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인 육상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전히 훈련 환경은 열악하지만 그들은 환경 탓을 하지 않았다.
휠체어 육상, 세계를 넘보다유병훈(39)과 정동호(36·삼성카드)는 한국 육상 대표팀이 이루지 못한 메달의 꿈을 대신 이뤄냈다. 유병훈은 3일 대구스타디움에서 특별종목으로 치러진 남자 휠체어 400m T53에서 50초69로 은메달을 따냈다. 번외경기라 공식 메달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당당히 시상대에 올랐다. 정동호도 50초76을 기록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나이로 마흔에 접어든 유병훈에게 이번 메달은 각별하다. 유병훈은 지난 1월 어깨 수술 이후 올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피나는 훈련으로 몸상태를 끌어올렸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경기도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조금이라도 훈련을 더하기 위해 집을 아예 곤지암으로 옮기는 열의를 보였다.
그는 만 4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타게 됐다. 그러나 자신의 불운을 탓하기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삼육재활학교에 다니면서 휠체어 농구에 발을 들였다. 그러다 농구팀의 친한 후배가 휠체어 마라톤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한눈에 반했다. 20대 초반 휠체어 마라톤에 발을 들였고 2001년부터는 트랙 종목에 집중했다. 지난해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는 휠체어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정상권으로 올라섰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도 은메달을 따내며 내년 열리는 런던 패럴림픽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유병훈은 "항상 일과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좋아서 지금까지 했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목표인 런던 패럴림픽 금메달을 이루고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나마 유병훈은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는 휠체어 수입판매회사인 닛신메디컬에서 영업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에 출전할 때 장비를 후원해주던 회사 사장의 도움으로 운 좋게 취직까지 했다. 실업팀이 전무하다시피 한 휠체어 육상의 현실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혀 선수 생활을 일찌감치 그만 두는 경우가 대다수다.
장애인 육상이 갈 길유병훈은 한국 장애인 육상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선수다. 한국에 휠체어 육상 선수는 많다. 하지만 비장애인과 겨루는 '한국의 피스토리우스'는 먼 이야기다. 비장애인과 겨루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특수체육을 전공한 전혜자(57) 순천향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피스토리우스 같은 선수를 지도할 전문 코치가 많지 않다. 외국처럼 발달된 의족을 접할 기회도 적어 자연히 휠체어 쪽으로 몰린다"고 설명했다.
문영수(41) 대한장애인육상연맹 사무국장은 "경기용 의족은 한 개당 1000만원을 넘는다. 장비를 계속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문 국장은 이어 "국가대표가 아니라면 자비를 들여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실업팀이 없는 상황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제도 및 인프라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비장애인과 겨룰 수 있는 종목을 발굴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장애인체육시설이 대부분 외곽 지역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일반체육시설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오명철 기자 [omc102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