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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SK의 퍼펙트 KS 우승, '빅보이' 9G 연속 홈런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퍼펙트 KS 우승한 SK SK가 삼성을 꺾고 2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 KS 왕좌에 올랐다. 마운드 힘과 타선 짜임새를 앞세워 시리즈 1~4차전에 모두 승리, 역대 여섯 번째 'KS 4전 전승 우승'을 달성했다. KS에서 타율 0.357(14타수 5안타) 1홈런 6타점을 기록한 박정권이 기자단 투표에서 유효 투표수 70표 중 38표를 얻어 팀 동료 박경완(32표)을 제치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② 포수 첫 300홈런 4월 30일 인천 LG전에서 박경완(당시 SK)이 프로야구 사상 첫 포수 300홈런 금자탑을 쌓았다. 2009년 6월 21일 299홈런을 때려낸 뒤 313일 만에 손맛을 봤다. 2009시즌 왼발목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조기에 시즌을 마무리한 탓에 기록 달성이 미뤄졌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경완은 "부상 후 (기록 달성이) 오래 걸리겠다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나왔다. 100호, 200호 때보다는 덜했지만, 많이 의식했다"고 말했다. ③ 9이닝 17K 잡은 괴물 류현진(당시 한화)은 5월 11일 청주 LG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9이닝 기준 역대 최다 삼진 17개를 잡아냈다. 1983년 최동원(당시 롯데 자이언츠) 1992년 선동열(당시 해태 타이거즈) 1998년 이대진(당시 해태)이 달성한 리그 기록 '9이닝 16탈삼진'을 넘어선 것. 이날 류현진은 투구 수 124개로 9이닝 5피안타 1실점 쾌투했다.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 및 매 이닝 탈삼진 기록도 함께 갈아치우며 괴물 같은 모습을 보였다. ④ 1억명 돌파한 KBO리그 프로야구는 29번째 시즌, 1만3865경기 만에 누적 관중 1억명 시대를 열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1억 번째 관중을 실시간으로 집계하기 위해 입장권과 함께 바코드가 찍힌 용지를 따로 발권했다. 인천 갈산중학교 1학년생이 영예의 1억 번째 관중으로 선정, KBO로부터 전 구장 평생 입장권과 외식 상품권 등을 받았다.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첫 1억 관중 돌파로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⑤ 9G 연속 홈런 빅보이 이대호(당시 롯데)가 세계 최초로 9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렸다. 8월 14일 광주 KIA에서 김희걸의 포크볼을 받아쳐 가운데 펜스를 넘겼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켄 그리피 주니어(시애틀 매리너스·1993년) 돈 매팅리(뉴욕 양키스·1987년) 대일 롱(피츠버그 파이리츠·1956년)이 기록한 '비공인 세계신기록' 8경기 연속 홈런을 넘어섰다. 이대호는 2010년 전인미답의 타격 7관왕에 올라 데뷔 10년 만에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⑥ 준PO 역사 새로 쓴 두산 두산은 롯데를 상대한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1·2차전에 모두 패해 벼랑 끝에 몰렸다. 안방에서 당한 연패여서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사직 원정에서 벌어진 3·4차전을 모두 승리해 분위기를 반전했다. 이어 5차전 승리로 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 준PO에서 나온 사상 첫 리버스 스윕으로 4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롯데는 포스트시즌 홈구장 최다 11연패와 사직 구장 8연패로 고개를 숙였다. ⑦ 양준혁·구대성 은퇴 '양신' 양준혁과 ‘대성불패’ 구대성이 나란히 은퇴했다. 1993년 데뷔한 양준혁은 통산 2135경기에 출전, 타수(7332) 홈런(351) 안타(2318) 루타(3879) 2루타(458) 타점(1389) 득점(1299) 등에서 리그 최고 기록을 보유한 채 유니폼을 벗었다. 동갑내기 구대성도 1993년 데뷔해 '전설'의 길을 걸었다. 통산 성적은 67승 71패 214세이브 평균자책점 2.85. 일본 프로야구(NPB)와 MLB를 모두 경험한 최고의 '고무팔'이었다. ⑧ 광저우 AG 금메달 초호화 멤버를 자랑한 광저우 아시안게임(AG) 야구 대표팀은 5전 전승으로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MLB와 NPB에서 활약하던 추신수(당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김태균(당시 지바 롯데 말린스)을 비롯해 당대 최강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난적 대만과 사회인야구 위주의 일본에 모두 패하며 동메달에 그친 수모를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⑨ '하늘의 별'이 된 임수혁 뇌사 상태로 10년 가까이 투병해 온 임수혁이 2월 7일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 잠실 LG전에서 경기 중 그라운드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한동안 뇌에 산소가 통하지 않아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해마다 함께했던 선수들이 자선행사로 그를 도왔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⑩ 엔씨소프트 창단 의향서 제출 온라인 게임 전문기업인 엔씨소프트가 프로야구단 창단 의향서를 제출, 제9구단 논의가 가시화했다. KBO는 10월 창원시와 제9 구단 창단을 위한 협약식을 체결한 뒤 참여 기업을 물색했다. NC는 2011년 창단, 2013년부터 정규리그에 참여 중이다. 창단 9년 만인 2020년 첫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배중현 기자 사진=IS포토 2022.12.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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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리그를 지배한 유니콘스, '드림팀'도 떴다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압도적인 유니콘스 1998년은 현대의 해였다.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선수 영입으로 정규시즌 우승(81승 45패)을 차지했다. 시즌 초반부터 줄곧 선두를 질주하며 111경기 만에 우승 매직넘버를 모두 지웠다. 한국시리즈(KS)에선 LG를 4승 2패로 꺾고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1997년 11월 쌍방울로부터 포수 박경완을 현금 9억원에 영입한 현대는 1998년 7월 현금 6억원에 마무리 투수 조규제까지 트레이드해 약점을 채웠다. ②'흑곰' 우즈의 등장 관심이 쏠린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첫 시즌. 