서 타격 폼을 이해할 순 있다. 투수의 피칭도, 타자의 스윙도, 골프의 스윙도 폴로 스루(follow through, 임팩트 후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무리 동작)가 중요하다. 동작을 자연스럽게 끝내면 스윙의 힘이 극대화한다. 타격 전문가 김용달 선배의 저서 『용달매직의 타격 비법』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폴로 스루는 힘을 유지하기 위한 동작이다. 그러나 폴로스루를 위해 인위적으로 손목 힘을 더 쓴다면 스윙의 폭이 좁아진다. 힘의 방향이 (앞이 아닌) 옆으로 돌아 땅볼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투수의 메커니즘이 그렇듯, 타자의 스윙도 자연스러운 중심 이동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강력한 패스트볼과 현란한 변화구를 공략해 ‘강한 타구’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장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히팅 포인트(투구와 스윙이 만나는 지점)가 앞발 부근에 형성돼야 한다. 타자의 두 팔꿈치가 최대한 몸에 붙어 나왔다가 앞으로 쭉 뻗는 동작에서 힘이 폭발한다. 앞선 칼럼에서 제이콥 디그롬의 투구 폼을 설명한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어깨 위에 있었던 배트가 내려와 임팩트 존을 통과한 뒤에는 스윙의 끝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게 폴로 스루이며, 자연스럽게 약간의 어퍼컷 스윙이 만들어진다. 윌리엄스의 이론과 플라이볼 혁명은 결국 여기서 만나는 것 같다. 2018년 MLB 일부 구단의 캠프에서는 플라이볼을 '생산'하는 훈련을 했다. 난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밀워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신기한 모습을 목격한 KBO리그 관계자들이 있다. 내야와 외야 사이에 10m 높이의 펜스가 설치된 것을 봤다고 한다. 밀워키 구단은 타자들에게 그 펜스 너머로 타구를 날리도록 주문했다. 20도 이상의 발사각을 만드는 훈련이었다. 유망한 밀워키 타자들이 어퍼컷 스윙을 장착하려고 애썼다. 그해 겨울 마이애미에서 밀워키로 트레이드된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2018년 내셔널리그 타격왕(0.326)과 최우수선수상(MVP)을 차지했다. 그해 옐리치가 때린 홈런(36개, 리그 3위)은 2017년보다 18개나 늘었다. 옐리치의 타격이 폭발한 데에는 홈구장이 타자 친화적인 밀러 파크로 바뀌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그의 배럴 타구 비율은 2017년 7%에서 2018년 12.9%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15.8%로 증가했다. 2018년 10월 ‘옐리치는 발사각 논쟁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제목의 MLB닷컴 기사가 눈에 띄었다. 당시는 저스틴 터너(LA 다저스) 등 플라이볼 혁명의 주인공들이 MLB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시기였다. 당시 옐리치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땅볼도 꽤 많이 때렸다. 2017년 땅볼/뜬공 비율이 1.73이었는데, 2018년 이 비율이 2.15로 오히려 늘었다. 예전부터 그는 땅볼 비율이 꽤 높은 타자였다. 그러니까 옐리치는 많은 땅볼을 때리는 동안에도 타율과 홈런이 증가한 것이다. 옐리치는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난 의식적으로 발사각을 바꾸려(높이려) 한 적이 없다. 공을 세게 치지 못한다면, 발사각은 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플라이볼 혁명은 불변의 이론이나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트렌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타구 발사각에 대해 옐리치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의 타격 데이터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커리어 내내 플라이볼보다 그라운드볼을 많이 때렸다. MLB 커리어 8년 동안 기록한 땅볼이 뜬공보다 두 배 이상(땅볼/뜬공 비율 2.12) 많다. 2018년 옐리치의 타구 평균 발사각은 5.0에 불과했다. 이해 MLB 전체의 평균 발사각(12.3)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리그 홈런 3위에 올랐다. 플라이볼이 많지 않았지만, 뜬 공의 대부분은 속도가 빨랐다는 뜻이다. MLB닷컴 기사 끝에 옐리치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최고 타자들의 콘택트 순간을 찍은 사진을 보라. 똑같은 자세가 보일 것이다. 다른 건 사고방식(mindset)이다. 다운컷을 하라는 사람도 있고, 어퍼컷을 하라는 사람도 있다. 결국 그들은 같은 곳에서 만난다. 발사각에 매달려 성공한 선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가운데 있으려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현상’에 집중했지만, 타격의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최대한 정확하게 쳐서 강한 타구를 만드는 건 시대를 초월한 목표다. 최적의 히팅 포인트와 자연스러운 폴로 스로가 그래서 중요하다. 스윙 궤적이나 발사각은 스탯캐스트에 의한 현상 분석이다. 