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가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은퇴해야죠. 아직 아닙니다"
염경엽(45) 넥센 감독은 평소 목소리가 크지 않다. 자세를 낮추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먼저 듣는 스타일이다. 시즌 첫 공식경기가 열렸던 지난 10일 마산구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들의 훈련을 체크한 뒤 취재진을 만난 그는 담담하게 전날 승리에 관한 생각을 전했다. 시범경기에서 한 번 이겼다고 좋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신임감독인 그는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나의 스승이다"라고도 했다.
시종 조용하게 말을 이어가던 염 감독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이 있었다. 김병현(34)을 이야기할 때였다. 그는 "올해도 김병현을 선발로 기용할 것이다. 캠프에서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잘라말했다. 김병현은 브랜드 나이트-밴헤켄과 함께 팀의 3선발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한국무대에 복귀한 김병현은 19경기에 나서 3승8패(3홀드)를 거뒀다. 전반기에는 주로 선발로 나섰지만, 후반기 들어 중간과 마무리도 겸업했다. 이닝당 평균 선발 투구수는 16.9개로 적지 않았다.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평균 투구 이닝은 4⅓이닝에 그쳤다. 김병현은 올해 서른 네 살이다. 선발로 등판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다. 체력소모가 큰 선발보다는 계투로 넣는 방안이 적절할 수 있다.
수장의 생각은 단호했다. 염 감독은 "다들 김병현의 나이 이야기를 하면서 선발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한다. 수장이나 코칭스태프가 볼 때 던질 능력이 있으니까 선발로 쓰는 것이다"고 했다. 오히려 선발이 짧게 던지는 계투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는 "선발은 로테이션이 있다. 하루만 공을 던지면 3~4일을 쉰다. 반면 계투나 마무리는 거의 매일 등판한다. 매일 몸을 풀고 공을 던진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더 받는다"며 "나이가 있는 선수일수록 선발이 더 적합하다. 노련미가 있다. 타 팀도 신인급을 키우느라 다소 나이가 어린 선수들에게 선발을 맡길 뿐이다"고 덧붙였다.
김병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가 있는 유일한 선수다. 명성만큼 대우를 받는다. 김병현의 올시즌 연봉은 6억원으로 적지 않다. 넥센으로선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를 다소 무리해서라도 선발로 내세우고 싶은 욕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염 감독은 "화려한 경력도 좋지만, 투구 능력이 떨어진다면 은퇴를 하는 게 맞다. 그게 선수들의 생리다"면서 "내 판단만 가지고 선발로 올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코칭스태프가 아직 던질 수 있다고 보고있다"고 했다. 어떤 보직이건 존재만으로도 구단에 도움이 된다. 김병현은 넥센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한 자세를 보고 배우는 선수들이 많다. '멘토'로서 역할도 충실하다. 염 감독은 "사실 선발이나 계투 같은 보직은 중요하지 않다. 팀원들이 김병현을 보며 많이 배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감독이자 선배로서 지금은 시즌 걱정보다는 김병현이 자기 밸런스로 좋은 투구를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saltdol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