주인공은 OB 타이론 우즈였다. 우즈는 정규시즌 126경기에 출전, 타율 0.305 42홈런 103타점으로 활약했다. 한화 이글스 장종훈이 보유하고 있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종전 41개)을 갈아치우며 무시무시한 괴력을 선보였다. 기자단 투표에서 2차까지 가는 접전 끝에 LG 트윈스 김용수를 제치고 사상 첫 외국인 선수 최우수선수(MVP)를 차지, 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 ③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은 '드림팀'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던 박찬호와 서재응을 필두로 임창용(당시 해태) 박재홍(당시 현대)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스타급 선수들이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여준 대표팀은 결승에서 일본을 13-1, 7회 콜드게임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병현(당시 성균관대)은 대회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이듬해 MLB에 진출했다. ④김기태·김현욱 현금 트레이드 시즌이 끝난 뒤 깜짝 놀랄만한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삼성이 현금 20억원과 포수 양용모, 외야수 이계성을 쌍방울에 보내고 왼손 거포 김기태와 전천후 투수 김현욱을 받는 트레이드에 합의한 것이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쌍방울의 고육지책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쌍방울로부터 향후 A급 선수 트레이드 불가, 1999년 전반기(66경기) 동안 승률 3할을 유지하겠다는 등의 각서를 받은 뒤 트레이드를 승인했다. 쌍방울은 1999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⑤이대진 10타자 연속 탈삼진 이대진은 5월 14일 인천 현대전에 선발 등판, 10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냈다. 직전 등판에서 타구에 오른손등을 맞아 보름 가까이 '개점휴업' 했는데 복귀전에서 무시무시한 괴력을 뽐낸 것이다. 1회 2사 후 스캇 쿨바부터 4회 마지막 타자 쿨바까지 모든 아웃카운트를 'K'로 장식했다. 10타자 연속 삼진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KBO리그 기록. 2009년 5월 SK 와이번스 전병두가 이 기록에 도전했지만 9타자 연속 탈삼진에서 멈췄다. ⑥'별 중의 별' 박정태 올스타전에서 가장 빛난 건 롯데 박정태였다. 박정태는 선제 타점을 포함해 5타수 4안타 1타점으로 동군의 8-2 승리를 이끌었다. 롯데 선수로는 역대 여섯 번째 올스타전 MVP. 롯데는 1991년 김응국 이후 올스타전 MVP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박정태가 긴 침묵을 깼다. 박정태는 1999년에도 올스타전 MVP를 차지하며 사상 첫 2년 연속 수상자로 이름을 남겼다. ⑦화려한 신인 김수경 데뷔 첫 시즌 현대 김수경이 깜짝 놀랄만한 활약을 선보였다. 김수경은 정규시즌 12승 4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76을 기록했다. 김시진 투수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구속이 크게 향상, 위력적인 투수로 탈바꿈했다. 정규시즌 탈삼진 3위에 오르며 현대의 '투수 왕국' 한 축을 담당했다. 고졸 선수가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한 건 1992년 염종석 이후 6년 만이었다. ⑧일본으로 달린 야생마 4월 '야생마' 이상훈은 선동열, 이종범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 합류했다. 이상훈은 1997년 10승 37세이브를 기록한 리그 정상급 왼손 투수였다. LG는 MLB에 진출할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는 이상훈의 요구에 따라 완전 트레이드가 아닌 2년 임대 조건으로 주니치 이적이 성사됐다. 이상훈은 주니치와 MLB 보스턴 레드삭스를 거쳐 2002년 친정팀 LG로 복귀했다. ⑨KS MVP 정민태 '투수 왕국' 현대의 핵심 자원은 정규시즌 3년 연속 200이닝을 소화하며 17승을 따낸 정민태였다. 정민태는 LG와 KS에서 1, 4차전 선발승을 따냈다. 특히 2승 1패로 앞선 4차전에서 8이닝 12탈삼진 1실점 쾌투로 시리즈 향방을 결정했다. 정민태는 6차전에선 구원 투수로도 마운드를 밟아 3경기 평균자책점 0.51로 MVP에 올랐다. 기자단 투표에서 유효 투표수 50표 가운데 49표를 쓸어 갔을 만큼 이견이 없었다 ⑩추락한 호랑이 군단 해태는 개막에 앞서 열린 슈퍼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높였다. 슈퍼 토너먼트는 KBO가 프로야구 붐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한 대회였다. 해태는 정규시즌에선 상승세를 이어 가지 못했다.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선동열, 이종범을 비롯한 주축 선수를 떠나보낸 영향으로 시즌 성적이 크게 악화했다. 결국 61승 1무 64패로 5위에 머물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배중현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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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해태의 마지막 우승, 라이언킹의 첫 포효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김현욱, 유일무이 '구원 20승' 달성 쌍방울 사이드암스로 김현욱은 1년 전 필승조로 성장한 데 이어 97년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구원으로만 20승을 올리며 다승, 평균자책점(1.88)과 승률(0.909) 등 투수 3관왕을 기록했다. 피안타율 0.204(2위), 탈삼진 135개(4위) 등의 기록도 뛰어났다. 다만 승수 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다. 5회 종료 이전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승리한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결국 그해 투수 골든글러브는 해태 이대진에게 넘어갔다. ②김용수, 첫 500경기 출장 LG 김용수는 1997년 9월 11일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KBO리그 역대 최초로 투수 5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중앙대 졸업 후 실업야구 한일은행을 거쳐 1985년 MBC 청룡(LG의 전신)에 입단한 그는 첫해 6경기를 시작으로 이후 13년에 걸쳐 대기록을 작성했다. 500경기에 도달할 때까지 선발 79경기·구원 421경기에 등판, 96승 70패 195세이브 평균자책점 2.73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③삼성 부정 배트 사건 삼성은 5월 4일 대구 LG전에서 불방망이를 휘두르다 논란을 빚었다. 