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한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독극물에 오염된 한강으로 인해 괴물이 탄생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런데 만약 오염된 한강이 깨끗이 정수됐다면 어쨌을까?
이런 상상을 품게 된 것은 지난 13일 강동대교 일대에서 벌어진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1113공병단의 훈련을 지켜보면서다. 이날 한강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물 마셔도 돼요
"마셔 보세요."
진동원 중령이 물이 가득 담긴 컵을 건넸다. 한강물을 끌어올려 정수 장비(KRO-1500GPH)를 통해 정수된 물이 콸콸 쏟아지는 물탱크에서 받은 물이다. 한강물이 5분 만에 바로 먹을 수 있는 물로 변한 것이다. 그것도 시간당 5700ℓ로.
컵을 받은 기자는 조금 주저했다. '정말 먹어도 될까?'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진 중령이 먼저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고 다시 컵을 건넸다. 한 모금 살짝. 무색·무취·무미다. 안심이 된다. 한 컵의 물을 다 비웠다.
옆에서 지켜보던 급수병 김기현 병장이 "저도 처음엔 께름칙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깨끗한 물을 자신합니다"라며 안심시킨다. 실제로 한강물은 탁도의 음용 허용 기준인 2NTU(탁도 단위)를 넘어 7.2NTU였지만 정수된 물은 0.1NTU에 불과했다. 또 용존 물질(허용 기준 500TDS)은 29TDS에서 1TDS로 낮아졌다.
이번 전술 훈련은 정수장 시설 피해로 상수 공급이 중단됐을 때 야전 급수장을 운용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위장된 정수 차량을 8명의 병사들이 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 정수 차량에 실린 정수 장비는 역삼투압 방식으로 해수와 화생방 오염수까지도 정수가 가능하다. 가격은 4억 3000만원.
정수 장비 1대는 시간당 5700ℓ로 하루에 10시간 운용이 가능하다. 전시 때 장병 1인당 필요한 물은 12ℓ라고 하니 정수 장비가 얼마나 많은 장병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느낌이 새록새록 든다.
■이 다리 건너도 되요
"깡~ 깡~."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온다. 한쪽에선 "하나 둘 셋 넷" 구호소리가 들린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1113공병단의 장간 조립교 구축 훈련장의 모습은 건설 현장을 방불케 한다. 뚝딱뚝딱 다리 하나가 금세 만들어지니 마술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21시간 만에 60m에 이르는 조립교가 생겨났다.
이 조립교를 만들기 위해 107명의 중대원과 유압 크레인 2대가 동원됐다. 교량의 상판 조직을 지지하고 거더(대들보)의 간격을 유지하는 횡골은 278㎏이나 나간다.
중대원 6~8명이 2인 1조로 집게를 들고서 "하나 둘 셋 넷" 구호를 외치며 한몸 같이 움직여야 횡골을 이동시킬 수 있다. 병사들의 팔뚝엔 굵은 힘줄이 솟아난다. 260㎏의 장간(교량의 기본 부재)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지면 다리에 매달려 있던 장병들이 위치를 조정한 후 곧바로 조립에 들어간다.
겉보기엔 뼈대만 앙상한 다리. 하지만 50t 이상의 하중을 견딘다. 대한민국의 주력 전차인 K-1전차(전투 중량 약 51.1t)도 거뜬히 다리를 건널 수 있다. 김두연 상병은 "횡골을 옮기고 조립하는 게 힘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리가 완성됐을 때 뿌듯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라며 자랑스러운 눈초리로 다리를 바라본다.
조립교는 다리 일부가 피해를 입었을 때 빠른 시간 안에 복구를 가능토록 한다. 그밖에 실제로 2002년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었던 마을의 무너진 다리를 대신하는 등 수해 복구 때도 큰 도움을 줬다. 장병들의 마음과 손발이 척척 들어맞듯 착착 조립된 다리는 군과 민을 잇는 다리이기도 한 셈이다.
■수도방위사령부 1113공병단은?
초석부대(수도방위사령부 제1113공병단)는 1948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당시)에서 공병 부대 중 최초인 제1공병단으로 창설됐다. 한국전쟁 때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움으로써 전투 공병이 무엇인가를 보여 줬고, 현재는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부대로서 수도 서울의 방패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공병의 모체 부대이다.
경부고속도로, 울진~현동간 국도, 자유로 공사, 주요 기간 시설물 건축 등 국가 시책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을뿐더러 소말리아·앙골라·동티모르·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지에서 헌신적 파병 활동을 펼쳐 국가의 위상을 드높여 왔다. 뿐만 아니라 가뭄 및 수해 복구, 환경 정화 활동, 불우 시설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음은 물론 서울 에어쇼, 국군의 날 행사 등 대규모 행사 지원에도 앞장섰다.
글=이방현 기자 [ataraxia@ilgan.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e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