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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들리지만 살벌한 '버블 매치'를 아시나요?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2004년 11월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홈구장인 브라몰 레인에서 울버햄튼 원더러스(울브스)와 맞붙었다. 당시 셰필드 대학교에서 석사 공부 중이었던 필자는 이 경기를 직관했다.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인 ‘풋볼 리그(12개 클럽으로 1888년에 창설)’의 원년 멤버 울브스의 경기를 본다는 사실에 필자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필자의 기쁨과는 달리 브라몰 레인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하늘에는 경찰 헬리콥터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떠 있었고, 경기장 주변에는 경찰이 쫙 깔려 있었다.약간의 무서움과 설렘으로 이러한 분위기를 즐기던 필자의 눈에 진기한 장면이 보였다. 기마경찰을 선두로 무서운 인상을 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필자는 그들이 처음에는 범죄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영국 경찰에 둘러 싸인 채 걸어가던 그 집단은 셰필드로 원정 응원 온 울브스 팬들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버블 매치(bubble matches)”의 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버블 매치는 대형 풍선같이 생긴 ‘버블 슈트(suit)’를 유니폼 삼아 축구를 하는 ‘버블 축구(Bubble football)’와 전혀 상관이 없다. 웨스트햄의 대표 응원곡인 “I'm forever blowing bubbles”와도 연관이 없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말하는 버블 매치는 과연 무엇일까?여러분이 극장 티켓을 예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극장을 가기 위해서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혹은 자가용을 이용할 수도 있다. 걸어가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운 이동은 모두 불가능하다. 대신 여러분은 경찰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극장에 가기 위해 경찰이 지정한 버스를 타야 하고, 영화 상영 내내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경찰은 여러분이 귀가할 때도 따라온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냐는 소리라고 여러분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극장 대신 축구라는 단어로 대체하면 최소한 영국에서는 말이 된다. 버블 매치라는 단어를 얼핏 들으면 멋지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축구에서 말하는 버블 매치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버블 매치는 보통 심각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2개 클럽의 연고지가 같은 도시나 타운이 아닌 경우에 적용된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선덜랜드의 타인 위어(Tyne-Wear) 더비가 대표적인 예다. 버블 매치는 대규모 팬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 도시로 몰려들 경우 치안이 무너지고 대재앙이 발생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그렇다고 모든 더비 경기가 버블 매치는 아니다. 경찰이 폭력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경기를 ‘카테고리 C’로 지정할 때 버블 매치가 성립된다. 원정 팬이 버블 매치를 관람하려면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원정 팬들은 경찰이 지정한 특정 장소에서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특별히 준비된 코치(coach, 버스를 의미)를 타야 하는데, 경찰도 동석한다. 코치로 이동 중 경찰은 팬들의 과도한 음주를 막고, 행여라도 일어날 불상사에 대비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팬들은 경찰의 감시(또는 에스코트)를 받으며 축구장으로 이동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역시 코치를 타고 지정된 장소로 가서 해산한다. 버블 매치는 이렇게 버블 안에 팬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일부 버블 매치의 경우 원정 팬들은 경기 티켓을 미리 소지할 수도 없다. 티켓 가격을 지불한 이들에게는 바우처(voucher)가 지급되고, 이러한 바우처는 보통 사람이 없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티켓으로 교환된다. 경찰과 동행하기로 동의한 팬들만 경기장에 입장시키기 위해 이런 안전장치까지 만든 것이다. 개인의 이동 자유를 금지하는 버블 매치로 인해 때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도시 뉴캐슬에는 뉴캐슬 축구팀 팬만이 살고 있지 않다. 뉴캐슬에 거주하는 선덜랜드 축구팬 A를 예로 들어보자. A는 뉴캐슬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리는 뉴캐슬과 선덜랜드의 경기를 원정 팬의 자격으로 보기 위해서 선덜랜드에 있는 경찰이 지정한 장소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코치를 타고 뉴캐슬로 이동하고, 경기 후에는 선덜랜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티켓 판매의 조건이다. 