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연은 용맹하고 과감하나 지혜가 모자랐다. 유비는 이런 하후연을 별로 대단치 않게 여겼다. 그가 장합을 경계하면서 하후연의 군영을 집중 공격한 이유였다.
조조는 한중을 정복하고 철병하면서 다시 하후연에게 한중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겼다. 하후연은 한중 공격에 나선 유비와 맞서 싸우다가 결국 진중에서 죽음을 맞았다. 조조는 평소에도 오로지 강공에만 의존하는 하후연이 미덥지 못했다. 하후연에게 관중과 한중을 수비하는 중책을 맡길 때마다 늘 이렇게 타이르곤 했다.
"장수가 된 자는 겁을 먹고 약세를 보일 때도 있어야지 항상 용기에만 의지해서는 아니 되오. 장수는 용기를 근본으로 하지만 지혜와 계략에 따라 행동해야 하오. 오로지 용기에만 의지한다면 이는 일개 필부에 불과할 뿐이오.”
하후연은 정군산의 싸움에서 유비의 성동격서 전술에 말려들었다. 하후연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병사들의 선두에 나서 싸우다가 죽고 말았다. 일군의 대장답지 못한 죽음이었다. 용맹했으나 무모했던 결과였다.
조조는 하후연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 하후연에 대한 후대는 그 자손들에게까지 미쳤는데 하후연의 첫째 아들 하후형은 조조의 유일한 친동생인 해양애후 조덕의 딸과 결혼했다. 조덕은 조숭 일가가 도겸의 부장 장개에게 살해당할 때 함께 죽었다. 둘째 아들 하후패도 역시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하후패는 나름대로 기백이 있었나 보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죽인 유비의 촉나라를 멸망시켜 원수를 갚는 것이 소망이었다.
정시 연간에 조상이 집권하자 하후패는 드디어 숙원을 풀 기회를 얻었다. 하후상의 아들 하후현이 조상의 처남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조상과 더불어 위나라 정권의 실세였던 하후현은 하후패의 5촌 조카였다. 하후패는 하후현과 이승을 통해 조상에게 촉나라를 토벌할 것을 건의했다. 조상의 촉나라 정벌은 하후패가 막후에서 노력한 결과였다. 하후패는 선봉장이 되어 진격했으나 악전고투 끝에 패했다.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하후패의 후원자였던 하후현과 조상을 죽였다. 사마의 일파의 보복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신변에 불안을 느낀 하후패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원수의 나라 촉으로 망명했다. 촉의 군주 유선은 그를 매우 반가이 맞아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인이 장비가 하후연의 조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씨와 하후씨 간의 참으로 복잡하게 얽힌 관계였다.
[거짓말 벗겨보기] 하후연, 여포나 관우와 싸웠다고?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하후돈과 하후연은 늘 조조를 수행하면서 전장을 누빈다. 여포·관우·장비 등 쟁쟁한 무장들과 교봉을 겨룰 때에도 맨 처음 나서는 것도 늘 이들이었다. 사실과 많이 다르다. 이런 역할은 일개 비장이나 편장이 하는 일이다. 일군의 대장은 군대를 총체적으로 지휘할 뿐 앞장서서 적진을 돌파하거나 적장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지는 않는다. 조조는 하후돈과 하후연에게는 일군의 대장 역할을 맡기곤 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집안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하후돈은 조조를 따라 종군한 일이 거의 없었다. 늘 본거지에 남아 후방을 안정시키고 군수품과 병력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