삼성은 이날 경기에서 27-5로 대승했다. 역대 최초 연타석 만루홈런(정경배)을 앞세워 한 경기 최다득점과 역대 최다 득점차(22점) 신기록을 세웠다. 대패한 천보성 LG 감독이 다음 날 부정 배트 의혹을 제기했고, 김성근 쌍방울 감독도 가세해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조사가 시작됐다. KBO 측은 미국 조사기관에 배트의 재질과 도료 등에 대해 검사를 의뢰, 배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④해태 왕조의 마지막 우승 시즌 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해태 주전 선수들이 코치진과 갈등 끝에 훈련을 거부(하와이 항명 사건)했다. 우려 속에 시즌을 시작했지만, 단 한 차례도 3위권 밖을 벗어나지 않은 끝에 75승 1무 50패(승률 0.599)로 우승했다. 마무리 임창용, 중견수 김창희 등 세대교체에도 성공했다. 이종범이 30홈런-30도루, 이대진이 17승을 기록하는 등 기존 주축 선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해태는 LG와의 한국시리즈(KS)에서 더 강력했다. 2년 연속 KS 1차전 선발투수로 나서 승리한 이대진이 4차전에서도 7이닝 2실점 승리를 기록했다. 임창용은 3세이브를 거뒀다. 우승 1주일 후인 11월 1일, 모기업 해태그룹이 부도 처리되면서 해태 왕조는 쇠락하기 시작한다. ⑤'아기 호랑이' 김상진의 KS 완투승 김상진은 해태 우승에 화룡점정을 찍은 주인공이었다. 1996년 해태에 입단한 그는 2년 차 때 9승 10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60으로 선발진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정규시즌보다 빛났던 건 KS였다. 2차전에 이어 5차전에 선발 등판했던 김상진은 9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기록했다. 만 스무 살에 세운 KS 최연소 완투승 기록이다. ⑥바람의 아들은 해외로 마지막 우승을 이끈 건 역시 이종범이었다. KS 1차전부터 솔로홈런을 기록한 그는 시리즈 타율 0.294 3홈런 4타점을 거두고 MVP를 수상했다. 시즌이 끝난 후 이종범은 새로운 무대를 찾아 떠난다. 이종범은 12월 3일 이적료 4억4000만엔, 입단 보너스 5000만엔, 98년 연봉 8000만엔의 조건으로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 팀 선배 선동열과 다시 만났다. ⑦'적토마' 이병규의 질주 1997년 최고의 신인은 '적토마' 이병규였다. 단국대를 졸업한 그는 1년 전 박재홍이 받았던 신인 야수 최대 계약금(4억 3000만원)을 넘은 4억 4000만원을 받고 LG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부터 중심타선에 입성한 이병규는 첫해 타율 0.305 7홈런 69타점 23도루로 활약했다. 시즌 종료 후 신인왕 투표에서는 75표 중 52표를 얻었다. ⑧'라이언킹' 이승엽, 첫 MVP 삼성 이승엽은 프로 3년 차인 1997년 만개했다. 직전 2년간 22홈런을 기록했던 그는 1997년 타율 0.329 170안타 32홈런 114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역대 최연소 홈런왕을 비롯해 안타·홈런·타점 3관왕에 올랐다. 그는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왕으로 성장했다. ⑨외국인 시대 열린 KBO리그 1997시즌이 끝난 후 KBO리그는 새 시대에 접어든다. 11월 14일 사상 첫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가 실시됐다. 쌍방울을 제외한 7개 구단이 총 35명의 외국인 선수를 지명했다. 팀 별로 2명을 보유하고 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해태는 외국인 선수 계약을 포기했고, LG와 롯데는 각각 1명만 데려왔다. 차승윤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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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선동열·김성한 없는 해태의 V8...현대 왕조 서막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리틀 쿠바' 박재홍 등장 현대 신인 박재홍이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다. 데뷔 시즌 126경기에 출전, 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9월 3일 LG전에서 김용수를 상대로 좌월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그해 홈런왕과 타점왕에 올랐다. 박재홍이 데뷔 시즌 최다 홈런과 타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만장일치(유효 30표)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②김성근의 쌍방울, 반전 2위 쌍방울은 정규시즌 2위(70승 2무 54패)에 오르며 1군 진입 6시즌 만에 가을야구에 나섰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김현욱·조규제·오봉옥을 앞세워 중간 계투진을 강화, 1점을 짜내고 지키는 야구로 쌍방울의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다. 간판타자 김기태의 성적은 이전 시즌보다 떨어졌지만, 김광림(타율 0.303)이 분전했다. 연고지 전주엔 야구 열풍이 불었고, 쌍방울은 창단 뒤 가장 많은 홈 관중(26만 5918명)을 기록했다. ③현대, 창단 첫 시즌 'KS 진출' 현대는 창단 첫 시즌 돌풍을 일으켰다. 1995시즌 7위였던 태평양을 인수한 만큼 기대가 크지 않았으나, 정규시즌 4위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선 한화와 쌍방울을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KS)까지 진출했다. 정민태·정명원·위재영이 지키는 현대 마운드는 꽤 높았다. 김경기·이숭용·박재홍이 이끄는 타선의 짜임새, 신인 박진만이 지키는 내야도 탄탄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던 김재박 감독은 현대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④'이빨 빠진 호랑이'의 우승 개막 전 해태를 향한 전망은 밝지 않았다. 선동열이 일본 무대로 진출했고, 김성한이 은퇴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에서 해태는 1승 1무 4패에 그쳤다. 그러나 이종범과 이대진, 투·타 핵심 선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6월 이후 상승세를 탔다. 7월에는 15승(1무 5패)을 챙기며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선두를 내주지 않고 1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조계현은 시즌 최다 완투(11번)를 해냈다. 해태는 현대와 맞붙은 KS에서도 4승(2패)을 먼저 거두며 통산 8번째 KS 우승을 차지했다. KS 진출 시 우승 확률 100% 기록도 이어갔다. ⑤정명원, 최초 KS 노히트노런 현대 정명원은 10월 20일 열린 해태와의 KS 4차전에 선발 등판, 9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2볼넷 1사구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노히트노런을 해냈다. 