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승엽(37)은 18일 큰 아들 은혁(8)군을 데리고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가 열린 포항구장을 찾았다. 각오를 묻자 그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야구 실력을 아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이승엽은 정규시즌 홈런 1위를 다섯 차례(1998,1999,2000,2002,2003년) 차지한 자타공인 홈런킹이다. 그러나 2005년 은혁군이 태어난 뒤로는 한 차례도 홈런왕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선 21홈런을 쳐 5위를 했다.
이승엽은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 도전장을 냈다. 여태까지 한 번도 1위를 해보지 못한 무대였다. 그는 홈런왕을 휩쓸기 시작한 1997년부터 56홈런을 친 2003년까지 7년 내리 대회에 나갔지만 한 번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작년엔 올스타에 안 뽑혀 출전할 수 없었다.
이승엽은 무관의 한을 풀었다. 그는 결승전에서 나지완(KIA)을 6-2로 누르고 별들의 슬러거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다. 8강과 4강을 포함해 총 18개를 터뜨렸다. 전성기 버금가는 홈런이 쏟아져나왔다.
그는 8강 상대 강민호(롯데)가 타석에 들어서자 조용히 뒤로 가 몸을 풀었다. 팀 후배 안지만이 그걸 보고 "완전 한국시리즈 모드인데…"라고 놀라워 했다. 진지하게 임한 이승엽은 첫 공 2개를 모두 담장 밖으로 넘겨 4강을 확정지었다. 첫 판에서 무려 8홈런을 쳤다. 박병호(넥센)가 8강에서 6개를 쳐 3개의 정성훈(LG)을 꺾자 "박병호가 우승하겠다"고 한 올스타들은 이승엽의 홈런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혁군은 이스턴리그 올스타들과 함께 1루 더그아웃 앞 잔디에 앉아 아버지를 지켜봤다.
이승엽은 4강에서 김현수를 4-1로 꺾고 결승전에서도 기세를 이어갔다.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박병호가 나지완(KIA)과 4강전에서 단 1개도 담장을 넘기지 못한 것과 달리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했다. 준결승 이후 3개 이상 친 선수는 이승엽이 유일했다.
이승엽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한번 감을 잡으면 공을 고르지 않고 계속 스윙을 돌려 담장을 넘기며 6397명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롯데 송승준이 "공을 1개 이상 안 본다"고 했다. 18홈런 중 무려 12개가 연속 홈런. 올 시즌 홈런(9개)의 정확히 두 배를 쳤다.
배팅볼 투수로 나선 삼성 포수 진갑용(38)이 이승엽의 도우미 역할을 했다. 이승엽이 좋아하는 코스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그는 가운데에서 약간 몸쪽으로 치우친 공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이승엽과 호흡이 완벽했다. 최장 비거리 홈런(135m)도 이승엽이 쳤다.
이승엽은 결승에서 10아웃째를 당하고 걸어나왔다. 담담하게 지켜보던 은혁군이 이승엽의 허벅지를 툭 쳐줬다. 아들을 데리고 시상대에 오른 이승엽은 "예전에 좋았을 때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한국에 복귀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 홈런 레이스로 아빠가 최고의 선수였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