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FA(프리 에이전트)들이 타구단과의 협상 첫 날인 17일 잇달아 계약을 마쳤다. 정근우(31)·이용규(28)가 한화로, 이종욱(33)·손시헌(33)이 NC로, 이대형(30)이 KIA로 이적했다. 올겨울 FA 신청자 16명 중 전소속구단과 재계약을 한 선수는 9명이다. 남은 7명 중 해외진출을 선언한 윤석민(28·전 KIA), 롯데와 협상 중인 최준석(30·전 두산)을 제외한 5명이 일주일간의 우선협상을 마친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새 팀과 계약을 했다. 수십억 원을 쏟아붓는 대형 계약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뤄진 셈이다. 야구계에서는 "전례 없이 많은 대형 FA 선수들과 함께 큰 손 구단들이 등장하면서 몸값 인플레이션 현상이 생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금지한 탬퍼링(사전접촉)도 의심된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전접촉, 정말 없었을까
FA 협상에 참여했던 구단 운영팀 실무자들은 "올 겨울처럼 FA들을 둘러싼 소문이 무성했던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협상장에서 선수가 다른 구단과 이야기를 마쳤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느꼈다. 처음부터 과한 금액 제시와 태도로 협상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탬퍼링 의혹이 들었다"고 했다.
최근 야구계에는 한화와 NC 등이 이미 외부 FA들과 계약을 마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한화는 총 137억 원을 들여 정근우와 이용규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NC는 손시헌과 이종욱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고, 역시 현실이 됐다. 협상 테이블에 신뢰 대신 의심이 쌓여가면서 일부 구단과 선수 사이에 감정적인 대립이 생기기도 했다.
◇공식 몸값, 믿을 수 있나
강민호(28)는 지난 13일 전소속구단인 롯데와 4년 간 총액 75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강민호가 그 이상의 몸값을 약속받았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의혹의 눈길이 쏠린다. SK는 정근우에게 총액 70억원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정근우는 이튿날 한화와 총액 70억원에 사인했다. 이미 SK가 같은 액수를 제시했는데, 같은 몸값으로 타 구단행을 선택했다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정근우는 "무엇보다 나를 가장 필요로 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팀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 한화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빈익빈 부익부 심화
재화는 한정돼 있다. 선수 몇 명이 독식하면 프로야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일성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현재 프로야구 최저 연봉이 2400만 원이다. 50억~80억원까지 몸값을 받는 선수가 나오면 위화감이 생긴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생길 것이다"고 우려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구단이 쓸 수 있는 돈과 수입은 한정돼 있다. 몇몇 선수들이 상당액을 가져가면 쏠림 현상이 벌어진다"며 "결국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 FA 대어가 늘어날수록 아직 2군에 있지만 미래를 위해 성장해야 할 선수들이 손해를 볼 것이다"고 경계했다.