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 번 쯤 1994년 미국월드컵 직후로 돌아가고 싶다."
홍명보(43)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직후를 꼽았다. 홍 감독은 지난 달 말 진행한 일간스포츠와의 창간 43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못 다 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그러나 기분 좋게 풀어냈다. 현재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가족과 함께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일간스포츠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2009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어 미안했고 안타까웠다"면서 "가족들과 함께 대화도 나누고 여행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간스포츠가 제시한 여러가지 주관식 질문에 성실한 설명을 곁들인 답을 내놓았다.
◇1994년으로 돌아가고픈 이유는
홍명보 감독은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는'이라는 질문에 "1994년 미국월드컵 직후"라고 썼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홍 감독은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며 2골 1도움을 기록, '골 넣는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대회 직후 20대 중반이던 홍 감독의 기량과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유럽의 명문구단이 잇달아 러브콜을 보냈다. '선수 홍명보'와 접촉을 시도한 구단 중에는 FC 바르셀로나(스페인)도 있었다.
하지만 홍 감독의 유럽행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당시로서는 '축구 변방'으로 여겨진 아시아의 선수에게 합당한 이적료를 제시하려는 팀이 없었다. 해외 이적에 대해 보수적이던 당시 한국축구의 분위기도 홍 감독의 유럽행을 막았다. 결국 홍 감독은 3년 뒤인 1997년에 당시 한국축구 최고액 이적료 기록(11억 원)을 세우며 일본 J-리그 클럽 벨마레 히라츠카(현 쇼난 벨마레)로 이적했다. 홍 감독은 1994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에 대해 "월드컵 이후에 유럽에서 다양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축구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활발했고, 몸도 좋은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전성기 시절 '축구의 본고장' 유럽 무대에서 큰 뜻을 펴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홍명보는 약속을 중시한다
'홍명보는 XX 때문에 늘 최선을 다 한다'는 질문을 던졌다. 홍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돌아온 대답은 "약속"이었다. 홍 감독은 자세한 부연설명도 곁들였다. "중학교(광희중) 시절 '축구를 그만두라'는 반대에 부딪쳤을 때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당시의 약속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매사에 최선을 다 하려 노력한다"고 썼다.
홍 감독은 182cm 73kg의 준수한 체격조건을 자랑하지만, 광희중 시절에는 동료 선수들보다 10cm 이상 작은 '상 꼬맹이'였다. 이와 관련해 홍 감독은 "광희중에 진학할 무렵 내 키는 150cm 정도 밖에 안 됐다. 동북고에 진학할 때도 160cm를 간신히 넘었다. 친구들에 비해 한 뼘 이상 작은 키는 학창시절 내게 심각한 컴플렉스였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축구연습을 했다. 체격 열세를 극복하는 방법은 남들보다 더 많이 뛰는 것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홍 감독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축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더 열심히 공을 찼다.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끝까지 지키는 오기, 주변 사람들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성실성 등이 오늘의 홍 감독을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 '축구 지도자'로 거듭난 홍명보 감독이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덕목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