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代行). 임시로 남을 대신해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책임과 권한이 제한된 임시직이어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김광수(52) 두산 감독 대행이 정식 감독 못지 않은 큰 행보(大行)를 보이고 있어 주목을 끈다. 선수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두둑한 배짱, 적재적소의 용병술, 멀리보는 안목 등 예사롭지 않은 지도력을 발휘하며 위기의 두산을 회생시키고 있다.
"두려움 없이 해 보자."김 대행은 지난달 13일 김경문 감독의 사퇴로 갑작스레 지휘봉을 넘겨받은 뒤 두산을 8승3패(승률 0.727)로 이끌었다. 7위에서 5위로 끌어올렸고 4위 LG와도 3.5경기차로 좁혔다. 거의 포기했던 4강 꿈을 되살릴 만큼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김 대행이 이처럼 빠른 시일 내에 팀을 추스리고 재정비할 수 있었던 데는 오랜시간 선수들과 밀접한 스킨십을 유지해 오면서 쌓은 특유의 친화력이 큰 힘이 됐다. 2000년부터 수석코치를 맡아 팀과 선수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특히 김경문 감독이 엄한 아버지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뿜을 때 온화한 어머니처럼 선수 및 코칭스태프를 다독거리는 역할을 했다.
한 선수는 "김 감독님 사퇴로 많이 혼란스러웠는데 수석코치님이 대행이 되셔서 안도했다. 선수들 사이에 다시 뭉쳐서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김 대행은 "선수들에게 부담을 안 주려고 했다. 두려움 없이 한번 들이대 보자고 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다"고 말했다.
"믿으니까 내보낸다."김 대행은 용병술에서도 만만치 않은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김경문 감독 특유의 뚝심을 그대로 물려받은 모습이다. 김 대행 체제 이후 두산의 타순은 거의 변동이 없다. 주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표현이다. 특히 고영민의 말뚝 2루수 기용이 인상적이다. 여전히 1할대 타율에 허덕이고 있지만 뚝심있게 밀어붙이며 고영민의 자신감 상승을 이끌어 냈다.
손시헌의 부상 공백 장기화로 불안이 커지던 유격수 자리에는 2루수 요원이던 오재원을 투입하는 승부수로 정면돌파했다. 오재원은 3경기에서 실책없이 안정적인 수비를 펼쳐 보이며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김 대행은 "선수들을 믿으니까 내보낸다. 일단 내보내면 무조건 믿고 기다려야 한다"면서 "선수들에게도 믿고 내보내는 것이니 일단 나가면 벤치를 믿으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1승보다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4강이 가시권에 왔지만 김 대행은 전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여전히 "순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한 경기 한 경기 두산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칙론을 얘기한다.
실제 경기 운영에서도 무리한 승부수를 두지 않고 착실히 정공법으로 돌파해 나가는 것이 보인다. 최근 잇따른 우천순연으로 휴식을 취한 선발투수들을 변칙 운영해 어깨 부상으로 이탈한 마무리 정재훈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지만 단호히 거부했다. 지난 1~2일 LG와 맞대결 때 상대편에서는 4,5선발인 김광삼과 심수창을 불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김 대행은 보름간 쉰 이용찬에게 "선발등판만 준비하라"고 못박아뒀다.
김 대행은 "용찬이로 한 두 경기 이길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봐서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어려울 때 일수록 불펜 투수들을 믿고 기용하는 것이 불펜의 자신감 회복과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넥센전 6-5로 앞선 9회말 2사 2루 위기에서 김강률을 내보내 데뷔 첫 세이브를 올리게 했고 지난 2일 LG전에서는 8회말 동점타를 허용한 노경은을 연장 11회까지 등판시켜 승리를 안겨줬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