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의 감독 데뷔작 '연애교실'(1971년)의 바닷가 멜로 장면. 신성일은 같은 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어렵게 국도극장에서 개봉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영화감독과 제작을 하면서 배우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됐다.
1971년 5월 영화 '연애교실'을 통해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였다. 그 해에 '어느 사랑의 이야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내리 세 편의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감독을 하니 영화 전체를 보는 눈이 굉장히 넓어졌다.
영화법의 폐해를 절감했다. 문공부의 허가를 받은 18개 영화사만 작품 제작을 할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 허가 받은 영화사의 이름을 빌려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대명 비용은 작품 당 100만원이었다. 허가 받은 영화사는 영화법에 따라 1년에 2편 이상 제작하면 외화 수입 쿼터를 얻을 수 있었다. '연애교실'은 국도극장이 운영하는 한국영화사의 대명을 통해 상영 허가를 받았다.
71년 가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도 한국영화사의 대명 작품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녹음은 남산 영화진흥공사 녹음실에서 시작됐다. 배우와 성우들이 모두 나왔는데 신영균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영균의 매니저 정광석에게 물었다. 그는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내게 아무 말 못했다.
"왜 그래? 무슨 사고 났어?"
그는 제작부장을 통해 "녹음비 보내랍니다"라는 소리를 내게 흘러들게 했다. 통상적으로 녹음비는 출연료의 10~20%이며, 녹음 작업이 끝난 후 지불하는 게 관례다. 내가 그 동안 빵집이며, 볼링장이며, 선거판에서 도와준 것이 얼마인가. 울화가 치민 나는 그 자리에서 "녹음비 30만원 보내"라고 지시했다. 신영균은 돈을 받자마자 현장에 도착했다.
신영균·윤일봉·남궁원이 모두 출연한 이 작품은 국도극장에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국도극장 측은 '신영균' 때문에 상영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사정을 알아보니 이러했다. 70년 신영균과 김희갑이 공동 제작한 영화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는 국도극장 개봉을 원했다. 당시 국도극장은 최고의 흥행 극장이었다.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는 남산 중앙정보부로부터 지원 받은 작품이었다. 흥행성이 없다고 판단한 국도극장은 상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희갑은 중앙정보부와 대단히 친밀한 사이로 그 쪽 일이라면 발 벗고 뛰어다녔다. 아마도 김희갑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국도극장에 상영 압력을 넣은 것 같다.
국도극장의 안 회장은 개성 사람으로 극장을 튼실하게 경영했다. 중앙정보부는 국도극장 안 회장의 아들인 안 상무를 불러다가 뺨까지 때리는 수모를 주었다. 국도극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영화를 올렸다가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화가 잔뜩 난 국도극장 측은 앞으로 '신영균·김희갑' 이름이 들어간 영화는 무조건 국도극장에 붙일 수 없다는 방침을 내렸다.
국도극장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상영하려는 나로서는 암담했다. 안 상무는 난감해하는 나에게 아버지의 허락을 직접 받으라고 조언했다. 그 다음날 새벽 안 회장의 혜화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내 얼굴을 보려고 그 집안의 식구들이 가득 몰려들었다. 나는 사랑채에서 안 회장 앞에 무릎 꿇어 큰 절을 올렸다. 안 회장은 내가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내게 "편히 앉아"라고 말했다. 분위기를 보니 이미 내 승리였다.
"아버님, 저를 보고 상영을 허락해주세요."
"알았어. 이번에 잘 만들었다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그 집을 나섰다. 이 모두가 영화감독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