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주가 살해되던 밤. 지성숙과 송태준 사장이 화장실 통로 대기실의 베일 속에서 짙은 애무를 하고 있었다는 이수호의 말은. 그러나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궁금증을 안겨 주었다. 최 사장이 벌컥 화를 냈다.
“너. 그거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지금까지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디서 걸려온 이상한 전화 받고 들어오더니 그 여자가 지성숙이라고?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사실대로 말해 봐.”
최 사장의 말은 오히려 이수호를 의심하는 목소리였다. 그렇다. 이수호 자신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박상덕 감독을 비롯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의혹의 눈길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이수호는 당황했다. 그렇다고 베일 속의 인물들을 목격한 사람이 윤미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윤미리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윤상철 의원은 언론의 가십 기사에 오르내릴 것이다.
‘최효주 살인사건의 최종 목격자. 알고 보니 윤상철 의원의 외동딸’
이런 기사가 인터넷에 뜨면 수많은 댓글이 올라올 것이고. 그 속에는 분명히 윤상철 의원을 공격하는 내용이나 추측. 억측을 넘어서는 괴담 수준의. 정체불명에 가까운 음모성 악의적 댓글도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선거에서 윤상철 의원의 적들에게 엄청난 공격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국회의원이었던 할아버지 때부터 수많은 선거를 치르는 것을 미리는 집안에서 목격하며 자랐기 때문에.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최종 목격자로 나서는 것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수호가. 사실 최종 목격자는 내가 아니라 자신의 여자 친구인 윤미리라고 공개할 수는 없었다.
“사정이 있어서 제가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제발 절 믿어 주세요. 진짜에요. 지금 제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분명히 최효주가 죽기 직전. 화장실 통로 대기실에는 송태준 사장과 지성숙이 있었다고요.”
“그래.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하자. 그러면 지성숙과 송태준 사장이 공모해서 최효주를 죽였다는 거야. 뭐야?”
최 사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최 사장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지금 최 사장이 정리한 말이 사건의 진실에 가장 다가가는 내용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최효주와 연인 관계에 있었고 그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송태준 사장은. 영화 <야인> 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신인 여배우 지성숙을 올리브 엔터테인먼트로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지성숙과 개인적으로 가까워지게 된다. 문제는 송태준 사장과 지성숙의 관계가 단지 육체적 섹스에 그치는 쾌락적 관계가 아니라. 깊은 정신적 교감을 하게 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송태준 사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송태준 사장을 꼭지점으로. 지성숙과 최효주가 서로 사랑의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삼각관계에 있는 세 사람 중. 최효주는 점점 소외되기 시작하고 송태준 사장의 마음은 지성숙 쪽으로 기울게 된다. 만약 최효주가 송태준 사장의 치명적 약점을 무기로 지성숙과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면? 그래서 송태준 사장이 지성숙과 공모해서 최효주를 죽였다면?
그럴듯한 가정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오직 이 가정을 현실로 만드는 것만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생각되었다. 그것 이외에는 해답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계속>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