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 모란에는 매월 4와 9자가 들어간 날. 민속 5일장이 열린다. 전국에서 몰린 구경꾼들은 장터 구경에 출출해진 뱃속을 어디서 채울까? 저렴한 가격에 입맛까지 만족시키는 안성맞춤 장소를 발견했다.
“장터 구경 온 사람들도 밥시간이면 모다 저 짝으로 가제.”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좌판을 벌인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시장 건너편을 가리킨다. 그네들이 가르켜준 곳을 가려면 건널목이 없는 터라 지하도를 건너 2번 출구를 빠져나와야 한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다닥다닥 붙은 음식점들이 행인들을 반긴다.
대한의 추위가 성큼 다가서기라도 한 듯 찬 기운이 옷깃을 여미는 날이 계속될 때면 따끈한 국물이 절로 생각난다. 이때 시장 사람들이 찾는 주로 찾는 곳이 얼시구다. 이집은 두툼한 무쇠냄비가 넘치도록 수북하게 담아내는 감자탕으로 유명하다.
부드러운 살이 속속 박힌 돼지뼈를 손에 쥐고 뜯는 사람들은 감자탕 맛에 빠져들어 체면은 옷깃 사이에 숨겨 놓고 양손으로 뜯어 먹느라 분주하다. 국물에 은은하게 퍼진 깻잎 향이 입안을 깔끔하게 해주고 흐물흐물해진 우거지는 감칠맛을 더하는 맛. 들깨가루를 넣어 걸쭉한 국물은 밥을 비벼 먹기에 좋은데 잘 익은 깍두기를 얹어 먹으면 감동 그 자체다.
장을 파하고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싶은 시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곱창박사와 종로빈대떡이다. “오늘은 장날이라 점심때부터 정신이 없네요.” 곱창박사의 젊은 주인장은 주변에 사무실이 없어 평소에는 휑하다가 장이 서는 날이면 밤새도록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좋다며. 연방 싱글벙글이다.
곱창박사는 돼지곱창이 으뜸이다. 모란시장 사람들에게 최고의 술안주로 여겨진다. 소주의 독한 내음을 갈무리해주는 곱창의 고소한 맛이 그네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특히 곱창양념볶음은 매콤한 고추장 소스와 깻잎·당면·양배추 등 재료가 듬뿍 들어가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단골 고객이 아닐까 했더니. 의외로 20~30대의 젊은 손님이 반 이상이란다. 아마도 곱창 누린내가 적고 맛이 깔끔하기 때문일게다.
나이 지긋한 주당들은 종로빈대떡으로 몰려든다. 이곳에서는 녹두를 직접 맷돌로 곱게 갈아 반죽으로 사용하는데 고소함이 남다르다. 널찍한 철판 위에 두툼하게 반죽을 쏟아 붓고 앞면이 노릇노릇해질쯤 노련한 동작으로 뒤집어준다. 바삭바삭 소리가 날 정도로 구워지면 고추와 양파를 썰어 넣은 간장소스와 함께 내온다. 여기에 달착지근한 이동 동동주 한 사발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마다 한 봉지씩 사들고 가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만두였다. 입구쪽에 위치한 불티나만두에서 산 것이다. 골목을 들어오면서 놓쳐 버린 이집을 정말 우연으로 발견한 셈. 찜기에는 복스럽게 빚은 만두가 익고 있었다. 고기와 야채가 가득 들어있는 만두 속을 보는 순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입안 가득한 부드러움과 고소함. 특히 얼리지 않은 생고기를 사용한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리 집에는 만두 찌는 통에 천을 쓰지 않아요.” 천은 만두피가 통에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데 문제는 그 천을 소독하는 일이 쉽지 않고. 잘못하면 오히려 비위생적일 수 있기 때문에 대신 대나무발을 깐다.
대나무의 은은함이 만두에 배어 만두피의 밀가루 냄새를 깔끔하게 없애준다. 일거양득인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만두로 만든 뜨끈한 만둣국은 전날 과음을 한 주당들이 꼭 들러 먹고 가는 메뉴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