앞선 15시즌(1982~1996) 동안 노히트노런 8번은 모두 정규시즌 경기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노히트노런을 해낸 투수는 없었다. 마무리 투수였던 정명원을 선발로 내세운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의 '변칙' 용병술도 빛났다. ⑥투수 4관왕 구대성, MVP 한화 구대성은 1996년 정규시즌에서 18승 3패 24세이브(40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지만, 5월 11일 삼성전을 기점으로 선발 투수로도 나섰다. 다승과 구원, 평균자책점과 승률(0.857) 1위에 오른 그는 신인 박재홍의 돌풍을 잠재우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⑦이강철, KS MVP 수상 해태 이강철은 데뷔 첫 시즌(1989년)부터 15승을 거뒀지만, 팀 선배 선동열과 조계현에 가려 있었다. 그는 1996년 KS에서 완봉승을 포함해 2승 1세이브 13탈삼진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하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강철은 1996년을 돌아보며 "당시 KS MVP는 정규시즌 MVP만큼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었다. 서로 등판하고 싶어서 경쟁했다. 의미가 큰 수상"이라고 돌아봤다. ⑧'불사조' 박철순 은퇴 프로야구 원년 흥행을 이끌었던 스타 박철순이 10월 4일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1982년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지난 시즌까지 깨지지 않은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22연승)도 그해 세웠다. 그는 허리, 아킬레스건 등 끊임없이 이어진 부상 속에 신음하면서도 우리 나이로 마흔한 살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통산 성적은 231경기 76승 5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 야구팬은 그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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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 속설 얼마나 깨졌나, 팩트체크해드립니다

포츠계처럼 많은 속설과 징크스가 있는 세계도 찾기 드물다.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도 지금은 깨졌지만 '밤미노의 저주(베이브 루스를 1919년 뉴욕 양키스에 판 뒤 86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 '염소의 저주(1945년 한 팬이 염소를 데리고 야구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뒤 71년간 우승하지 못한 시카고 컵스)' 등이 유명했다. 과연 야구판에서 이어지던 각종 저주와 징크스는 지금도 유효할까. 새해를 맞아 '팩트 체크'해봤다.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깨졌다 프로야구 드래프트가 다가오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이영민. 일제강점기인 1905년 태어난 그는 훌륭한 야구선수이자 축구선수였고, 행정가로서도 활약했다. 1958년 대한야구협회는 그를 기려 최고의 고교 타자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을 만들었다. 현재는 고교야구 성적 타율 1위에게 수여된다. 그러나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선수들이 묘하게도 성인 무대에선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해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란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이영민 타격상의 저주가 거론된 건 90년대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 전까지는 백인천(1959년), 최관수(1960년), 이광환(1965년), 정현발(1971년), 김일권(1973년), 이만수(1977년) 등이 실업과 프로에서 활약했다.'저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프로야구에서 드래프트의 중요성이 커진 1990년대부터다. 기대를 걸고 지명한 선수들이 꽃을 피우지 못한 사례들이 등장했다.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1981년 수상한 구윤이 대표적이다.구윤은 경북고 시절 성준, 류중일, 문병권과 함께 고교야구 3관왕을 이끌었다. 강한 어깨 덕에 투수로도 나섰던 그는 중앙대 진학 후 큰 빛을 보지 못했다. 1986년 1차 지명으로 연고구단 삼성에 입단했지만 잦은 부상 탓에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뒤 이듬해 은퇴했다.이후에도 김경기(1989년)를 제외한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는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87년 수상자 김훈은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과 동시에 개막전부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최강 해태에서 신인이 1군 선배들과 나란히 선 것만으로도 그에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하지만 입단동기 이종범, 이대진과 달리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12년만에 은퇴했다.1991년 수상자 강혁은 '비운의 선수'로 통한다. 좌타자 강혁은 신일고 시절 '천재'로 불렸으나나 OB 베어스(현 두산)와 한양대 사이 이중계약 파문에 휘말리며 프로로부터 영구제명됐다. 한양대 시절엔 2사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얻어냈다는 일화도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국가대표로 나섰다. 프로에 갈 수 없었던 강혁은 당시 특급 선수를 쓸어담은 실업팀 현대 피닉스로 향했다. 뒤늦게 징계가 풀려 두산으로 향했지만 꽃을 피우진 못했다.강혁의 신일고 후배 조현도 엄청난 유망주였다. 조현은 1993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홈런 3개를 터트린 거포였다. 1995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조현은 미래의 홈런왕으로 꼽혔고, 그해 전반기에만 9개의 홈런을 쳤다. 하지만 이후 급격하게 정확도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해태와 한화 이글스를 거쳐 은퇴했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32, 14홈런.그러나 이제 '이영민 타격상'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2004년 수상자 최정(SSG 랜더스), 2005년 수상자 김현수(LG 트윈스) 덕분이다. 