이것이 결코 타격의 목표일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윌리엄스, 그리고 옐리치로부터 나는 또 배웠다. 타자를 못 믿는다고 말한 이유 선수 시절 내 마지막 타석은 일본 주니치에서 뛰었던 1999년 7월 22일 요미우리와의 도쿄돔 경기에서였다. 4-1로 앞선 8회 말 2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위기를 넘겼고, 9회 초 무사 1·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호시노 센이치 당시 주니치 감독은 내게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를 지시했다. 요미우리 배터리는 보내기 번트를 예상했다. 내야진이 번트에 대비해 움직였고, 투수는 전력으로 던지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공이 날아와 내 방망이에 맞은 것이다. 타구는 내야를 통과해 외야 펜스까지 굴러가는 2루타가 됐다. 내가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다. 일본 진출 후 16타수 무안타 끝에 때린 첫 안타였다. 해태와 주니치 시절 몇 차례 타석에 들어섰지만, 삼진으로 물러난 기억이 대부분이다. 타격은 참 어렵다. 타자들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난 선수 시절 KBO리그에서만 40차례 패전투수가 됐다. 그중 0-1로 진 경기가 꽤 많았다. 특히 잊히지 않는 승부가 있다. 내가 해태에서 뛰었던 1988년 4월 17일 광주경기였다. 난 그날 9이닝을 완투하며 삼진 11개를 빼앗았다. 점수는 단 1점만 줬다. 이날의 주인공은 상대 투수였던 빙그레 이동석이었다. 그는 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게다가 4사구와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실책 2개가 아니었으면 퍼펙트게임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날 밤, 나 혼자서 씩씩거렸던 기억이 난다. 프로에서 노히트노런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노히터 경기의 패전투수가 됐으니 너무 분했다. ‘타선이 점수를 내줬다면 내가 승리투수가 되지 않았을까?’ ‘수비가 좀 도와줬다면 나도 0점으로 막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소주 한 병을 들이켠 뒤 잠들었다. 다음날 야구장으로 출근해서 내 동료들을 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싶었다. 내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의 도움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다. 야수의 수비를 탓할 게 아니라 삼진으로 잡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해야 했다. 이듬해 내가 노히트노런(1989년 7월 6일 광주 삼성전)을 기록했을 때는 타자들의 도움을 듬뿍 받았다. 이날 해태는 10-0으로 이겼다. 내가 투수로서 여러 기록을 세우는 데에는 타자들의 도움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도 나는 감독을 하면서 “타자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말의 저의는, 투수가 타자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타격은 ‘3할의 예술’이다. 10번 타격해서 3번 안타를 때린다면 성공이다. 뛰어난 투수와 10번 상대하면 1~2번 이기기도 힘든 게 타자다. 그래서 난 타자를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투박한 표현이었다. 타격은 원래 어려운 것이니 ‘타자가 점수를 뽑아주면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타자는 못 믿는다”고 말할 게 아니라 “타격은 어렵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말에 서운함을 느낀 타자들이 있다면, 이 기회에 사과의 뜻을 전한다. 이제 난 타자들을 믿는다. 투구 스피드가 빨라지고, 변화구가 다양해졌는데도 타자들은 곧잘 대응하고 있다. 타자들의 체격과 기술도 좋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MLB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선수 시절 이정후(키움)와 강백호(KT) 같은 타자를 상대하지 않은 건 행운이다. 이 얘기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프로야구 팀을 이끌면서, 국가대표팀을 지휘할 때 나는 투수 파트에 집중했다. 타격은 전문 코치에게 맡기는 게 옳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대신 타자들을 이해하고 응원하기 위해서는 나도 공부해야 한다. 윌리엄스의 말대로 타격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기에 그렇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2020.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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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최근 몇 년 동안 메이저리그(MLB)뿐만 아니라 KBO리그의 타격이 크게 바뀌었다.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의 성공담은 많은 타자와 코치, 그리고 전력 분석원의 고정관념을 깼다. 