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투수 정대현(28.SK)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빛나는 투구로 `역시 국제용`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정대현은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WBC 2라운드 첫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동안 3명의 타자를 맞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당당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7회 2사 1루서 구대성으로부터 마운드를 물려받은 정대현은 첫 투구를 하면서 1루 주자 아메자가의 2루 도루를 허용하며 동점 위기에 몰렸지만 루이스 가르시아를 헛스윙 삼진으로 낚아내 이닝을 마쳤다. 8회 등판해서도 대타 미겔 오헤다와 라몬 카스트로를 연속 삼진으로 잠재웠다.
정대현의 호투는 7회 공격 때 정성훈의 보내기 실패로 멕시코에 넘겨준 경기 흐름을 한국 쪽으로 되돌리는 바탕이 됐고, 한국은 결국 2-1로 승리해 4강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사실 김인식 감독이 최종 엔트리에 정대현를 포함시킬 때 주변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인정하지만 메이저리거들에게도 통할 지에는 물음표를 달았다. 정대현이 11일 샌디에이고와의 연습경기에서 아웃카운트 1개를 잡는 동안 4피안타 4실점할 때만해도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본 대회에 들어서자 뱀처럼 휘어지는 공으로 메이저리그 출신 타자들을 요리한 것이다.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정대현의 공은 중남미 타자들에게 `저승사자`와 다름없다. 정대현은 시드니 올림픽 이후 2002년 쿠바에서 열린 대륙간컵에서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3차례 선발로 나와 그 위용을 뽑낸 바 있다. 예선 첫 경기 파나마전에서 5⅔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곁들이며 4피안타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결선리그에서는 9이닝 동안 4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따냈다. 선발 6이닝 2실점한 쿠바와의 결승전에선 타선의 불발로 아깝게 패전투수(1-2 패)가 됐지만 정대현은 야국 강대국들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WBC에 참가한 메이저리거들도 정대현의 공이 생경하긴 마찬가지였을 듯하다. 결국 김인식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고, 정대현은 한국 팀의 `비밀병기`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