인천고를 졸업한 최정은 2005년 SK 와이번스(SSG 전신) 데뷔하자마자 두자릿수 홈런을 쳐 '소년 장사'로 불렸다. 이후에도 홈런왕에만 세 차례 오르며 통산 홈런 2위(403개)에 올랐다.김현수는 신일고 당시 어느 팀에도 지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신고선수로 두산에 입단했고, 2년차가 되자마자 1군에서 활약했다. 2008년 최연소 타격왕에 오른 김현수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타자로 우뚝 섰다. '타격만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타격 기계'로 성장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시작으로 국제대회에만 9번 출전한 국제용 타자이기도 하다.최근 들어 이영민 타격상 징크스는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다. 이후에도 하주석(한화), 박민우(NC 다이노스), 송성문(키움 히어로즈), 최원준(KIA), 김혜성(키움) 등 대다수 선수들이 프로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사실 수상자를 고교 대회 한 시즌 기준으로 타율만 가지고 선정하기 때문에 '이영민 타격상=최고의 타자'란 등식이 성립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엘롯기 신인왕 징크스, 아직 한 팀 남았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엘롯기'란 단어를 모르는 이가 없다. 대표 인기구단인 LG, 롯데, KIA를 합친 말이다. 세 팀을 한데 묶어 부르는 이 말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세 팀이 최하위를 번갈아 하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쓰였다.세 팀에겐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로 신인왕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LG는 전신인 MBC 청룡(김건우, 이용철)을 포함해 90년대 중반까지는 5명이나 수상했다. 김동수(1990년), 유지현(94년), 이병규(97년)는 신인상 수상 이후에도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병규 이후엔 20년 넘게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옆집 두산이 '화수분'으로 불리며 신인들을 잘 키우는 것과 대조적이었다.롯데와 KIA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 염종석이 유일한 신인왕이다. 해태도 1985년 이순철 이후엔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롯데의 경우 연고지 부산에서 특급 선수들이 여럿 나왔지만 신인왕을 받은 선수는 없었다.결론부터 말하면 엘롯기 신인왕 징크스는 '일부 유효'다. 깨져가고 있지만, 아직 남아있는 팀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탈출한 팀은 LG다. 2019년 잠수함 투수 정우영이 데뷔하자마자 활약하면서 당당히 신인왕을 받았다. 구원투수라는 점에서 불리했지만 순수 고졸 신인이라는 점이 크게 반영돼 중고신인 이창진, 전상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KIA는 36년 만에 왼손투수 이의리가 '타이거즈 신인왕' 계보를 이었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이의리는 지난해 19경기에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3.61을 기록했다. 부상 탓에 시즌 막판엔 결장하기도 했으나 비율 기록이 워낙 좋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활약한 것이 표심에 반영됐다. 이순철 해설위원에게 '신인왕 징크스를 깨겠다"고 했던 약속도 지켜졌다.롯데는 아직까지 염종석 이후 신인왕이 없다. 지난 시즌 20홀드를 올린 셋업맨 최준용이 이의리와 접전을 벌였으나 유효표 115개 중 1위 표 61개를 받은 이의리(최준용 42개)에 밀렸다. 구원투수란 점, 그리고 데뷔 2년차란 점이 발목을 잡았다. 어느덧 롯데의 마지막 우승, 신인왕도 30년째를 채우게 됐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2022.01.3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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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⑦] '바람의 아들' 이종범

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 종범신(神). 이토록 화려한 별명으로도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재능과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 한국야구 역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이종범(52) 얘기다.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 유격수 부문에 이종범이 선정됐다.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총 28표를 획득, 2위 김재박과 박진만(이상 4표)을 크게 따돌렸다. 한국야구 계보를 잇는 역대 유격수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이종범은 안정감 있는 수비력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여겨졌던 유격수의 평가 기준을 바꿔놓았다.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폭발적인 화력으로 팀 공격을 주도했다. 야수 한 명이 경기 흐름과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수비력도 일품이었다. 특히 강한 어깨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야구계에서는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있다. 이종범의 전천후 능력에 대한 극찬이다. 이종범과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후배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타이거즈 직계 후배였던 김종국 KIA 감독은 "공·수·주를 모두 따졌을 때 가장 뛰어난 유격수는 이종범 선배"라고 했다. 선수 생활 말년(2002~2003) KIA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장정석 KIA 단장도 "그야말로 '야신(야구의 신)'이다. 리그 최정상급을 넘어 독보적이었다. 야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라고 돌아봤다. 이동욱 NC 다이노스 감독도 "수비를 잘하는 다른 후보들이 있어서 고민했다. 그래도 타격이나 도루 등 여러 임팩트에서 이종범이 선배가 제일"이라고 했다. 조원우 SSG 랜더스 벤치코치, 이대진 SSG 투수 코치는 이종범을 역대 최고 유격수로 꼽으며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1993년 1차 지명으로 해태 타이거즈(현재 KIA)에 입단한 이종범은 데뷔 시즌부터 득점(85개) 1위, 안타(133개)와 도루(73개) 2위, 홈런(16개) 4위에 오르며 리그를 흔들었다. 