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랑 이야기다. 시대·장소 등 약간의 변주는 있지만 큰 틀은 두 남녀가 지지고 볶는 사랑타령이다.
그런데 한국 뮤지컬시장의 성장과 함께 다양한 소재의 뮤지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 공연되고 있는 ‘빙고’(어천가인 제작)와 ‘스펠링비’(오디뮤지컬 컴퍼니·CJ엔터테인먼트 제작)는 게임과 영어 철자 맞추기 퀴즈 대회를 소재로 한 독특한 작품이다. 게임이나 퀴즈 대회를 어떻게 뮤지컬로 만들 수 있을까? 무슨 재미로 그런 뮤지컬을 볼까?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빙고’와 ‘스펠링비’의 무대를 찾아봤다.
■빙고: 돈이 먼저냐. 우정이 먼저냐 7080세대라면 1970~1980년대에 한창 유행하던 빙고 게임을 기억할 것이다. 단 한 숫자를 남겨 놓았을 때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 마침내 기다리던 숫자가 나왔을 때 환희에 찬 ‘빙고’의 외침…. 서울 청량리 등지 가판 무대에서 운영되던 야바위 빙고판부터 급우들끼리 코 묻은 돈을 걸고 심심풀이로 즐기던 빙고카드까지 추억이 방울방울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역시 빙고의 원조는 미국이다. 웬만한 클럽이나 레크리에이션센터에 빠지지 않고 감초처럼 끼어 있다.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빙고의 추억은 우리네 달고나처럼 각별하다.
빙고는 ‘라이온킹’ 제작자와 ‘맘마미아’의 음악 감독이 손을 잡고 만든 브로드웨이판 뮤지컬이다. 일상적이지만 아무도 생각 못한 소재에 찬사가 쏟아졌다. 스토리 라인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숨겨진 복선. 음악 등을 심각하게 따져 가며 보는 사람은 바보다. 사회자가 이끄는 대로 완전히 무장 해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빙고 게임을 하듯 즐기면 된다. 물론 약간의 긴장도 필요하다. 너무 방심하고 있다가는 아차하는 순간에 빙고 상품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깜찍한 미모의 탤런트 홍수현이 수수께끼의 소녀 앨리슨으로 출연하여 숨겨 뒀던 춤과 노래 실력을 자랑한다. 홍보를 맡은 문화아이콘의 이상훈씨는 “뮤지컬도 즐기고 빙고 상품도 타며 단합과 화목을 다지는 직장·가족 단체 관객이 많다”라고 귀띔한다. 올 송년회는 흥청망청 술판보다는 빙고를 즐기며 이색적으로 치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트홀. 오는 12월 31일까지. 02-762-0810.
■스펠링비: 인생이란 단어의 철자는? 우리에겐 약간 생소한 단어인 스펠링 맞히기 대회를 소재로 했다. 미국인들에겐 한국의 ‘장학퀴즈’나 ‘골든벨’처럼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린 대회다. 1925년에 시작.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1945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린다. 지역 예선을 거쳐 최종 결승 우승자는 엄청난 상금과 함께 백악관에 초청된다. 사전을 통째로 씹어 삼키며 공부했다는 전설의 5060세대들이라면 우리나라엔 왜 이런 대회가 없었나 통탄할지도 모르겠다.
따끈따끈한 2005년 브로드웨이 초연작으로 토니상 극본상을 수상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우승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개성 만점의 여섯 어린이가 대회를 통하여 삶에 대하여 알아 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드라마다. 노래와 춤으로 철자를 알아맞히는 모습을 표현하는데 생뚱 발랄하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부끄럼 많은 소녀 관객은 얼굴이 빨개질 수도 있는 조숙한 어린이도 등장하니 조심해야 한다. 방심하다간 기습 포옹당할 수 있다.
일체감을 살리기 위해 관객이 배우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전에 스펠링 비 공식 카페(cafe.daum.net/spellingbee)에 신청하면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어색하게 연기하거나 기본 단어의 철자도 모르면 야유받을 수 있으니 영어 공부하고 나가라. 인상적 뮤지컬 넘버는 없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피아노 반주에 귀를 기울이면 그 서운함을 두 배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각 어린이의 테마곡과 상황에 맞게 딱딱 떨어지는 멜로디가 귀에 착착 붙는다.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의 연출 데뷔작이다. “초보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를 매끄럽게 소화해 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내년 3월 9일까지. 02-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