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서부영화에서는 말이 총 맞은 사람이나 술에 만취한 주인을 등에 태우고 자기 집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에는 양반들이 말을 타고 술집에 많이 다녔다. 음주단속에 걸릴 일도 없으며 아무리 고주망태가 되어도 말 등에만 올라앉으면 말이 알아서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자주 만나던 천관녀와 사랑에 빠졌으나 더 이상의 만남을 자제하기 위해 일부러 그녀의 집을 멀리 했는데, 술 취한 자신을 태우고 말이 평소의 습관대로 그녀의 집에 온 것을 알고 단칼에 자신의 애마를 죽였다는 전설도 있다. 장군이 술을 먹으면 자주 가던 습관이 말에게도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유신은 자신의 집보다 천관녀의 집을 더 많이 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거 제주도의 조랑말들은 봄이 되면 한라산 기슭에 내몰아 방목시키는데 여름 내내 풀을 뜯으며 야생생활을 하다 가을이 되면 망아지까지 데리고 집을 찾아 왔다고 한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자신의 집을 잊지 않은 것이다.
영국의 한 동물심리학자의 실험에 의하면 말을 창문이 폐쇄된 차에 싣고 20km 떨어진 곳에 가서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풀어주었더니 차를타고 온 도로와는 관계없이 논밭을 가로질러 자기 마구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미국 버지니아에서는 매년 야생에서 포획한 말들을 경매에 붙이는 행사가 있었다. 여기에서 판매되지 않은 말들은 다시 놓아 주는데 이 말들은 아주 먼 거리를 여행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경주마 생산자 훼데리코 테시오(Federico Tesio)는 40여 두의 말을 끌고 남미의 대초원을 기마여행 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 때 말의 방향감이 뛰어난 것을 느끼고 말은 오감 외에 별도로 제6의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말은 어떻게 자신의 집을 잘 찾아 가는 걸까? 거리가 가까운 경우에는 사람과 같이 공간적 기억력을 동원해 찾아 갈 수도 있고, 장소에 따라 다른 냄새나 색상 또는 명암 등의 기억 정보를 조합해서 자기에게 익숙한 장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은 어느 정도의 판단력과 기억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말의 뇌 중량은 약 630g으로 지능이 사람에 비해서는 아주 보잘 것 없고, 원숭이 또는 개보다도 못할것 같다. 그런데 말의 일상생활에서 보면 사료통의 위치, 놀라거나 두려웠던 상황 또는 장소에 대한 기억력은 대단하다.
특히 공간 지각능력이 탁월하여 마구간 주변에 새롭게 설치된 물체에 대한 인지능력과 경계심이 많다. 그러나 전혀 경험하지 않아 기억에 없는 낯설은 곳에 데려다 놓아도 집을 잘 찾아오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특별한 감지능력이 작동하는 것이 분명하다. 철새들 또는 연어나 송어의 회귀능력도 대단하다. 나선운동효과, 태양컴퍼스원리 또는 대뇌마루엽에 있는 특수신경세포의 기능 등이 이런 능력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이론들로 제시되고 있다.
그 외에도 아직 입증된 바는 없지만 귀소성 있는 새들에 대한 연구결과 새들은 지구의 자기장 변화를 감지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말도 지구상 지역에 따라 고유하게 분포하는 자기장을 감지하고 구별하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현상으로 지진이 잦은 캘리포니아지역으로 처음 이사 온 말은 한동안 자기 마구간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말들이 이 지역에 처음 도착하면 미세하지만 자주 발생하는 지진에 의해 매우 당황스러워 한다.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자기장이 변화하기 때문에 처음 이것을 접하는말들은 매우 불안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구 자기장이 말의 집 찾기와 연관이 있다는 의견을 설득력 있게 한다.
글 김병선 수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