뜬공이 땅볼보다 득점 생산에 유리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그걸 위해서 공을 올려치는 어퍼컷 스윙을 해야 한다는 건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말 그럴까.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감독 시절, 난 타자들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타이밍이 조금 늦는 것 같다. 히팅 포인트가 앞(이동발)에 형성되면 좋겠다”는 정도만 말했다. 기술적인 해법은 선수와 타격 코치가 찾기를 바랐다. 현장을 떠난 입장에서 플라이볼 혁명은 그래서 더 낯설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MLB 기사와 기록들을 찾아보게 됐다. 그 결과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2017년 7월 워싱턴포스트의 ‘타자들은 발사각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 이런에 논쟁이 담겨 있었다. 플라이볼의 생산성이 높다는 건 2010년대 초 오클랜드의 성공에서 이미 증명됐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효율적인 야구를 추구한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머니볼』을 통해 팬들에게 잘 알려졌다. 당시 오클랜드는 자니 곰스, 조시 레딕 등 땅볼보다 뜬공 비율이 매우 높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오클랜드가 2012년과 2013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우승할 때 MLB 전체에서 뜬공 비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오클랜드가 플라이볼 타자들을 데려와 성공한 것과 타자들이 스윙을 바꿔 일부러 플라이볼을 치는 건 다른 얘기인 것 같다. 의도적인 ‘어퍼컷’에 대한 환상 플라이볼 혁명의 성공담을 쫓으면 한 사람이 등장한다고 한다. 재야의 타격 이론가(덕 래타)가 이 이론을 확산했다고 한다.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저스틴 터너(LA 다저스)의 변화도 그가 만든 것이다. 래타는 “어퍼컷 스윙 이론은 터너가 MLB에서 지난 10년 동안 배운 것과 정반대”라고 말했다. 터너는 “내가 공의 아랫부분을 때리려고 노력한다는 걸 다른 타자나 코치에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래타와 터너가 완성한 어퍼컷 스윙은 다른 이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거라는 뉘앙스 같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는 플라이볼 혁명에 참여한 라이언 짐머맨(워싱턴)의 사례도 나온다. 그는 2016년 타율 0.218, 홈런 15개로 부진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짐머맨의 평균 발사각이 7.8도였다. 그의 타구 중에서 땅볼이 48.6%, 뜬공이 34.6%였다. 짐머맨은 2017년 초 타구를 더 띄우기 시작했다. 첫 50경기에서 타율 0.368, 홈런 15개를 기록했다. 이 시점 그의 타구 평균 발사각이 11.2도였다. 짐머맨은 드디어 혁명에 성공한 것일까. 그의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짐머맨은 “그런 일(스윙 궤적)을 통제하려고 하면 타석에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난 공을 강하게 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며 “시속 150~160㎞로 날아오는 공의 아랫부분을 정확히 겨냥해 때린다고? 그들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2017시즌을 앞두고 짐머맨이 어떻게 변화했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놀라운 성과를 내는 와중에도, 그는 ‘의도적인’ 어퍼컷 스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2018년 이후 짐머맨의 발사각과 타격 성적은 기복이 있었다. 정말 터너는 투구의 아랫부분을 어퍼컷 스윙으로 정밀 타격하고 있는 것일까. 진실은 선수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타구를 띄우는 게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MLB닷컴이 2016시즌과 2017년 6월 초의 기록을 비교한 자료가 있다. 이 자료는 플라이볼 비율이 MLB 전체에서 가장 크게 증가한 타자들의 리스트다. 그 효과를 wOBA(가중 출루율)로 비교한 것이다. wOBA는 복잡한 계산을 거쳐 타자가 타수당 득점에 기여한 값을 산출한 것이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알렉스 아빌라는 2016년보다 2017년(6월 초까지)에 25.5% 더 많은 뜬공을 날렸다. 그 결과 wOBA가 0.115 증가했다. 존 제이소의 경우, 같은 기간 뜬공 비율이 19.5% 늘어났다. 그러나 그의 wOBA는 오히려 감소(-0.027)했다. 2016년 타율 0.268, 홈런 8개를 기록한 제이소는 2017년 타율이 떨어졌고(0.211), 홈런(10개)은 조금 늘었다. 전체적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졌다. 이유가 뭘까. 플라이볼 혁명에 사로잡히다 보니, 많은 이들이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이다. 바로 타구 속도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타구의 비거리는 속도와 발사각에 의해 결정된다. 이상적인 타구를 뜻하는 ‘배럴(barrel)’은 ‘158㎞ 이상의 속도’와 ‘26~30도의 발사각’ 두 요소로 이뤄진다. 