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추선에서 일하던 남자 얀(스텔란 스카스가드)은 스코틀랜드의 한 작은 시골 마을 아가씨 베스(에밀리 왓슨)와 결혼해 꿈같은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얀은 바다 위의 시추선으로 일을 하러 장기간 나가야 한다. 베스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다. 종교적인 억압이 심하고 외지인과의 결혼을 못마땅해하는 마을 분위기 상 얀이 떠나면 얀만 바라보고 사는 베스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떠난 얀은 시추선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전신마비가 돼 돌아온다. 베스는 눈물을 흘리며 얀을 돌본다. 회복의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안 얀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든 베스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면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갖고, 그것을 자신에게 이야기해달라고. 그래야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물론 얀은 그렇게 되면 베스가 자신을 잊고 다른 남자들과 만나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지만 베스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199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재개봉된다. 이 영화는 지난 5월의 칸영화제에서 자신이 나치라는 멍청한 농담을 하는 바람에 퇴출됐던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이다. 때로 종교와 성이라는 주제에 집착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전형적인 이야깃거리들이 담겨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얀의 지시를 받은 베스가 제일 먼저 접근하는 남자는 얀의 담당의사다. 함께 술을 마시고 엘튼 존의 노래를 들으며 어린아이같이 뛰며 춤추던 베스는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자신을 만져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사는 사리분별이 정확한 사람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울고 있는 베스를 설득할 뿐이다. 베스는 거짓으로 꾸민 의사와의 관계 장면을 병상의 얀에게 이야기하지만 얀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눈치 챈다. 베스는 결국 창녀들과 똑같은 복장을 입고 바의 남자들, 부두의 노동자들과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다.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끔찍한 이야기 속에 숭고한 정신세계를 담는 라스 폰 트리에의 재능이 빛난 영화다. 도저히 이런 전개를 지닌 영화의 결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동적인 결말은 이 영화의 가치를 말해준다. 행복과 파국을 오가며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표출해내는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 연기자 에밀리 왓슨이 이 영화의 진정한 영웅이다.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딥 퍼플의 '차일드 인 타임(Child In Time)', 엘튼 존의 '굿바이 옐로우 브릭 로드(Goodbye Yellow Brick Road)' 등 록의 고전들이 울려 퍼지는 것 역시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