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골프의 세계화를 더 없이 잘 보여준 장이었다.” 플로리다 지역신문 ‘팜비치 포스트’는 16일 최경주(41), 그리고 그를 나흘 동안 따라다니며 응원한 ‘초이스 보이스(Choi’s Bois)’를 두고 이렇게 전했다.
최경주가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에서 열린 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연장 접전 끝에 데이비드 탐스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을 때, 그 누구보다 그의 우승을 기뻐했던 팬들이 있었다. 바로 최경주 비공식 팬클럽인 초이스 보이스다.
초이스 보이스는 말 그대로 ‘최경주를 응원하는 남자들’이라는 뜻. 프레드 펑크 팬 클럽인 ‘Funk’s Punks’에서 이름을 따왔다.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석유회사 부사장을 지내고 있는 바비 페이지 씨를 비롯해 그의 아들 보 페이지(30)와 브래드 페이지(27), 알렉스 커클랜드(30), 커티스 그리블(27), 데이비드 클레이튼(30)이 멤버들이다.
이들은 대단한 골프광이다. 만나면 골프를 치거나 골프 경기를 시청하고, 대화 화제도 항상 골프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최경주 팬클럽을 만들었을까? 바비 페이지 씨는 2005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최경주를 보고 그에게 매료됐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PGA 선수들의 플레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대다수가 보기를 범하는 등 실수를 하면 영락없이 욕설을 퍼붓고 화를 냈다. 그러다 최경주를 보게됐다. 그는 버디를 잡든, 더블보기를 하든, 갤러리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 같았다. 보기를 해도 누군가 박수를 보내면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 어떤 골퍼도 그렇게까지 팬들을 챙기지는 않는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고 우리 멤버들이 다 그렇게 느꼈다. 친구같은 이미지가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올해는 초이스 보이스가 본격적인 응원전에 나섰다. ‘초이스 보이스(CHOI'S BOIS)’라고 글자가 박힌 검정색 T셔츠를 입고 나흘 내내 그를 응원했다. 최경주도 이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서인지, 연장 접전 끝에 데이비드 탐스를 누르고 우승을 거머쥐는 감격을 누렸다. 최경주 매니저 임만성 씨는 “그들의 응원이 최프로에게 경기 중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임 매니저는 “연습라운드 도중 응원단을 발견한 최 프로가 저 사람들이 누구냐,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바비 페이지 씨는 “첫날부터 계속 같은 T셔츠를 입고 응원해 기분이 조금 찝찝했지만 그래도 그가 우승해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클레이튼 씨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최경주가 잇달아 짧은 퍼팅을 놓쳐 좀 불안했는데, 혹시나 17번홀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게 아닐까 했다. 최고의 샷이었다. 그가 우승해 최고의 골프여행이 됐다”고 말했다.
최경주 역시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 앞에서 우승을 거머쥐어 더욱 뜻깊은 우승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그들의 응원과 사랑이 큰 힘이 됐다. 그 먼 테네시주에서 오로지 나를 보기 위해 왔는데, 어떻게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그들과 어떤 친분도 없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우승 시상식장에도 이들을 초대해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골프채널의 제이슨 소벨 기자는 이 장면을 보고 “그동안에는 팬이 먼저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게 관례였지만 최경주가 이를 깼다. 그는 나이스 가이이기 때문”이라고 우스꽝스럽게 전했다. 페이지 씨는 “우리도 이번에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그런 것들 아닌가?”라며 웃었다.
오는 19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SK텔레콤대회에 출전하는 최경주는 “한국에서도 ‘초이스 보이스’ T셔츠가 왠지 히트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로스앤젤레스=원용석 중앙일보USA 기자 [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