발사각을 높일 생각만 하면, 그것만큼 중요한 타구 속도를 내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워가 좋아서 타구를 힘차게 띄울 수 있는 타자라면 발사각을 높이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아빌라가 그런 경우다. 2016년 57경기에서 7홈런을 때렸던 그는 타구 발사각을 6.9도에서 12.4 높인 이듬해 112경기에서 14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아빌라 타구의 평균 발사각이 10도 이하로 다시 낮아졌다. 성적도 함께 떨어졌다. 인위적으로 발사각을 높이는 것도, 그걸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파워가 부족한 타자들에게 무리한 어퍼컷은 더 큰 손해를 끼친다. 빠르지 않은 타구를 날려봐야 홈런을 때릴 수 없고, 대부분 야수에게 잡히기 때문이다. 제이소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는 스윙을 만들겠다고 힘만 뺀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의 MLB 경력은 타구 평균 발사각을 7.9도에서 19.1도로 높였던 2017년 끝나고 말았다. 이 논란에 관해 MLB 최고의 출루 머신 조이 보토가 한 말에 공감한다. 그는 팬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많은 타자와 대화한 뒤 내린 결론은 땅볼은 나쁘고, 뜬공은 좋고, 라인 드라이브는 좋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운드볼이 비효율적이라는 건 틀림없다. 플라이볼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타자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라인 드라이브(발사각 11~20도의 강한 타구)도 여전히 중요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실 이건 플라이볼 혁명이 아니라 땅볼 반대 혁명(anti-grounder revolution)이라 불러야 한다”고 썼다. ‘어퍼컷’은 비밀이 아니다 MLB닷컴의 통계 전문 칼럼니스트 마이크 페트리엘로는 “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세게 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뜬공을 세게 치는 것이다. 그걸 할 수 없으면 (타격을) 하지 말라”고 트위터에 쓴 적이 있다. 플라이볼 혁명을 관찰한 그는 “모든 타자가 올려쳐야 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그걸 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플라이볼을 날리는 게 너무 ‘목표’가 됐다. 공중으로 강한 타구를 날릴 수 없다면 플라이볼 혁명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뜬공을 위해 스윙 궤적까지 바꾸는 건 만능이 아니라고 페트리엘로는 주장했다. 나도 동의한다. 플라이볼은 타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난 어퍼컷 스윙의 효용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커졌다. 우리 세대는 레벨(level, 지표면과 수평 궤적) 스윙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배웠다. 플레이볼 혁명 전까지 MLB도 이런 이론이 지배했다. 레벨 스윙을 하면 투구와 방망이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커지기 때문이다. 라인 드라이브 타구가 나올 확률도 높아진다. 심지어 예전에는 다운컷(downcut) 스윙을 강조하는 지도자들도 많았다. 타자는 보통 어깨높이에서 배트를 쥔다. 여기서 최단 거리로 투구를 때리려면 내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운컷 스윙은 어퍼컷 스윙과 반대로, 공의 윗부분을 때릴 가능성이 크다. 땅볼을 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도 그렇게 치라고 배웠다.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땅볼을 굴려 내야수의 실책을 유도하는 것도 확률 높은 공격법이었다. 그렇다고 다운컷 스윙이 아주 틀린 이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투수의 구위가 압도적이지 않았고, 타자의 파워가 약했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효과적인 타격이었다. 다시 어퍼컷 스윙에 대해 고민할 차례다. 생각해 보면 완전한 레벨 스윙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 아닌가 싶다. 스윙의 시작과 끝이 똑같은 높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이 날아오는 궤적도 지면과 수평이 아니다. 오버핸드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면 릴리스 포인트는 180~200㎝ 높이에 형성된다. 투구가 스트라이크존(50~100㎝)을 통과하면 5~7도의 각도가 생긴다. 떨어지는 변화구라면 각도가 더 클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레벨 스윙의 각도는 0도가 아니라 7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정타를 때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후 공을 때린 뒤 배트를 조금 들어 올리면? 발사각 20도 이상의 배럴 타구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게 진짜 이상적인 타격이 아닐까. 