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드문 성북동에 올망졸망 모여있는 키작은 밥집들. 북악산을 진동하는 밥냄새가 어찌나 고소한지. 식사 때만 되면 몰려드는 사람들로 기다리는 줄이 문밖까지 이어진다.
삼청터널에서 시작해 성북동을 반으로 가로질러 삼선교에 이르는 성북동길. 구불구불 산 허리를 타고 올라간 이 조용한 길가로 올망졸망 키 작은 밥집들이 줄을 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밥 잘하는 기사식당촌으로만 알려져 있던 이 골목에 몰라보게 많은 음식점들이 새로 문을 열었다.
주변 주택가래야 으리으리한 대저택들과 달동네들만이 극과 극을 이루니 애초에 동네장사로 승부하기는 글렀고. 대중교통이래야 간간히 다니는 두 대의 버스와 15분 거리의 지하철역이 고작. 큰 돈 만지기는 힘들겠다 싶었는데 가만보니 그것도 아니다. 줄줄이 뒤따라오던 차들이 다 식객들이다.
낡고 허름한 식당은 옛말이다. 오픈한지 불과 1~2년이 채 안된 식당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몇 십년을 매스컴에 이름을 올려오던 터줏대감 맛집들 역시 실내를 새롭게 리모델링을 해 한결 깨끗하고 보기 좋아졌다.
성북초교 삼거리의 성북동 돼지갈비집은 맛과 스피드로 35년간 택시기사들의 입맛을 잡아온 성북동 터줏대감이다. 주문하고 3분이면 갓 구운 돼지갈비 백반 한 상이 뚝딱 차려진다.
연탄불에 두 번 구워 한 입 크기로 잘라낸 돼지갈비와 조개젓. 상추쌈. 시원한 조갯국이면 밥 한공기가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돼지갈비. 주물럭 백반이 15년째 단돈 5000원이지만 재료로 원가를 낮추는 얄팍한 상술은 없다.
성북동의 또다른 대명사는 얼굴만한 크기의 왕돈까스다. 5500원짜리 돈가스가 얼마나 푸짐한지 먹성 좋은 장년들도 배를 두둑치고 나간다. 오박사네 돈가스·금왕돈가스·서울 돈가스. 현재 세 집이 용호상박을 이룬다. 맛에도 미묘한 차가 있어 손님들도 늘 가는 집만 골라서 간다는데 금왕돈가스는 고기가 좀더 바삭하고. 오박사네는 부드러운 고기에 진한 소스가 특징이다.
성북동집은 수제 만두·칼국수 전문점이다. 직접 빚어 만든 만두는 속이 꽉 차다 못해 미어터질 듯 하다. 칼국수와 만두사이에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짬짜면 같은 칼만두도 준비돼 있다.
성북동집 바로 옆 커다란 거목 아래 둥지를 튼 선동은 보리밥쌈밥(5000원)으로 유명한 곳. 뜨뜻한 좌식 홀은 맨들맨들 윤이나고 주방 조리대는 그을음 하나 없이 정갈하다.
100% 우리콩으로 쑨 지리산 된장으로 맛을 낸 된장찌개. 직접짜낸 100%들기름. 옹기에 푸짐하게 퍼담은 보리밥과 나물밥상은 배는 부르되 결코 더부룩하지 않다. 믹서기가 아닌 강판에 직접 갈아 만들어 쫀득쫀득한 감자전(6000원)은 집에서 부쳐 먹던 맛 그대로다.
영양돌솥밥에 곁들어나오는 샐러드소스 하나도 과일·요쿠르트·양파 등을 갈아 만든 천연소스다. 주인아주머니의 까칠까칠한 손에서 묻어나오는 손맛. 이쯤되면 밥상이 아니라 약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