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노장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모든 구단들은 비슷한 생각을 한다. 같은 값이면 한 살이라도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줘 팀을 살찌우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서 30대 중반이 넘은 선수들은 대게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뛴다.
송지만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갈림길에 놓였다. 작년 그는 발목 골절로 1996년 데뷔 이후 가장 적은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넥센 구단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송지만에 코치 또는 해외 연수를 제안했다.
송지만은 제안을 거절했다. 충분히 더 뛸 수 있고,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동기생 박재홍과 박찬호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하지만 그는 1억7000만 원이 깎인 8000만 원에 사인하고 '선수 송지만'으로 남았다.
넥센은 송지만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는 지난해까지 통산 309홈런 1021타점을 올린 강타자다. 하지만 이미 정점을 찍고 한참 내려와 역할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넥센 외야수는 장기영-이택근-유한준으로 일찌감치 확정됐다. 기껏해야 그의 자리는 대타 정도였다. 그조차 26살 박헌도에 밀렸다.
지난 1일 2군으로 내려간 송지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를 잡았다. 박헌도가 6경기 타율 1할로 부진하자 넥센 코칭스태프는 13일 송지만을 1군으로 불렀다. 송지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2군에서 타율 0.438(16타수7안타) 1홈런 4타점으로 팀 내 최고 타율을 기록 중이었다. 염 감독은 송지만의 쓰임새에 대해 "대타나 상황에 따라 우익수 수비로도 내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만의 실력은 살아 있었다. 그는 13일 삼성전에서 3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14일 대타로 나와 최고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우월 솔로홈런을 때렸다. 공이 좀 높긴 했어도 시속 150㎞에 가까운 강속구였다. 그 돌직구를 송지만은 한창때처럼 밀어서 넘겼다. 감을 잡은 그는 16일 사직 롯데전에서 역시 강속구 투수인 최대성을 맞아 2타점 적시타를 쳐 팀 연패를 끊는 데 앞장섰다. 주로 대타로 나오는 악조건 속에서도 올 시즌 타율 0.250에 3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현역 생활을 연장한 그의 고집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는 "장타력이 여전하다"고 하자 "홈런은 봉사 문고리 잡는 식이었다. 오승환이 베테랑이라고 예우해준 것 같다. 최대성으로부터 뽑은 안타는 오승환의 공을 봤던 게 도움이 됐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넥센엔 대타 요원이 송지만 외에 유재신, 정수성, 김민우가 있다. 셋은 다 방망이보다 빠른 발이 강점이다. 반면 송지만은 찬스 때 큰 타구를 날릴 수 있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다.
그는 고참 노릇도 열심히 한다. 벤치에 있는 동안 계속 후배들을 격려하고 파이팅을 이끌어 분위기를 띄운다. 후배들은 그런 송지만에 다가가 조언을 구하고 있다. 염 감독은 "송지만이 많은 희생을 해주고 있다"고 고마워 했다. 넥센의 주장은 이택근이지만 송지만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송지만은 올 시즌 개인 목표 같은 건 없다고 했다. 그저 "후반에 찬스 상황에 나가면 내 역할을 해 팀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군에 오니 정말 재미있다. 내가 놀랐던 건 팀의 집중력이 작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점이다. 후배들도 나를 많이 응원해준다"고 팀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프로야구에서 그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류택현(42·LG), 최향남(42·KIA), 최동수(42·LG), 박경완(41·SK) 등 4명밖에 없다. 그 중 최동수와 박경완은 2군에 머물고 있다. 1군 야수 최고참인 송지만은 "기회를 준 구단과 염경엽 감독님께 고맙다"고 말했다. 넥센 팬들도 노장의 헌신을 고마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