따라서 A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뉴캐슬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기 위해 뉴캐슬과 선덜랜드를 하루에 2번 왕복해야 하는 것이다.버블 매치로 지정되면 원정 팬들의 고생이 시작된다. 2011년 12월 리즈에서 열린 리즈 유나이티드와 밀월의 경기는 버블 매치로 지정됐다. 킥오프 시간은 오후 12시 30분이었다. 이를 보기 위해 밀월의 원정 팬들은 새벽 5시 30분에 코치를 타고 런던을 떠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집에서 최소한 새벽 4시에는 일어나 준비하고 지정된 장소로 갔다는 말이다. 12월의 영국 새벽 날씨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밀월 팬들은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원정 응원을 간 것이다. 물론 팬들은 버블 매치를 싫어한다. 버블 매치는 심각한 불편함과 함께 축구팬은 통제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클럽 입장에서도 버블 매치는 반갑지 않다. 상당수의 팬들이 이러한 경기의 관람을 거부하기 때문에, 티켓 수입이 최대 90%까지 감소할 때도 있다고 한다. 버블 매치로 인해 원정 팬들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버블 매치는 이동의 자유를 짓밟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일으키고, 모든 원정 팬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대규모로 벌어졌던 축구 관련 폭력은 과거의 일이 됐다. 하지만 훌리건이즘의 유산인 버블 매치는 지금도 잉글랜드 축구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5.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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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여러분의 옷장에는 이미 훌리건 옷이 있다

맥주와 펍(pub), 미트 파이(meat pie) 등은 영국축구 문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하나 더. 훌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공 하나를 두고 22명의 선수가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축구가 우리 곁에 있는 이상, 훌리건이즘(hooliganism)은 잉글랜드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리버풀 훌리건들은 유럽클럽대항전에 참가한 리버풀을 쫓아 대륙으로 넘어갔다. 훌리건들은 처음 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화려한 패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로컬 상점을 약탈했고, 전리품인 고급 스포츠웨어와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걸치고 귀국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이 돌아올 때 영국 경찰은 닥터마틴 스타일 부츠를 신은 스킨헤드 훌리건에 집중하다가, 값비싼 옷을 입은 리버풀 훌리건들을 놓쳤다는 것이다. 이후 대륙의 새로운 패션이 영국 전역에 퍼졌다. 그 결과 라코스테, 엘레세, 휠라 등의 브랜드가 인기를 얻었다. 당시 클럽대항전인 유로피언컵 등에는 국가당 하나의 축구클럽만 참가할 수 있었다. 따라서 훌리건들의 쇼핑 기회도 제한됐다. 대신 그들은 비슷한 스타일의 영국 브랜드를 이용했다. 덕분에 인기를 얻은 브랜드가 프레드 페리, 라일 앤 스코트 등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훌리건을 캐주얼(Casuals)이라고 부르게 됐다. 현재까지 캐주얼이란 단어는 훌리건 집단을 대표해 사용되고 있다. 1978년 개봉된 영화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은 노란색 운동복을 입어 큰 인기를 얻었다. 이에 사람들은 체육관 밖에서도 지퍼 달린 상의와 바지로 구성된 운동복을 즐겨 입게 된다. 트랙수트(tracksuit)라고 부르는 이 스타일도 캐주얼 훌리건들의 사랑받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새로 등장한 캐주얼 훌리건들의 옷차림에는 여러 가지 전략적 의미가 담겨있었다. 훌리건들은 테니스 스타 같은 세련된 옷을 입기도 했다. '저런 옷을 입고 난투극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덕분에 그들은 경찰의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옷을 입은 훌리건들은 펍에 출입하기 쉬웠고, 라이벌 그룹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훌리건들은 라이벌 그룹과 그들의 본거지 펍을 풍비박산으로 만들 때도 '멋지게' 보이기를 원했다. 방송인이자 퀸즈파크 레인저스(QPR)의 열렬한 팬이었던 로버트 엘스는 그의 저서 『The Way We Wore : 우리가 입은 방식』에 이렇게 썼다. “1980년대 우리는 코벤트리로 원정을 갔었다. 코벤트리 시티의 훌리건들은 휠라 옷을 입었으나 사실 당시 런던에서 휠라의 인기는 한물간 상태였다. 우리는 한바탕 하기 전에 그들의 패션을 조롱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스타일 대결에서 진 것을 깨달았고, 전의를 상실했다.” 짓궂은 영국 날씨 때문에 1990년대 캐주얼 훌리건의 옷차림도 변했다. 