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야구를 완전히 떠난 그는 사회 적응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신림동 고시촌 부근에서 PC방도 해봤고 2002년에는 일산 탄현 부근에 친구와 함께 대형 헬스클럽도 운영했다. 누나가 하는 분식집에서 주방일을 보기도 했다. 와중에 친구에게 서준 빚보증이 잘못돼 큰 경제적인 손실도 입었다.
2002년 그는 처형의 도움으로 심리치료사의 상담을 받는다. LG 코치 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에 적응하면서 소심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 항상 걸림돌이 됐다.
거의 폐인이나 다름없던 그를 처형이 보다 못해 심리상담사 앞으로 끌고 갔다. 2년 가까운 치료 후 그는 이전보다 확실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터득했다.
김건우의 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야구 심리상담의 1인자가 돼 꿈나무 야구선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어렸을 적 미묘한 심리(멘털)나 두려움 때문에 발전을 못하는 중고생 야구 선수들을 누구보다 잘 이끌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시켜줄 자신이 있다.
자신에게 몇 번 좌절을 안겨준 사고와 부상을 이겨내면서 그는 재활과 심리상담에는 일가를 이뤘다. 가칭 '김건우 야구심리연구소'가 할 일이다.
둘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야구장이다. 사회인 야구 선수와 가족들이 야구를 하고 야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 인근에 부지도 물색했고 후원자와도 얘기가 많이 진척됐다. 행정적인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김건우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운의 사고를 원망하고 아쉬움도 많이 가졌지만 이젠 편안해졌다"며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야구 발전에 묵묵히 밀알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