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44) LG 감독은 '베테랑은 베테랑이죠'라는 말에 살며시 웃음을 띄웠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66일만의 스윕패 이후 '위기론'까지 새어 나온 상황. LG 이병규(39·등번호 9)는 '캡틴',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무게감, 그 이상의 존재감으로 팀을 이끈다. 이병규는 1974년 생으로 9일 현재 삼성 진갑용과 함께 1군 야수진 가운데 최고참이다.
회춘한 기록제조기
이병규는 9일 잠실 NC전에 5번·지명타자로 나서 4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 특히 0-1로 뒤진 6회말 2사 3루에서 상대 선발 찰리로부터 귀중한 동점 적시타를 뽑아냈다. 이어 9회 1사 후에는 좌전 안타를 때려 양준혁(은퇴), 전준호(NC 코치), 장성호(롯데)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1900안타 고지까지 밟았다. 프로야구 역대 최다 타이인 9타석 연속 안타도 달성했다. 이후 대주자 이대형으로 교체됐고, LG는 연장 10회 접전 끝에 2-1로 승리했다. 이 경기를 중계한 이숭용 XTM 해설위원은 "다들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다. 하지만 이병규의 이런 활약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이날 '붕대 투혼'을 발휘했다. LG의 관계자는 9일 경기 뒤 "이병규가 오른 허벅지에 붕대를 감고 출전 중이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안타를 친 뒤 1루 베이스까지 전력으로 뛰지 못했다. 지난 5일 목동 넥센전에서 오른 허벅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그는 역대 최고령이자 통산 15번째로 사이클링 히트(안타·2루타·3루타·홈런) 기록했는데, 마지막 3루타 때 허벅지 근육을 다쳤다. 공교롭게도 그가 교체된 뒤 LG는 10-12로 역전패했다. 이후 두 경기에 이병규는 결장했고, LG는 3연패하며 '위기'를 맞게 됐다.
LG 상승세의 구심점
그는 올 시즌 팀 상승세의 일등공신이다. 이병규는 스프링캠프에서 왼쪽 햄스트링을 다쳐 지난 5월7일에야 시즌 첫 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복귀 후 총 41경기에서 타율 0.392·4홈런·39타점을 기록 중이다.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장외 타격왕이다. 또 팀 내 타율 및 타점 1위다. 팀의 해결사로 활약하면서 LG의 가을야구 꿈을 무르익게 하고 있는 이병규다. LG는 그가 복귀한 이후 27승17패(0.614)로 선전 중이다. '으쌰으쌰' 세리머니도 이병규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병규의 목표는 팀의 우승이다. 어느 덧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 그는 최근 "세월 가면 먹는 게 나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LG의 우승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고 했다. 9일 경기 뒤에도 "개인 성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선수들이 끝까지 하나가 되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김기태 감독은 "중요한 경기를 이겨서 기쁘다. 이병규의 9타석 연속 안타 타이 기록을 축하한다"며 특별히 그를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