휠라, 라코스테 같은 레저 웨어는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옷이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영국 축구장에서는 실용적인 옷이 필요했다. 그래서 편하면서도 세련되고, 견고한 스타일이 인기를 얻었다. 버버리, 아쿠아스텀, 프라다, 아르마니, 랄프 로렌, CP컴퍼니 같은 브랜드가 훌리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배경이다. 훌리건들은 노동자 계급이다. 그렇다고 싸구려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랄프로렌 옷을 사느라 주급을 다 쓰는 한이 있어도,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입었다. 상류층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아울러 일반 서포터스와 차별화되고 싶어 했다. 당시 영국의 거의 모든 펍에서는 캐주얼 훌리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캐주얼 메이커 중 이탈리아 브랜드인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1992년 스웨덴에서 열린 유로92 기간 스톡홀름 상점에서 스톤 아일랜드를 발견하고 약탈했다. 잉글랜드가 유로 대회에서 탈락하자 이들은 이 옷을 입고 대규모 난동을 부렸다. 옷 왼팔에 부착된 컴퍼스 로고로 유명한 스톤 아일랜드는 이후 캐주얼 훌리건의 대표 유니폼으로 자리잡았다. 컴퍼스 패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켈트 십자가와 매우 유사한 형태다. 때문에 영국 경찰은 스톤 아일랜드 로고와 켈트 십자가의 연관성을 조사하기도 했다. 훌리건과의 깊은 관계 덕분에 이 브랜드를 입은 사람들은 펍 출입을 거부당하는 등의 곤란을 겪었다. 90년대 후반에는 경찰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훌리건이 스톤 아일랜드 옷에서 컴퍼스 로고를 떼어냈다. 이탈리아 브랜드가 훌리건들의 대표 유니폼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다. 많은 이들은 컴퍼스 패치에서 답을 찾고 있다. 이 로고는 훌리건들의 축구 열정과 싸움을 마다치 않는 용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훌리건들은 경찰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특정 브랜드에서 탈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스톤 아일랜드, CP컴퍼니, 라코스테 등과 같은 훌리건의 대표 브랜드는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버버리와 프라다는 훌리건들 탓에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걸 심각하게 고민했다. 특히 버버리는 훌리건과 차브(Chav·비행청소년 집단)가 자사의 옷을 입은 채 공공장소에서 마약을 하고, 난동을 부리는 상황에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버버리는 특유의 체크무늬를 가리고, 이를 제품 안감으로 사용하는 디자인 혁신을 단행했다.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영국 훌리건의 행동에 '영국병(The English Disease)'이라는 말도 생겼다. 그러는 동안 훌리건들은 독특한 패션 문화를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독자들의 옷장에도 이 칼럼에서 언급한 브랜드 옷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으로 인해 지치고 힘든 요즘, 훌리건 스타일로 잠깐의 일탈을 해보는 건 어떨까. 모즈(Mods)나 캐주얼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 훌리건 옷을 입고 TV에서 축구 경기를 보자.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한국식 치킨도 곁들이자. 잠깐이지만,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이정우 경영학 박사(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0.10.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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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경기 당일 금주령 … 푸틴 스타일

지금 러시아의 곳곳에선 증명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목걸이 형태의 신분증을 걸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경기장 주변뿐만 아니라 주요 관광지, 공항, 기차역 등에도 이 신분증을 목에 건 사람을 만난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러시아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처음 도입한 ‘팬(fan) ID’다. 월드컵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하려는 축구 팬들은 입장권뿐만 아니라 이른바 ‘관중 신분증’인 팬 ID를 발급받아야 경기장에 출입할 수 있다. ‘팬 ID’를 만든 이유는 축구 팬 정보를 미리 수집해 테러를 방지하고, 인종차별주의자와 훌리건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6년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유로 2016) 당시 발생한 이슬람 국가(IS)의 테러 시도, 러시아와 잉글랜드 훌리건의 집단 폭력 사태 등이 계기가 됐다. 