신인 최다 도루를 기록하며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인상은 타율 1위(0.341), 홈런 2위(23개)에 오른 양준혁(당시 삼성 라이온즈)에게 내줬지만, 삼성과의 한국시리즈(KS)에서 타율 0.310 7도루로 맹활약하며 해태의 우승을 이끌었다. KS 최우수선수(MVP)도 그가 차지했다. 1994년은 전설로 회자된다. 이종범은 124경기에서 타율 0.393(499타수 196안타) 113득점 77타점 84도루를 기록하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타율은 프로야구 출범 원년 백인천이 기록한 0.412에 이어 역대 2위에 자리했다. 최다 안타는 당시 신기록이었다. 84도루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야구팬은 4할 타율, 200안타, 100도루를 향해 도전하는 이종범의 레이스에 열광했다. 리그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이종범은 1997년 다시 한번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정규시즌 타율 0.324 30홈런 64도루를 기록했다. 도루 1위, 홈런 2위에 올랐다. 후반기 홈런 페이스가 떨어진 탓에 이승엽(32개)에게 타이틀을 내줬지만, 홈런왕-도루왕 동시 석권을 노리며 다시 한번 리그를 달궜다. 역대 두 번째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아직도 이 기록을 해낸 유격수는 이종범이 유일하다. LG 트윈스와의 KS에서는 승부처마다 출루와 도루, 홈런과 호수비를 선보이며 해태의 9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개인 두 번째 KS MVP도 수상했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이종범은 1998시즌을 앞두고 주니치 드래건스와 계약하며 일본 리그에 진출했다. 초반 경기력은 좋았지만, 이내 일본 야구 특유의 '현미경' 분석에 고전했다.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상대 투수의 공에 오른 팔꿈치를 맞고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복귀 후에도 기대한 성적은 내지 못했다. 결국 2001년 8월 해태에서 KIA로 구단명이 바뀐 친정팀에 복귀한다. 이종범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났다. 포지션을 외야수로 옮겼지만, 호쾌한 타격과 현란한 주루 능력은 여전했다. 2003시즌에는 50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복귀했고, 안타(165개)도 2위에 올랐다. 일본 진출 전만큼 뛰어난 성적은 내지 못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타자로 평가받았다. 만 서른다섯 살이 된 2005년 이후에는 장타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내리막을 타면서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2006년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는 대표팀 주장을 맡아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숙적 일본과의 2라운드 3차전 8회 극적인 2타점 적시타를 치며 2-1 승리 주역이 됐다. 서른아홉 살이었던 2009년에는 역대 두 번째로 통산 500도루를 넘어섰고, SK 와이번스(현재 SSG)와 KS에서는 1차전 결승타 등 선수단의 버팀목 역할을 해내며 타이거즈 구단 역대 10번째 KS 우승에 기여했다. 이종범의 등 번호 7번은 타이거즈 구단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현재 프로야구를 이끄는 후배들에게 이종범은 이미 전설이다. KT 위즈 베테랑 박경수는 "역대 유격수 중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했다. 키움 히어로즈 내야수 김혜성과 NC 투수 송명기도 "그야말로 레전드"라고 했다. 리그 최고 타자로 성장한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키움)는 아버지를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는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2.01.1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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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KIA, 왼손이 든든해

‘왼손 파이어볼러(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 야구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속설이다. 그만큼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 투수가 긴요하다는 뜻이다. 지난해 하위권(9위)에 머물렀던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가 왼손 투수 트로이카를 앞세워 도약을 노리고 있다. 2017년 최우수선수(MVP) 양현종(34), 지난해 신인왕 이의리(20)와 외국인 투수 션 놀린(33·미국)이 그 주인공이다.KIA는 해태 시절부터 왼손 투수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윤석민 등 간판 투수 대부분이 우완이었다. 창단 이후 39년 동안 두 자릿수 승리를 한 번이라도 기록한 왼손 투수는 딱 3명이다. 신동수가 두 번(1991, 92년), 김정수가 한 번(93년) 10승을 넘겼다. 나머지 한 명이 양현종이다. 2007년 데뷔한 양현종은 무려 9차례나 10승 이상을 따냈다. 2014년부터는 7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면서 기록을 이어갔다.양현종은 지난해 미국으로 떠났다. 메이저리그(MLB)에서 뛰겠다는 일념으로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연봉 손해까지 감수했지만, 그의 도전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12경기에 나와 3패에 그치면서 평균자책점 5.60을 기록했다. 어렵게 선발 기회를 잡았지만,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1년 만에 돌아온 양현종은 일찌감치 KIA 복귀를 결정했다. 계약조건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지만, 결국 4년 총액 103억원(계약금 30억원, 연봉 25억원, 옵션 48억원)에 사인했다.양현종은 미국 진출 직전인 2020시즌엔 11승 10패, 평균자책점 4.70에 그쳤다. 평균자책점 1위(2.29)에 오른 2019년과는 대조적이었다. 볼넷이 급격하게 증가(9이닝당 1.61개→3.34개)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양현종의 구위나 구속은 여전하다. 지난 시즌 미국에서 뛸 때도 평균 구속은 90마일(약 145㎞)이었다. 신임 김종국 KIA 감독은 “양현종이 합류하면서 국내 투수진이 안정됐다”고 밝혔다.양현종이 없는 사이 KIA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1985년 이순철(외야수) 이후 무려 36년 만에 신인왕을 배출했다. 주인공은 광주제일고를 졸업한 1차 지명 신인 이의리였다. 