투구와 방망이의 콘택트 지점이 넓어지고, 이상적인 발사각까지 만드는 비밀을 새롭게 알아낸 걸까. 나는 이런 고민 끝에 MLB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와 만났다. 1971년 그가 출간한 저서 『타격의 과학』에 이미 살짝 올려치는 레벨 스윙에 대한 이론이 담겨 있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2020.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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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메이저리그(MLB)에 강속구 투수들이 대거 등장하자 많은 이들이 “야구의 매력인 투수와 타자의 균형이 깨졌다”고 말했다. 투수의 힘이 타자를 압도하고 있으며, 타자는 힘겹게 투수를 따라잡기 바쁘다는 것이다. 지난해 MLB 전체 삼진 기록은 9이닝 평균 8.78개였다. 이 기록만 보면 MLB 타자들은 로저 클레멘스 같은 투수를 매 경기 상대했다고 볼 수 있다. 1984년부터 2007년까지 MLB에서 354승(MLB 역대 9위)을 올린 클레멘스는 ‘로켓맨’이라고 불릴 만큼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그가 기록한 탈삼진은 통산 4672개(MLB 역대 3위), 9이닝 평균 8.55개였다. 타자들의 체격과 기술도 향상됐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패스트볼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투수가 타자를 압도하려는 순간, 타자도 반격 무기를 찾았다. 투수의 공격, 그리고 타자의 반격은 150년 야구 역사에서 늘 반복된 일이다. 그게 야구의 묘미다. 강속구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타자들의 인식 변화를 MLB에서는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이라 부른다. 이 단어를 처음 보고 조금 놀랐다. 야구팬들에게 플라이볼(뜬공)이 낯선 단어도 아닌데, 혁명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플라이볼 혁명은 2017년 전후로 MLB에 등장한 이론이다. 요즘에는 KBO리그와 일본에서도 화제다. 어느 리그를 막론하고 홈런 선두권에 있는 타자들은 대부분 어퍼컷(uppercut, 투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스윙을 한다. 중심타자가 아닌 선수들도 유행처럼 따라 하고 있다. 타자들이 어퍼컷 스윙을 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수비 시프트가 발전하면서 땅볼을 쳐봐야 아웃될 가능성이 커졌고 ▶투수들이 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 등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많이 던지고 있어 타자의 스윙 궤적이 달라질 필요가 있었으며 ▶어느 때보다 강해진 투수를 이겨내기 위해 타자는 연속 안타가 아닌 장타를 노리는 전략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홈런의 동시 증가 지난해 워싱턴을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끈 맥스 슈어저는 “강속구 투수를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펜스를 겨냥하고, 홈런을 노리는 것이다. 요즘 투수들은 너무 빠른 공을 던진다. 그리고 끔찍한 변화구를 갖고 있다. 6타자 연속 안타 같은 장면은 더는 나오지 않는다. 연속 안타를 기대하는 건 최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야구는 그렇게 변했다. 땅볼이 아니라, 뜬공을 날려야 타자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여러 데이터가 입증하고 있다. 타자들은 어떤 대가(삼진)를 치르더라도 타구를 띄워야 한다는 게 플라이볼 혁명의 핵심이다. MLB의 최근 데이터를 보면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자들이 삼진을 더 자주 당하고 반면, 홈런 또한 증가하는 것이다. 2015년 MLB 타자들은 한 타석에서 삼진을 당할 확률이 20.4%였다. 이 수치가 점점 올라 지난해에는 23.0%를 기록했다.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와 비례해 삼진률이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MLB의 홈런이 늘어난 건 놀라운 변화였다. 2015년 0.027개였던 타석당 홈런이 점차 증가해 지난해 0.037개가 됐다. 2019년 MLB 정규시즌 2430경기에서 6776홈런이 쏟아졌다. 마크 맥과이어가 70홈런, 새미 소사가 66홈런을 때린 1998년(5064홈런)보다 훨씬 더 많은 홈런이 나오고 있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지는 올해는 타석당 홈런이 0.035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적잖은 MLB 타자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약물의 시대’보다 ‘강속구의 시대’에 홈런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MLB 전문가들은 여러 시각으로 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공인구의 변화다. 공의 가죽이 매끄러워졌고, 솔기 높이가 낮아져 타구가 공기저항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MLB 사무국은 “공의 반발력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해명했다. 