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술(밀레 해피트레킹 리더·49)씨가 요즘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단다. “이것도 못 올라오냐. 빨리 와”라는 소리가 싫단다. 산이란 꼭 정상을 올라서야지만. 최대한 빨리 오르내려야지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면 쉬었다 가고. 노래도 부르고. 조망도 하고. 사색도 하고…. 편안하고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그의 산행은 등반(클라이밍)이 아니라 트레킹(원래 소달구지를 타고 먼 길을 여행한다는 뜻. 등산에서는 전문적 등산 기술이나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산악 답사 여행을 말함)이다.
그가 말하는 산행이 주는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해피트레킹의 ‘칠갑산(충북 청양·561m) 아름다운 산길 걷기’를 함께했다.
■길이 보이는 산이 좋다
40여 명이 함께한 산행. 칠갑산에 도착하기까지 버스 안에서는 간략한 산행 강좌가 있었다. ‘겨울보다 위험한 초봄 산행’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초봄은 겨울에 준해서 복장을 갖추세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산에 가 보면 가장 기초적인 배낭 매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트레킹이 고행이 되지 않으려면 기본적 지식은 갖춰야 합니다.” 그와 함께하는 산행은 시어머니와 같이하는 듯하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배낭을 고쳐 매 주고 스틱 잡는 법. 경사를 오르고 내려가는 법 등을 일일이 가르쳐 준다. 선두에서 후미까지 왔다 갔다 한 명도 빠짐이 없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달했다.
“저쪽을 한번 보세요.” 돌아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지나온 길이 보이고. 가야 할 길이 보이는 산이 좋아요.” 그가 산의 매력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오른 소백산. 봄의 신록 사이로 펼쳐진 능선이 너무 아름다웠다. 덕유산·지리산·설악산 공룡능선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산에 점차 빠져들면서 1994년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그리고 95년에 스키숍을 차렸다. 겨울에 돈을 벌어 봄부터 가을까지 여행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트레킹 전도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갖춘 셈이다.
■산은 그리움이 숨쉬는 곳
“산이 주는 그 자체의 매력도 좋지만 그리움이 있으면 더 좋죠.” 그리움은 그때 그 시절 함께 오른 사람으로 향하기도 하고. 꽃이나 새·나무로 향하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은 도봉산과 북한산. 대학 시절 자신을 따르던 후배와 사귀다가 헤어지게 됐다. 그리고 서로 약속한 것이 같은 산에 오르지 말자는 것. 그래서 3년간 자신은 북한산. 후배는 도봉산에만 올랐다.
“그땐 한 번에 2개 산을 오른 셈이죠. 몸은 북한산. 마음은 도봉산을 오르고 있었으니까요.”
칠갑산 정상에서 잠깐 회상에 잠겼다가 장곡사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길 중간에 그가 배낭에서 악기 하나를 꺼냈다. 우쿨렐레라고 하는 하와이 민속 악기. 작은 기타 모양으로 생겼다. 하모니카를 물고 연주를 시작했다. 즉석 산속 음악회. 흘러간 옛 노래에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모두 멈춰 섰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주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엔 검은색 교복의 땋은 머리와 까까머리 차림의 고등학생으로 가득했다. 추억에 잠겨 함께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보냈다.
“가이드란 단순히 길을 가르쳐 주는 내비게이션이 아니죠. 감동과 재미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이런 생각이 한 번 산을 찾은 사람들을 또다시 산으로 부르는 힘이 되는 듯하다.
■백두산의 매력에 빠지다
트레킹 재미에 빠져 있던 97년 야생화가 너무 예쁘다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여 백두산을 찾았다. 당시까지 백두산은 장백폭포 쪽의 북쪽을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그는 약초 캐는 사람이 오르던 서쪽 능선을 따라 올랐다. 만병초·두메양귀비·복주머니란 등 180여 종의 야생화가 가득 펼쳐져 있는 초원에 마음을 빼앗겼다. 천국에 온 듯 착각이 일 정도였다. 10시간 이상 걸어야 하지만 왼쪽으론 형형색색 야생화가 가득하고 오른쪽으론 천지가 장관을 이뤘다.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네팔 안나푸르나. 캐나다 빅토리아섬. 뉴질랜드 밀퍼드를 꼽죠. 백두산 서쪽 능선 길을 걸으면 이 코스들이 부럽지 않아요.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어요. 탄성을 넘어 탄식을 하게 되죠.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자신이 개발한 백두산 서파 코스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백두산 전문 여행사인 ‘백두산닷컴’(go2744.com)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으로 매년 1000명이 넘는 한국인이 백두산 서쪽 능선 길을 찾는다. 매년 6월이 되면 백두산을 향한 그의 마음은 진정할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린다.
“제 꿈은 ‘산행 가이드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거예요. 산행 기본교육은 물론 재미와 감동을 선물할 수 있어야 가이드라고 할 수 있겠죠. 함께 올랐던 산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이름만 들을 때라도 그리운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어요.”
■윤치술씨는?
고어텍스 아웃도어클럽장 지냄. 현재 밀레 해피트레킹 리더 활동. 90년대부터 신문과 잡지 등에 산행 가이드 관련 글과 칼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