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희순(41)이 팬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영화는 아마도 '세븐 데이즈'(07)였을 것이다. 자신의 딸을 유괴당한 여변호사 김윤진을 돕는 강력계 형사로 나와 굵은 목소리에 걸맞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그의 깊고 울리는 목소리에선 신뢰와 무게감이 절로 느껴졌다.
이후 그는 '작전'(09) '10억'(09) '맨발의 꿈'(10) 등에서 역시 강렬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소화했다. 주식 작전 세력을 조종하는 조폭, 아내의 복수를 위해 모든 걸 건 방송 PD, 그리고 동티모르의 '히딩크'로 불린 김원광 축구감독까지… 이번 '혈투'(박훈정 감독)에서도 역할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조선조 광해군 11년을 배경으로 청나라와의 전쟁 중에 만주벌판에 고립된 3명 병사들의 생존 대립을 그리는 영화에서 중심인물인 조선 군장 헌명을 맡았다.
그는 또다른 영화 '의뢰인'과 '가비'에서도 각각 검사와 고종황제로 카리스마를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를 도맡고 있다.
-박희순하면 굵은 목욕탕 목소리가 떠오른다."내 목소리가 이렇게 장점이 될 줄 몰랐다. 20대 초반에 이런 목소리였다고 생각해보시라. 낮고 허스키해서 늘 콤플렉스였다. 맑게 탁 트인 목소리가 부러웠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목소리도 알맞게 된 듯하다."
-목소리 관련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다."한번은 친한 친구가 자기 아들이 내 목소리를 꼭 듣고 싶어한다며 전화를 바꿔주더라. '여보세요' 했더니 금방 나를 알아보고 좋아하더라. 내가 생각해도 웃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목소리 때문에 너무 센 역할만 하는 것 아닌가."그럴지도… 하지만 그보단 오지 전문배우였던 것 같다.(웃음) 동티모르, 호주 사막 등지에서 헤맸으니까. 앞으론 멜로물도 한번 해보고 싶다."(웃음)
-이번에도 목소리에 힘좀 줬겠다."한정된 공간에서 세 남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이라 긴장감이 컸다. 액션신이 많아서 목소리보다는 배우간의 호흡이나 심리적인 갈등에 중점을 뒀던 것 같다."
-위험했겠다."일명 '도그 파이트'라고 좀 힘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가벼운 타박상 정도? 대신 뽀얗게 내린 눈을 배경으로 세 명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특히 힘들었다."
-왜."실제 눈 대신 흰소금과 하얀 모래를 뿌려서 했는데 평소보다 2~3배 힘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소금이 녹으니까 그게 눈과 몸에 닿아서 따갑고 상처가 나더라. 완전히 소금에 절인 김장배추가 된 느낌이었다."
-적령기를 넘겨서도 아직 미혼인데."어차피 늦은 거 이젠 서두를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때가 되면 하지 않겠나. 요즘 들어 아이들은 너무 귀여워하게 됐다. '맨발의 꿈' 때는 동티모르의 아역 여자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촬영 내내 거의 얼굴을 물고 빨고 지냈다. 그 친구 머리에 이도 있던데 문제될 게 없었다."(웃음)
-수애랑 친분이 많다고 해서 의외였다."영화 '가족'을 같이 찍었다. 그 이후로 가끔씩 만나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매우 좋은 친구다. 엄태웅 등 다른 출연자들과 같이 친목도모 모임을 하는 거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븐 데이즈'의 김윤진씨와도 가끔 연락한다."
-그밖의 동료관계는."서울예대 88학번 동기들과 친하게 지낸다. 홍록기·이병진 등 주로 개그맨이 많다."
-이번에 같이 출연한 고창석과도 동문 아닌가."맞다. 나이는 동갑인데 내가 빠른 70년생이라 88학번이고 창석씨는 나이보다 좀 뒤늦게 들어왔다. 후배지만 말을 놓기가 부담스러워서 지금도 그냥 창석씨라고 부른다."(웃음)
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