여기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홈런만 늘었을 뿐 MLB 타자들은 투수에게 여전히 밀리고 있다. 2015년 0.254였던 리그 전체 타율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2017~18년 KBO리그에서는 홈런과 타율이 동시에 늘어났다. KBO는 이를 공인구 반발력을 낮추는 정책으로 불균형을 해소했다. MLB에서 홈런이 급증한 것이 공인구의 반발력 때문이었을까. MLB 전체 타율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이 주장의 설득력은 떨어져 보인다. 따라서 플라이볼 혁명이 홈런의 증가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 세대는 지도자들로부터 “다운 스윙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한 타자 고(故) 장효조 선배도, 팀 동료여서 든든했던 이종범도 공을 벼락같이 내려쳤다. 타자들은 보통 어깨 높이에서 배트를 쥔다. 여기서 최단 거리로 투구를 때리려면 다운컷(downcut, 투구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스윙을 해야 한다. 그래야 투구 속도와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배웠다. 반면 어퍼컷을 하려면 스윙 궤적이 내려왔다가 올라와야 한다. 과거에는 비효율적인 타격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뜬공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은 꽤 낯설다. 이는 MLB에서 감독이나 코치를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모양이다. 발사각과 홈런의 상관관계 타자 입장에서는 삼진을 많이 당하더라도 어퍼컷을 날려야 한다. 아주 잘 맞으면 홈런이 된다. 2루타나 3루타가 나올 수 있다. 외야가 내야보다 넓으니 수비 실책도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리그 전체의 타격 성적과 타구 발사각(launch angle) 사이에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보인다. 데이터를 보고 나서야 나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발사각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게 연구의 대상인 적은 내 기억에 없었던 것 같다. 발사각은 말 그대로 배트에 맞은 타구가 발사되는 각도다. 그라운드와 수평으로 날아간 타구의 발사각은 0도이고, 땅볼이면 마이너스 값이 나온다. 유명한 야구 서적 『야구의 물리학』은 타구가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발사각이 35도라고 썼다. 그러나 2015년 MLB 팬들에게 공개된 타구 추적 시스템 ‘스탯캐스트’는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발사 각도가 25~30도라는 걸 데이터로 보여줬다. 스탯캐스트의 레이더 기술을 통해 MLB 경기에서 나오는 타구를 여러 전문가가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이로 인해 선수와 코치들은 어떤 타구가 가장 효율적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스탯캐스트의 원년인 2015년 MLB 타구의 평균 발사각이 10.9도였다. 땅볼은 마이너스 값이 나오기 때문에 평균 발사각이 이 정도인 것이다. 타구의 발사각은 2016년 11.6도, 2017년 11.8도로 올라갔다. 올해는 13도에 육박하고 있다. 홈런과 비례해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 변화는 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플라이볼 혁명기에 성적이 갑자기 향상된 타자들이 있다. 2015년 다니엘 머피의 평균 발사각은 11.1도였는데, 2016년 16.6도로 크게 높아졌다. 타율 0.281, 14홈런이었던 그의 성적이 1년 만에 타율 0.347, 25홈런으로 좋아졌다. 앤서니 랜던, 코디 벨린저 등 MLB 슈퍼스타들도 발사각을 올려 큰 효과를 봤다고 한다. 저스틴 터너(LA 다저스)는 플라이볼 혁명을 지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다. 지난해까지 류현진의 동료였기에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그의 기록을 찾아봤다. 2013년까지 뉴욕 메츠에서 주전 선수가 되지 못한 터너는 2014년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이 시기에 스윙을 어퍼컷으로 교정한 후 다저스의 간판타자로 성장했다. 2016년 터너는 전년보다 발사각을 3도 높였다. 2017년에는 1.4도 더 높여 그의 평균 발사각은 18.4도가 됐다. 리그 평균(11.8도)보다 6.6도 높았다. 이 과정에서 터너의 홈런과 삼진이 함께 늘었다. 이후 삼진이 줄고 타율과 장타율이 상승했다. 기록을 보면 아주 이상적인 진화 과정을 거쳤다. 터너가 외신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플라이볼 혁명에 대한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터너는 “땅볼을 때려서는 장타를 칠 수 없다. 장타를 원하면 일단 공을 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심지어 터너는 “한 경기에 네 번 타석에 들어서 모두 플라이아웃을 당했다면, 난 좋은 경기를 한 것이다. 왜냐면 땅볼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것도 맞는 말일까. 여러 기사와 기록을 볼수록 플라이볼 혁명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다음 편에도 이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2020.09.23 06:01
