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에서 이름과 명성을 떨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명인(名人)'이라고 한다. 명인들의 특징이 있다면 굳이 사인이나 낙관을 찍지 않아도 한 눈에 자신의 작품을 알아본다. 비단 예술작품 뿐 아니라 의학·공학·문학 등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
얼마 전 일이다. 척추디스크가 심해져 병원에 갔다. 담당의는 척추디스크로는 명의로 소문난 의사. 그는 내 수술부위를 살피더니 단번에 "A의사에게 수술을 받으셨었네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다보면 그 정도는 다 압니다"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환자들을 명의를 쫓아다니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보니 그 분야에서 유명하다는 의사들 솜씨는 꿰맨 자국만 봐도 알아맞힌다고.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경상도 진주에서 온 B씨는 오빠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법사님, 제가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오빠를 죽게 만들었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B씨는 중환자인 오빠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마침내 서울에 있는 큰 대학병원으로 오빠를 옮길 수 있게 됐다. 진주에서 서울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더군다나 오빠가 중환인 상태에서 이송중 병세가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B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오빠를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가 동원됐다. 모두 오빠를 살릴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이송 당일 구급차는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차에 타고 있던 오빠는 물론이고 간호사·조카까지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제가 죽인 겁니다. 오빠를 서울로 옮기지만 않았어도 사고를 당하진 않았을거에요."
그때 구명시식에 나타났던 간호사·조카 영가를 잊을 수 없다. 젊은 나이에 꿈도 이루지 못하고 요절했으니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 그런데 얼마 전 대학로 법당에 구급차에서 환자를 이송하다 죽은 언니를 위해 구명시식을 올리고 싶다면서 찾아온 분이 있었다.
나는 단번에 과거 구명시식을 올려줬던 간호사 영가가 떠올랐다. "혹시 돌아가신 분 성함이 OOO씨 아닙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깜짝 놀라면서 "우리 언니를 어떻게 아세요?" 물론 그들은 이미 내가 언니의 구명시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구명시식에서 만난 간호사 영가는 구면이었다. 사고 당시 입었던 간호사복을 그대로 입고 나타난 그녀는 죽은 뒤에도 직업정신이 투철했다. 사고로 죽은 것은 억울하지만 환자를 간호하다 목숨을 잃었기에 간호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 후암선원에는 내가 중신해준 커플들의 2세 소식이 분주하다. 임신과 출산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보니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나는 간호사 영가에게도 좋은 짝을 찾아줄 생각이다. 비록 영계에서 2세는 낳을 수 없지만 환생해 다시금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멋진 총각영가와 소박한 영혼결혼식을 올려드리고 싶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