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첫 선을 보인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12일 방송을 끝으로 시즌1을 마무리했다. 초반 20%를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하던 '나가수'는 한 마디로 신드롬이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들이 부른 노래는 방송 직후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름이 올랐고, 음원 사이트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핫'한 아이돌 가수들이 아무리 강력한 신곡을 들고 나와도 '나가수' 음원에 밀릴 정도였다. 하지만 가수 캐스팅을 두고 불협화음이 일고, 반복적인 포맷에 식상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주춤하더니 결국 시청률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는 굴욕 속에 휴식기에 들어갔다. 첫 방송 후 약 1년 만에 4~6주간의 재정비 시간을 가진 뒤 시즌2로 돌아오는 '나가수'. 1년 동안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혜를 입은 가수들과 '괜히 나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피해를 본 가수들을 각각 5명씩 뽑아보는 방식으로 '나가수'의 지난 1년을 되짚어봤다.
▶수혜자
임재범
'나가수' 최대 수혜자다. 25년 전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리며 각광받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대중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임재범은 '나가수'에서 '너를 위해' '빈잔' '여러분' 딱 3곡을 부르고 단박에 영웅이 됐다. 무대에서 감정을 담아 울부짖는 그의 모습과 호소력 짙은 보이스에 전국민이 매료됐다. 음원과 음반이 불티나게 팔린 것은 물론 '임재범 노래 다시 듣기'가 유행이 됐을 정도였다. 난생 처음 광고 모델이 됐을 뿐 아니라 MBC에서 주말 황금시간대에 임재범이 미국을 돌며 음악 여행을 떠나는 코너 '바람에 실려'를 제작 및 편성했을 만큼 '핫'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김범수
쟁쟁한 '나가수' 1기 멤버 중 가장 주목받으며 명예졸업(7라운드까지 생존한 가수들이 명예롭게 퇴진하는 제도)했다. 노래는 잘하지만 주목도가 다소 떨어졌던 김범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 반열에 올랐다. 데뷔 당시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았던 그는 '나가수' 덕분에 '얼굴 없는 가수'에서 단박에 '비주얼 가수'로 수식어가 바뀌었다. 데뷔 이래 처음 TV광고 모델로 뽑혔다. '님과 함께'를 부르며 '겟 올라잇!'을 외칠 때 입었던 의상을 그대로 입고 광고에 나와 강렬한 한방을 남겼다. 이에 힘 입어 전국 투어 공연도 대박이 났다.
박정현
역시 이 프로그램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데뷔 당시 소름끼치는 가창력으로 주목받았던 박정현은 한동안 이렇다 할 만한 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나가수' 1기로 프로그램에 등장해 과거 전성기 때를 뛰어넘는 인기를 얻었다. 10~20대 걸그룹이나 얻을 수 있는 '국민 요정'이라는 수식어를 얻고 국민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나가수'에서 김범수와 함께 명예졸업자 1기로 선정돼 화려하게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뒤에는 광고 러브콜이 쏟아졌다. 여자 연예인 중에서도 톱스타만 할 수 있다는 헤어 제품 광고에 이어 화장품 광고까지 찍으며 광고계를 점령했다.
김경호
긴머리 로커에게 '나가수'는 빛이 됐다. 김경호는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남성 솔로 로커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을 무기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금지된 사랑' 등을 히트시켰다. 하지만 2006년 고관절 질환으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2008년 신보를 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나가수'를 만나기 전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 기회는 찾아왔다. '나가수'에서 1위를 3번 연속하는 신기록을 썼다. 명예졸업하는 영광까지 안았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전국 투어 콘서트는 연일 매진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김연우
인생 한 방에 역전했다. 지금까지는 가창력과 인기가 정확하게 반비례하는 가수였다. '연우신'이라고 불릴 만큼 가창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인기는 토이의 객원 보컬이던 1999년이 최고 절정기. '나가수'에서도 출발은 좋지 못했다. 6위·4위의 기록으로 1라운드 만에 꼴찌 탈락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방송에서 보인 재치있는 모습들이 방송 관계자의 눈에 들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 섭외 요청이 빗발쳤다. '나가수' 호주 경연에서 당당히 1위에 올라 한도 풀었다. 공연장도 소극장에서 대형 체육관으로 바뀌었다. 교수로 재직 중인 서울예술종합학교에서는 교학처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