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또 있을까 싶다. 같은 해에 농구를 시작한 두 형제가 같은 해에 나란히 코치가 됐다. 조상현-동현(이상 37) 쌍둥이 형제 이야기다.
둘의 농구 여정은 서로 닮은 얼굴만큼이나 판박이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농구를 시작한 둘은 서대전초-대전중-대전고를 나와 1995년 나란히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연세대의 전성기를 함께 누린 그들은 1999년 프로 입단하면서 서로 엇갈렸다.
하지만 2013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은퇴를 선언하고 코치의 길로 접어들었다. 형 조상현이 지난 4월 오리온스, 동생 조동현은 5월 KT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조상현은 오리온스에서 그대로 코치가 됐고, 조동현은 유재학 감독이 있는 모비스로 갔다.
형제를 24일(한국시간) 라스베이거스 데저트 오아시스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둘은 코치 자격으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지켜보기 위해 왔다. 코치 수업을 받느라 여념이 없는 둘은 만나자마자 티격태격했다. 둘은 "은퇴를 선언한 이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처음 얼굴을 봤다"고 했다.
-서로 짜기라도 한 듯 같은 해에 운동을 시작하고 코치가 됐다.
상현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다. 동생은 좀더 선수 생활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더라. 사실 동생이 은퇴한다는 것도 인터넷 기사를 보고 알았다."
-현역 시절, 항상 비교돼 부담스러웠겠다.
상현 "동생은 라이벌이 아니라 그냥 같이 운동하는 동료다. 그런데 자꾸 비교 대상이 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동현 "나보다는 형이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동생은 형한테 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형은 무조건 이겨야 할 상대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상대편으로 내가 막아야 할 선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자주 연락은 하나.
상현 "시즌 중에는 전화도 안 한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상의하는 편이 아니다. 시즌을 마치면 술자리도 갖지만 원래 자주 대화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승준-동준이 진짜 쌍둥이다. 서로 숙소까지 찾아간다고 하더라(웃음)."
동현 "대학 때는 룸메이트라 자주 이야기했지만 프로에 와서는 서로 팀이 엇갈려 연락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오랜 친구는 표현 안 해도 알지 않나."
-쌍둥이 선수로 같이 운동한 게 득인가, 실인가.
상현 "쌍둥이라는 이슈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실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 받았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다. 득이 많았다."
동현 "어릴 때 몸이 자주 아팠는데 그래도 끝까지 형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구를 했다. 만약 형이 농구를 안 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제2의 인생을 앞둔 이들은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선다. 형 조상현은 '학구파' 추일승 감독 밑에서 더 열심히 전술 공부를 해야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동생 조동현은 선수 생활을 그만 두자마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는 점에 한 없이 감사해했다.
-둘다 갑작스럽게 은퇴를 결정했다.
동현 "지도자가 된 건 행운이자 우연이다. 저보다 농구를 잘 했던 선배들도 코치로 자리잡기 쉽지 않은데 좋은 기회를 잡았다."
상현 "나도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다. 지난 시즌 후 코치 제의를 받고 당황스러웠다. 사실 은퇴하면 공부를 하러 해외로 유학 갈 생각이었다."
-코치 생활을 조금 해보니 어떤가.
상현 "추일승 감독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연구를 많이 하신다. 새벽에 잠도 안 주무신다. 그래서 나도 4~5시간 밖에 못 잔다. 영어 단어부터 새로 공부하고 있다. 그래도 여러 가지로 새로운 경험이 많아 기쁘다."
동현 "은퇴를 한 팀이 아니라 새로운 팀에서 모르는 선수와 호흡을 맞춰 긴장을 많이 된다. 유재학 감독님과 인연이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새출발하게 됐다. 선수 생활 막판에는 고참이라 여유롭게 생활했는데 지금은 내가 선수들을 챙겨야 한다."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현 "형이 살 찌는 체질이라 건강 관리를 잘 했으면 좋겠다. 나도 은퇴하자마자 살이 5㎏이나 쪘다."
상현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기겠다. 동생은 워낙 멘털이 강해 특별히 해줄 말이 없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