팬 ID 보급에 누구보다 앞장선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66) 러시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달 3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함께 소치를 방문해 직접 팬 ID를 목에 걸고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월드컵 개최국 러시아는 지구 전체 육지 면적의 7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광활한데, 드넓은 국토 곳곳에 자리 잡은 개최도시 11곳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50만 개 이상의 팬 ID를 제작했다. 월드컵 현장을 취재하며 체감하는 러시아는 조용하고, 깨끗하고, 친절한 나라다. 출발 전 여행사 관계자로부터 “해가 진 이후엔 절대로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라.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긴장했는데,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밤길이 안전한 러시아’를 만드는 데 ‘얼굴 박힌 신분증’인 팬 ID가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게 FIFA의 평가다. 팬 ID는 암표 거래를 방지하거나, 경기장을 찾은 각국 축구 팬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능도 한다. 러시아 축구 팬 안톤은 “축구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랑배들과 테러리스트를 미리 걸러낼 수 있으니 팬 ID는 유익한 제도”라고 말했다. ‘안전 월드컵’을 위한 러시아 정부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장과 길거리 응원장 ‘팬 페스트(fan fest)’ 주변은 물론 도심지 곳곳에 경찰과 군인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또 월드컵 기간 안전을 위해 ‘간헐적 금주령’도 내렸다. 음주 관련 불상사가 많은 러시아는 월드컵 개최도시에 한해 경기일 하루 전과 당일, 주점을 제외한 대형마트와 상점의 술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한국-멕시코전 하루 전인 지난 23일 개최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숙소 인근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주류 판매 코너가 통째로 폐쇄된 장면을 목격했다. 과감하고 기발한 조치들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 러시아의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을 찾아 “축구를 향한 사랑은 언어와 이념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한 팀으로 묶는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또 러시아가 5-0으로 승리한 직후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위로했다. 경기장은 콜로세움 같았고, 푸틴은 21세기판 차르(러시아 황제) 같았다. 러시아에서 20년째 장기 집권 중인 푸틴의 지배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개막전 직후 공식기자회견에 참석한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소감을 밝히다 말고 휴대전화를 들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가 몇 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전 세계 취재진을 상대로 결례를 범했지만, 체르체소프 감독은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승리를 축하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달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에서 푸틴 대통령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및 시리아 내전 개입,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논란에 이어 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스파이 독살 논란까지 줄줄이 이어지며 곤욕을 치렀다. 푸틴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 본인은 물론 러시아의 이미지를 쇄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경기장 신축 및 인프라 확장에 110억 달러(11조9000억원)를 쏟아부었다. ‘푸틴 스타일’로 밀어붙인 러시아 월드컵은 현재까진 합격점을 받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 이상록 씨는 “러시아는 본래 아이스하키에 열광하는 나라인데, 월드컵 개막을 전후해 축구의 인기가 높아졌다”면서 “한국과 스웨덴 경기 당일 도심지 주변 술집의 맥주가 동났다는 뉴스가 나왔다.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데 어울려 이전에 보지 못한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하면서 모스크바 거리 곳곳에선 “로씨야(러시아의 본토 발음)”를 외치는 축구 팬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분위기와 닮았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월드컵을 활용해 서방 세계의 러시아 경제제재 조치에 김을 빼놨다”면서 “다음 달 16일 결승전이 끝난 직후 푸틴 대통령이 우승팀에 FIFA 컵을 전달하는 장면이야말로 러시아가 기대하는 이번 월드컵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월드컵을 통해 ‘국제무대에 러시아가 돌아왔다’고 외치려 한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이 100점 만점은 아니다. 여전히 숙박업소나 음식점에선 의사소통이 힘들고, 일부 택시기사들은 난폭 운전에 바가지요금을 씌우기 다반사다. 평소보다 10배 이상으로 치솟은 숙박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06.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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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우스피스와 격투기용 글러브를 낀 채 나타났다