이의리는 지난해 19경기에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3.61을 기록했다. 발목 부상으로 시즌 후반엔 등판 횟수가 적었지만, 기록은 화려했다. 9이닝당 삼진(8.84개·10위), 피안타율(0.204·1위), 피OPS(피출루율+피장타율, 0.607·6위) 모두 리그 최상위권(100이닝 이상 선발투수 기준)이었다.이의리 역시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다. 힘 있는 포심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의 조합이 위력적이다. 팔 스윙이 빨라 타자가 대처하기 힘들고, 회전수(최고 초당 2380회)도 높아 좀처럼 강한 타구를 허용하지 않는 능력을 갖췄다.요즘 서울에서 개인 훈련 중인 이의리는 “발목은 이제 전혀 문제가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 큰 목표는 부상을 당하지 않고 풀시즌을 소화하는 것이다. 이의리는 “안 다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현재 선발 보직이) 제 자리가 아닌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이의리는 양현종의 후계자로 꼽히지만, 정작 두 선수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지난해 입단한 새내기 이의리는 아직 양현종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의리는 “모든 면에서 아직 배울 게 많다. 지난해 프로에 데뷔한 첫 시즌을 보낸 신인인데 현종 선배님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며 “나란히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했다. 후배 투수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걸 좋아하는 양현종과의 만남이 이의리에겐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의리는 “지난 시즌 마운드에 오른 모든 순간이 재밌었다”며 올 시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KIA의 마지막 왼손 비밀병기는 올 시즌 첫선을 보이는 외국인 투수 놀린이다. KIA는 그동안 외국인 왼손투수로 재미를 본 적이 없다. 2017년 팻 딘이 올린 9승이 최고기록이다. 그런데 놀린은 구단 좌완 외인 사상 첫 10승에 도전한다. 놀린은 지난해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10경기(5선발)에 나와 2패 평균자책점 4.39를 기록했다. 연봉은 90만 달러지만 이적료를 지급했기 때문에 외국인 연봉 상한선(100만 달러)을 꽉 채웠다.권윤민 전력기획팀장은 “투수를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 먼저 계약한 외국인 투수 로니 윌리엄스는 불펜 경력이 많았다. 이에 비해 놀린은 커리어 내내 선발투수로 활약한 데다 이닝 이터(많은 이닝 동안 던지는 투수)라는 점이 돋보였다. 제구력이 뛰어난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권 팀장은 또 “퀵모션 속도를 조절하거나 팔 각도를 올리고 내리는 등 마운드 위에서 영리한 모습에 주목했다”며 “평균 구속이 시속 140㎞대 중반인데 MLB에선 빠른 편이 아니지만 한국에선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 끝이 지저분해 많은 땅볼 유도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KIA는 지난해 선발 투수 평균자책점이 8위(5.04)에 그쳤다. 올 시즌엔 왼손 투수 트리오와 우완 윌리엄스, 언더핸드 임기영이 선발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3명의 왼손 투수를 징검다리처럼 활용하면 좌-우-좌-우-좌로 이어지는 로테이션이 가능하다. 상위권 도약을 노리는 KIA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KBO리그에 기록될 좌완듀오는?한국인 중 왼손잡이 비율은 약 5% 정도다. 왼손 투수의 비율은 20% 정도다. 그러다 보니 리그를 뒤흔든 왼손 투수는 많았지만, 좌완 듀오를 보유한 팀은 많지 않았다. 2021시즌까지 두 명의 왼손 투수가 한 팀에서 동시에 10승 이상을 거둔 사례는 16차례뿐이다. 좌완 10승 트리오는 단 한 번도 없었다.프로 원년인 1982년엔 삼성의 왼손 투수 권영호와 이선희가 나란히 15승을 거두며 30승을 합작했다. 왼손 투수가 많았던 삼성은 이후에도 성준-김일융(1986년), 김태한-성준(1993년), 차우찬-장원삼(2010·13년) 등을 배출했다.1990년대 가장 인상적인 좌완 콤비는 1995년 LG 트윈스의 이상훈과 김기범이다. 그해 이상훈은 30경기에서 20승 5패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했다. 이후 국내 투수 20승은 2017년 양현종이 나올 때까지 22년이나 걸렸다. 이상훈, 정삼흠에 이어 LG 3선발이었던 김기범은 26경기에서 13승 7패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했다.10승 투수는 한 명이지만 '레전드 좌완' 3명이 함께 뛴 팀도 있었다. 2006년 한화 이글스다. 그해 입단한 신인 류현진은 18승을 거두며 MVP와 신인왕을 싹쓸이했다. 마무리 구대성은 개인 최다인 37세이브를 챙겼다. 당시 만 41세였던 송진우는 그해 8승(8패)을 추가하며 통산 200승 고지를 밟았다.KBO리그 최고의 외국인 좌완 원투펀치는 2015년 넥센에서 뛴 앤디 밴헤켄(미국)과 라이언 피어밴드(미국)였다. 밴헤켄은 강속구 투수는 아니지만 절묘한 포크볼을 앞세워 20승을 거뒀다. 피어밴드 역시 위력적인 공은 아니지만, 좋은 제구력 덕분에 13승을 올렸다.가장 꾸준했던 사우스포 조합은 두산 베어스 장원준-유희관이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두 선수는 나란히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다. 이 기간 두산은 세 차례 한국시리즈에 나가 두 번 우승했다.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2022.01.18 08:33
야구

최원태의 반란, 저평가된 토종 에이스의 반란

넥센 최원태(21)는 명실상부한 2018시즌 전반기의 토종 오른손 에이스다. 소속팀 넥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리그 전체를 통틀어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전 구단 오른손 국내 선발투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일단 18경기에서 11승을 올려 전반기 10승 이상을 따낸 투수 4명 안에 포함됐다. 국내 투수 가운데선 최원태가 최다승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10승 투수 대열에 합류했고, 올해는 전반기에 벌써 지난해 승 수를 다 채웠다. 외국인 투수들의 이름으로 가득 찬 평균자책점(3.77) 순위에서도 KIA 왼손 에이스 양현종(3.48) 다음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전반기에만 100이닝 이상을 던진 선발투수 16명 가운데 홈런(6개)을 가장 적게 내줬다.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시름이 가득했던 넥센에서 최원태의 성장은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것뿐이다. 