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36) 고양 원더스 구단주가 너클볼에 대해 설명한다. "중력을 거스르는 공이죠. 18.44m를 날아가는 동안 오른쪽으로 휘었다, 왼쪽으로 휘어갑니다.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너클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움직임을 따릅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실 저는 스스로를 '너클볼러'라고 생각합니다." 너클볼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삶을 살아온 그가, 한국 야구에 너클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허 구단주는 4일 서울시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일구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김성근 감독님이나 고양 프런트가 받아야할 상이다"라고 한사코 거절하던 그는 김 감독과 일구회의 설득에 시상식장에 섰다.
허 구단주는 주목받는 걸 원치 않는다. 프런트의 역할을 '백 오피스'로 규정하는 '은둔형 구단주'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지식과 철학은 깊고 확고하다. 특히 너클볼과 김성근 감독이 화두에 오르면 '달변'으로 변한다. 그는 시상식이 끝난 뒤 너클볼러 R.A 디키의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을 간절히 기원하고,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가 정답이다"라고 설파하는 등 재미와 힘이 넘치는 인터뷰를 했다.
-수상을 축하한다.
"이 자리에 내가 서도 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일구회에서 귀한 상을 주신다는 얘기를 듣고 '김성근 감독님이 받아야 하는 상이다'라고 고사했다. 프런트가 받는다고 해도 내가 아닌 원더스 직원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네이션 구단'이 상을 받는 것도 좋은 그림은 아닌 것 같고…. 감독님이 설득 끝에 수상을 하게 됐다. 나 혼자가 아닌 고양 원더스 전체가 받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김성근 감독에게 감사드린다'는 수상소감을 했다.
"나는 김성근 감독님을 동지라고 생각한다.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고, 김성근 감독님을 모신 것은 내가 살면서 가장 '제대로 돈을 쓴 일'이다. 내가 '작은 성공'에 취해 비틀거리고, 덜 열심히 살때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를 봤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왜 재밌을까'를 궁금해 했다. 초대 감독으로 모신 뒤 가까이에서 감독님을 바라봤다. 지금은 감독님의 야구를 논문으로 쓰고 싶은 심정이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면 주인공이 24시간 내내 초밥만 생각한다. 감독님이 그렇다. 24시간 야구만 생각하신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정답이다."
-KT가 공개적으로 김성근 감독 영입의지를 밝혔는데.
"KT의 10구단 창단 선언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을 영입하고 싶다'고 말한 것에 솔직히 놀랐다. 나와 김 감독님은 결혼한 사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외부에서 내 아내 혹은 남편과 결혼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감독님께도 실례되는 일이다."
-'너클볼을 던지는 구단주'로 유명하다.
"내 인생 목표는 세계적인 기업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꿈도 여전하다. 나는 전설적인 너클볼로 필 니크로의 제자다. 너클볼을 던지기 위해 6년 정도 노력했는데 이제야 조금 공이 가는 것 같다.(웃음) 나는 나를 너클볼러라고 생각한다. 사회인리그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내 공에 자신감도 있다.(웃음)"
-왜 하필 너클볼인가.
"R.A 디키가 사이영상을 수상할 때 정말 기뻤다. 너클볼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친구에게 '너클볼의 시대가 온다'고 예언한 적이 있다. 디키의 수상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새벽에 외신을 찾아보기도 했다. 너클볼의 날아가는 모습이 좋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구종 아닌가. 오른쪽으로 휘다 왼쪽으로 휘고, 솟아오르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공인 것 같지만 존재한다."
-허 구단주의 삶과 너클볼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서울대)학생회장 출신이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졸업 후 정치인이 될 거라 예상했다. 예상을 깨고 기업인이 됐을 때 '네가 무슨 사업이냐'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사실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때도 '네가 무슨 학생회장이냐'라는 말을 들었다. 사업을 하다 '작은 성공'을 거두고 음악 유학을 떠날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나는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 게임 사업을 하며 18번 연속 실패했다. 28살 때 빚이 30억원 정도 됐다. 그런데 다행히 그 뒤에 작은 성공을 거뒀다. 너클볼은 예측불가능하다. 그리고 너클볼러는 다른 구종을 신경쓰지 않는다. 너클볼만 판다.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
-원더스 창단 1주년(12월12일)이 다가온다. 2년째 원더스는 어떤 목표를 향할까.
"아, 이 기회를 빌어 김기태(LG) 감독님께 감사 인사 드리고 싶다. 우리 선수를 두명(이희성·김영관)이나 영입하셨다. 도네이션 구단 원더스에 존재 가치를 심어주셨다. 나는 원더스에게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그 역할은 김성근 감독님이 하신다. (영화감독)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연출을 맡기고 '이 배우를 쓰라, 이런 장면을 넣어라'라고 할 수 있나. 최고의 야구 전문가 김성근 감독님을 모셨다. 창단식에서 밝힌 것처럼 원더스는 김성근 감독님이 전권을 가지고 계신다. 이건 내가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전문가를 모셔놓고, 전적으로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