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악역 캐릭터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잘 다듬어진 악역이 주인공 캐릭터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때재미와 몰입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특히 최근 공중파 드라마 속에 유독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는 '악녀' 캐릭터가 많아 눈길을 끈다. 이들은 사랑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걸고 중상모략을 일삼거나 거침없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해 '비난지수'를 높인다. 비난지수가 높아짐과 동시에 시청률도 동반상승하기 마련. 온 몸으로 욕 먹는 수난 속에서도 멋지게 포지션을 지키고 있는 드라마 속 악녀 중 '베스트'는 과연 누굴까.
1위 이유리 MBC '반짝반짝 빛나는' 키워준 부모를 버리는 '패륜아 기질'과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남자를 가지고자 그의 어머니를 집중공략하며 '미저리 정신'까지 발휘하는 막강캐릭터. 김현주를 향한 '폭풍질투'도 그칠 줄 모른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면서 극중 외모까지 변하고 있다. 지난 19일 방송에서 김현주와 '맞따귀질'을 하다가 "네 인생 철저하게 부셔버릴 거다"라며 노려볼 때는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나올 것처럼 무서웠다는 평가. 눈꼬리를 강조한 화장도 갈수록 못되게 변해가는 캐릭터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사실 악행의 수위만 보면 도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말을 듣기 십상. 그럼에도 별 4개 반의 높은 평가와 함께 '악녀 종결자'가 된 이유는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 캐릭터기 때문. '미친 것 같다'는 말을 들을만큼 심한 행동을 하지만 자신과 뒤바뀐 운명을 살면서 승승장구했던 김현주에 대한 피해의식과 정신적 박탈감을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게 사실이다. 공감가는 악녀 캐릭터의 힘으로 드라마 시청률도 평균 20%대(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넘어섰다.
2위 이다해 MBC '미스 리플리'악행수위만 놓고 보면 사실 최고수준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사람을 농락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선보여 보는 사람 뒷목 잡게 만든다. 상황을 모면하는 순발력도 예술의 경지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술집 호스티스로 살아오다 성공을 위해 학력위조를 하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자를 꼬셔내려는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상황전개와 인물의 성격묘사가 단조로운 게 옥에 티. 빤한 거짓말과 가식적인 웃음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단순함의 극치다. 좀 더 치밀한 심리묘사가 필요한 상황. 아쉬움이 반영된 탓인지 시청률은 평균 10%대 초반대에서 답보상태다.
3위 김민서 KBS 2TV '동안미녀'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전형적인 악녀 캐릭터.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는 예쁘고 착한 척을 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까는 타입. 여러 드라마를 통해 유사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 바 있다. 장나라의 전작 '내 사랑 팥쥐'에서 홍은희가 맡았던 인물이 대표적인 유사 캐릭터. '웃어라 동해야'의 박정아 역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많이 봐온 캐릭터인만큼 인물 자체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 꾸준히 주인공 장나라를 괴롭히면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희소가치가 없어 평가지수는 다소 낮게 나왔다.
4위 유인나 MBC '최고의 사랑' 완전한 악녀라고 하기에는 수위가 다소 약함. 걸그룹 국보소녀 활동중 최고인기를 구가하던 공효진에게 질투심을 가지고 있지만 '못된 짓'의 수준은 심통 사나운 10대 소녀 수준에 그친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귀여운 악녀'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미운 짓만 골라하다가 과거 공효진이 자기 잘못을 뒤집어쓰고 비호감 연예인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곧장 뉘우치고 기자 앞에서 변호까지 해주는 '쿨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악행의 강도가 약해 '어중간해보인다'라는 혹평도 나오는 게 사실. 극중 성격을 완벽히 구축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급하게 진행되는 촬영일정과 대본에도 문제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중반 이후 '쪽대본'이 날아오면서 캐릭터를 분석할 여유가 없어 유인나 본인도 힘들어했다는 후문.
5위 홍수현 SBS '내게 거짓말을 해봐'어릴적 친구 윤은혜를 무조건 이기고 싶어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의 소유자. 윤은혜의 첫사랑을 빼앗아 결혼까지 할 정도의 뻔뻔스러움과 "네가 나보다 못한 남자를 만나는 게 우주의 법칙이고 세상의 질서"라는 얄밉기 짝이 없는 대사들이 트레이드 마크다. '청담동 며느리'로 우아한 척을 하면서도 윤은혜에게만은 유독 밉살스럽게 구는 심통맞은 친구다. 반면에 센스있는 패션스타일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미워할수만은 없는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에서 흔했던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돋보일 수 있는 요소가 많음에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작가교체 등 어수선한 분위기로 집중도가 떨어진 탓도 있다. 시청률 역시 한자릿수대를 보이고 있다.
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