최원태는 하필이면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가 확정된 이후 더 좋은 피칭을 했다. 지난 6월 6일 두산전에서 패전투수가 된 뒤 6경기에서 더 이상 지지 않았다. 6월 17일 삼성전을 시작으로 5경기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되는 기염도 토했다. 외국인 선발 에스밀 로저스가 부상으로 빠지고 대체 외국인 선수 에릭 해커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선발진에 큰 틈이 생겼지만, 최원태가 에이스 역할을 해 주면서 공백을 최소화했다. 넥센과 최원태로서는 생각보다 빨랐던 대표팀 최종엔트리 발표가 야속했을 법하다. 최원태는 "이전부터 계속 시즌 초반에 고전하다가 등판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스타일이었다. 올 시즌에도 빨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초반에 안 좋았던 것이 아쉽다"면서도 "어차피 내가 처음부터 잘했어도 대표팀에 뽑힐 수 있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아쉽더라도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으니 팀에서 내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국가대표 합류라는 하나의 목표는 놓쳤지만, 아직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앞으로 4승 남은 15승 고지가 1차 목표다. 입단 5년 차 이내에 15승 고지를 밟은 투수는 빙그레 한용덕(1991년 17승) 해태 이대진(1996년 16승) 롯데 주형광(1996년 18승) 삼성 배영수(2004년 17승) 현대 김수경(2000년 18승) SK 이승호(2004년 15승) 한화 류현진(2006년 18승) SK 김광현(2008년 16승) KIA 양현종(2010년 16승)만 해냈던 진기록이다. 최원태는 오는 19일 고척 LG전에서 후반기 첫 등판을 앞두고 있다. 그는 "전반기에는 승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다. 아무래도 투수진과 야수진을 비롯한 동료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후반기에는 더 잘해야 한다. 한현희 형처럼 7이닝을 던질 수 있도록 매 경기에서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개인적인 목표는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며 "팀이 지금(5위)보다 높은 순위에 오르는 게 목표일 뿐"이라고 했다. 고척=배영은 기자 2018.07.18 06:00
생활/문화

엔씨 '프로야구 H2', 레전드 이대진 추가

엔씨소프트는 12일 모바일 야구 매니지먼트 게임 ‘프로야구 H2’의 새로운 콘텐트를 업데이트했다.엔씨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통산 100승을 기록한 이대진(1997, 해태)을 레전드 선수 카드로 추가했다. 1991년도에 활약한 373명(EX 등급 2명, 포텐셜 등급 16명)의 선수 카드도 함께 공개했다. 이용자는 선수 영입과 조합으로 새롭게 추가된 카드를 얻을 수 있다.프로야구 H2에 ‘벤치 팀컬러’ 콘텐트를 도입했다. 벤치 팀컬러는 벤치 선수의 구성에 따라 선발 선수(상위·클린업·하위 타자 등)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콘텐츠다. 이용자는 조건(능력치, 연도 등)에 맞는 벤치 선수를 등록해 구단 전력을 높일 수 있다.모든 이용자는 KBO 올스타전 개최를 기념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KBO 올스타전이 열리는 14일 프로야구 H2에 접속하면 선물(선수팩, 게임 내 재화 등)을 받을 수 있다. 올스타전 경기 기록(승리팀, 홈런 수 등)에 따라 추가 보상(골든 트로피, 엘리트&올스타 배지 등)도 얻을 수 있다.권오용 기자 kwon.ohyong@jtbc.co.kr 2018.07.13 06:00
야구

[조아제약 야구대상] '이견 없는 대상' 양현종, 7년 만에 세운 '투수' 자존심

KIA 에이스 양현종(29)이 KBO 리그 최고 투수로 우뚝 섰다.양현종은 6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 별관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7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팀 동료 외국인 투수 헥터 노에시, '홈런왕' 최정(SK) 등 쟁쟁한 경쟁자를 따돌리고 상금 1000만원과 순금 도금 글러브의 주인공이 됐다. 투수가 조아제약 시상식 대상을 받은 건 2011년 윤석민(KIA) 이후 6년 만이다.이견이 없었다. 시즌 성적이 20승6패 평균자책점 3.44다. 10월 2일 수원 kt전에서 승리를 따내면서 20승 고지를 밟았다. '국내' 선수로는 1999년 정민태(당시 현대) 이후 처음이다. 선발승으로만 따지면 1995년 이상훈(당시 LG) 이후 22년 만이었다. KIA 투수로는 전인미답의 기록. 전신 해태 시절을 포함할 경우 선동열(1986년 24승·1989년 21승·1990년 22승)과 이상윤(1983년·20승)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외국인 투수 헥터까지 20승을 기록해, 1985년 김시진·김일융(당시 삼성) 이후 32년 만에 '팀 동반 20승 투수'라는 훈장을 달았다.하이라이트는 한국시리즈(KS)였다. 1승1세이브를 기록해 팀을 8년 만의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1패로 뒤진 KS 2차전에선 9이닝 4피안타 11탈삼진 무실점 쾌투로 1-0 승리를 책임졌다. KS 무대에서 완봉승을 올린 건 역대 10번째. 2009년 아퀼리노 로페즈 이후 8년 만이었다. 이어 3승1패로 앞선 5차전에선 데뷔 첫 세이브까지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KS MVP에 이어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하면서 KBO 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 지난해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취득했지만 1년 단기 계약을 해 갱신이 필요한 상황. 사실상 FA나 다름 없는 자격이어서 KIA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그만큼 양현종의 2017시즌은 화려했고, 특별했다.그는 "올해는 정말 꿈같은 한 해였다. 목표로 삼았던 것을 모두 다 이루게 돼 정말 기쁘다. 김기태 감독님과 이대진 투수코치님께 감사드린다. 팀 동료들에게도 정말 고맙다. 다른 선수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혼자 이룬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올해 성적은 좋게 나왔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부족한 경기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타선이 잘 터져서 이긴 경기도 있다. 내년에는 나 스스로 좀 더 완벽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전했다.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 2017.12.0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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