"입에는 마우스피스를 물고 있었고 손에는 격투기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그들은 싸움을 위해 고도로 훈련된 상태였다."권투나 UFC 선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모습을 본 목격자들의 표현이다. 유로 2016 개최국 프랑스가 일부 국가 팬들 간 폭력 사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축구 열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지난 12일(한국시간) 마르세유에 위치한 스타드 벨로드롬에서 열린 B조 1라운드에서 잉글랜드와 충돌했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나 승점 1점씩 사이좋게 나눠가졌다.하지만 러시아 팬들은 무승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들은 경기 종료 직전 잉글랜드 서포터스 구역으로 넘어가 주먹을 휘둘렀다. 케빈 마일즈 잉글랜드서포터스연합 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인들은 매우 포악했다. 그들의 폭력은 명백히 계획된 범죄다"고 주장했다.경기장 내 충돌은 빙산의 일각이다. 양국 서포터스는 경기가 열리기 사흘 전부터 마르세유 시내에서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 영국 가디언은 일부 잉글랜드 팬이 러시아 팬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아 중태에 빠졌으며 최소 40여명이 부상 당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검찰이 13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폭력 사태 배후에는 훈련 받은 러시아인 15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상황이 이렇게되자 러시아 극성 팬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전력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러시아 일부 팬들은 지난 유로 2012에서도 인종 차별적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난동을 부려 비난을 받았다. 당시 러시아 축구협회는 벌금 등 중징계를 피하지 못했다.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러시아 축구협회는 유로 2016 대표단에 악명 높은 극우주의자 알렉산더 슈피리긴 러시아서포터스연합 회장을 포함시켰다. 그는 유로 2016에 나서는 프랑스 대표팀 명단을 보며 "흑인이 지나치게 많다. 뭔가 잘못됐다"고 했을 정도로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자다. 축구 인권단체 페어 네트워크의 피아라 파워 전무이사는 14일 가디언을 통해 "슈피리긴은 러시아 관중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다"며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한편 잉글랜드 극성 축구 팬들인 '훌리건'의 잘못을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유럽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2일 "잉글랜드인들은 다시 훌리건이 되려 하는가?"라는 칼럼을 통해 "잉글랜드인들은 다른 민족 및 국가를 경멸하는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며 이번 폭력 사태가 비단 러시아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주장했다.송창우 기자 song.changwoo@joins.com 2016.06.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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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선수단 폭행…마피아 뺨치는 훌리건들

난폭한 축구팬을 훌리건이라고 부른다. 주로 경기가 열리는 날 축구장이나 축구장 인근에서 난동을 부려 경찰과 대치하기도 한다. 영국의 과격한 축구팬들이 훌리건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축구의 탈을 쓴 아르헨티나 폭력 집단 ‘바라 브라바스’에 비하면 훌리건은 애들 장난이다. 세 명의 젊은이가 아르헨티나 축구 클럽 산 로렌소의 비공개 훈련장에 침입했다. 이들은 연패에 빠져 있던 팀 선수들에게 다가가 욕을 퍼부었다. 수비수 조나단 보니텔리와 시비가 붙었고 보니텔리는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결국 법정에 섰다. 피고는 ‘바라 브라바스’의 산 로렌소 지부 회장 크리스티아누 에반겔리스타. 폭력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바라 브라바스는 각 클럽마다 지부를 둘 만큼 조직화 돼있다. 지난 6월 아르헨티나 전통의 명문 리버 플레이트가 2부 리그로 강등됐을 때 벌어진 경기장 폭력도 바라 브라바스가 주동했다. 당시 관중들은 표백제와 쇠방망이 등을 그라운드에 던졌고 거리에선 방화도 일어났다. 경찰은 최루 가스를 뿌려 겨우 진압했다. 