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선발 투수'가 급히 필요해지는 시기다. 막판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치열하게 다투는 팀들은 선발 로테이션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비상 선발 투수는 '이머전시 스타터(emergency starter)'를 우리 말로 옮긴 것이다.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생겨 그 자리를 급하게 메울 선발 투수를 말한다.
LA 다저스를 예로 들어보자. 신인 선발 투수 채드 빌링슬리의 부상에, 서재응을 내보내고 데려온 장신의 좌완 마크 헨드릭슨의 부진 등으로 최근 선발 로테이션에 2차례나 공백이 생겼다.
'이머전시 스타터'가 필요해진 것이다. 다저스 투수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래디 리틀 감독은 별 걱정을 안해도 될 것 같았다. 아론 실리는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352경기에 선발 출장한 베테랑이고 브렛 톰코 역시 231게임에 선발로 나섰다.
엘머 드센스 역시 135경기에 선발 출장한 경험이 있다. 마크 헨드릭슨도 통산 120경기 선발 출장에 올시즌에도 탬파베이와 LA 다저스를 합쳐 25게임에 선발로 등판했다.
그러나 리틀감독은 이들을 쓰지 않았다. 9일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로 오른 선수는 대만 출신의 좌완 궈홍지였다. 궈홍지는 6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메이저리그 선발 첫승을 거두며 팀에 귀중한 1승을 안겼다. 그리고 15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 선발 등판을 보장받았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투수가 루키 좌완 에릭 스털츠이다. 에릭 스털츠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선발 등판인 11일 뉴욕 메츠전에서 6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해 팀의 9-1 대승을 주도했다.
스털츠의 예상치 못한 역투에 힘입어 LA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최강인 뉴욕 메츠와의 4연전을 2승2패로 마치며 플레이오프에서 붙어도 해볼만하다는 자신감까지 가외 소득으로 얻었다.
물론 궈홍지와 에릭 스털츠가 플레이오프 선발에 포함될 가능성은 없다. 말 그대로 비상 선발 투수였을 뿐이다. 왜 리틀감독은 불확실한 궈홍지와 에릭 스털츠를 '이머전시 스타터'로 선택했을까. 리틀 감독은 '스트레치 아웃(stretch out)'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브랫 톰코 등이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올시즌에는 불펜으로 등판해왔기 때문에 선발 투수에게 필요한 5이닝 이상을 던질 수 있는 어깨 등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트레치 아웃'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반면 궈홍지, 에릭 스털츠 등은 마이너리그에서 계속 선발로 던졌기 때문에 준비가 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비상 선발 투수'는 이름과 경력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프로야구에서도 2군에서 꾸준하게 선발 경험을 쌓은 투수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