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고등학생들이 프로 선수들보다 더 야구를 잘 하는 것 같아."
김성근 SK 감독이 9일 잠실구장에서 두산과 경기를 앞두고 훈련을 지켜보던 중 대뜸 고교 야구 얘기를 꺼냈다. 선수에 대한 쓴소리를 앞장서 하는 평소 성격처럼 최근 프로 선수들의 행태 중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적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일부 고교 야구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 반어법을 쓴 것이었다.
김 감독은 "야구장에 나오기 전에 TV로 고등학교 경기를 봤는데 1점차 상황에서 어느 쪽도 번트를 안 대더라"면서 "고등학생들한테 야구를 좀 배워야 겠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본기를 다져야 하는 고등학교 때부터 착실한 작전 수행으로 점수를 뽑는 법을 익히지 않고 강공에 의한 화려한 야구를 지향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김 감독이 언급한 경기는 목동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고교야구 주말리그 후반기 왕중왕전 경남고와 상원고의 8강전이었다. 상원고가 투수 오세민, 김성민의 무실점 역투 속에 5회 1점, 6회 2점을 뽑아 3-0으로 승리했다.
김 감독이 문제삼은 점은 5회말 선취점을 뺏긴 경남고가 6회초 반격에서 무사 1,2루 기회를 잡고도 희생번트 대신 강공을 택한 것이었다. 김 감독은 "한번 번트 자세를 취하다가 버스터를 하는가 싶더니 결국 삼진을 당하더라"며 혀를 찼다. 경남고는 결국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6회말 2점을 더 뺏겨 승부의 추를 완전히 넘겨줬다. 추가점을 내긴 했지만 6회말 상원고의 강공 일변도 역시 김 감독의 날 선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최근 4년간 3번 우승한 SK는 올시즌 104개로 가장 많은 희생번트를 성공했다. 경기당 1.2개가 넘는다. 기본기를 생명처럼 여기는 김 감독이 아니더라도 고교 야구에서 희생번트의 실종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김 감독이 주도한 스몰야구가 최근 프로야구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지만 번트 실패는 오히려 늘고 있다. 대부분 프로 지도자들이 갈수록 떨어지는 신인들의 기본기를 걱정하고 있다.
김 감독은 "고교 야구에서, 그것도 지면 끝장인 토너먼트 경기에서 번트를 안 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개탄했다.
잠실=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