바라 브라바스는 티켓 판매권을 취하거나 축구장 안팎에서 불법 약물을 파는 등 이권 사업에도 깊숙이 개입해 있다. 심지어는 선수들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도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적 과정에서 금전적 이익을 얻기도 한다. 2007년 곤살로 이과인이 리버 플레이트에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갈 땐 바라 브라바스 내부에서 갈등이 불거져 총격 사망 사고가 빚어졌다. 아르헨티나에선 1924년 이후 축구 관련 폭력으로 257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상당수가 바라 브라바스와 관련이 있다. 바라 브라바스를 소개한 미국 뉴욕타임스는 27일자(한국시간) 기사에선 이들을 ‘미니 마피아’라고 칭했다. 아르헨티나 젊은이들 사이엔 바라 브라바스를 추종하는 분위기도 있다. 보카 주니어스 같은 명문 클럽의 바라 브라바스 지부 우두머리는 조폭 두목처럼 철없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마치 축구 스타처럼 환호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이들의 사인을 받는 추종세력도 있다. 빈민가 청년들은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한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아르헨티나에선 ‘Let's Save Football'이라는 비정부 단체가 생겼다. 단체의 회장 모니카 니자르도는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가 바라 브라바스의 폭력을 근절하는 데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니자르도는 “축구장은 안전하지않다. 더 이상 가족들이 축구장을 찾지 않는 이유다”라고 꼬집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뛰고 있는 김귀현(21)은 "훌리건들이 조직적으로 다닌다. 경기장 분위기가 살벌해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손애성 기자 iveria@joongang.co.kr 2011.11.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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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새판을 짜자] <1> 헤이젤 비극에서 탄생한 EPL 배워라

한국축구에 승부조작이란 폭우가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땅은 굳는다. 1985년 벨기에 헤이젤 보두앵경기장에서 열린 유러피언컵(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결승전에서 리버풀(잉글랜드)과 유벤투스(이탈리아) 서포터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져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당했다. '헤이젤 참사'로 불리는 이 사고로 훌리건 29명이 구속되고 잉글랜드 팀은 5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당했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 힐스버러경기장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가 벌인 FA컵 준결승전에서 관중 96명이 압사했다. 좁은 경기장에 많은 관중이 몰렸으나 경기운영 관계자들의 대책이 미비했다. 이 사고는 영국 국영방송 BBC로 생중계됐다. 현장을 지켜본 영국 국민들은 경악했다.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기 3년전까지 혼란스러운 잉글랜드 축구계의 모습이다. '축구종가'의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프리미어리그가 탄생했다. 경기장을 신·개축하고 팬서비스를 강화했다. 해외선수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해외자본의 유입에 대한 걸림돌이 사라졌고 구단들이 속속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지금의 프리미어리그는 극도의 위기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K-리그에서도 승부조작을 계기로 새로운 판을 짜야한다. 승부 조작이라는 오명을 훌훌 털고 새출발하기 위해서는 새술을 담을 새 부댓자루가 필요하다. 프로축구연맹이 승부조작 대책을 발표하며 승강제 실시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말 K-리그는 16개 구단이 단일 리그를 벌이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더이상 발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3년부터 승강제 실시라는 목표도 사실 오래된 얘기다. 하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채 답보상태를 거듭했다. 앞으로도 승강제 도입까지 온갖 어려움이 이어질 것이다. 결사 반대하는 집단도 나올 것이다. 승부조작으로 위기에 몰린 K-리그로서는 승강제의 성공적 도입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얽힌 실타래를 풀기 어려울 땐 과감하게 칼로 베어버리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연맹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을 한다는 각오로 승강제 도입에 나서야 한다. 장치혁 기자 &#91;jangta@joongang.co.kr&#93; 2011.07.1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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