메이저리그

[송재우의 포커스 MLB] 늘어나는 홈런과 물집 부상의 상관관계

메이저리그의 홈런은 지속해서 증가 추세다. 지난해에는 무려 6105개의 홈런이 나오면서 단일 시즌 기록(종전 2000년 5693개)이 새롭게 작성됐다. 타자들이 발사 각도를 높인 이른바 '플라이볼 혁명'의 결과로 받아들여 졌다. 그렇다면 투수들의 물집 부상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LA 다저스 왼손 투수 리치 힐은 데뷔 시절부터 커브가 주무기다. 위력적인 변화구를 던지지만, 올해까지 3년 연속 물집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팔꿈치 부상으로 판명됐지만 지난 9일 부상자명단(DL)에 오른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도 올 시즌 물집 때문에 두 번이나 고생했다. 맷 보우먼(세인트루이스)과 잭 로스컵(콜로라도) 등도 물집 부상 때문에 한 차례 이상 DL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운동학 박사인 메레디스 윌스는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지난해 데이빗 프라이스(보스턴)와 브래드 지글러(마이애미)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공인구의 반발력이 늘어났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사무국은 두 번에 걸쳐 관련 검사를 했고 '반발력은 공인된 범위 안에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런데 늘어난 투수들의 물집 부상에 대한 답은 없었다. 이에 대해 윌스 박스는 최근 '공인구의 실밥이 과거보다 더 두꺼워졌다'고 주장했다.시간을 2016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힐과 마커스 스트로먼, 애런 산체스(이상 토론토) 등 굵직한 선수들이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물집 부상 여파로 DL에 오르며 본인과 팀을 힘들게 했다. 실제 2016년과 2017년에는 물집으로 경기를 뛰지 못한 투수들이 그 전 9년 동안의 빈도수에 비해 현저하게 늘어났음이 나타나기도 했다. 힐은 3년 연속 물집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얼마 전 사무국에 보호 밴드를 부착하고 경기에 임하게 해달라고 청원했지만, 거절당했다. 단순히 커브를 많이 던져서 문제가 발생했고, 손가락 피부가 약하거나 그립의 영향이라고 치부했지만, 애초부터 커브가 주무기였던 힐의 계속된 물집 부상은 합리적인 의심을 가능케 한다. 윌스 박사는 2014년까지 사용된 공인구와 2016년 이후 공인구 24개를 구해 달라진 점을 관찰했고, 실밥 굵기의 차이를 발견했다. 윌스 박사에 따르면 최근에 사용된 공인구 실밥은 과거보다 약 9% 정도 두꺼워졌다. 굵어진 실밥은 투수가 손가락으로 공을 채는 데 약간의 유리함을 줄 수 있지만, 손가락의 마찰도가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당연히 손가락의 마찰도가 올라가면 피부가 부풀어 오르거나 벗겨지는 현상이 나타나 결국은 공을 제대로 던지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면서 상처를 입게 된다. 이 굵어진 실밥은 공의 지름에 변화를 주게 되고 공 자체가 끄는 힘(모든 물체는 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물리 법칙을 인용)이 과거보다 약해져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나는 역할을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메이저리그 공인구를 만드는 롤링스는 공을 제작하는 재료상의 변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을 만들고 제공하는 회사가 이를 알리지 않았다면 관련 내용을 알 수 없다는 반론을 펴기도 했다. 두 번이나 공인된 기관에 리서치를 맡겼고, 반발력에 이상이 없다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물론 사무국이 모든 '음모론'에 일일이 대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기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하듯 사무국이 관리하는 공인구도 확실한 척도가 제공돼야 한다. 이는 팬들에 대한 도리이고 사무국 자체가 신뢰를 잃지 않는 길이다. '우리가 알아서 관리를 잘하니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것은 최근 흐름에 맞지 않는다.야구에서 기록이 소중한 이유는 그 기록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 때문일 것이다. 그 가치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어떤 각도에서든 공정성이 유지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제시된 공인구에 대한 의문점 역시 진지한 태도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소중한 팬들과 선수 그리고 위대한 기록을 보호하기 위한 자세일 것이다.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정리=배중현 기자 2018.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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