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게 주례나 작명, 결혼식 날짜 등을 잡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주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흔쾌히 응해왔다. 그러나 지난 10월 2일 내가 손수 택일한 결혼식만큼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날짜가 아닌 날씨 때문이었다.
"저희 딸 결혼식 날짜 좀 부탁드릴게요." 딸의 결혼식 날짜를 잡기 위해 한 보살님이 찾아왔다. 그 분은 나뿐 아니라 후암 식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약사였다. 그분의 딸도 몇 년 전부터 후암에 나와 이런저런 일을 돕고 있어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10월 2일이 어떻겠습니까?"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른 날짜였다. 길일 중 길일이라 나는 자신 있게 권했다. 문제는 너무 일찍 택일한 것이었다. 3개월 전에 택일한 10월 2일에 하필 비가 온다는 게 아닌가.
게다가 신랑신부가 모두 야외결혼식을 원해 이미 식장을 야외로 정한 상태였다. 신랑이 경찰 대학교 출신인 관계로 결혼식은 충남 아산에 있는 경찰교육원 대운동장에서 올릴 예정이었다. 경찰교육원 개원 이래 최초의 야외결혼식이었다.
"법사님, 비 좀 안 오게 해주세요." 신부는 비가 온다는 기상청 예보에 잔뜩 울상인 얼굴로 내게 사정했다. 10월 2일로 택일한 책임 때문에 이제는 날씨까지 바꿔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랑 신부 뿐 아니라 결혼식 준비팀도 패닉상태였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결혼식에 참석한 많은 하객 여러분 앞에서 단언했다. "절대 비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식이 끝나고 한 두 시간 지나기 전까진 제가 책임지고 비가 안 오게 하겠습니다." 내 말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약속이었다. 하늘에게 비오는 시간을 늦춰달라고 사정한 셈이었다.
4년 전 백두산 천지에 일행과 함께 오르던 날, 그 전날까지 천둥 번개에 우박까지 내리던 천지는 우리가 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자태를 한껏 드러냈었다. 일본 삿포로 아사히야마 음악제에서도 그랬다. 150여명의 일행 합창단으로 등장했던 마지막 무대에서 그 전까지 내리던 폭우는 거짓말처럼 그치고 아름다운 불꽃놀이와 함께 '고향의 봄' 합창이 대미를 장식했었다.
이번 결혼식에도 믿음이 필요했다. 비록 비는 온다고 했지만 내가 택일한 날만큼은 비도 피해가길 바랬다. 그런 믿음이 기적을 일군 것일까. 결혼식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는 야외결혼식에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날씨로 변해있었다.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결혼식의 주례는 주례사에서 "차길진 법사님께서 말하길 ‘식이 끝나고 한두 시간이 지나기 전까진 비가 안 오게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는데, 오늘 그 말이 맞는지 하객 여러분께서는 잘 지켜보시라"며 모두를 웃게 했는데.
비는 내가 말한 대로 야외예식이 모두 끝난 뒤 약 1-2시간 후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자 결혼식에 참석했던 하객과 경찰관계자 모두 놀라워했다.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혼식 내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서울로 올라가는 길.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나를 굳게 믿어주신 하객들에게 내심 감사했다. 만약 그 마음들이 없었다면 결혼식 도중에 하늘에서 비가 내렸을지도 모르는 일. 날씨를 알아맞혔다는 사실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었음에 더욱 뿌듯한 하루였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